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열분리 나선 LG...4년차 구광모 본격 ‘홀로서기’ 나선다
“경쟁력 갖춘 젊은 인재, 경륜 있는 CEO 조화 꾀한다”
AI·빅데이터·클라우드 등 DT영역 인재 대거 발탁
여성임원·외부인재 약진도 주목...‘위기 속 안정’ 찾는다

국내 주요기업들이 연말을 맞아 조직개편과 새 임원진 구성에 나섰습니다. 해마다 인사철이 되면 ‘세대교체’나 ‘차세대 리더 육성’ 같은 단어가 반복되지만 올해는 그런 익숙한 말들이 한층 무겁고 새롭게 들립니다. 코로나19가 가져온 변화 때문입니다.

팬데믹은 과거 IMF와 리먼 사태 등 여러 위기보다 더 강력한 태풍을 몰고 왔습니다. 소비자들의 라이프스타일이 완전히 변했고 그에 따라 산업 구조가 재편됐습니다. 블루오션이 순식간에 레드오션이 되거나, 현실에 적용하기 어렵던 가치들이 불과 몇 달 사이 새로운 표준으로 보편화되는 경우도 우리는 목격했습니다.

CEO들은 매년 ‘올해는 경영 환경이 불확실하다’고 말합니다. ‘위기를 극복하려면 도전과 혁신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매년 듣는 얘기지만 2021년이야말로 과거 어느때보다 더 그런 시대가 될 것입니다.

기업들은 이 변수에 어떻게 대응할까요. 국내 산업을 이끄는 주요 CEO들은 조직을 어떻게 재구성하고 혁신을 주도할 임무는 누구에게 맡겼을까요. 연말 조직개편과 임원인사를 통해 2021년 경영 전략을 미리 살펴봅니다. 첫 번째 순서는 신구조화로 안정을 꾀하며 홀로서기에 나서는 구광모 LG 회장입니다. [편집자 주]

LG가 과거보다 더 빨라지고 적극적으로 변했다는 평가가 많다. 사진은 구광모 LG 대표가 LG전자 서초 R&D 캠퍼스 내 디자인경영센터를 방문해 출시 예정 제품들의 디자인을 직접 살펴보는 모습. (LG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LG는 임원인사를 발표한 후 “젊은 인재를 대거 발탁, 전진 배치해 미래준비 위한 성장사업 추진을 가속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진은 구광모 LG 대표가 LG전자 서초 R&D 캠퍼스 내 디자인경영센터를 방문해 출시 예정 제품들의 디자인을 직접 살펴보던 당시의 모습. (LG 제공, 본사 DB)/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이한 기자] LG는 지난 11월 25일과 26일 계열사별 이사회를 통해 2021년 임원인사를 실시했다. 124명의 신규 임원 승진을 포함해 젊은 인재를 전진 배치한 조치다. LG는 인사 당시 “젊은 인재를 대거 발탁, 전진 배치해 미래준비 위한 성장사업 추진을 가속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영건’의 전진 배치가 곧 세대교체를 의미한 건 아니다. LG는 주요 계열사 CEO를 대부분 유임했다. 코로나19 등으로 인한 국내외 경영환경의 불확실성 증가에 대비하고 경영의 안정성을 도모하겠다는 취지다. LG는 보도자료를 통해 “신구의 조화를 통한 안정 속 혁신에 중점을 두었다”고 밝혔다.

LG는 이번 인사가 구광모 대표의 성향을 반영한 것이라고 밝혔다. 물론 기업 인사에 CEO의 의중이 반영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LG는 그 중에서도 특히 내년 행보가 주목 받는다. 2018년 취임한 구광모 회장이 내년이면 취임 4년차를 맞아 본격적인 색깔내기에 나선다는 점, 조만간 구본준 고문의 계열 분리를 통해 구광모 회장이 본격적인 홀로서기에 나설 것으로 점쳐진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 계열분리 나선 LG...4년차 구광모 본격 ‘홀로서기’ 나선다

LG는 11월 25, 26일 계열사별 이사회를 열고 신규 지주회사 설립을 위한 분할계획을 의결하고 임원 인사를 실시했다. 이사회 결과에 따라 ㈜LG는 LG상사, 실리콘웍스 LG하우시스, LGMMA 등 4개 자회사 출자 부문을 분할해 신규 지주회사를 설립한다. 재계와 증권가 등에서는 구본준 고문의 계열 분리를 위한 행보라고 보는 시선이 지배적이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14일자 보고서에서 “LG의 인적분할은 구본준 LG 그룹고문의 계열분리를 위한 수순”이라고 언급하면서 “현재 LG 최대주주는 15.95%를 보유한 구광모 회장이며, 2대주주는 7.72%를 보유한 구본준 고문이다. 이에 따라 내년 5월 1일 LG 신설지주가 출범한 이후 5월말 유가증권시장에 재상장하면, 구 회장은 LG 신설지주 지분을, 구 고문은 LG 지분을 주식 스왑 형태로 지분정리하면서 계열분리 절차를 종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연구원은 “LG 신설지주의 경우 순수 지주회사이기 때문에 기업가치의 대부분이 자회사 가치에서 발생한다”면서 “자사주 등을 활용해 LG 신설지주가 동사 지분율을 높이는 동시에 다양한 신사업 및 M&A로 동사의 기업가치를 상승시키면서 LG 신설지주의 밸류업을 도모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양지환 대신증권 연구원도 지난 11월 27일자 보고서에서 “분할로 인한 재상장 및 신규상장 이후 구광모회장과 구본준고문과의 ㈜LG·㈜엘지신설지주 지분스왑이 빠른 시일 내에 이루어지며, 계열분리작업이 완료될 것으로 전망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분할 재상장 및 신규 상장 이후 빠른 시일안에 지분 스왑을 통해 독립경영 및 책임경영 실시를 위한 계열분리작업 마무리할 것으로 전망한다”고 밝혔다.

LG그룹은 세대교체가 이뤄질 때마다 장자 승계 이후 다른 형제들이 일부 계열사로 분리 독립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따라 구광모 회장 취임 이후에도 계열 분리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구광모 LG회장은 구자경 LG 명예회장의 차남인 구본능 회장의 친아들이다. 아울러 구본무 LG그룹 전 회장(구자경 명예회장의 장남)의 양자다. 구본준 고문은 구자경 명예회장의 3남으로 구광모 회장 삼촌이다. 이에 따라 재계에서는 구광모 회장이 내년부터 본격적인 ‘홀로서기’에 나서는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 LG그룹 인사가 특히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 있다.

LG 구광모 회장은 1978년생 'X-세대'다. 밀레니얼 세대나 Z세대가 보기에야 똑같은 기성세대로 보이겠지만, 국내 재계를 이끄는 3~4세 총수 중에서는 가장 젊다. 사진은 LG그룹본사(LG그룹제공) / 그린포스트코리아
재계에서는 구광모 회장이 내년부터 본격적인 ‘홀로서기’에 나서는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 LG그룹 인사가 특히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 있다. 사진은 LG그룹 본사(LG그룹제공, 본사 DB) / 그린포스트코리아

◇ “경쟁력 갖춘 젊은 인재, 경륜 있는 CEO 조화 꾀한다”

기업 내부에서는 이 인사를 어떻게 보고있을까. LG는 “고속 성장하는 미래사업 분야에서는 경쟁력 갖춘 젊은 인재들을 과감히 발탁해 기회를 부여함으로써 관성에서 벗어나 사업에 강한 드라이브를 거는 동시에, 경륜있는 최고경영진을 유지해 위기 극복 역량을 강화하고 지속 성장의 토대를 탄탄히 구축하고자 하는 구광모 대표의 ‘실용주의’가 반영된 인사”라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실제로 구광모 대표는 최근까지 계열사 CEO들과 진행한 사업보고회 등을 통해 “고객이 실제로 체감할 수 있는 질적인 변화와 질적 성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미래성장과 변화를 이끌 실행력과 전문성을 갖춘 인재를 발탁·육성할 것”을 꾸준히 당부한 바 있다. 이번 임원인사와 역시 그런 행보와 맥을 같이한다고 재계는 보고 있다.

인사 세부 내용을 보자. 올해 LG는 177명의 승진 인사와 함께 4명의 CEO 및 사업본부장급 최고경영진을 새로 선임했다. 181명의 임원인사 규모 외에도 연중 23명의 외부 인재를 임원으로 영입했다. 나이와 성별, 경력과 관계없이 잠재력과 분야별 전문성을 겸비한 인재를 중용한 인사였다고 LG는 밝혔다.

LG는 미래준비를 위해 지난해 106명보다 증가한 124명의 상무를 신규 선임했다. 이 중 45세 이하 신규 임원은 24명으로 지난 2년간 각각 21명에 이어 올해는 3명 늘었다. 최연소 임원은 1983년생으로 올해 한국나이 38세인 지혜경 LG생활건강 중국디지털사업부문장이다. 1980년대생 신임 임원은 지난해에 이어 3명 발탁됐다.

◇ AI·빅데이터·클라우드 등 DT영역 인재 대거 발탁

LG는 미래준비 기반이자 씨앗이 될 AI, 빅데이터, 클라우드 등 LG가 가속화하고 있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영역에서 성과를 낸 인재들을 대거 발탁했다. 이와 더불어 융복합 기술개발 등 기술 리더십 확보를 위해 R&D 및 엔지니어 분야에서 성과를 낸 젊은 인재에 대한 승진인사도 확대했다.

변화와 혁신을 이루어 낸 미래 성장사업 분야 인재도 과감하게 발탁했다. 눈여겨볼 부분은 전기차 배터리다. LG는 1990년대 중반 배터리 연구를 시작한 이후 꾸준히 관련 분야에서 미래를 개척해왔다. 그 결과 LG화학이 전기차 배터리 사업에서 글로벌 강자에 올랐고 LG에너지솔루션이 최근 공식 출범했다.

LG는 이곳에서 신임 임원 12명을 발탁했다. 이와 더불어 오랫동안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디스플레이 사업 안정화 기반 마련 등에 기여한 플라스틱 OLED 분야에서도 5명의 상무를 신규 선임했다. LG는 "경험과 노하우가 필요한 생산·품질·영업 등 분야의 전문성을 갖춘 인재에 대해서는 나이와 상관없이 중용했다"라고 밝혔다.

LG는 위기 속 안정을 위해 대부분의 CEO를 유임했다. 사장 승진자는 5명으로 전년 대비 크게 늘었다. 2018년과 2019년에는 각각 1명이 승진한 바 있다.

◇ 젊은 임원 적극 배치...CEO급 경영진은 대부분 유임

새롭게 사장 자리에 앉은 인물들은 누굴까. 주목받은 인사는 LG전자 한국영업본부장 이상규 사장이다. 이 사장은 한국영업본부에서 영업, 전략, 유통, 마케팅 등 다양한 직무경험을 쌓았으며, 지난해 말부터 한국영업본부장을 맡아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중장기 전략을 수립하고 영업 기반을 구축해 실적을 견인했다.

실리콘웍스 CEO 손보익 사장은 시스템 반도체 전문가로 지난 2017년부터 실리콘웍스 CEO를 맡아 사업 외연을 확장시키고 디지털 반도체 사업 진입을 꾸준히 추진하여 두 배에 가까운 사업 성장을 이뤘다.

LG화학 생명과학사업본부장 손지웅 사장은 의학·제약 분야에서 다양한 경험을 보유한 바이오 전문가다. 지난 2017년 LG화학 생명과학사업본부장으로 선임돼 사업 수익성 개선 및 신약 파이프라인 확대 등 중장기 성장 모멘텀을 강화한 성과를 인정받았다.

LG인화원장으로서 인사와 교육을 연계한 핵심인재 육성프로그램, 온라인 교육 플랫폼으로의 전환 가속화, 직무별 전문 교육체계를 강화한 이명관 사장, LG CSR팀장으로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효과적으로 소통해 왔으며, 향후 LG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ESG 경영을 강화하는 역할을 맡게 이방수 사장도 주목 받았다.

CEO 및 사업본부장급 최고경영진은 4명 교체됐다. 2018년 11명, 2019년 5명에 이어 다시 줄어든 숫자다. 하현회 부회장이 용퇴한 LG유플러스에서는 최근까지 컨슈머 사업총괄을 맡았던 황현식 사장이 CEO로 부임한다. 황 사장은 혁신을 통한 기존 통신 사업 강화와 B2B·B2G 신사업 확대 등을 통해 새로운 성장 기회를 발굴했다는 평가다.

LG화학 전자시업본부장 김종현 사장은 LG에너지솔루션 CEO를 맡는다. 김 사장은 신설법인의 미래 사업 경쟁력 제고를 주도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LG전자 H&A사업본부장으로는 류재철 부사장이 임명됐다, 류 부사장은 최근까지 리빙어플라이언스사업부장으로 글로벌 생활가전 시장에서 LG전자의 시장지배력을 높여왔고, 고객과 시장에 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실적 개선에 기여했다는 평가다.

LG화학 첨단소재사업본부장에는 남철 전무가 임명됐다. 남 전무는 경영전략 분야 전문가로 미래 트렌드와 전방시장에 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첨단소재사업본부의 신사업 발굴·육성해 시너지 창출을 주도해 나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영상 메시지를 통해 임직원들에게 신년사를 전달하는 구광모 ㈜LG 대표(LG그룹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취임 4년차를 맞아 본격적인 색깔내기에 나서는 구광모 회장은, 개혁에 속도를 냈던 최근 몇 년과 달리 ‘위기 속 안정’전략을 통해 미래 먹거리 확대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올해 초, 구광모 회장이 영상 메시지를 통해 임직원들에게 신년사를 전달하는 모습. (LG그룹 제공, 본사 DB)/그린포스트코리아

◇ 여성임원·외부인재 약진도 주목...‘위기 속 안정’ 찾는다

여성 임원의 약진도 눈에 띈다. 올해 역대 최다인 15명의 승진자가 나와 LG 내 여성 임원은 총 51명이 됐다. LG는 그동안 여성 임원을 꾸준히 늘려 왔는데, 올해 전무 승진 4명, 신규 임원 선임 11명 등 역대 최다인 15명이 승진하는 등 여성 임원 확대 기조를 이어갔다.

올해 여성 임원은 전략·마케팅·기술·R&D·생산·고객서비스 등 다양한 직무에서 승진했다. 고객센터 상담사로 입사해 풍부한 현장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고객의 페인포인트 해결에 앞장서 온 LG유플러스 고은정 상무 등 여러 분야 여성인재를 두루 발탁했다는 평가다.

LG디스플레이(김희연 전무), LG유플러스(여명희·김새라 전무) 등 2개사는 최초의 여성 전무를 배출했다. LG화학은 생명과학사업본부 차원에서 최초의 여성 전무(윤수희 전무)를 발탁했다. LG 전체 임원 중 여성임원 비중은 2018년 말 3.2%에서 2020년 말 5.5%로 늘었다.

외국인 신규 임원 등 외부 인재 영입도 눈에 띈다. LG에너지솔루션 폴란드 자동차전지 생산법인 개발담당 데니 티미크(독일인) 상무 등 3명을 배출했다. 글로벌 현장에서 성과를 거둔 현지 핵심 인력을 확대 중용하면서 다양성을 강화한다는 취지다.

LG는 연말 인사와 별도로 올해 글로벌 경쟁력과 전문성을 갖춘 외부 인재 23명을 영입한 바 있다. 올 한해 동안 LG CNS 최고전략책임자(CSO, 부사장)로 윤형봉 티맥스소프트 글로벌사업부문 사장, LG화학 석유화학사업본부 글로벌사업추진담당(부사장)으로 허성우 롯데BP화학 대표 겸 BP코리아 대표 등 총 23명의 외부 인사를 영입했다. 2018년에는 LG화학 신학철 CEO 등 13명, 2019년 LG생활건강 이창엽 뉴에이본 법인장 등 16명의 외부 인재를 영입한 것과 비교하면 더 늘어난 숫자다.

취임 4년차를 맞아 본격적인 색깔내기에 나서는 구광모 회장은, 개혁에 속도를 냈던 최근 몇 년과 달리 ‘위기 속 안정’전략을 통해 미래 먹거리 확대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leehan@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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