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사태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중소기업체에 직격탄이 됐다. 젊은이들과 외국인 관광객들로 넘쳐나던 서울도심의 지하철역 인접 상가의 모습. 1,2층이 모두 폐업상태로, 쇼윈도우에 신문지를 붙여져 있다.(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계없음)/그린포스트코리아
코로나19사태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중소기업체에 직격탄이 됐다. 젊은이들과 외국인 관광객들로 넘쳐나던 서울도심의 지하철역 인접 상가의 모습. 1,2층이 모두 폐업상태로, 쇼윈도우에 신문지를 붙여져 있다.(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계없음)/그린포스트코리아

 

코로나19사태는 지난 1년여 동안 수많은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중소업체들을 ‘허망하게’ 쓰러뜨렸다. 손님으로 늘 북적대던 목 좋은 곳의 식당에 어느 날 갑자기 ‘임대’라는 붉은 글씨가 붙었다. 동대문시장에서 물건을 떼다가 지방의 소도시에 공급하던 소상인도 어느 순간 두 손을 들고 실업상태로 들어갔다. 중소기업의 상당수가 1년 넘게 지속되는 코로나19 사태의 여파를 견디지 못하고 폐업했다. 

코로나바이러스의 위협은 상상초월이었지만, 이런 와중에도 많은 중소기업들이 ‘언젠가는...’의 희망을 품고 꿋꿋하게 하루하루를 견뎌내고 있다. 지금 힘들다고 문을 닫으면 직원들과 그 가족들의 생계가 당장 막막해지는 현실을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가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뿐 아니라, 중소업체에도 갖가지 지원에 나서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중소기업이 무너지면 서민들의 삶이 한순간에 피폐해 질 수 있음을 잘 알기에 각종 지원을 통해서 어떻게든 버티도록 힘을 실어주는 것이다.

최근 그린포스트코리아에 이메일을 보내 온 한 중소업체 사장 A씨의 하소연은, 정부의 역할에 대해 다시금 생각케 한다. 정부 주요 부처 뿐 아니라, 실핏줄처럼 연결된 수많은 하부 수행기관들과 그 안의 실무자들까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으면 국민들의 생계와 안전에 끼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 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쇼핑몰 운영사업자인 A씨(서울 서초구)는 다른 중소업체와 마찬가지로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서도 직원 한 명 내보내지 않고 회사를 운영중이라면서도 이제는 문을 닫아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코로나19 때문에? 아니, 그 보다는 다른 요인에 의해서다. 

그가 이메일에서 말한(주장한) 사연을 요약해서 소개하면 이렇다.

A씨는 2년 전 신사업에 진출하기 위해 경력직으로 B씨(30)를 채용했다. A씨는 사업 초창기라 업무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상황에서 발주, 정산 등 거의 모든 업무를 B씨에게 일임했다. 하지만 B씨는 자신에 대한 신뢰를 악용, 약 1년 반에 걸쳐 회삿돈 16억7천여만원을 빼돌렸다.  

B씨는 회사 물류창고와 발주회사 창고에 있는 물건들을 몰래 빼돌려 덤핑 업체에 물품 구매가의 절반 이하(40%)에 물건들을 넘기고 자신의 개인 통장으로 돈을 받아 챙기는 수법을 썼다. 이 과정에서 B씨는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동료들과 발주회사 직원 그리고 물류창고 직원까지도 감쪽같이 속였다. 허위 결제, 사진 합성 등의 방법으로 재고와 물품대금을 조작했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230차례에 걸친 B씨의 범행은 결국 들통이 났고, A씨는 그를 2019년 7월 서울 관할 경찰서에 고소했다. 

그러자 B씨는 처음에 모든 사실을 털어놓고 A씨에게 횡령한 돈의 일부를 우선 돌려주겠다며 반성하는 듯 했다. 하지만 경찰이 불구속 상태로 수사에 나서자 태도가 돌변했다. 거액의 횡령사건임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B씨를 불구속 상태에서 약 10개월 조사한 뒤 서울중앙지검에 불구속 기소의견으로 송치했다.

검찰은 1개월여 뒤 B씨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겼고, 지난해 8월 첫 공판 뒤 11월 검찰 구형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검찰은 B씨에게 징역 5년을 구형했다. 선고일은 지난해 12월4일.

그러나 검찰의 구형이 있은 결심공판까지 참석했던 B씨는 선고공판일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리고는 현재까지 잠적한 상태다.

A씨는 애초에 경찰이 왜 불구속상태로 조사를 진행했는지 지금도 납득하기 어렵다고 토로한다. 엄벌탄원서를 수차례 제출했고, 상습적이고 계획적인 범행수법(230차례)을 수사기관에 여러 차례 제기했음에도 구속 수사가 이뤄지지 않은 점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경찰이 애초에 B씨를 구속수사했다면, 횡령해 빼돌린 돈의 일부라도 회수했을 터이고 회사 사정이 이렇게까지 나빠지지는 않을 것이라며 가슴을 친다.

코로나19사태로 어려움에 처해 회사가 도산하는 것이 아니라 횡령사건으로 인해 결국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B씨가 허위계산서를 발급하고 물건을 빼돌리는 바람에 이에 따른 채무 일체를 떠안게 된 A씨는 폐업절차에 들어갔다고 했다. A씨가 큰 비전과 목표를 갖고 채용했던 직원들도 이제 짐을 싸야 하는 형편이 됐다.

A씨는 이메일의 끝에 이렇게 적었다.

“경찰이 조금만 철저히 조사해줬더라면 상황이 이 지경까지는 오지 않았을텐데, 생각만 해도 억장이 무너진다. B는 지명수배 상태라서 불심검문에 혹시 걸리면 모를까 찾아낼 방법은 없다고 한다. 신사업을 이렇게 접어야 하고, 직원들을 결국 내보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가슴 아프다.”

A씨의 주장대로, 경찰이 B씨를 좀 더 ‘강하게’ 수사했더라면 중소기업이 폐업하는 일도, 종사자들이 졸지에 실업자가 되는 일도 발생하지 않았을 수 있다. 물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A씨의 하소연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하는 국가기관의  공무원들이 책임감으로 업무를 처리하지 않으면 기업이 하루 아침에 죽을 수도 있고, 그 기업의 종사자들이 생계를 해결하지 못할 수도 있음을 확인시켜 준다.

A씨는 B씨의 이름을 뉴스에 한번이라도 냈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했다. 하지만 확정선고를 받지 않은 일반인의 이름을 함부로 내보내서는 안 된다고 그에게 답했다. 대신, 이렇게라도 그의 소원 중 일부를 들어줄 수밖에 없다.

“회삿돈 16억7천만원을 횡령하고 잠적한 ○○○을 공개수배 합니다.”

mazinger@eco-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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