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료 쓰고 탄소 내뿜는 자동차경주...‘환경적’ 변화 가능할까?

[그린포스트코리아 이한 기자] 자동차 관련 기업에서는 종종 레이싱이나 랠리 관련 뉴스를 내보낸다. 레이스는 정해진 서킷에서 스피드를 겨루는 자동차경주를 뜻하고, 랠리는 도로나 사막 등 정해진 구간을 자동차로 달리는 종목을 뜻한다. 레이싱은 주로 속도를, 랠리는 도로 사정에 따른 자동차의 내구성 등을 겨룬다.

자동차경주나 모터스포츠는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종목 중 하나다. 제조사에게는 자신들이 만든 자동차의 성능과 퍼포먼스를 알릴 좋은 기회고, 세계인의 관심이 집중되는 행사여서 기업들의 마케팅 플랫폼으로도 유용하게 활용된다. 관련 스포츠를 유치하면 해당 지역 관광수익 등도 기대할 수 있다. 국내 지자체에서도 자동차경주 등을 직접 유치하거나 깊은 관심을 보인 바 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해본다. 차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 또는 가혹조건에서의 주행을 감수하고 많은 연료를 사용하면서 자동차의 성능을 겨루는 것은 환경적으로 어떤 영향이 있을까? 타이어에서 연기가 날 정도의 속도로 서킷을 달리고, 일반 도로와 전혀 다른 환경의 거친 자연을 며칠씩 달리는 랠리는 환경적으로 문제가 없을까?

물론, 세상의 모든 활동은 에너지를 사용하고 탄소를 배출한다. 기름 태워 달리고 탄소를 배출하기 때문에 모터스포츠가 환경적으로 문제라면, 수개월 동안 여러 선수가 버스 타고 전국을 다니며 경기하는 야구, 축구, 농구, 배구 같은 스포츠도 모두 탄소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월드컵이나 올림픽 같은 행사를 위해서도 전 세계 스포츠인들이 비행기로 이동하면 탄소가 많이 나올텐데 왜 모터스포츠에만 그런 잣대를 내미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요즘 산업계의 화두 중 하나는 내연기관차의 친환경 미래차 전환이다. 자동차 제조사들도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 본인들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지 적극적으로 홍보한다. 소위 ‘슈퍼카’라고 불리는 포르쉐도 자사 매거진을 통해 ‘1명의 운전자만 탄 채 출퇴근을 위해 매일 막히는 도로 위를 주행하는 내연기관차’ 문제를 언급한 바 있다. 그런 경향을 바꾸고 미래차 시장을 선도하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바로 자동차 기업들이다.

기자만의 생각이 아니다. 최은서 그린피스 교통·자동차 캠페이너는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16%가 교통분야고 자동차 기업과 석유 기업들이 탈탄소 관련 계획을 밝히고 있는데, 내연기관차의 엔진 성능을 자랑하고 속도를 뽐내는 퍼포먼스를 계속해야 하는지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관련 분야에 소용되는 비용과 기술이 친환경차에 투입된다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을 내놓으면서 “우리는 기후위기를 논하는 시대에 살고 있으니, 기후에 대한 고민이 없거나 적었던 과거의 이벤트를 앞으로는 조금씩 바꾸는 게 좋다”는 의견도 내놓았다.

물론, 모터스포츠를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아니다. 기자와 이 얘기를 나눈 환경 분야 종사자들도 모터스포츠 금지 관련 목소리를 내지는 않는다. 그린피스도 "국내에서 자동차 경주 관련 캠페인을 진행한 적은 없다"고 했다.

내연기관차가 탄소를 내뿜는다고 해도, 모터스포츠가 거기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도 아니다. 이지언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국 활동가는 “문화산업이나 스포츠도 기후변화에 관심을 가져야겠지만, 정책적으로 큰 틀에서 보면 공공부문이나 도로 위에서의 자동차 문제를 바꾸는데 힘을 쓰는게 우선이며 자동차 경주 같은 문제는 정책적인 우선순위를 둘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대형 트럭이나 선박, 항공, 일상적인 대중교통 체계 문제, 공공기관 관용차를 미래차로 교체하는 등의 문제에 먼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더 중요한 문제들이 많은데, 모터스포츠를 먼저 언급하는 건 뿌리와 줄기를 두고 잔가지를 보는 관점이라는 지적이다. 

하지만 이 활동가도 모터스포츠의 변화에 대한 의견은 내놓았다. 그는 “빨리 달려야 하는 레이싱에서 그런 전환이 가능할 것인지는 따져봐야 한다”고 전제하면서 “레이싱이나 모터스포츠를 부정할 게 아니라면 친환경차로 전환하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 활동가는 “대안기술이 있는 자동차가 있을 때의 얘기”라고 덧붙였다.

친환경 미래차로 자동차경주를 할 수 있을까? 업계와 전문가들은 그렇다고 말한다. 전기차와 슈퍼카의 조합은 사실 최근 꾸준히 시도되어 왔고 전기차 레이싱 대회도 이미 열리고 있다. 대중들에게 흔히 알려진 F1(Fomula-1)이 아니라, Formula E 챔피언십이 세계 곳곳의 도시에서 이미 여러차례 열렸다. 

자동차 경주에 어울리는 속도로 빠르게 달리려면 최고속도와 강력한 토크가 중요하다. 그런데 전기차가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공학과 교수는 과거 기자에게 “모터와 배터리로 구동되는 파워트레인(동력전달장치)이 일반 내연기관에 비해 강력한 토크 등에서 오히려 유리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가속력 퍼포먼스 부분만 보면 일반 내연기관보다 좋고, 모터 용량 등을 고려한 최고속력 역시 전기차가 유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거듭 얘기하지만, 모터스포츠가 교통 분야 탄소배출의 주범은 아니다. 자동차 경주 관련 산업에 열정과 생활을 걸고 있는 사람도 많다. 그러니 중단하자고 주장하려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내연기관차 산업계는 요즘 입을 모아 변화를 얘기하고 있다. 모터스포츠의 주역들이 스스로 그런 얘기를 하고 있다는 얘기다. 내연기관차의 변화가 필요하다면, 내연기관차의 성능을 알리는 방법도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참고로, 포뮬러E는 국내에서도 개최가 예정되어 있다. 원래 올해 5월 개최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로 연기됐다.

leehan@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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