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오가는 수많은 택배상자, 어떻게 처리할까

기업이나 정부가 아닌 일반 소비자가 실천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친환경’ 노하우는 ‘쓰레기를 덜 버리는 것’입니다. 플라스틱이든, 음식물 쓰레기든, 아니면 사용하고 남은 무엇이든...기본적으로 덜 버리는게 가장 환경적입니다.

그린포스트코리아 편집국은 지난 2~3월 ‘미션 임파서블’에 도전했습니다. 쓰레기를 버리지 않고 주말 이틀을 살아보자는 도전이었습니다. 도전에 성공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이틀 동안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게 말 그대로 ‘불가능한 미션’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환경을 포기할 순 없습니다. 하여, 두 번째 도전을 시작합니다. ‘제로웨이스트’입니다. 이틀 내내 쓰레기를 ‘제로’로 만들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것부터 실천하기로 했습니다. 쓰레기를 배출하던 과거의 습관을 하나씩 바꿔보려 합니다. 평소의 습관이 모여 그 사람의 인생과 운명이 결정된다면, 작은 습관을 계속 바꾸면서 결국 인생과 운명도 바꿀 수 있을테니까요. 불편하고 귀찮은 일이지만 그래도 한번 해보겠습니다. 열 두번째 도전입니다. 택배상자를 재사용 해봤습니다. [편집자 주]

서울 한 주택가 이면도로에 상자가 쌓여있다. 버려진 상자, 정확히 말하면 버려진 것들을 모은 상자 더미다. 쌓여있는 폐지 부피가 누군가에게 주는 불편과 그 폐지를 짊어진 또 다른 누군가의 삶의 무게가 함께 보인다. 이런 문제는 누가,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이한 기자 2020.10.13)/그린포스트코리아
서울 한 주택가 이면도로에 상자가 쌓여있다. 누군가에게는 불편함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삶의 무게이자 밥벌이가 되는 상자다. 이런 상자들은 어떻게 처리하는 게 좋을까. (본사 DB)/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이한 기자] 기자에게는 얼굴은 모르지만 이름은 익숙한 ‘아저씨’ 한 분이 있다. 목소리를 들어본 적은 있으나 얼굴을 직접 본 적은 없다. 동네에서 마주쳤을 때 ‘혹시 저분이 그분일까?’하는 마음이 들어 괜히 반가웠던 적은 있으나 직접 물어보지는 못했다.

그 분은 기자의 집에 택배를 배송해주시는 분이다. 국내 한 대형택배사에서 기자에게 물건을 배송할 때 늘 그 분이 오신다. 송장에 이름이 적혀 있었고, 언론에도 언급된 적 있는 체육인과 동명이인이어서 금방 이름을 외웠다. 기자의 집에는 한달에 그 이름 찍힌 택배가 적게는 3~4개, 많을때는 10개 가까이 쌓인다. 바꿔 말하면, 테이프와 스티커가 붙은 골판지 상자가 그만큼 쌓인다는 의미다.

‘택배’가 없을 때는 어떻게 살았을까 싶다. 생각해보면 기자가 어릴 때는 택배 대신 ‘소포’라는 단어를 썼다. 우체국에 가서 상자에 물건을 담아 어딘가로 보내본 기억도 있다. 군대에서도 소포를 받은 적 있다. 하지만 그때는 지금처럼 온갖 물건을 받지는 않았다. 그 시절에도 분명 ‘한국은 빨리빨리 문화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고 ‘사회변화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말이다.

◇ 택배 없으면 못 사는 세상, 그 많은 상자는 어디로 갔을까

택배가 없으면 생활이 안 되는 시대다. 마트에 가서 카트 끌고 온갖 물건 담아 장을 보던 기억은 벌써 10년쯤 됐다. 기자의 집에 있는 거의 모든 것들은 택배로 우리 집에 왔다. 어제는 라면과 달력이 왔고, 다음주에는 시계가 올 거다. 어제 저녁에는 어머니가 카페라떼 30개들이 2박스를 주문해달라고 해서 주문해놨다. 곧 어머니 댁 앞에도 누군가 커피를 싣고 가겠지.

기자의 옆집이나 아랫집도 마찬가지다. 늘 현관 앞에 상자가 있다. 어떤 건 모양이 굉장히 납작하거나 크거나 또 길어서 “저건 도대체 뭘까?”싶어 궁금한 물건도 있다. 아마 그들도 대형마트에서 카트에 물건을 가득 담는 것 보다는 앱을 켜고 장바구니에 담아 묶음배송을 신청하는게 더 익숙한가보다. 그런데, 그 많은 상자들은 다 어디로 갈까?

재활용품 수거하는 날 1층에 내려가보면 쌓인 물건의 1/3가량이 상자다. 그런데 버려진 모습이 제각각이다. 어떤 상자는 납작하게 펴서 쌓여있고 또 어떤 상자는 여기저기 북북 찢어지긴 했는데 원래 모양을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다. 일부 상자들은 송장만 떼어진 채 테이프는 그대로 붙어있고, 어떤 경우는 송장도 그대로 있다. 재활용 쓰레기에 본인 이름이 적혀 있어도 괜찮은걸까? 아무튼 그렇다.

환경부에 따르면, 골판지 상자 등 상자류는 비닐코팅 부분이나 상자에 붙어있는 테이프·철핀 등을 제거한 후 압착해 운반이 쉽도록 묶어서 배출하는 게 정석이다. 테이프는 떼면서 종이가 아닐 수도 있는 끈으로 묶으라는 게 좀 의아하지만, 큰 틀에서 종이 상자들을 한번에 모으려면 그게 편해서다. 개수가 많지 않아 굳이 묶을 필요가 없다면, 집에서는 상자를 해체해 압착해서 버리는 정도면 충분하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도 많은 게 문제다.

테이프가 제거되지 않은 채 버려진 택배 종이상자. 앞으로는 택배 주문·발송 시 종이상자 분리배출 방법을 문자로 안내받는다. (김동수 기자)/그린포스트코리아
테이프가 제거되지 않은 채 버려진 택배 종이상자. (본사 DB)/그린포스트코리아

◇ 택배 받은 상자로 다시 택배를 보내다

환경경제 매체에서 일하는 덕일까. 귀찮아도 테이프와 스티커 모두 떼고 펴서 버리는 건 한다. 그런데, 그렇게 해도 상자를 너무 자주 버리는 것 같아 마음 한 구석이 불편했다. 삼성전자에서는 배송 상자 가지고 DIY가구도 만들 수 있다던데, 혹시 상자를 재사용하고 버릴 순 없을지 생각해봤다. 어차피 1~2번 더 쓰면 곧 버려지겠지만 그래도 버려지는 양을 줄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가장 원초적이고 기본적인 방법부터 시도해봤다. 배송받은 상자를 내가 배송할 때 다시 사용하는거다. 판매업자도 아닌데 상자로 물건을 보낼 일이 뭐가 있겠냐 싶지만 기자에게는 종종 그런 일이 있다. 물건 구매할때 배송비를 아끼려고 지인과 나눠 사거나, 취미활동을 공유하는 동호회 사람들과 굿즈나 물건을 주고받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간단한 물건을 보낼 때, 상태좋은 상자를 재사용했다.

배송된 상자 중 찌그러짐이 심한 것들은 잘 분리해 버리고 튼튼해 보이는 것들은 따로 모았다. 상자를 열 때 윗부분에만 살짝 칼집을 내서 연 다음 거기에 다른 물건을 담았다. 송장 떼낸 자리에 새 송장을 붙이면 새 상자와 다름없다. 테이프만 더 쓰면 상자는 재사용이 가능하다. ‘테이프를 쓰는데 환경에 나쁜 거 아니냐?’는 생각도 들겠지만, 어차피 물건을 보내려면 테이프는 필수다. (그리고 종이 소재로 된 테이프를 사용한다)

재사용한 상자로 경기도 일산과 송도에 택배를 보냈다. 이동하는 기간에만 튼튼하면 되니 품질 면에서도 문제가 없었다. 그 다음 상태가 좋은 것들은 집에 두고 썼다. 커다란 상자 두 개는 차 트렁크에 넣어두고 정리함으로 썼다. 중간크기 상자에는 방습제를 넣고 철지난 옷을 담아 창고방에 넣어 수납함으로 썼다. 다이소에서 5천원만 내면 커다랗고 튼튼한 상자를 살 수 있지만, 옷을 담아두고 한철 보관하는 용도라면 충분했다.

부모님 댁에도 상자가 많다. 물건을 버린다면 질색하는 아버지 덕이다. 아버지는 환경주의자라기 보다는 절약이 몸에 밴 스타일인데. 상자마다 물건을 차곡차곡 담고 포스트잇을 붙여 크기대로 정리해두셨다. 예전의 기자는 “저런 것 좀 버리고 괜찮은 박스 사서 정리해”라고 말했는데 요즘은 그런것도 괜찮은 것 같다. 골판지 상자는 잘 버리면 재활용이 가능하지만, 버리는 걸 줄이면 더 좋으니까 말이다.

leehan@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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