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소재? 벌목 주범?...종이 둘러싼 오해와 진실
종이 줄이면 일회용품 늘어난다?
어떤 종이 얼마나 쓰느냐가 문제

역사 이래로 인류는 늘 무언가를 더하기 위해 살아왔습니다. 과거보다 더 많은 자본, 나아진 기술, 늘어나는 사업영역에 이르기까지, 미지의 분야를 개척하고 예전에 없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며 문명을 발전시켰습니다. 그 결과, 인류는 발전했습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지구의 건강이 위협받기 시작했습니다. 인류가 무언가를 많이 사용하고 또 많이 버릴수록 지구에 꼭 필요한 자원과 요소들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열대우림이 줄어들거나 빙하가 녹고 그 과정에서 생태계의 한 축을 이루던 동물과 식물들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더하기가 아니라 빼기에 주목해야 합니다. 적게 사용하고 덜 버려야 합니다. 에너지나 자원을 덜 쓰고 폐기물이나 쓰레기를 적게 버리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환경적인’ 일입니다. 인류는 무엇을 줄여야 할까요. 줄여야 산다 열 한번째 시리즈는 누구나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종이’입니다. [편집자 주]

도로변에 종이 쓰레기가 배출돼 있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많은 물품을 구매하면서 포장용 골판지 박스는 물론 제품 포장 박스 등 다량의 종이 쓰레기가 배출되고 있다. (김동수 기자) 2020.3.12/그린포스트코리아
종이는 플라스틱이나 비닐보다 상대적으로 환경적이다. 그러면 종이는 마구 사용해도 되는걸까? 사진은 도로변에 버려진 박스의 모습. 독자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로 사진 속 브랜드 등은 기사 특정 내용과 관계없음. (본사 DB)/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이한 기자] 지난해 8월, 국내 한 은행이 페이퍼리스 사업을 추진하면서 “매년 종이 통장 제작을 위해 30년산 아름드리나무 2,857 그루가 소모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기예금과 적금을 종이 종탕 대신 모바일 통장으로 신규 또는 전환하는 고객에게는 포인트와 사은품을 제공하기도 했다. 종이 사용을 줄여 환경을 보호하자는 취지다.

종이를 줄이자는 목소리는 크게 두 가지 내용으로 정리할 수 있다. 두 가지는 오래전부터 이어오던 지적이고, 하나는 최근 생긴 경향이다. 종이 원료인 펄프를 나무에서 얻으므로 너무 많이 사용하면 숲이 사라진다는 지적, 플라스틱이나 비닐보다야 상대적으로 환경적이지만 종이 역시 많이 사용하고 버려지면 환경에 부담이 된다는 지적이 꾸준히 있었다. 다만 일방적인 목소리는 아니다. 종이를 만들기 위해 무조건 열대우림을 잘라내는 건 아니라는 항변, 디지털이 종이를 대신하는 경우의 또 다른 환경 영향에 대해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여기에 최근 골판지 박스 원료 공급 차질로 생긴 이른바 ‘박스 대란’이 더해지면서 종이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그만큼 커지고 있다. 종이를 줄이자는 목소리가 꾸준히 있었는데, 골판지 박스가 부족하니 오히려 비닐 사용이 늘어나는 결과로 이어져서다. 그러면 종이를 어떻게 사용해야 환경적일까.

◇ 친환경 소재? 벌목 주범?...종이 둘러싼 오해와 진실

사실 종이는 ‘사용을 줄이자’는 구호가 낯선 소재다. 스타벅스에서 일회용 빨대를 없애면서 대안으로 제시한 게 종이 빨대고, 일회용 비닐봉투를 제공하지 않는 곳에서 소비자에게 대신 제공하는 것 중 하나가 종이 봉투다. 친환경 카테고리 뉴스에서 가장 익숙한 것 중 하나가 플라스틱 대신 종이에 담아 판다는 내용이고, 최근에는 한 기업이 종이 아이스팩을 1억개 팔았다는 소식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소비자들의 인식에서 종이는 곧 ‘친환경’이다.

종이는 정말 환경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걸까. 그린포스트가 지난 2018년 취재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천연펄프로 종이 1톤을 만드는데 나무 24그루, 에너지 9671kWh, 물 8만 6503 리터를 사용한다. 그 과정에서 이산화탄소 2541kg, 폐기물 872kg이 나온다. 제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종이 역시) 기본적으로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있다는 의미다.

물론, 아무리 생각해도 종이는 플라스틱이나 비닐보다 환경적이다. 하지만 한가지 더 따져봐야 할 게 있다. 얼마나 쓰는지다. 한국제지연합회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연간 종이 사용량은 2017년 기준 191.4kg이다. 이는 전 세계 1인당 연평균 종이 사용량 57kg과 비교하면 많다. 국내 한 해 종이 소비량은 2017년 기준 약 991만톤인데, 이를 나무로 환산하면 약 2억 4000만 그루에 해당한다.

‘종이를 만드느라 숲이 사라진다’는 주장에 대해 제지회사 등은 억울할 수 있다. 종이는 나무를 가공한 펄프를 가지고 만들지만, 이 펄프는 종이를 만들기 위해 따로 만든 인공 조림지에서 생산하는 경우가 많다. 종이 생산을 위해 나무를 베어낸 공간에 다시 새로운 나무를 심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조성된 숲을 베어내는 것 과는 다르고, 종이를 만들기 위해 심은 나무들이 성장하는 동안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역할도 할 수 있다.

다만 심은 나무들이 (원료를 얻기 위해) 성숙기까지 살아남지 못한다는 점, 편리한 관리를 위해 화학비료나 살충제, 제조체 등을 사용하면 천연 숲이 가지고 있는 생태적인 다양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한신P&L이 SOLE COAT(솔 코트)를 사용해 만든 친환경 종이컵 HY-SOL CUP(하이-솔 컵). (한신P&L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종이가 정말로 친환경이려면 어떤 좋이을 얼마나 쓰느냐가 중요하다. 사진은 한신P&L이 SOLE COAT(솔 코트)를 사용해 만든 친환경 종이컵. 독자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로 기사 속 특정 내용과는 관계없음.(한신P&L 제공, 본사 DB)/그린포스트코리아

◇ 무슨 제품으로 사용할까...어떤 종이 얼마나 쓰느냐가 문제

어떤 종이를, 얼마나 쓰느냐도 문제다. 예를 들어 보자. 사무실에서 직원이 자료조사를 위해 문서를 출력했다면 어떨까. 녹색생활문화운동을 진행하는 비영리단체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 따르면 복사지의 45%가 출력한 그 날 버려진다. 해마다 315만 그루의 나무가 하루만에 쓰레기가 된다는 의미다. 본지에서도 이 내용을 기사로 다룬 바 있다.

사람들이 흔히 사용하는 종이컵도 문제다. ‘작은것이 아름답다’에서 펴낸 책 <녹색상담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한 해 쓰는 종이컵은 약 257억 개(2015년 기준)로 이를 위해 천연펄프를 14만 톤 넘게 수입한다. 30년생 나무 1500만 그루에 해당하는 양이다. 수입 펄프로 만든 원지에 플라스틱 성분인 폴리에틸렌(PE) 코팅을 해서 만든 게 종이컵이다. 그래서 종이컵은 종이류와 따로 배출해야 한다.

재생지를 사용하면 어떨까. 재생지는 한번 사용한 종이를 재활용한 종이로, 일정 수준 이상의 재생펄프가 포함된다. 재생펄프를 사용하면 나무를 덜 베어도 되니까 그 부분에서는 환경적이다. 다만 재생펄프를 생산하는 과정에서도 일부 환경오염 물질은 발생한다. 사용했던 기존 종이에서 잉크 등 부산물을 제거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도 화학 물질이 사용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종이의 환경 영향을 줄이는 더 확실한 방법은 사용 자체를 줄이는거다.

◇ 종이 줄이면 일회용품 사용 늘어난다?

종이를 사용하지 않으려니 더 큰 문제가 생긴다. 종이의 대안이 플라스틱이나 비닐이 되는 경우가 있어서다. 최근 사례를 보자. 일부 택배 등이 기존 종이박스 대신 비닐에 포장돼 배송되는 경우가 늘었다. 박스가 부족해서다.

설을 앞두고 최근 ‘박스 대란’이 본격화됐다. 일부 온라인 쇼핑몰은 박스가 없어 물건 배송에 차질이 생길 정도다.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는 “우체국에 갔는데도 박스를 구하지 못했다”는 글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골판지 박스 원료인 원지가 부족해서다.

골판지 원지를 생산하는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하는 등 원료 수급에 차질이 있었고, 코로나19로 택배 수요가 늘어난데다 설 물량까지 겹쳐 박스가 부족해진 것. 이런 상황에서 종이 대신 비닐을 사용해야 하는 경우도 생겼다. SBS가 지난 1월 29일 보도한 바에 따르면, 박스 총 부족분이 약 10만톤 정도로 신라면 박스로 따지면 1억 9천만개 정도다.

세상 모든 제품이 그렇듯, 종이 역시 생산과 유통, 사용과 폐기 과정에서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용량 자체를 줄이는 것이다. ‘줄여야 산다’ 2편에서는 종이를 버리는 방법에 대한 정보를 소개한다.

leehan@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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