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현재 우리가 마주하는 기후 재난의 원인이 지금 배출하는 탄소가 아닌 20~30년 전에 배출한 탄소라는 글을 읽었습니다. 오늘 나의 행동은 20년 후의 미래에 또 얼마나 많은 빚을 지고 있을까요? 미래까지 가지 않더라도 오늘날의 환경 문제에도 제 몫은 분명히 존재하고 있겠지요.

슬기로운 환경생활은 개인이 할 수 있는 환경적인 생각과 행동을 체험기로 기록해보자는 의도에서 기획되었습니다. 환경을 위해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을 가볍게 하나씩 적어봤더니 생각보다 할 수 있는 일이 많았습니다. 이론이 아닌 현실에 발 붙이고 서서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을 기록해보려 합니다. 두 번째는 플라스틱 사용 줄이기를 제안하는 ‘제로웨이스트샵’ 방문기입니다. [편집자주]

알맹상점은 올해 6월 망원동에 문을 연 제로웨이스트샵이다. ’껍데기는 가라 알맹이만 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무포장 제품 위주로 판매하고 있다. (곽은영 기자)/그린포스트코리아
알맹상점은 올해 6월 망원동에 문을 연 제로웨이스트샵이다. ’껍데기는 가라 알맹이만 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무포장 제품 위주로 판매하고 있다. (곽은영 기자)/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곽은영 기자] 요즘 기자의 유튜브에는 자주 제로웨이스트 콘텐츠가 추천 영상으로 뜬다. 쓰레기, 일회용품, 분리수거, 재사용, 재활용 등의 키워드가 들어간 검색을 많이 해서 그런지 자연스럽게 알고리즘이 형성된 듯하다.

플라스틱 문제나 쓰레기와 관련한 내용을 찾다 보면 어김없이 제로웨이스트가 등장한다. 일상에서 배출되는 일회용품에 심각성을 느낀 사람들이 쓰레기 줄이기를 넘어 아예 제로로 만들어보자는 접근을 한 것이다. 다소 거창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제로웨이스트의 기본 마인드는 ‘지금 여기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자’는 데에 있다.

반은 기사를 위해서, 반은 개인의 라이프를 위해서 쓰레기 줄이는 습관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기자가 새롭게 알게 된 물건들이 있다. 저건 꼭 필요하겠다 싶은 것부터 저런 것까지 필요할까 싶은 물건까지 제로웨이스트를 도와주는 도구는 생각보다 다양하고 섬세했다. 기자가 줄이고 싶은 비닐봉투 대신 사용할 수 있는 천연 랩 종류도 있었다. 

해당 제품을 온라인으로 살까 하다가 여러가지 제로웨이스트 도구들이 모여있는 제로웨이스트샵에 한번 가보기로 했다. 그곳에 구비된 물건들을 통해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에서 쓰레기를 줄일 수 있는 아이디어를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들었다. 

찾아보니 서울에 제로웨이스트샵이 몇 군데 있었다. 그 가운데 성수동에 위치한 ‘더피커’와 망원동에 자리한 ‘알맹상점’이라는 곳에 가보고 싶었다. 마침 망원동 근처에 취재차 갈 일이 있어서 알맹상점을 찾게 됐다. 

◇ 껍데기는 가고 알맹이만 있는 공간

(왼쪽부터 시계 방향) 천연계면활성 성분이 풍부해 세탁세제로 사용하는 ’소프넛’, 미세플라스틱 걱정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천연수세미’, 1g 단위로 리필 제품을 판매하는 ’리필스테이션’, 일회용 비닐봉투나 랩 대신 사용하는 ’다시쓰는 그랩’. (곽은영 기자)/그린포스트코리아
(왼쪽부터 시계 방향) 천연계면활성 성분이 풍부해 세탁세제로 사용하는 ’소프넛’, 미세플라스틱 걱정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천연수세미’, 일회용 비닐봉투나 랩 대신 사용하는 ’다시쓰는 그랩’, 1g 단위로 리필 제품을 판매하는 ’리필스테이션’. (곽은영 기자)/그린포스트코리아

알맹상점은 올해 6월 망원동에 문을 연 제로웨이스트샵이다. ’껍데기는 가라 알맹이만 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무포장 제품 위주로 판매하고 있는 이곳은 국내 최초 리필 스테이션이기도 하다. 

위치는 망원역에서 2번 출구로 나와 오른쪽으로 5분 정도 직진하다 신호등 하나만 건너면 바로 보인다. 길가 2층에 위치하고 있다. 입구에는 운영시간이 적혀 있다. 일·월·화요일 11시부터 16시까지, 목·금·토요일 14시부터 21시까지, 수요일은 휴무다.

1층의 문을 열면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이 바로 보인다. 그곳을 오르면 알맹상점이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친환경 제품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어서 그런지 아기자기하다는 첫인상을 받았다.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던 물건들이 보였다. 궁금한 것을 매장 직원에게 물어보면서 물건을 하나하나 살펴봤다. 

사람들이 지나다닐 수 있는 통로를 중심으로 양쪽에 각각 리필스테이션과 제로웨이스트 물품 판매존이 있었다. 리필스테이션에서는 1g 단위로 클렌징 오일부터 토너, 샤워젤, 샴푸, 컨디셔너, 세탁세제, 섬유유연제 등을 판매하고 있었다. 필요한 제품을 소량 구매할 수 있도록 저울과 계산기가 준비돼 있다. 실리콘 공병과 크림통이 유상 판매되고 국내 소창으로 만든 재사용 화장솜도 5개 1만원에 판매되고 있었다. 

맞은편에는 제로웨이스트 물건을 비롯해 친환경 제품이 판매되고 있다. 천연수세미, 선인장모를 사용한 세척솔, 유기농 설거지바, 밀랍랩, 소창행주, 대나무 칫솔, 종이 포장 치실, 스테인리스 빨대, 재사용 커피필터, 코코넛 화분, 대나무 변기솔 등이 있었다. 베이킹소다, 구연산 등을 필요한 만큼 병에 덜어 구매해갈 수 있도록 준비돼 있기도 했다.

그 중 기자에게 필요했던 물건을 중심으로 살펴봤다. 일회용 비닐봉투나 랩 대신 사용할 수 있다는 밀랍랩에 대해서 직원에게 이것저것 물어봤다. 상품명은 ’다시쓰는 그랩’이다. 그랩은 밀랍으로 만들어지는 천연제품으로 알맹상점에서는 밀랍랩과 비건을 위한 비건랩 두 종류가 마련돼 있었다. 

직원의 설명에 따르면 밀랍랩은 100% 면 소재에 식용등급의 천연밀랍을 녹여 입힌 천연제품이다. 손의 온기로 식재료나 그릇 모양대로 잡고 몇 초간 꾹 눌러주면 접착력이 생겨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고 유지된다. 그대로 냉장고에 넣어두면 모양이 더 잘 유지된다고 한다. 주의할 점은 열에 약해서 식기세척기나 오븐, 전자레인지 등에는 사용하면 안 된다. 생고기나 생선 포장 용도가 아닌 과일이나 채소 보관용으로 적합하다. 

세척은 찬물과 저자극 세제를 이용해 부드러운 천으로 닦아서 말려주면 된다. 접착력이 떨어지면 알맹상점에서 판매 중인 허니왁스로 수선하면서 사용할 수 있다. 가격은 밀랍랩 기준 대 8500원, 중 5500원, 소 4500원이며, 비건랩 기준 대 9500원, 중 8500원, 소 7500원이다. 이와 함께 색색으로 프린트 된 그린랩도 있었는데 이는 밀랍랩이나 비건랩과 달리 식품위생법에 따른 식약처의 허가를 받은 제품은 아니라 구매에 참고하면 좋을 듯하다. 

유기농 비누에는 세 종류가 있었다. EM과 재생유를 재활용해 4주 이상 숙성시킨 세탁비누 및 설거지바를 비롯해 브랜드에 따라 마카네이쳐와 가치솝 설거지바가 각각 준비돼 있다. 비누의 특성과 용량에 따라 가격은 다르게 형성돼 있다. 매장 직원은 “설거지 비누를 처음 사용하는 경우라면 소용량의 EM 제품으로 가볍게 시작해도 좋고 조금 더 단단한 비누를 쓰고 싶다면 가치솝 제품을 추천하는 편이다”라고 설명했다. 

설거지바 옆에는 소프넛이 있었다. 소프넛은 이름 그대로 비누(Soup)와 열매(Nut)를 의미한다. 천연 열매로 물과 만나면 소프넛 과피에 함유된 사포닌류 천연계면활성 성분이 풍부하게 녹아나온다. 사포닌 자체의 약산성 성분이 섬유의 색과 구조를 보존하면서 때는 분리해내고 섬유는 부드럽게 유지해 별도의 섬유유연제 사용이 필요 없는 것이 특징이다. 화학 잔여물 제거 효과도 뛰어나 일반 합성세제 사용 후 세탁 마지막 단계에서 사용되기도 한다. 덕분에 옷을 여러 번 헹궈낼 필요가 없어 물과 전기 사용량을 아낄 수 있다. 100% 생분해된다는 점에서도 친환경적이다.

알맹상점에서는 소프넛을 1g에 22원에 판매하고 소프넛 천주머니를 1000원에 판매하고 있다. 빨래를 할 때 소프넛 권장량은 세탁기 용량당 2~3개다. 10kg 세탁기 기준 8~12개 소프넛을 천주머니에 넣어 입구를 묶고 세탁물과 함께 세탁조에 넣으면 된다. 세탁이 끝나면 천주머니 그대로 그늘에서 건조시키면 최장 8회까지 재사용이 가능하다고 한다. 세탁물 오염도가 심하면 소프넛을 추가하면 되고 소프넛이 물과 상호작용을 통해 사포닌을 배출할 수 있도록 너무 많은 옷을 넣지 않는 것이 권장된다. 

수세미는 중국산 천연수세미와 국내산인 유구 천연수세미 두 종류가 있었다. 유구 천연수세미는 공주시 유구읍에서 수확시기를 조절해 재배한 것으로 방부제나 표백제로부터 자유로운 친환경 제품으로 소개되고 있다. 두 제품 모두 시중에 판매되는 수세미처럼 납작한 모양이 아닌, 수세미 원형 그대로의 모습대로 판매되고 있다. 100% 천연재료로 미세플라스틱 걱정 없이 사용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크기는 대, 중, 소로 용도에 따라 선택해 원하는 크기로 잘라서 사용하면 된다. 알맹상점에서는 “섬유조직에 따라 비교적 연한 양끝은 과일 세척이나 바디 스크럽에, 조직이 거친 중간 부분은 청소나 설거지용으로 활용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사용 후에는 물기를 꼭 짜내서 건조시키고 열탕소독이 가능해 위생적인 관리도 가능하다. 세척 기능이 떨어지면 일반쓰레기로 배출하면 되고 천연소재라 매립 시 생분해된다고 한다.

두 제품 중 한 가지를 추천해달라는 요청에 직원은 “국내산은 최근 들어온 제품”이라고 소개하며 “탄소발자국을 생각해서 국내산을 선호하는 고객도 많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보기에는 거칠어 보여도 물을 머금게 되면 부드러워져 다용도로 사용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이밖에 건조기에 사용할 수 있는 양모볼은 건조기 안에서 옷을 두드리는 역할을 함으로써 건조시간을 단축시킨다. 이를 통해 옷감을 덜 상하게 하고 에너지를 감축시킨다고 한다.

◇ “우린 일회용이 아니니까”... 자발적 기부 장려해 재활용

제로웨이스트 활동의 일환으로 운영 중인 ‘알맹 커뮤니티 회수센터’. 재활용이 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 병뚜껑, 렌즈통, 빨대 등 작은 PE, PP 플라스틱도 이곳에 기부하면 치약짜개나 색다른 생활용품으로 다시 쓸모를 찾는다. (곽은영 기자)/그린포스트코리아
알맹상점에서 제로웨이스트 활동의 일환으로 운영 중인 ‘알맹 커뮤니티 회수센터’. 재활용이 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 병뚜껑, 렌즈통, 빨대 등 작은 PE, PP 플라스틱도 이곳에 기부하면 치약짜개나 색다른 생활용품으로 다시 쓸모를 찾는다. (곽은영 기자)/그린포스트코리아

매장 안쪽에서는 따로 용기를 준비해오지 못한 손님을 위해 무료 플라스틱 용기와 500원에 판매 중인 소독 완료된 유리병이 준비돼 있다. 

같은 라인에 줄넘기 키트, 화분 키트를 비롯해 버려진 양말 앞코를 활용한 양말목 빗자루 등 다양한 업사이클 제품이 판매되고 있다. 각 공방에서 만들어 판매하는 업사이클 제품부터 플라스틱 프리 제품까지 소소하게 보는 재미가 있다. 

알맹상점에서는 제로웨이스트 활동의 일환으로 다양한 기부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일명 ‘알맹 커뮤니티 회수센터’다. 소비자가 알맹상점에 에코백을 기부하면 망원시장에서 대여용으로 활용되고, 말린 원두가루는 커피화분, 연필, 방향제 등 생활용품으로 다시 태어난다. 

우유팩이나 두유팩은 종이와 섞어서 배출하면 재활용이 되지 않는데 이를 따로 모아서 알맹상점으로 갖고 오면 화장지로 재탄생한다. 재활용이 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 병뚜껑, 렌즈통, 빨대 등 작은 PE, PP 플라스틱도 이곳에서는 치약짜개나 색다른 생활용품으로 다시 쓸모를 찾는다. 역시 재활용이 되지 않는 실리콘을 갖고 오면 스테인리스 도시락 패킹으로 재활용하고, 투명 패트병에서는 섬유를 뽑아 재활용 천을 만든다.

알맹상점 직원은 설명 도중 ‘알맹 커뮤니티 회수센터’라는 글씨가 인쇄된 재생용지 쿠폰을 쥐어주면서 기부를 당부했다. 세척해서 말린 우유팩, 말린 커피가루, 플라스틱 병뚜껑, 실리콘, 반달주머니 끈으로 재사용되는 운동화 끈을 가져오면 하루 4개까지 도장을 찍을 수 있다고 했다. 12개가 모이면 대나무 칫솔을 선물로 준다고 한다. 쿠폰 뒷면에는 ‘재활용되지 않는 물건을 모아 재활용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매장을 둘러보고 기자가 구매하기로 한 물건은 다시쓰는 그랩 2개와 유구 천연수세미 큰 사이즈 1개, 대나무 칫솔 1개, 천주머니에 들어있는 소프넛, 천연라텍스 고무장갑 1쌍, 400g 용량의 유기농 설거지 고체비누 1개다. 집에 아직 사용할 제품이 많이 남아있는 샴푸, 린스, 클렌저, 토너 등은 구매 리스트에서 제외했다.

알맹상점에서 물건을 사고 난 뒤 담아갈 곳이 없다면 카운터 옆에 마련돼 있는 에코백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미리 가방을 비워갔던 터라 따로 에코백이 필요하진 않았지만 비닐이나 종이봉투보다 실용적인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물건을 사는 일이 잠시 아이러니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생활 속에서 일회용품과 플라스틱 사용량을 점차 줄여나가는 데 확실히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 밀랍랩은 보완해가면서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고, 소프넛도 최대 8회까지 사용 가능하다고 하니 쓰레기를 줄이고 물도 아낄 수 있다. 천연수세미나 고체비누 역시 잘라서 쓰면 오랫동안 사용 가능하고 무엇보다 천연제품이라 환경오염에 영향을 덜 끼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오랫동안’의 개념이 막연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이 물건들이 대체할 일회용품이나 플라스틱보다는 가치가 있을 것이고 용도에 맞춰 알맞게 사용하면 물건의 수명은 더 늘어날 것이다. 

알맹상점을 통해 비닐포장을 대신하는 유리병과 에코백의 쓸모, 플라스틱 프리를 도와줄 친환경적인 제품, 재활용되지 않는 물건을 재활용하는 순환 시스템에 대해서 전보다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

이곳에서 구매한 제품들을 사용하면서 달라진 점과 그 사이 변화들은 <슬기로운 환경생활>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공유해보려고 한다. 기자 역시 이러한 작은 시도를 통해 생활이 어떻게 달라질지 궁금하다.

key@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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