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우고 헹구고, 분리해서 섞지 않고 싶은데...
재활용 잘 되는 용기, 어디 없나요?

기업이나 정부가 아닌 일반 소비자가 실천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친환경’ 노하우는 ‘쓰레기를 덜 버리는 것’입니다. 플라스틱이든, 음식물 쓰레기든, 아니면 사용하고 남은 무엇이든...기본적으로 덜 버리는게 가장 환경적입니다.

그린포스트코리아 편집국은 지난 2~3월 ‘미션 임파서블’에 도전했습니다. 쓰레기를 버리지 않고 주말 이틀을 살아보자는 도전이었습니다. 도전에 성공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이틀 동안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게 말 그대로 ‘불가능한 미션’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환경을 포기할 순 없습니다. 하여, 두 번째 도전을 시작합니다. ‘제로웨이스트’입니다. 이틀 내내 쓰레기를 ‘제로’로 만들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것부터 실천하기로 했습니다. 쓰레기를 배출하던 과거의 습관을 하나씩 바꿔보려 합니다. 평소의 습관이 모여 그 사람의 인생과 운명이 결정된다면, 작은 습관을 계속 바꾸면서 결국 인생과 운명도 바꿀 수 있을테니까요. 불편하고 귀찮은 일이지만 그래도 한번 해보겠습니다. 열 번째 도전입니다. 재활용이 잘 되는 용기를 찾아보았습니다. [편집자 주]

라벨이 없고 플라스틱 뚜껑만 있으면 분리배출이 상대적으로 쉽다. 하지만 세상에는 이런 용기만 있는 게 아니다. (픽사베이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라벨이 없고 플라스틱 뚜껑만 있으면 분리배출이 상대적으로 쉽다. 하지만 세상에는 이런 용기만 있는 게 아니다. (픽사베이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이한 기자] 기자는 용기가 없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기자 집에는 제대로 된 용기가 없다. 용감하지 못하고 두려움이 많다는 얘기가 아니라 밀폐용기나 플라스틱용기 등 무언가를 담는 그릇을 의미하는 단어다. 주방 수납장에 온갖 용기가 들어있는데 제대로 된 용기가 없다는 얘기는 무슨 의미일까? ‘재활용’ 관점에서 보면 그렇다는 뜻이다. 

환경부 등은 분리배출의 중요한 원칙이 ‘비우고, 헹구고, 분리하고, 섞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같은 소재끼리 구분해 내놓아야 선별하기도 쉽고 재활용이 잘 된다는 의미다. ‘재활용이 잘 된다’는 건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데, 선별하고 재활용하는 과정이 수월하다는 의미, 그리고 재활용품의 품질이 높아진다는 의미를 함께 담는다.

기자 집에는 빙그레 분바스틱이 있다. 바나나우유 용기를 재활용해 만든 것으로, PET병 분리배출시 라벨과 고리를 제거할 수 있는 도구다. 올해 환경의 날에 네이버 해비핀 크라우드 펀딩에 참여해 받았다. 바나나우유처럼 생겨서 귀엽고 자석이 있어 냉장고에 붙여두면 된다. 재활용을 하려고 플라스틱 도구를 소유한다는 게 모순처럼 보이지만, 버려진 플라스틱을 재활용해 만든 것이므로 괜찮을 것 같았다.

◇ 비우고 헹구고, 분리해서 섞지 않고 싶은데...그럴 수가 없다?

기자는 평소 그 도구를 가지고 PET라벨과 고리를 제거한다. 어떤 제품은 라벨이 잘 떼어지고 고리를 떼는 것도 쉽다. 그런데 어떤 제품은 날카로운 도구로 여러 번 잘라내야 라벨이 분리되고 고리도 너무 단단하게 조여있어 빼기 어려운 경우가 있었다. 그래도,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

지난 주, 분리배출 관련 기사를 냈는데 그날 지인에게 연락이 왔다. 환경에 관심 많은 부부인데, 이들은 “분리배출 방법이 중요한 게 아니라 제품 자체가 문제”라고 했다. 그들의 주장을 정리하면 이랬다. “비우고 헹군 다음 분리해서 섞지 않고 내놓고 싶은데, 용기 자체가 그게 가능하지 않다”는 것.

생수나 음료수는 한번 사면 며칠이면 먹는다. 분바스틱을 가지고 분리배출하면 일부 귀찮은 제품이 있었지만 그래도 라벨과 고리는 어떻게든 떼어진다. 그리고 요즘은 자주 사지도 않고 물을 끓여 먹는다. 그래서 다른 제품 병이나 용기들이 어떻게 재활용되는지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지인의 연락을 받고 주방 서랍장을 열어봤더니, 거기에는 비우고 헹궈서 분리해 버리기 어려운 용기들이 가득 있었다.

기름이 새는 것을 막기 위해서일까. 마개가 단단하게 고정돼 아무리 힘을 줘도 열리지 않는 참기름병이 눈에 띄었다. 분바스틱으로는 어림도 없고, 날카로운 칼로 찢어야 뚜껑을 열 수 있을 정도였다. 이 병은 어떻게 씻을 수 있는걸까?

투명한 PET 몸체에 노란색 플라스틱 손잡이가 달린 식용유 용기는 그 손잡이를 제거하려면 커다란 톱이 필요할 것 같았다. 따로 손잡이가 없이 몸체에 홈을 파서 편하게 들 수 있게 만든 제품도 있었다. 그런데 이 제품은 기름을 따를 때 병을 타고 흐르면 손에 묻기 쉽다는 단점이 있었다. 기름이 새지 않으면서 재활용도 더 쉬운 용기를 만들 수는 없을까? 물론, 기자는 그 방법까지는 모른다.

빙그레가 벌이는 환경보호 활동인 ‘분바스틱 캠페인’이 지난 4월 22일 지구의 날을 맞이해 오는 6월 3일까지 네이버 해피빈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진행한다고 23일 밝혔다/빙그레 제공
바나나맛우유 용기를 재활용해 만든 빙그레 분바스틱. 라벨을 제거하고 고리를 떼는데 사용한다. 기자 집에도 있다.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다. 빙그레의 아이디어는 칭찬받을 만 하다. 그런데, 처음부터 용기를 제대로 만들면 소비자가 이런 도구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닌가? (빙그레 제공, 본사 DB)/그린포스트코리아

◇ 유리병 여러 번 써보기로 했는데...만족할 대안은 아냐

눈을 냉장고로도 돌려봤다. 곰곰이 살펴보니 몸통과 입구 부분이 다른 소재로 만들어진 주스병, 굴곡진 병 사이사이로 라벨이 단단하게 붙어있어 떼어내기 어려운 음료수, 라벨이 스티커로 찰싹 달라붙어 깔끔하게 떼어지지 않는 용기들이 너무 많았다. 그런 용기를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재활용을 제대로 하고 싶은데 잘 안 되서 답답하고 속상하다는 소비자도 많았다.

어떤 방법이 있을까. 자원순환 전문가나 환경단체 관계자에게 물어보니 “기업이 그런 물건을 먼저 생산하고, 정부가 관련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거나 “따로 떼어낸 고리만 모두 모아서 수거하는 거점이 생기면 대안이 될 것”이라는 의견들이 있었다. 좋은 대책이고, 장기적으로는 필요한 얘기들인데 내가 집에서 실천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앞선 세대에게 지혜를 구해보기로 했다. 어머니들에게 물어봤다. 플라스틱 기름병을 너무 많이 쓰고 버리기도 어려운 것 같은데 어떤 방법이 좋겠느냐고 말이다. 소주병 등 유리병에 기름을 담아 쓰라는 의견이 많았다. 그러고 보니, 본가에서 참기름이나 들기름을 한병씩 가져올 때는 늘 소주병에 담겼다.

유리병을 여러 번 사용해보기로 마음 먹었다. 소주병은 원래 따로 모아 재활용을 해야 하니 집에 굴러다니는 유리병을 써보기로 했다. 필요한 만큼만 담아 사용하면 되고 다 쓰면 뚜껑을 열어 수돗물에 씻으면 되니 세척하기도 편했다. 무겁고 관리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지만 잘 씻어 말리면 여러번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용기를 가져가서 필요한 만큼만 담아오는 상점은 서울 시내에서 손에 꼽았다. 리필용을 구매하는 방법도 있으나 샴푸나 바디워시도 아니고 오일류를 그렇게 사는 건 어려웠다. 지인에게 얻어오는 경우에나 가능할까.

결국 용기쪽에서는 분리배출을 쉽게 하거나 로우웨이스트를 실천할 마땅한 대안을 아직 찾지 못했다. 다만, 앞으로 제품을 구매할 때 다른 소재의 손잡이가 달려있거나 마개를 열기 어려운 제품은 구매 고려 리스트에서 제외할 생각이다. (재활용이 잘 되는) 용기다운 용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leehan@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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