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컵은 따로 모아야 된다는데...가능한 미션일까?
산업계, 종이컵 재활용 및 소재 혁신 등 행보 이어져
“코팅된 종이 용기, 종류별 선별기능 갖춰야”

환경의 사전적(표준국어대사전) 의미는 ‘생물에게 직접·간접으로 영향을 주는 자연적 조건이나 사회적 상황’ 또는 ‘생활하는 주위의 상태’입니다. 쉽게 말하면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바로 나의 환경이라는 의미겠지요.

저널리스트 겸 논픽션 작가 율라 비스는 자신의 저서 <면역에 관하여>에서 ‘우리 모두는 서로의 환경’이라고 말했습니다. 꼭 그 구절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이 책은 뉴욕 타임스와 시카고 트리뷴 등에서 출간 당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됐고 빌 게이츠와 마크 저커버그가 추천 도서로 선정했습니다. 그러면 당신은 누구의 환경인가요?

주변의 모든 것과 우리 모두가 누군가의 환경이라면, 인류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대부분의 물건 역시 환경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24시간 우리 곁에서 제 기능을 발휘하며 환경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치는 생활 속 제품들을 소개합니다. 여덟 번째는 습관적으로 자주 사용하는 종이컵입니다. [편집자 주]

국내 종이컵 재활용률은 10% 수준이다. 종이컵 내부를 폴리에틸렌(PE)으로 코팅하는데, 이를 일반 폐지와 섞어서 배출하면 재활용되지 않기 때문이다(박소희 기자)/그린포스트코리아
종이는 플라스틱이나 비닐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환경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소재다. 그러면 종이컵은 어떨까. 종이컵은 일반 종이와 달라 재활용 선별장에서 일반쓰레기로 버려진다. 안쪽에 PE(폴리에틸렌) 코팅이 되어 있어서다. 사진은 버려진 종이컵 모습. 독자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로 사진 속 제품이나 브랜드 등은 기사 특정 내용과 관계없음. (본사 DB)/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이한 기자] 종이는 플라스틱이나 비닐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환경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소재다. 그러면 종이컵은 어떨까. 종이컵은 일반 종이와 달라 재활용 선별장에서 일반쓰레기로 버려진다. 안쪽에 PE(폴리에틸렌) 코팅이 되어 있어서다. 환경부 ‘내 손안의 분리배출’ 앱에 따르면 기본적으로 코팅된 종이는 종량제봉투에 버리고, 종이컵은 내용물을 비우고 물로 한번 헹군 다음 압착해 봉투에 넣거나 한데 묶어서 버려야 한다. 일반 종이와 섞이면 안 된다는 의미다. 잘 되고 있을까?

우선 종이컵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지만, 사실 종이컵은 인류의 위생을 위해 발명됐다. 산업통상자원부 블로그 ‘산소통’에 따르면, 1900년대 초반만 해도 자판기에는 도자기나 유리컵을 사용했다. 그러다 보니 깨질 염려가 있고 여러 사람이 사용하느라 위생문제도 있어 이를 대체할 소재로 종이컵이 개발됐다. 여러 차례 연구를 거듭한 끝에 물에 젖어도 찢어지지 않는 종이컵이 개발됐다.

문제는 너무 많이 쓴다는 데 있다. 김미화 자원순환사회연대 이사장은 2018년 중앙일보에 기고한 칼럼을 통해 “연간 230억 개의 종이컵을 사용하는 우리나라도 전 세계 숲이 점점 줄어드는데 한몫 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김 이사장(당시 사무총장)은 칼럼에서 “230억 개의 종이컵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50m 이상의 나무 1500만 그루를 벌목해야 하고, 국내 생산하는 펄프로는 한계가 있어 14만t 이상을 수입에 의존한다”고 썼다. 그러면서 “종이컵 생산을 위해 25만 3000t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한다”고 밝혔다.

◇ 종이컵은 따로 모아야 된다는데...가능한 미션일까?

생산하는 과정에서의 환경 영향이 있겠지만, 버려지는 과정도 문제다. 앞서 언급했듯 재활용 분리배출에서는 중요한 원칙이 하나 있다. 같은 소재끼리 모아서 버리는 것이다. 그 기준에 따라 코팅된 종이는 종이와 같이 버리면 안 된다. 안쪽이 코팅된 일회용 종이컵도 코팅된 종이에 포함된다. 일반 종이와 달리 코팅을 벗겨내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코팅종이오는 또 구분해야 한다)

종이를 재활용 하려면 셀룰로스 섬유를 푼 다음 다시 결합해야 한다. 이를 위해 먼저 물에 풀어야 하는데 코팅된 종이는 일반 종이에 비해 이 시간이 길다. 과정이 하나 더 있어서다. 그래서 환경부는 종이컵을 일반 종이와 따로 모아서 배출하라고 안내한다.

문제가 있다. 종이컵을 따로 모을만한 인프라가 충분하지 않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은 “우유팩만 따로 모으는 것도 쉽지 않고 우유팩과 종이컵 역시 섞이면 안 되는데, 그 와중에 종이컵만 따로 모아 분리배출하라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운 얘기”라고 말했다. 홍 소장은 “커피전문점 등 큰 매장에서 사용한 컵만 따로 모아 보내는 경우라면 가능하지만, 일반 가정 등에서 종이컵만 따로 모을 수 있는 인프라는 없다”고 말했다.

김태희 자원순환사회연대 국장도 종이컵 재활용에 대한 어려움을 언급했다. 김 국장은 “코팅을 벗겨내기 위한 과정이 한번 더 필요하기 때문에 일반 종이와 섞이면 재활용이 어렵다”고 말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종이컵 전용 수거함을 설치한 곳이나 종이컵 관련 자발적 협약을 맺은 곳 등에서 따로 모아 가져가면 재활용이 가능하지만, 김태희 국장은 이 부분에 대해서도 “최근에는 종이컵을 재활용하는 곳들도 줄었다”고 말했다.

김 국장은 “매장에서 일회용컵 사용을 금지하고 다회용 컵으로 전환하는 곳이 늘어났을 때 자연스럽게 종이컵 사용량도 일부 줄었고, 이에 따라 수거 업체들이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게다가 종이컵이 깨끗하지 않은 상태로 수거되는 경우가 많은 것 역시 업체 입장에서는 어려움이다.

◇ 산업계, 종이컵 재활용 및 소재 혁신 등 행보 이어져

자원순환구조 자체에서의 현실적인 어려움 속에, 최근 산업계 등에서는 종이컵 재활용과 소재 혁신 등에 대한 행보가 이어지고 있다. 실제 사례를 보자. 필라로이드라는 업체는 종이컵 펄프를 재활용해 사진을 인화한다. 필라로이드는 어플리케이션에서 “매년 버려지는 257억 개의 종이컵에서 배출되는 16만톤이 이산화탄소가 다시 우리 삶으로 돌아온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기존에 사용하던 비닐 인화지를 전면 중단하고 종이컵 폐기물을 재생해 사진으로 돌아오게 한다”고 덧붙였다. 필라로이드는 2월 26일 현재 38만 1.788개의 종이컵을 재활용했다.

한국제지는 지난해 3월 개발한 ‘그린실드’로 해외 생분해성 인증 ‘OK Compost Industrial’를 획득했다. 그린실드는 재활용 및 생분해가 어려워 쓰레기로 버려지는 일반 종이컵과 달리 별다른 필름 제거 공정 없이 쉽게 물에 분리되는 제품이다. 한국제지는 “종이로 재활용될 뿐만 아니라 생분해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제품은 롯데시네마 팝콘 컵 소재로 사용되기도 했다. CU는 생산 과정에서 화학 처리 과정을 없앤 무형광, 무방부, 무표백 크라프트 종이 재질로 만든 크라프트 컵을 ‘GET커피’에 적용했다.

포스코는 올해 2월부터 강남구 포스코센터를 ‘일회용 컵 사용 없는 시범빌딩’으로 운영하기로 했다. 포스코센터에서 근무하는 모든 임직원은 생활 속 탄소중립을 실천하겠다는 취지에서 일호용 컵 대신 회사가 지급한 텀블러를 사용한다. 최정우 포스코 회장도 시범빌딩 운영 첫날 텀블러를 가지고 방문했다.

소재 개발에 대한 노력은 여러 곳에서 이어졌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해 11월 블로그에 공개한 바에 따르면, 2019년에는 국내 한 중소기업이 수용성 코팅액을 사용해 환경유해물질이 발생하지 않는 친환경 종이컵을 출시했다. “친환경 코팅제를 바른 종이컵은 매립해도 생분해되거나 소각 시 환경유해물질이 발생하지 않아 환경오염을 방지할 수 있다”는게 블로그의 설명.

산업부는 자연에서 추출한 재료로 만들어진 친환경 종이컵 사례도 블로그에 소개했다. 종이 대신 사탕수수에서 설탕을 추출하고 남은 찌꺼기, 미역이나 우뭇가사리 등을 이용해 컵을 만들기도 하고, 폴리에틸렌 대신 게 껍데기에서 나온 키토산으로 내부를 코팅한 제품도 있다.

소재로서 ‘종이’는 플라스틱 등에 비해 비교적 환경적이다. 하지만 그 종이를 어떻게 사용하고 얼마나 쓰며 버려진 다음 어느 정도나 재활용이 가능한지 등도 꼼꼼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상대적으로 환경적이지만, 한편으로는 환경적이지 않은 부분도 있는 (일회용) 종이컵의 역설이다. (픽사베이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소재로서 ‘종이’는 플라스틱 등에 비해 비교적 환경적이다. 하지만 그 종이를 어떻게 사용하고 얼마나 쓰며 버려진 다음 어느 정도나 재활용이 가능한지 등도 꼼꼼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상대적으로 환경적이지만, 한편으로는 환경적이지 않은 부분도 있는 (일회용) 종이컵의 역설이다. (픽사베이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 “코팅된 종이 용기, 종류별 선별기능 갖춰야”

종이컵 사용을 줄이려는 정책도 마련되고 있다. 환경부는 지난 2월 15일, “플라스틱 사용 규제를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촉진에 관한 법률'과 하위법령 개정안을 2월 16일부터 3월 29일까지 41일간 입법예고한다”고 밝혔다. 개정안은 지난해 12월 24일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발표된 '생활폐기물 탈플라스틱 대책'을 법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1회용 컵 보증금제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개정안은 2022년부터 시행되는 1회용 컵 보증금제에 앞서 1회용 컵 보증금 대상자를 커피, 음료, 제과제빵, 패스트푸드 업종의 가맹본부·가맹점사업자를 비롯해 식품접객업 중 휴게음식점영업, 일반음식점영업 또는 제과점영업 등 사업장이 100개 이상인 동일 법인, 그 외 참여를 희망하는 사업자로 정했다.

1회용 컵 보증금제가 도입되면 전국적으로 2만여 개의 매장에서 커피를 주문할 때 보증금으로 일정 금액을 내고, 컵을 매장에 돌려주면 미리 낸 돈을 받게 된다. 이와 더불어 개정안은 1회용품 규제대상 및 사용억제 품목도 확대했다. 커피전문점 등 식품접객업소 매장 내에서 종이컵, 플라스틱 빨대·젓는 막대의 사용이 금지된다.

종이컵의 환경 영향을 줄이기 위해서는 어떤 행보가 더 필요할까.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은 코팅된 종이를 종류별로 나눌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라고 조언한다. 홍 소장은 “종이용기 전문선별기능이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코팅된 종이용기를 (소비자 등이) 하꺼번에 배출하면 그걸 특성에 따라 살균팩, 멸균팩, 그리고 종이컵류 등으로 선별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풀라스틱 선별장이나 유리용기 선별장처럼 코팅된 종이용기를 종류별로 나눌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는 조언이다.

소재로서 ‘종이’는 플라스틱 등에 비해 비교적 환경적이다. 하지만 그 종이를 어떻게 사용하고 얼마나 쓰며 버려진 다음 어느 정도나 재활용이 가능한지 등도 꼼꼼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상대적으로 환경적이지만, 한편으로는 환경적이지 않은 부분도 있는 (일회용) 종이컵의 역설이다.

leehan@greenpost.kr

저작권자 © 그린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