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어기 함 위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양심

때로는 긴 글 보다 한 장의 사진이 더 많은 메시지를 담습니다. 과거 잡지기자로 일하던 시절에 그런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포토그래퍼나 디자이너에게 어떤 느낌의 작업물을 원하는지 전달하려면 빽빽한 글을 채운 작업지시서보다 딱 한 장의 ‘시안’이나 ‘레퍼런스’가 훨씬 더 효과적이었습니다.

살면서 마주치는 여러 가지 환경 관련 이슈, 그리고 경제 관련 이슈가 있습니다. 먼 곳에 있는 뉴스 말고 우리가 아침저녁으로 마주하는 공간에서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것들 말입니다. 그런 풍경들을 사진으로 전하겠습니다.

성능 좋은 DSLR이 아닙니다. 그저 주머니에서 꺼내 바로 찍을 수 있는 폰카입니다. 간단하게 촬영한 사진이지만 그 이미지 이면에 담긴 환경적인 내용들, 또는 경제적인 내용을 자세히 전달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사진으로 읽는 환경 또는 경제 뉴스입니다. 서른 일곱번째 사진은 제어기 함에 올라간 쓰레기 모습입니다. [편집자 주]

 

서울 송파구의 한 제어기함. 기계를 만지지 말라는 경고문이 위로 버려진 일회용 컵이 보인다. (이한 기자 2020.10.24)/그린포스트코리아
서울 송파구의 한 제어기함. 기계를 만지지 말라는 경고문이 위로 버려진 일회용 컵이 보인다. (이한 기자 2020.10.24)/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이한 기자] 작년 10월, 서울 송파구 한 도로 제어기 위에 테이크아웃용 커피잔이 버려져 있다. 하나도 안 남기고 쪽쪽 빨아먹은 다음 빈 컵만 저렇게 올려두고 떠났다. (물론, 음료를 남긴 컵은 저래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제어기함에는 ‘함부로 열거나 기계를 만지는 사람은 도로교통법 제 68조에 의거 처벌을 받게 된다’는 경고문이 붙어 있다. 그 경고문은 서울특별시장 명의다. 쉽게 말하면, 만지지 말라는 얘기다. 일반 소비자가 함부로 만질 일이 없는 기계라는 얘기겠다.

그 위에 커피잔을 올려두고 간 사람은 누굴까. 눈에 잘 띄어서 청소노동자가 쉽게 치우라고 거기 올려둔걸까, 아니면 그냥 손 닿는 데다 별 생각없이 버렸을까. 그것도 아니면 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져 버리는 건 양심에 찔리는데 저기에 두는건 그나마 괜찮아 보였을까. 첫 번째 경우라면 무식하고, 두 번째 경우라면 무개념이다. 저 사람은 자기집에도 쓰레기를 저렇게 둘까?

leehan@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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