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 잘 녹지 않는 고흡수성 폴리머(SAP) 소재
연간 2억개...15% 하수구 버려져 미세플라스틱 원인
재사용 수요 및 의향 높아...비용·위생 문제 등 숙제
폐기물부담금 부과 예정, 소재혁신 등 개선 노력 이어져

환경의 사전적(표준국어대사전) 의미는 ‘생물에게 직접·간접으로 영향을 주는 자연적 조건이나 사회적 상황’ 또는 ‘생활하는 주위의 상태’입니다. 쉽게 말하면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바로 나의 환경이라는 의미겠지요.

저널리스트 겸 논픽션 작가 율라 비스는 자신의 저서 <면역에 관하여>에서 ‘우리 모두는 서로의 환경’이라고 말했습니다. 꼭 그 구절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이 책은 뉴욕 타임스와 시카고 트리뷴 등에서 출간 당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됐고 빌 게이츠와 마크 저커버그가 추천 도서로 선정했습니다. 그러면 당신은 누구의 환경인가요?

주변의 모든 것과 우리 모두가 누군가의 환경이라면, 인류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대부분의 물건 역시 환경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24시간 우리 곁에서 제 기능을 발휘하며 환경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치는 생활 속 제품들을 소개합니다. 일곱 번째는 냉동고에 몇 개씩은 가지고 있는 아이스팩입니다. [편집자 주]

고흡수성수지 아이스팩을 수거해 선별, 세척 후 재포장한 모습. (환경부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아이스팩은 재활용이 어려운 폐기물로 종량제봉투에 버려야 한다. 고흡수성폴리머(SAP)가 들어있을 확률이 높아서다. 사진은 고흡수성수지 아이스팩을 수거해 선별, 세척 후 재포장한 모습. (환경부 제공, 본사 DB)/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이한 기자] 기자 집 냉동실에는 아이스팩이 7개 있다. 일부러 모은 건 아니다. 택배 받거나 부모님 집에서 밑반찬을 가져오면서 한두개씩 쌓여 냉장고 한쪽 자리를 꽉 차지하게 됐다. 버리지는 않고 얼려두었다가 재사용하지만, 1~2개만 가지고 있으면 충분한데 너무 많이 쌓여 있어서 문제다.

아이스팩은 편리하다. 아이스박스에 하나만 넣어두면 음식이나 식재료를 한동안 신선하게 보관할 수 있다. 냉장고 역할을 완벽하게 대신할 수는 없지만 차를 타고 이동하는 몇 시간 정도라면 보냉 효과는 충분하다. 하지만 (편리한 물건 중 상당수가 그러하듯) 이 편리함 이면에 환경적인 영향이 있다.

아이스팩은 무겁고 부피가 크다. 버리기도 어렵다. 어떤 이들은 내용물을 쏟아 하수구에 버리고 포장재는 일반 쓰레기로 배출한다는데, 그렇게 버리면 안 된다. 환경부와 한국환경공단에 따르면 아이스팩은 재활용이 어려운 폐기물로 종량제봉투에 버려야 한다. 고흡수성 폴리머(SAP)가 들어있을 확률이 높아서다. 내용물을 다른데 버리면 안 되는 이유다.

SAP는 물에 안 녹고 얼음보다 냉기가 오래 지속돼 보냉 효과가 좋다. 젤 형태여서 부서지거나 파손될 염려도 적다. 그래서 아이스팩 소재로 많이 사용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 물질을 싱크대나 변기에 버리면 수질오염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쉽게 말하면 미세플라스틱을 하수구에 쏟아내는 셈이어서다.

◇ 연간 2억개...15% 하수구 버려져 미세플라스틱 원인

아이스팩을 함부로 버리지 말라는 얘기는 언론에 자주 등장했다. 하지만 모든 소비자가 그 내용을 잘 알고 있는 건 아니다. 실제로 서울 송파구에 사는 한 소비자는 지난해 기자에게 “내용물을 물에 희석해 싱크대에 버리고 비닐만 재활용봉투에 버린다”고 했다. 또 다른 소비자는 “버리기가 애매해 그냥 다용도실에 쌓아두었다”고 말했다. 두 사람 모두 아이스팩을 종량제봉투에 통째로 버려야 하는지는 잘 몰랐다고 했다.

실제로 환경부가 지난해 7월 밝힌 바에 따르면, 고흡수성 수지 아이스팩의 약 80%가 종량제 봉투에 버려져 소각·매립되고 있지만, 15%는 하수구로 배출돼 미세플라스틱의 원인이 되고 있다.

올바른 방법으로 버려도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고흡수성 폴리머는 불에 잘 타지 않는데다 기본적으로 요즘 아이스팩이 워낙 많이 유통되고 있어서다. 환경부에 따르면 2019년에 고흡수성수지 아이스팩은 2억 1천만개가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2016년과 비교해 2배 늘어난 숫자다. 지난해 코로나19 여파로 온라인 쇼핑 등이 늘어났다는 점을 고려하면 최근에도 많은 양의 아이스팩이 유통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안을 마련하는 움직임들은 꾸준히 있었다. 가장 쉬운 방법은 재사용이다. 고흡수성 폴리머가 두껍고 단단한 비닐에 쌓여있어서 버리기가 애매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포장이 트는하고 내용물이 오래가고 여러번 얼려도 품질에 큰 변화가 없어 재사용이 가능하다.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일반 가정에서 사용하는 아이스팩은 1~2개 정도만 있으면 충분히 돌려가며 사용할 수 있다. ‘연간 2억개 이상’이라는 수량을 고려하면 집에서 재사용하는 물량 만으로는 사용량을 따라잡을 수 없다. 이에 따라 기업이나 지자체 등에서 적극적으로 재활용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꾸준히 제기돼왔다.

재사용이 어려운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아이스팩 중에는 겉면에 기업 로고나 제품명 등이 적혀있는 경우가 많아서 기업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유통한 것 말고 다른 아이스팩을 재사용하기쉽지 않을 수도 있다. 배송했던 아이스팩을 회수해 다시 가져오는데 필요한 인력이나 시스템, 비용 등도 부담이다.

◇ 재사용 수요 및 의향 높아...비용·위생 문제 등 숙제

환경부에 따르면 충진재로 주로 쓰이는 고흡수성수지는 미세 플라스틱의 일종으로 자연 분해가 안 되고 소각·매립도 어려워 발생량 억제와 친환경 대체재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환경부 역시 이에 따라 대책을 꾸준히 마련해왔다.

지난 2019년 현대홈쇼핑, 서울특별시 상인연합회, 소비자시민모임과 함께 2019년 아이스팩 재사용을 위한 자발적 협약을 체결하고 시범사업을 추진한 바 있다. 그 결과, 재사용 수요는 충분하나 높은 재사용 비용과 아이스팩 제조사별로 다른 규격 등으로 재사용이 어려운 사실을 확인했다.

판매 업체에서 아이스팩을 회수하면, 이를 선별·세척한 후 서울 마장동 축산시장에 공급한 결과, 준비한 2,500여 개가 조기 소진돼 상인들이 추가 공급을 희망할 정도로 반응이 좋았으며, 소비자들도 아이스팩 재사용에 대해 만족했다.

다만, 회수된 아이스팩을 재사용하기 위해서는 위생문제로 선별·세척이 필수적이었으며, 이로 인해 재사용비용이 신제품가격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환경부에 따르면 (300g 기준) 고흡수성수지 아이스팩은 개당 105원, 재사용 비용은 개당 200원이었다. 또한, 만족도 조사에서는 아이스팩 크기와 재질, 표기 사항 등이 통일되면 재사용이 더 쉬울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이에 따라 환경부는 지난해 7월, “고흡수성수지를 사용한 아이스팩의 경우 제조단계에서 재사용이 쉽도록 크기, 표시사항 등을 표준화하고 사용 후 수거체계를 구축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D

NS홈쇼핑은 물류센터 냉장・냉동 전 상품에 ‘친환경 종이아이스팩’을 사용하기로 했다. (NS홈쇼핑 제공) 2020.2.24/그린포스트코리아
아이스팩의 환경 영향을 고려해 대안을 마련하는 움직임들은 꾸준히 있었다. 사진은 NS홈쇼핑이 지난해 도입한 ‘친환경 종이아이스팩’을 사용하기로 했다. (NS홈쇼핑 제공, 본사 DB)/그린포스트코리아

◇ 고흡수성수지 아이스팩은 폐기물부담금 부과 예정

이를 위해 환경부는 2019년부터 아이스팩 제조사와의 간담회, 아이스팩 재사용 시범사업 등을 거쳐 ’아이스팩 재사용 활성화를 위한 지침서(가이드라인)‘를 마련했다. 이 지침서에는 아이스팩을 크기와 중량에 따라 대·중·소로 규격화하고 적정 배출방법 등 표시사항을 정했다.

아울러, 지자체별로 아이스팩 수거함 설치·운영을 지원하고 주민센터, 사회관계망서비스 등 다양한 홍보매체를 통해 국민들에게 가까운 아이스팩 수거함 위치를 알리고 재사용 방법도 적극적으로 홍보하겠다고 밝혔다. 아이스팩 수거함은 지난해 7월 기준, 전국 12개 기초지자체에서 616개를 설치해 운영중이다.

고흡수성수지를 물, 전분, 소금 등 친환경 대체 소재로 전환하고 재사용을 유도하기 위해 1년 이상의 준비·유예기간을 거친 뒤, 전환되지 않은 고흡수성수지 아이스팩에는 적정 처리비용에 상응하는 폐기물부담금을 적용할 계획이라고도 밝혔다.

폐기물부담금은 고흡수성수지를 친환경 대체재로 전환하거나 아이스팩 재사용을 유도하는 것이 목적이므로, 재질전환이나 재사용체계 정착에 필요한 기간을 반영하여 2022년 출고량을 기준으로 2023년부터 최초 부과될 예정이다. 고흡수성수지가 아닌 물, 전분, 소금 등 친환경 대체재를 사용하거나 재사용하는 경우에는 폐기물부담금을 부과하지 않는다.

당시 환경부는 “현 출고량 기준 약 40억 폐기물부담금 부과를 예상하지만, 대체재로 전환이나 재사용이 활성화되면 부과금액이 훨씬 낮아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 소재 혁신 등 개선 노력 이어져

당시 환경부가 공개한 ‘아이스팩 재사용 활성화를 위한 지침서’에 따르면 재사용 아이스팩의 포장재질은 최종 폐기 시 매립, 소각을 고려하여 포장재 및 구성요소에 중금속 및 유독 물질이 포함되지 않는 재질을 사용해야 한다. 아이스팩의 표시사항은 재사용 활성화를 위해 판촉을 위한 과도한 마케팅요소 표시를 지양하고, 재질과 규격, 사용후 폐기방법 등을 포함해야 한다.

한편에서는 흡수체 자체를 친환경적인 소재로 바꾸려는 움직임도 있다. 해조류로 바이오 흡수체를 만든 ‘마린기프트’가 그 사례다. 마린기프트 허수연 대표는 지난 1월 본지 인터뷰를 통해 “홍조류, 해파리, 게껍질 등 다양한 원료를 혼합해서 친환경 바이오 흡수체(BIo-SA)를 만든다”고 밝힌 바 있다. 이 흡수체로 아이스팩이나 기저귀 등에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얼린 생수 등을 가지고 아이스팩을 대체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다만, 허수연 대표는 이를 통해 “물만 얼린 얼음팩만으로는 냉기지속 시간이 짧다”고 지적하면서 “먼 거리를 배송해야 하는 물건이나 날씨가 더울 때, 보관시간이 길 때는 냉기 지속시간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사용한 아이스팩을 수거하는 경우에 대해서도 “(아직은) 전국적인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고 기본적으로 사용량도 많아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일회용 비닐이나 플라스틱 그릇 등 유통과정에서 생기는 환경 이슈에 대해 그 동안 많은 논의가 이뤄졌다. 그 가운데 아이스팩은 상대적으로 논의가 미비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하지만 최근에는 소재 혁신이나 재사용 시스템 구축 등이 이어지면서 앞으로는 아이스팩의 환경 영향에 대한 대책도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leehan@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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