경제적 소비와 환경적 소비 사이 균형잡기
작은 사이즈 필요하면, 한꺼번에 4개 사라?
한정판·풀세트...소유욕 자극하는 마케팅
소비는 반드시 (환경적인) 흔적을 남긴다

사람들은 모두 환경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일회용품이나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자고 입을 모읍니다. 정부와 기업은 여러 대책을 내놓고, 환경운동가들은 ‘효과가 미흡하다’며 더 많은 대책을 요구합니다. 무엇을 덜 쓰고 무엇을 덜 버리자는 얘기도 여기저기 참 많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생활 습관과 패턴은 정말 환경적으로 바뀌었을까요?

‘그린포스트’에서는 마케팅 키워드와 경제 유행어 중심으로 환경 문제를 들여다봅니다. 소비 시장을 흔들고 SNS를 강타하는 최신 트렌드 이면의 친환경 또는 반환경 이슈를 발굴하고 재점검합니다. 소비 시장에서의 유행이 환경적으로 지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짚어보는 컬럼입니다. 스물 아홉 번째는 가격 경쟁력을 앞세우거나 소유욕을 자극하는 ‘묶음상품’ 또는 ‘풀세트’ 등의 환경 영향입니다. [편집자 주]

소비자는 경제활동을 통해 필요한 걸 산다. 그런데 사람들이 꼭 필요한 것만 사는 건 아니다. 때로는 딱히 필요가 없는데 ‘갖고 싶어서’ 사는 물건도 있다. 어떤 경우는 지금은 필요하지 않아도 나중에 언젠가 필요할 것 같아서 미리 사두는 물건도 있다. 시간이 흘러 그 물건이 정말 필요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픽사베이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소비자는 경제활동을 통해 필요한 걸 산다. 그런데 사람들이 꼭 필요한 것만 사는 건 아니다. 때로는 딱히 필요가 없는데 ‘갖고 싶어서’ 사는 물건도 있다. 어떤 경우는 지금은 필요하지 않아도 나중에 언젠가 필요할 것 같아서 미리 사두는 물건도 있다. 시간이 흘러 그 물건이 정말 필요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픽사베이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이한 기자] 소비자는 경제활동을 통해 필요한 걸 산다. 그런데 사람들이 꼭 필요한 것만 사는 건 아니다. 때로는 딱히 필요가 없는데 ‘갖고 싶어서’ 사는 물건도 있다. 어떤 경우는 지금은 필요하지 않아도 나중에 언젠가 필요할 것 같아서 미리 사두는 물건도 있다. 시간이 흘러 그 물건이 정말 필요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기자 집에도 싸다는 이유로 사놓고 쓰지 않거나 먹지 않은 1+1 등의 제품이 여기저기 많다.

어떤 기준을 가지고 소비하든, 그건 각자의 자유다. 물건이나 서비스를 얼마나 가져야 적당하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기준도 사람마다 다르다. 그러므로 묶음 상품을 구매하든, 소유욕을 자극하는 멋진 패키지를 구매하든, 그건 비난할 일이 아니다. 하지만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는 있다. 인류가 제품을 만들어 유통하고 소비하는 과정에는 항상 에너지와 자원이 필요하다는 문제다. 제품 자체에 필요한 물과 원료, 유통 과정에서 필요한 포장재 등의 양이 만만치 않다. 우리가 사는 것들이 모두 환경에 영향을 준다는 의미다.

요즘 ‘포장 없는 가게’가 소비자들 일부 사이에서 유행이다. 불필요한 포장재 대신 필요한 물건을 필요한 만큼만 구매한다는 취지다. 하지만 그런 가게는 여전히 일부에 불과하다. 물건들은 여전히 대량으로 유통된다. 그러다 보니 포장재도 많이 필요하다. 그린피스가 지난해 3월 발간한 ‘국내 대형마트 일회용 플라스틱 유통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생산된 플라스틱의 약 40%가 다른 물건을 포장하는 데 쓰였다.

우리가 쓰는 물건 중 일부는 마케팅을 위해 다양한 패키지로 묶여 판매된다. 전통적인 홍보 기법 중 하나인 1+1, 라면이나 과자 등에서 자주 관찰되는 4~5개들이 묶음 상품, 여러 종류의 물건을 한 세트로 만드는 패키지나 풀세트, 특정한 기간 등에만 판매하는 한정판 등이 이런 사례다.

이런 물건들은 필요한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구매하려는 소비자에게 좋은 선택지가 된다. 그런데 이런 물건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가 하나 있다. 불필요한 포장쓰레기나 쓰지도 않고 결국 버려지는 쓰레기를 만들 우려가 있어서다. 위와 같은 경로로 유통하는 제품들이 모두 그렇다는 의미는 당연히 아니지만, 그럴 위험은 분명히 있다.

◇ 경제적인 소비와 환경적인 소비 사이 균형잡기

일반적으로 제품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따라 정해진다. 찾는 사람이 많은데 물건이 부족하면 가격이 오르고, 물건이 많은데 사려는 사람이 없으면 값은 싸진다. 하지만 반대로 가격에 따라 소비자들의 움직임이 정해지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1000원짜리 음료수 1병과, 1,700원짜리 음료수 1+1 행사상품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후자의 상품이 일시적으로 소비자의 관심을 더 끌 가능성이 있다. 가격경쟁력을 내세워 제품 판매량을 끌어 올리는 경우다.

제품 홍보나 재고 소진, 또는 매장으로 소비자를 끌어오는 모객효과 등을 고려하면 1+1 등 묶음 상품은 매우 강력한 마케팅 수단이다. 같은 가격에 2개를 파는 방식, 이른바 ‘덤’을 얹어주는 것은 마케팅의 오랜 기법 중 하나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소비시장에서도 ‘Buy1, Get1 Free’는 소비자들을 지갑을 열게 하는 대표적인 문구다. 불황과 경기침체가 이어지면서 ‘가성비’를 중시하는 소비자들이 많아졌고, 그 가운데 1+1 마케팅은 업계의 오랜 관행처럼 굳어졌다. 기자도 편의점이나 마트에가면 습관적으로 1+1 또는 2+1 제품을 살펴본다. 하지만 환경적으로는 어떨까?

묶음 상품 등으로 할인을 제공하는 마케팅은 기본적으로 소비를 늘리기 위한 전략이다. 재고를 소모하거나 쌓여있는 제품의 순환을 원활하게 하는 경우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생산을 늘릴 수도 있다. ‘인류가 사용하는 제품이 예외 없이 쓰레기를 남긴다’는 관점에서 보면 판매량을 늘리는 1+1 마케팅 역시 자원순환을 어렵게 할 우려가 있다.

지난해 이 문제를 둘러싸고 한차례 논란이 일었던 바 있다. 환경부가 ‘제품의 포장 재질·포장 방법에 관한 기준 등에 관한 규칙’ 개정안 내용을 발표하자 일각에서 ‘할인 또는 묶음 판매를 통한 판촉 활동이 금지되고 결과적으로 소비자가 가격 손해를 보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제기했다.

당시 논란이 거세지자 환경부는 “묶음 할인 등 소비자 할인 혜택을 유지하면서도 환경보호를 동시에 이루고자 하는 정책”이라고 밝혔다. “늘어나는 폐기물을 줄이기 위해 판촉시 불필요하게 다시 포장해 발생하는 폐기물을 줄이려는 것”이라는 부연 설명도 덧붙였다. 한 개의 가격으로 두 개를 팔거나, 여러 개 사면 단위가격을 할인해주는 건 좋지만, 재포장 과정에서 발생하는 쓰레기 등은 줄이자는 취지였다.

증정상품 재포장 사례(좌)와 개선 사례(우). (환경부 제공) 2019.1.15/그린포스트코리아
지난해, '재포장'을 둘러싸고 여러 논란이 일었다. 사진은 지난 2019년 환경부가 공개했던 증정상품 재포장 사례(왼쪽)와 개선 사례(오른쪽) (환경부 제공, 본사DB)/그린포스트코리아

◇ 작은 사이즈 필요하면, 한꺼번에 4개를 사라?

실제 마트에 가보면 어떨까. 요즘도 묶음상품은 여전히 다양한 형태로 유통된다. 기자가 지난 7일 저녁 방문한 서울 송파구의 한 중형 마트에서는 라면 4~5개들이 묶음 상품이 매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 제품들은 하나같이 비닐로 한번 더 포장돼 있었다. 

실제로 라면은 마트 등에서 묶음 상품으로 판매하는 대표적인 제품 중 하나다. 동네 슈퍼에서 하나만 사는 것 보다 묶음상품으로 사는 게 단위 가격이 싸므로 소비자들은 으레 그곳으로 손을 뻗는다. 싼값을 찾는 소비자를 비난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결정이 결국 비닐쓰레기를 남긴다는 사실 역시 부인할 수 없다.  

(다만, 지난해 환경부는 “라면 5개들이 번들 묶음 할인 제품의 경우 공장에서 출시되는 제품(종합제품)이므로 재포장이 아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옆 매대에는 국내 유명브랜드 과자 4개들이 묶음 상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기자도 어린시절부터 늘 먹던 유명한 과자다. 흔히 알고 있는 사이즈(90그램)는 1,190원에 판매하고 있었고 1/3사이즈 제품(30그램) 4봉지를 묶어 파는 제품은 2,490원이었다. 두 제품 모두 2+1 상품이었다.

10그램당 가격은 큰 사이즈가 132원, 작은 사이즈가 208원이다. 작게 포장한 제품은 편리하다. 1~2인 가구거나 과자를 조금씩만 먹고 싶은 소비자는 30그램짜리 제품이 더 어울릴 수 있다. 그런데 30그램 제품을 사려면 4개를 구매해야 한다. 이 제품 역시 라면처럼 비닐로 재포장되어 있었다.

기존 90그램 제품은 과자포장 하나만 버리면 되는데, 30그램짜리 묶음상품은 (비록 크기는 작지만) 과자봉지 4개와 비닐 포장지 1개를 버려야 한다. ‘과자를 다 못먹고 남기는’ 사람이라면 작은 사이즈가 대안이지만, 묶어서만 구매할 수 있다면 환경적으로는 대안이 되기 어렵다.

기업 입장에서는 큰 제품을 사이즈만 작게 만들어 팔면 매출이 떨어질 염려가 있다. 용량이 줄면 그만큼 개수가 늘어나야 (매출 관점에서는) 손익이 맞는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비닐 등의 이중포장이 필요하다면, 그리고 작은 제품을 반드시 여러 개 사야 한다면 경제적으로나 환경적으로 좋은 대안은 아니다.

◇ 한정판·풀세트...소유욕을 자극하는 마케팅

소유욕을 자극하거나, 또는 경제적인 이익을 내세워 소비를 유도하고 그 결과가 환경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례는 또 있다. ‘리미티드 에디션’이나 ‘풀세트’ 같은 제품들이다.

리미티드 에디션, 즉 한정판은 희소성의 법칙에 원칙을 둔다. 갖기 어려울수록 소유하고 싶은 마음이 늘어난다고 이해하면 된다. 쉽게 비유하자면, 다이아몬드보다 물이 인간의 생존에 훨씬 더 필요하지만, 구하기 어려운 다이아몬드가 훨씬 더 비싸다. 한정판 마케팅은 처음에는 수량을 제한하는 방법에서 출발했으나 이후 특정 분야 마니아 등을 상대로 적극적인 판매전략을 더하는 방식으로 발전되어 왔다.

환경적으로 돌아보아야 할 부분이 있다. 한정판이라는 단어의 어감과 달리 이런 마케팅 기법이 오히려 제품이나 서비스의 생산을 늘리는 경향도 있어서다. 계절이나 내용 따라 버전을 달리하는 제품을 출시하는 텀블러 등이 이런 사례다. 텀블러는 ‘에코템’이지만 실제로 여러번 사용하는 게 아니라 디자인별로 여러개를 보유하는 건 전혀 환경적이지 않다. 제품 사용주기의 탄소 발자국 등을 고려한 게 아니라 소유하고 싶어지도록 생산된 제품인 경우 그렇다는 얘기다.

텀블러를 생산하고 폐기 하는건 일회용 컵보다 훨씬 어렵다. 텀블러가 정말로 환경적이려면 여러번 사용해야 한다. KBS가 기후변화행동연구소와 함께 연구한 바에 따르면, 300ml 용량 텀블러를 매일 1번씩 쓰면 2주 만에 플라스틱컵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상쇄한다. 한 달이 지나면 종이컵 온실가스배출량보다 적어진다.

그런데, 텀블러를 ‘수집’하는 경우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꽃을 소재로 한 봄 텀블러와 낙엽 디자인의 가을 텀블러, 산타클로스가 새겨진 겨울 텀블러를 모두 소장하는 건 전혀 환경적이지 않다는 의미다. ‘리미테드 에디션’을 향한 소유욕이 낳을 수 있는 환경적인 결과다.

재포장과 묶음 상품 관련 논란이 뜨겁다. 비판이 거세지자 환경부는 관련 내용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소비자들의 반응도 엇갈린다. 사진은 서울의 한 마트에 진열된 5개들이 라면 모습. 환경부는 “라면 5개들이 번들 묶음 할인 제품의 경우 공장에서 출시되는 제품(종합제품)이므로 재포장이 아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이한 기자 2020.06.20)/그린포스트코리아
서울의 한 마트에 진열된 5개들이 라면 모습. 환경부는 “라면 5개들이 번들 묶음 할인 제품의 경우 공장에서 출시되는 제품(종합제품)이므로 재포장이 아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사진은 독자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로 사진 속 제품이나 브랜드는 기사 특정 내용과 관계없음. (본사 DB)/그린포스트코리아

◇ 소비는 반드시 (환경적인) 흔적을 남긴다

특정 제품군에서 여러 가지 제품을 두루 모아 ‘풀세트’ 형식으로 판매하는 경우도 있다. 이 사례도 판매전략으로는 훌륭하다. 하지만 환경적인 시선으로는 아쉬움을 제기할 수 있다. 한꺼번에 구매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저렴할 수 있고, 제품을 낱개로 모두 사는 것 보다 포장쓰레기를 줄일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굳이 모든 제품을 다 보유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 풀세트를 살 수 있다는 점도 따져봐야 한다.

풀세트와 소유욕을 연결하는 마케팅도 이뤄진다. 취미활동 등의 영역에서 이런 사례가 종종 관찰된다. 내가 원하는 특정 제품을 개별로는 판매하지 않고 세트로만 묶어서 파는 경우다. 비슷한 제품을 서로 다른 디자인 등 여러 버전으로 만드는 경우도 있다. 위와 같은 경우 모두 갖기 위해 부득이하게 세트 전체를 구매다면 어떻게 될까. 제품 생산과 유통, 소비 과정에서 애초 이 소비자의 계획이나 성향보다 더 많은 환경적인 영향력이 발생한다.

기자는 J.K.롤링의 소설 ‘해리포터’ 시리즈를 좋아한다. 유명 장난감 브랜드에서 관련 IP를 가지고 제품을 만든다. 하지만 놀랍게도, 기자가 갖고 싶은 등장인물 캐릭터들은 한 제품에 모여있지 않고 여러 곳에 나뉘어 있다. 기자의 취향이 특이해서일까? 아니면 그 기업은 기자가 제품을 두 개 이상 구매하기를 원했을까.

기업은 제품을 팔아 돈을 번다. 소비자가 만족하는 제품을 내놓는 게 숙제고, 갖고 싶도록 만드는 게 그들의 일이다. 그런 마케팅 전략을 비난할 수는 없다. 다만, 제품을 생산하고 유통하고 또 소비하는 과정에서 환경적인 영향을 줄이는 방법이 있는지는 꾸준히 따져봐야 한다. 소비자 역시 내가 제품을 구매하는 과정이 환경적으로 어떤 영향이 있는지, 그걸 줄일 수 있는지 따져보는 게 좋다. 앞서 언급한 '해리포터' 시리즈 소설 속에는 ‘마법은 반드시 흔적을 남긴다’는 문구가 나온다. 인류의 생산과 소비도, 반드시 (환경적인) 흔적을 남긴다.

leehan@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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