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변화는 커피에 영향을 미치고
내가 마신 커피는 기후변화에 영향을 준다?
환경이 커피 생산에, 커피 소비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
환경의 사전적(표준국어대사전) 의미는 ‘생물에게 직접·간접으로 영향을 주는 자연적 조건이나 사회적 상황’ 또는 ‘생활하는 주위의 상태’입니다. 쉽게 말하면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바로 나의 환경이라는 의미겠지요.
저널리스트 겸 논픽션 작가 율라 비스는 자신의 저서 <면역에 관하여>에서 ‘우리 모두는 서로의 환경’이라고 말했습니다. 꼭 그 구절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이 책은 뉴욕 타임스와 시카고 트리뷴 등에서 출간 당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됐고 빌 게이츠와 마크 저커버그가 추천 도서로 선정했습니다. 그러면 당신은 누구의 환경인가요?
주변의 모든 것과 우리 모두가 누군가의 환경이라면, 인류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대부분의 물건 역시 환경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24시간 우리 곁에서 제 기능을 발휘하며 환경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치는 생활 속 제품들을 소개합니다. 여섯 번째는 많은 사람이 즐겨 마시는 커피입니다. [편집자 주]
[그린포스트코리아 이한 기자] 현대경제연구원이 2018년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한국 성인은 1년에 커피를 353잔 마신다. 하루에 1잔은 마신다는 의미인데 이는 세게 평균 소비량(132잔)의 2.7배다. 카페도 많다. 공정거래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국내 커피 프랜차이즈 매장수는 2018년 기준 1만 5481여개로 외식 업종 중 한식(1만 7810개), 치킨(1만 7440개)에 이어 세 번째다.
커피는 환경 또는 경제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쉽게 생각해보자. 커피 열매는 나무에서 열린다. 나무에서 얻는 것의 질과 양은 기후변화와 당연히 밀접한 관련이 있다. 커피나무는 아프리카나 남미 등 먼 곳에 많고, 트렌디한 카페는 대도시에 많다. 유통 과정이 길다.
◇ 또 다른 숙제, 커피 소비의 환경 영향 줄여라
환경이 커피 생산에 미치는 영향이 있는 반면, 커피 소비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도 있다. 카페에서 나오는 일회용품이 대표적이다. 환경부에 따르면, 2019년 기준 국내 15개 커피전문점 브랜드와 4개 패스트푸드점 브랜드가 사용한 빨대는 약 9억 3,800만개로 무게로 따지면 약 657톤에 달한다.
물론 패스트푸드점에서 사용한 빨대는 커피보다 ‘탄산음료’를 소비하는 과정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높다. 카페 음료도 커피만 있는 건 아니다. 그러므로 657톤이라는 무게의 쓰레기가 모두 커피에서 나왔다고 주장하기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빨대가 아니더라도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사용하는 일회용 컵, 캡슐와 캔음료 등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생각하면 커피가 만들어내는 폐기물의 양은 그것보다 더 많다고 추정할 수 있다.
커피를 내린 원두도 버려진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서 펴낸 책 <녹색상담소>에 따르면 커피 한 잔에 원두 10~15그램을 쓰고 원두에서 커피를 내리면 99.8%는 찌꺼기 형태로 남는다. 책은 “해마다 한 사람이 대략 3Kg 정도의 커피 찌꺼기를 만든다”고 밝혔다. 원두찌꺼기는 일반 쓰레기로, 대부분 태우거나 땅에 묻힌다. 커피 찌꺼기는 질소와 인이 풍부해 좋은 퇴비가 되지만, 카페인 성분 때문에 바로 퇴비로 쓰기는 어렵다.
관세청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17년 기준 생두 14만 7000여 톤을 수입한다. 세계에서 해마다 원두 700만톤을 소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만큼의 원두 찌꺼기가 (여러 곳에서 재사용 또는 자원화가 이뤄지고 있지만) 버려진다는 의미다. 인류가 해결해야 할 숙제다.
◇ 커피 공정무역을 향한 노력들
희망적인 것이 있다. 커피가 워낙 일상과 밀접한 식품이고, 환경과 경제에 미치는 영향 등이 비교적 잘 알려진 덕분에, 위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도 여러 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실제로 커피는 지난 2000년대 중반부터 ‘공정무역’이 이슈였다. 공정무역은 개발도상국 생산자의 경제적 자립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생산자에게 유리한 무역조건을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선진국과 개도국 사이의 불공정 무역을 줄이고 환경파괴나 노동력 착취 등을 막자는 취지다.
커피는 세계적인 인기 식품이지만 원두 생산은 남위와 북위 25도 해당하는 이른바 ‘커피벨트’에서 주로 생산한다. 이에 따라 원두 생산과 유통 과정에서 나타나는 불공정한 이윤 배분구조를 개선해 영세 커피 농가의 경제적 수준을 향상시키는 방안을 시도한 게 커피 공정무역의 출발이다. 커피 소비를 통해 생긴 이익이 대부분 유통비와 판매자 이윤에 몰리고 농가 수익은 상대적으로 적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이 과정에서는 원두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화학비료를 너무 많이 사용하거나 물을 많이 쓰는 등 환경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가지 기준들도 도입됐다. 아동 노동 문제 등을 다루는 사회적 기준도 함께 도입됐다.
두산백과는 공정무역 커피에 대해 “아동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것에 반대하며, 질 낮은 로부스타(Robusta)종의 재배를 지양하고, 생태계 보전을 고려한 유기농 커피”라고 정의한다. 이런 과정은 모두 커피를 지속가능하게 만들기 위한 여러 움직임이다.
◇ 지속가능한 커피를 찾으려는 노력들
커피 브랜드들도 관련 활동을 벌여왔다. 예를 들면 네스프레소는 지난해 ‘리바이빙 오리진’ 프로그램을 통해 기후변화와 분쟁 등으로 커피 농사가 힘든 지역의 농부들과 장기적으로 파트너십을 맺고 필요한 장비, 기술, 교육 등을 제공하기로 했다. 네스프레소는 이를 통해 짐바브웨와 콜롬비아, 우간다 등에서 커피 생산량과 품질이 높아졌다고 밝혔다.
동아일보가 지난해 7월 보도한 바에 따르면, 짐바브웨는 1980년대 커피 연간 생산량이 1만5000t 규모였지만 기후 요인과 경제 불안정 등으로 2017년에는 500t 정도로 줄었다. 이에 네스프레소는 짐바브웨 혼데밸리 지역 400여 개 농장의 농부들에게 필요한 기술과 교육을 지원해 커피 생산 증가율 7%를 기록했다. 네스프레소는 커피 생산이 환경과 연관된 점을 고려해 재활용과 나무 심기에도 주력한다. 이들은 2022년까지 탄소 중립을 실천한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국내 기업도 지속가능한 커피 농장과 숲을 활용한 사회적 가치 창출에 나선 사례가 있다. SK임업은 지난해 6월 산림청과 함께 에티오피아 남부 소재 커피 농장에 3000여평 규모의 양묘장을 조성하고 21만여평의 부지에 유칼립투스 등 7만 그루를 식재해 산림생태계복원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 사업은 기후변화 대응 및 지속 가능 성장을 위해 산림청에서 추진하는 P4G 사업 일환으로 SK임업이 민관 파트너십 형태로 참여한다. P4G는 지속가능발전 목표 달성 및 파리협정 이행을 앞당기기 위한 글로벌 연대로 한국, 덴마크 등 전세계 12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에티오피아 커피 농장에서 생산된 커피는 공정무역 형태로 국내 스페셜티 시장에 판매된다. 유통망 구축은 소셜 벤처인 트리플래닛이 맡는다. 당시 SK임업은 “2년의 사업 기간을 거쳐 인프라 구축이 완료되면, 전기공급 및 급수시설 확충으로 주거 여건이 개선되고 주민 소득이 증대돼 지역 경제도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고 밝혔다.
leehan@greenpost.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