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C행정판사가 침해 인정하면서 LG로 기울어져
미국 내 지식재산권 보호 강화기조도 SK측에 부담

 
이번 ITC 조기패소 판결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한 LG화학의 배터리(LG화학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ITC 조기패소 판결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한 LG화학의 배터리(LG화학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박광신 기자] ITC 최종판결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오면서 오랜 배터리 전쟁이 종국으로 치닫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2월 ITC행정판사가 SK이노베이션에 대한 조기패소판결을 내리면서 SK이노베이션 측이 불리 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양사의 분쟁은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LG화학(현 LG에너지솔루션)은 이차전지 분리막 특허를 출원하고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특허침해 소송을 냈다. 하지만 대법원에서 패소했고 2014년 두 회사는 이후 10년 동안 국내외 관련 특허 소송 금지 협정을 맺었다.

협정을 먼저 깬 것은 LG화학이다. 이유는 분명했다. LG화학은 자사의 인력 76명이 SK이노베이션으로 이직하자 인력채용을 멈춰달라는 공문을 SK이노베이션에 발송했으나 SK이노베이션이 적법한 채용이라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이에 LG화학은 2017년 12월 '전직금지가처분소송'을 내 대법원에서 최종승소한데 이어, 2019년 4월 미국 ITC와 델라웨어법원에 영업비밀침해 등으로 제소했다.

이에 SK이노베이션은 소 취하 및 손해배상청구소송 등 맞소송을 펼치면서 몇 년을 과열양상을 띠어온 ‘배터리 전쟁’이 막바지에 다다른 것이다.

◇ 유리한 LG에너지솔루션, SK이노베이션의 대응책은?

현재까지는 LG에너지솔루션 측이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다. ITC통계자료(1996년 ~ 2019년)에 따르면 영업비밀 침해소송의 경우 ITC행정판사가 침해를 인정한 모든 사건이 ITC위원회의 최종결정에서 그대로 유지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영업비밀 소송에서도 ITC위원회가 예비결정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SK이노베이션이 최종 패소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또한 미국 대선에서 조 바이든이 대통령으로 선출되면서 지식재산권 보호 기조를 강화되고 있는 것도 SK이노베이션 측이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조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의 성공적인 미래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불공정 무역(Unfair Trade Practices)과 미국의 지식재산권 탈취(Theft of American Intellectual Property)라는 관행을 근절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문제는 이것뿐이 아니다. 전문가들은 미국 연방 영업비밀보호법과 최근 판례 등을 고려할 때 이번 소송이 델라웨어 민사소송까지 가게 될 경우, 실제 손해액에 징벌적 손해 배상액까지 포함해 6조원 이상의 판결이 나올 수 있는 사안으로 분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국에서 ‘영업비밀보호법’을 연방법으로 제정하는 등 지식재산권 보호를 강화하는 상황임을 고려할 때 징벌적 손해배상액이 실제 손해액의 2배까지도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전 판례를 비춰볼 때 통상 영업비밀 침해는 민·형사 책임을 같이 져야하는 범죄행위로 분류돼, 민사 뿐 아니라 형사소송을 통해 엄중한 처벌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ITC행정판사는 판결문을 통해 △SK이노베이션의 영업비밀 침해 행위는 전사적으로 이뤄졌고, △범행 의도를 가지고 조직적으로 소송 증거들을 인멸했으며, △사실관계 자료 확보를 방해해 피해를 끼친 것이 명백하다고 밝혔으며, ITC위원회가 최종결정을 받아들일 경우 미국 내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사업은 물론 기업 이미지도 크게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작년 7월 국내에서도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안이 개정되면서 영업비밀을 침해할 경우 최대 15년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도록 형사처벌 기준도 강화된 바 있다.

2022년 초 본격 양산에 돌입하는 SK이노베이션의 미국 조지아 배터리 공장(SK이노베이션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2022년 초 본격 양산에 돌입하는 SK이노베이션의 미국 조지아 배터리 공장(SK이노베이션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 ITC 최종결정 전 ‘극적 합의’ 이뤄낼 가능성은?

업계에서는 모든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SK가 ITC소송을 조속히 해결하는 것이 옳다고 보고있다. 이에 따라 양사의 협상 움직임과 합의 금액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배경이다.

증권가 관계자는 합의금을 2조원대로 추산했으며, 델라웨어 민사까지 진행되면 배상금 최대 6조 이상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합의금과 관련해 LG 측은 미국 연방 영업비밀보호법에 근거해 수 조원을 요구하는 반면, SK는 영업비밀 침해를 인정하지 않고 수 백억원 수준 제시에서 큰 변화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식재산권 분야의 한 전문가는 “SK의 입장에서는 최종판결 전에 합의하는 것이 금액적인 측면에서 가장 합리적일 수 있다. 최종판결 후에는 LG측이 승소한다면 합의금을 훨씬 더 많이 요구할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또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와 관련해서 “ITC 역사상 범죄 행위에 해당하는 영업비밀 침해에 대해 거부권이 나온 사례는 단 한 차례도 없다. 만약 거부권이 행사된다 하더라도 SK의 행위 자체가 범죄행위로 이미 예비 판결이 나온 만큼 이를 근거로 델라웨어 연방지방법원에서 손해배상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 최근 판례에 따르면 ‘21년 1월 일리노이주 북부 연방지방법원은 모토로라솔루션(Motorola Solutions)의 R&D직원 전직자 3명을 통해 무전기(Two way radio, repeaters) 관련 영업비밀과 저작권을 탈취한 하이테라커뮤니케이션(Hytera Communications Corp.)에 모토로라솔루션이 입은 손해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구체적으로 법원은 △모토로라가 입은 손해 2억 7,210만 달러(한화 약 2,988억원)에 △이 중 영업비밀 침해로 인한 하이테라커뮤니케이션의 부당이득(1억 3,580만 달러)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 200%(법률상 최대치)를 매긴 2억 7,160만 달러(한화 약 2,983억원)를 더하여 △총 5억 4,370만 달러(한화 약 5,972억원)를 배상액으로 산정하기도 했다. 이 사건으로 하이테라커뮤니케이션 측은 금전적 손실은 물론 범죄기업으로 낙인 찍힌 바 있다.

특히, 미국은 ‘징벌적 손해배상(Exemplary Damages)’에 엄격해 가해자가 고의적으로 영업비밀을 침해한 경우, 피해자가 실제 손해에 더해 처벌 및 재발 방지 목적의 금액을 추가 인정받을 수 있다. 

전기차 배터리의 경우 무전기나 반도체 장비보다 현재 시장 규모나 미래 사업 가치가 훨씬 크기 때문에 배상액도 커질 것이라 게 업계 중론이다.

이와 관련 업계 전문가는 “지난해 7월 테슬라가 미국 전기차 스타트업 기업 ‘리비안’과 전직자 4명을 영업비밀탈취혐의로 캘리포니아 법원에 제소한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 전기차 시장 성장에 따라 관련 지식재산권이 곧 기업의 경쟁력이 되기 때문에, 이를 정당하게 보호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으로서 소송 역시 자연스럽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이어 “현재 전세계 전기차 관련 업계에서 LG와 SK의 소송 결과를 주목하고 있을 정도로 이번 소송이 업계 레퍼런스가 될 것으로 보이는 만큼, 양사는 그 어느 때보다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해결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SK 최태원 회장은 최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강조하고 대한상공회의소 차기 회장으로 거론되는 등 대외활동에 적극 나서는 상황이라 이번 영업비밀침해 소송이 SK 내부적으로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될 수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LG화학 VS SK이노베이션 배터리 분쟁 일지(그래픽 최진모 기자)/그린포스트코리아
LG화학 VS SK이노베이션 배터리 분쟁 일지(그래픽 최진모 기자)/그린포스트코리아

 

jakep@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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