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 기간이 잘못 적혀있는 현장 안내문

때로는 긴 글 보다 한 장의 사진이 더 많은 메시지를 담습니다. 과거 잡지기자로 일하던 시절에 그런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포토그래퍼나 디자이너에게 어떤 느낌의 작업물을 원하는지 전달하려면 빽빽한 글을 채운 작업지시서보다 딱 한 장의 ‘시안’이나 ‘레퍼런스’가 훨씬 더 효과적이었습니다.

살면서 마주치는 여러 가지 환경 관련 이슈, 그리고 경제 관련 이슈가 있습니다. 먼 곳에 있는 뉴스 말고 우리가 아침저녁으로 마주하는 공간에서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것들 말입니다. 그런 풍경들을 사진으로 전하겠습니다.

성능 좋은 DSLR이 아닙니다. 그저 주머니에서 꺼내 바로 찍을 수 있는 폰카입니다. 간단하게 촬영한 사진이지만 그 이미지 이면에 담긴 환경적인 내용들, 또는 경제적인 내용을 자세히 전달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사진으로 읽는 환경 또는 경제 뉴스입니다. 스물 일곱번째 사진은 잘못된 내용이 담겨있는 공사장 안내문입니다. [편집자 주]

서울의 한 공사장 외벽에 붙은 도로점용 허가증. 점용기간이 2020년 8월부터 2020년 2월까지라고 적혀있다. (이한 기자 2020.11.30)/그린포스트코리아
서울의 한 공사장 외벽에 붙은 도로점용 허가증. 점용기간이 2020년 8월부터 2020년 2월까지라고 적혀있다. (이한 기자 2020.11.30)/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이한 기자] 집 근처에서, 아니면 내 가족이 다니는 회사나 학교 근처에서 공사를 하면 뭐가 제일 궁금할까. 첫째는 공사가 시끄럽거나 먼지가 많이 날리지는 않을지, 그리고 두 번째는 ‘언제 끝날지’다. 공사 현장이 내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언제까지 하느냐가 가장 궁금하다. 그런데 저 사진을 자세히 보자. 2020년 8월에 공사를 시작해 2020년 2월에 끝난다고 적혀있다. 이게 무슨 소리일까? 잘 안 보이면 아래 확대된 사진을 보자.

이해한다. ‘단순한 오타’다. 공사 기간이 564일이라고 적혀있으니 2022년의 오타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실수다. 기자도 바쁘거나 집중력이 흩어졌을 때 종종 그런 실수를 한다. 하지만 실수를 했다면 바로 잡아야 한다.

작은 실수가 작게 느껴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기자 입장에서야 기사 속 오탈자를 ‘작은 실수’라고 해명하겠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아니다. 기사를 읽는 사람은 “기본적인 오타 하나도 체크하지 않았으면서, 이 기사가 꼼꼼하게 취재하고 작성됐다는 걸 어떻게 믿느냐?”라고 묻는다. 당연한 지적이다. 받아 들여야 한다. 기자가 아무리 ‘본질은 단어가 아니라 전체적인 내용’이라고 주장해도, 디테일이 허술하면 본질을 제대로 주장할 수 없다. 작은 것을 못 챙겼는데, 커다란 건 잘 챙긴다는 근거가 어디 있단 말인가?

사진은 서울의 한 공사 현장 외벽에 붙은 도로점용 허가증이다. 공사장 바로 뒤에는 초등학교가 있다. 포털사이트 정보에 따르면 학생 수 685명에 교사가 42명이다. 720여명이 저 공사장 뒤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가르친다. 그들의 가족까지 생각하면 수천명의 일상이 저 공사장과 관련 있다.

허가증에는 지자체장 직인이 찍혔다. 누군가 저 허가증을 인쇄해 현장에 붙였고, 수많은 사람이 그곳을 오갔다. 22년이 20년이라고 찍힌 걸 아무도 못 봤을까? 아니면 봤는데 ‘본질은 그게 아니잖아’하고 그냥 넘겼을까. 설마, 그러지는 않았을 거라고 기자는 믿는다. 오래 전 읽은 책 제목 하나를 인용하자. 프로는 디테일에 강하다. 디테일이 허술하면 그건 아마추어다. 지자체와 공사를 주관하는 곳이 모두 프로라면, 비록 작은 오타가 하나 있었지만 공사를 정말로 꼼꼼하게 잘 진행하고 있다면, 도로 점용은 2022년까지라고 다시 밝히는 게 좋겠다.

오타를 내지 않는 게 좋지만, 실수로 오타가 생길 수도 있다. 바로잡으면 된다. (이한 기자 2020.11.30)/그린포스틑코리아
오타를 내지 않는 게 좋지만, 실수로 오타가 생길 수도 있다. 바로잡으면 된다. (이한 기자 2020.11.30)/그린포스틑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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