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편리함을 위해 타인의 일상을 침해하는 행동에 대해

때로는 긴 글 보다 한 장의 사진이 더 많은 메시지를 담습니다. 과거 잡지기자로 일하던 시절에 그런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포토그래퍼나 디자이너에게 어떤 느낌의 작업물을 원하는지 전달하려면 빽빽한 글을 채운 작업지시서보다 딱 한 장의 ‘시안’이나 ‘레퍼런스’가 훨씬 더 효과적이었습니다.

살면서 마주치는 여러 가지 환경 관련 이슈, 그리고 경제 관련 이슈가 있습니다. 먼 곳에 있는 뉴스 말고 우리가 아침저녁으로 마주하는 공간에서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것들 말입니다. 그런 풍경들을 사진으로 전하겠습니다.

성능 좋은 DSLR이 아닙니다. 그저 주머니에서 꺼내 바로 찍을 수 있는 폰카입니다. 간단하게 촬영한 사진이지만 그 이미지 이면에 담긴 환경적인 내용들, 또는 경제적인 내용을 자세히 전달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사진으로 읽는 환경 또는 경제 뉴스입니다. 서른번째 사진은 주차공간을 자신의 양심과 바꾼 누군가의 모습입니다. [편집자 주]

주차금지 표지판을 운전자는 못 봤을까? (이한 기자 2020.12.14)/그린포스트코리아
주차금지 표지판을 운전자는 못 봤을까? (이한 기자 2020.12.14)/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이한 기자]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이라는 제목의 소설이 있다. 영화로도 나왔다. 양귀자 작가의 소설로 1992년에 초판이 나왔고 1994년에는 최진실 주연의 영화로도 방영됐다. 오래 전 유명 작품의 제목이 갑자기 떠오른 이유는 ‘주차금지’ 표지판을 마치 비웃기라도 하듯, 표지판 바로 아래 당당하게 차를 대놓은 어떤 운전자를 봤기 때문이다.

사진 속 차는 XX소 XXXX 번호판을 달고 있다. 번호판 각 자리 숫자를 모두 더하면 36이다. (기자가 차 번호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는 의미다. 저 차 운전자는 차를 주차금지 구역에 세우고 앞 건물 주소 사진을 찍은 후 어디론가 걸어갔다. 차를 찾으러 올 때 주소를 보고 찾아오기 위해서 그런거라고 기자는 생각한다. 정말 급한 일이 있어서 잠깐 정차했을까? 사진 찍고 10분 후, 기자가 다시 저 길에 가보았을 때도 차는 백미러가 접힌 채 그대로 주차돼 있었다.

저 길은 주택가 앞 이면도로다. 차 두 대가 한꺼번에 오가기 어렵다. 저 차가 불법주차된 시간 전후에는 재활용품 수거 트럭이 저 길을 지나가야 한다. 사진 왼쪽에는 주택가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다. 사진 속 위치에 차가 주차돼 있으면 주택가 주차장에서 나오는 차들이 진로를 방해받는다. 그리고, 이런저런 사정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주차금지 구역에 차를 대는 건 ‘불법’이다.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했다는 의미다. 저기 크게 적혀 있지 않나. <주.차.금.지>

저 차의 운전자는 금지된 일을 왜 했을까? 내게 금지된 것을 소망한 사람일까? 아니면 자신의 편리만을 생각하고 다른 사람의 일상은 안중에도 없는 이기적인 사람일까? 인간을 둘러싼 모든 게 환경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다른 누군가의 환경이다. 다른 사람의 환경에 나쁜 영향을 미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주차공간이 부족한 건 개인의 책임이 아니지만, 그런 현실을 고려해도, 남들 다 지키는 법을 혼자 어겨도 되는 건 아니다. 금지된 일은 하지 말자.

leehan@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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