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축전염병 해결법으로 ‘살처분’이 표준 된 사회
AI의 근본대책은 ‘동물복지’와 ‘예방백신’
인간은 살리고 동물은 죽이는 시대... 새로운 논의 필요

한국동물보호연합이 지난 1월 닭 가면을 쓴 채 AI 예방 백신 사용을 촉구하는 시위를 펼쳤다. (한국동물보호연합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한국동물보호연합이 지난 1월 닭 가면을 쓴 채 AI 예방 백신 사용을 촉구하는 시위를 펼쳤다. (한국동물보호연합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 가축전염병 해결법으로 ‘살처분’이 표준 된 사회

[그린포스트코리아 곽은영 기자] 구제역, 조류인프루엔자(AI),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등 가축 전염병이 유행할 때마다 가장 먼저 ‘살처분’이 해결법으로 나온다. 

우리나라는 가축전염병예방법에 따라 AI에 감염되지 않았더라도 전염병 예방을 위해 전염병 발생 농장 반경 3km 내에 있는 모든 농장을 대상으로 예방적 살처분을 하고 있다. 2018년 12월 법안이 개정되기 전까진 500m 이내 살처분, 3km 이내 살처분 권유대상이었다. 

살처분의 핵심은 바이러스가 갈 곳이 없도록 ‘숙주’를 제거하자는 데 있다. 살처분은 전염병 예방을 위한 가장 확실하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선택돼 왔다. 2000년부터 2019년까지 20년간 구제역으로 살처분된 가축은 약 392만 마리, AI로 살처분된 가금류는 약 9415만 마리에 이른다. 무너진 농가들이 경영 안정화를 하기까지 약 1년의 시간이 소요되었지만 모두 ‘어쩔 수 없는 일’로 통용됐다. 올해만 하더라도 조류독감으로 벌써 2535만 마리가 넘는 닭과 오리들이 살처분됐다. 어쩔 수 없지만 당연한 일처럼 말이다. 

비단 돼지나 닭에만 한정된 얘기가 아니다. 지난해 11월 덴마크에서는 코로나19가 발견된 밍크농장에서 바이러스 감염 우려로 밍크를 대량 살처분했다. 살처분 자체도 문제였지만 급하게 살처분하면서 땅을 얕게 파서 묻는 바람에 사체가 부패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가스로 땅에 묻힌 밍크 사체가 지상으로 나와 또 다른 방역 문제가 제기됐다. 밍크를 살처분한 지역 근처에 바다, 지하수, 호수 등이 있어 식수 오염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밍크코트를 위해 대규모 밀집 사육되는 순간부터 코로나19로 살처분되기까지 그 모든 고통의 과정에 밍크의 권리는 없었다. 

◇ AI의 근본대책은 ‘동물복지’와 ‘예방백신’

최근 국내에선 AI로 인한 정부의 예방적 살처분 명령에 반발하는 농장들의 움직임이 거세졌다. 경기 화성시 산안마을의 농장에선 화성시를 상대로 ‘살처분 명령 집행정지’를 신청했다 기각됐다. 이어 경기도 남양주시의 산란계 농장도 ‘살처분 명령 집행정지’ 가처분을 신청했으나 기각됐다. 재판부가 예방적 살처분 명령이 AI 확산을 예방하기 위한 정당한 행정조치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예외 발생 시 전국적인 방역 정책에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산안마을 산란계 농장은 “지난 2014년, 2018년에도 3km 이내에서 AI가 발생했지만 살처분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근거로 명령 이행을 거부했다. 실제 주변 농장에서 가금류의 AI 확진이 이어지고 있음에도 해당 농장의 닭들은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지 않았다. 

살처분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 점을 강조한다. 왜 아프지도 않은 닭과 오리를 혹시 있을지 모를 상황에 대비해 죽여야 하는지, 살처분의 폭력성에 대해서 말이다. 

이원복 한국동물보호연합 대표는 “2003년 국내 최초 AI 발생 이후 18년째 매년 AI가 발생하고 있는데 현재까지 살처분된 닭과 오리가 1억3천만 마리를 넘는다”고 짚으며 “예방 살처분된 닭과 오리의 70~80%는 건강한 상태로 생매장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 대표는 “살처분 과정을 보면 케이지 안에서 기르는 산란계 99%가 6~7마리씩 산 채로 마대자루에 담겨 땅 속에 생매장되고 있다”며 “생매장은 동물보호법을 어기는 행위이며 동물 대학살로 잔인한 살처분을 절대 금지하고 근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서 말하는 근본대책이란 동물복지와 예방백신이다. 요점은 공장식 축산이 아닌 동물복지 축산으로 다가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원복 대표는 “면역력이 강하고 건강한 동물은 바이러스가 침입해도 덜 감염되는 효과가 있다”며 “지금처럼 공장식 축산으로 닭과 오리가 길러지는 상황에서는 축사 내 오염이 심화되고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숨은 바이러스와 세균이 늘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공장식 축산이 AI의 창고이자 공장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 점은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해 낸 보고서 ‘환경 파괴로 늘어나는 전염병 현황 및 대응 방안’에서도 지적되는 부분이다. 공장식 축산 시스템 아래에서 가축 전염병이 퍼지면 사 밀집 사육과 유전자 다양성 결여 때문에 바이러스나 세균이 급속도로 확산되기 쉽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축산법 기준에 따르다 보면 공장식 밀집사육을 피하기 어렵다는 것이 문제다. 

근본대책의 또 다른 한 가지는 백신이다. 코로나19의 근본대책이 백신이듯 AI 바이러스도 자연소멸되지 않는 성격을 갖고 있으므로 예방백신을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내에는 이미 500만 마리에 사용할 수 있는 AI항원이 준비돼 있지만 백신에 대한 불안과 공포감 때문에 사용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며 “살처분을 통해 돈을 버는 사람들의 존재도 18년 동안 살처분을 반복하고 있는 배경”이라고 말했다. 

김영수・윤종웅 저서 ‘이기적인 방역, 살처분・백신 딜레마’에서도 “한국에는 이미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 백신이 개발돼 냉장고에 보관돼 있다”고 말하고 있다.  

해외는 사정이 다를까. 신대승네트워크에 따르면 해외에선 백신 접종을 우선시하는 등 동물 생명권을 앞세운 정책을 펼치고 있다. 미국, 일본, 중국 등 어느 나라도 반경 3km 이내에서 무자비하게 살아있는 가금류를 살처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과 일본의 경우 발생농가만 24시간 내 살처분하고 반경 3km 이내는 관찰 정책이나 이동제한 명령만 내린다. 중국은 백신접종을 주요 정책으로 채택하고 있다.

◇ 인간은 살리고 동물은 죽이는 시대... 새로운 논의 필요

살처분이 갖는 폭력성은 인간에게도 미친다. 농가 피해부터 살처분된 가축의 처리 문제, 환경오염 문제 등 부작용은 다양하다. 

국회입법조사처의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에서 2010년부터 2018년까지 조류독감·구제역·돼지열병 등 가축 살처분 비용에 지출한 비용은 3조7천억 원에 이른다. 살처분은 농가와 정부에 경제적인 부담이 될 뿐만 아니라 동물사체로 인한 토양 및 수질오염, 살처분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 유발한다. 실제로 살처분 과정에서 살아있는 동물들을 땅에 묻는 일을 한 사람들이 외상후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자살하는 경우도 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부작용 예방을 위해서 가축전염병이 발생 때마다 반복적으로 살처분을 하기보다 예방적 살처분 기준을 처음부터 축사 이격 거리 조건으로 허가해 대규모 살처분을 예방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축사를 공장식이 아닌 동물복지로 전환하는 것과 더불어 가축의 유전적 다양성 보존을 위한 다양한 정책도 필요하다.

우리는 똑같이 바이러스 앞에 서 있다. 예방적 차원에서 산 채로 땅 속에 묻혀야 하는 존재는 어디에도 없다. 살처분이란 폭력성, 생명 경시, 행정적인 입장만 고려한 정책이라는 비판을 수렴해 입체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과학이 발전된 만큼 바이러스의 위협으로부터 동물을 구하고 장기적으로 사람까지 구할 수 있는 새로운 표준을 제시할 수 있다. 

key@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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