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랜드월드의 여성 영캐주얼 브랜드 로엠이 지난해 친환경 웰론 충전재를 사용한 숏패딩을 선보였다. (이랜드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이랜드월드 여성 영캐주얼 브랜드 로엠이 지난해 선보인 친환경 웰론 충전재를 사용한 숏패딩. (이랜드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곽은영 기자] 한때 밍크를 비롯한 모피 제품이 부의 상징처럼 통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어떤가. 더 이상 동물의 털과 가죽으로 만들어진 제품에 ‘럭셔리’라는 단어는 붙지 않는다. 

마이클 코어스, 구찌 등 명품 브랜드는 몇 해 전부터 더 이상 천연모피를 팔지 않기로 했고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도 2019년 동물의 털로 만든 옷을 입지 않기로 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미국 유명 백화점들도 천연모피 판매 중단을 선언한 바 있다. 

모피는 동물 학대를 통해 얻은 결과물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모피가 아니더라도 인조 모피를 만들어 입을 수 있다. 실제 인조 모피, 인조퍼 등 동물 학대나 착취가 없는 비건 패션이 트렌드가 되면서 모피 소비가 감소했다. 

◇ 동물의 털은 동물의 것... 털 제공을 위해 희생되는 동물들

모피 외에 오리나 거위 털을 이용한 패딩도 동물학대 논란과 붙어 있다. 몇 해 전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롱패딩’의 경우 대부분 거위나 오리 등의 털을 이용한 충전재를 사용한다. 구스다운, 덕다운은 거위와 오리의 가슴 및 겨드랑이 부위 솜털로 만들어진다. 다른 충전재보다 가볍고 보온성이 높다고 알려져 외투 뿐 아니라 이불, 베개 등 다양한 제품의 충전재로 활용되고 있다. 

이러한 충전재는 대부분 살아있는 거위와 오리에게서 털을 뜯어내는 방식으로 채취된다. 살아있는 동물의 털을 마취나 기타 조치 없이 강제로 뜯어내는 ‘라이브 플러킹(Live Plucking)’은 순전히 인간의 욕심으로 만들어진 방법이다. 죽은 동물에게서 1회성으로 털을 뜯는 것은 효율적이지 않을뿐더러 품질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이유다. 이 과정에서 살아있는 동물의 살갗이 찢겨 나가는 것도 예사다. 

동물보호단체 PETA에 따르면 거위나 오리는 죽기 전까지 최대 15번 정도 털을 뽑힌다. 구스다운 패딩 하나를 만들기 위해 털이 뜯겨나가는 거위는 15~20마리다. 산 채로 털이 뽑혀 나가는 고통은 말로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동물보호단체는 동물학대로 만들어진 옷을 퇴출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를 대체할 친환경 소재는 얼마든지 있다고 말한다. 패션 업계에서도 고문 수준의 동물학대에 모피나 오리, 거위털로 만든 제품을 입지 말자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동물학대 행위 없이 윤리적인 방법으로 생산된 ‘책임 다운 기준(RDS)‘을 두고 있는 것도 그 일환이다. 

◇ ‘탈 동물’ 위한 패션업계 움직임

동물의 털은 동물이 생존하기 위해 발달한 것이다. 사람은 동물의 털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따뜻한 겨울을 날 수 있다. 동물의 비명 소리가 들어가지 않은 인공충전재는 매일 진화를 거듭하며 더 가볍고 따뜻해지고 있다. 

패션업계에는 동물윤리를 화두로 신소재를 활용한 착한 패딩 열풍이 일고 있다. 흔히 알고 있는 플리스, 에코퍼, 재활용 소재 외에 동물 털을 대체할 보온성이 뛰어나고 생활방수 및 정전기 방지 기능이 들어간 인공충전재를 사용해 실용적이고 트렌디한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다. 

2004년 국내 기업 세은텍스에서 개발한 신소재 ‘웰론’이 대표적이다. 오리털을 최초로 모방한 인조 충전재로 특허 등록이 돼 있다. 웰론은 부드러운 극세사로 구성돼 털 빠짐 현상이나 동물성 단백질 성분이 만들어내는 냄새나 알러지 등의 다운(솜털)이 가진 단점을 제거했다. 구스・덕다운 등 오리나 거위 털과 비슷한 보온성을 자랑하는 이 소재는 덕다운보다 무게는 조금 더 나갈지 몰라도 물세탁 시 몰림 현상이 적고 복원력이 뛰어난 착한 소재다. 가격도 훨씬 저렴하다. 리복, 휠라, 에잇세컨즈 등에서 해당 소재로 패딩을 선보이고 있다. 

미국 3M사가 개발한 신슐레이트로 만든 패딩도 유명하다. 미세한 섬유를 촘촘하게 결합시킨 극세사로 가공해 에어포켓 등의 경계층을 만들어 공기를 가두는 원리로 주로 방한용이나 등산복에 활용될 만큼 보온에 특화돼 있다. 거위털의 1.5배 이상의 보온성을 자랑하면서 전체 부피감은 절반으로 줄어들어 패션과 보온성 두 가지를 다 잡았다. 다운덕과 같은 부피라면 신슐레이트 소재로 만든 패딩이 훨씬 더 따뜻하다. 요즘은 MZ세대를 겨냥해 MLB, 비이커, 휠라, K2, 앤더슨벨, 인스턴트펑크 등에서 신슐레이트 소재를 도입해 전략 상품으로 선보이고 있다. 

프리마로프트도 패딩이 사랑하는 소재다. 1980년 미국 육군에서 개발된 신소재로 미군 옷에 들어가는 소재로 알려져 있다. 습기에 약한 다운 등 충전재를 보완하기 위해 개발된 초극세사 섬유로 방수기능과 땀 배출 기능이 뛰어나 야외 활동 시 체온을 유지시켜준다. 코오롱인더스트리FnC 부문 골프웨어 왁은 지난 겨울 프리마로프트 소재를 적용해 부피가 크지 않으면서도 높은 보온력을 갖춘 슬림한 원핏 라인을 선보였다. 프리마로프트 소재는 스톤아일랜드, 유니폼브릿지 등에서도 활용했다. 

영원아웃도어의 노스페이스는 다운 대신 옥수수 추출 바이오 원료와 페트병 재생 소재를 접목해 친환경 보온 충전재 ‘에코 티볼’을 탄생시켰다. 페트병을 재활용한 소재를 70% 사용한 플리스 원단 등 친환경 소재 사용을 강화했다. 대표적으로 눕시 플리스 티볼 재킷이 MZ세대에 인기가 높다. 

다만 신소재를 사용한 옷이라 하더라도 환경적인 문제에서는 자유롭지 못하다. 동물의 털을 사용하지 않아 보다 윤리적일 수는 있지만 지나친 소비는 패션 업계가 안고 있는 미세 플라스틱 문제를 비롯한 환경 문제를 심화시키는 원인이 되므로 소재를 고려한 적절한 쇼핑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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