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포스트코리아 이한 기자] 기자는 과거 유럽 출장을 다녀온 적이 있다. 지금은 휴간 중인 잡지 ‘여성중앙’ 취재기자로 일하던 시절이다. 당시 기자는 현지 유명 가전 업체 본사를 방문했다. 국내에서도 인지도가 높은 기업으로 올해 소비자만족지수 조사에서 높은 점수를 받기도 한 회사다.

당시 그 기업은 녹색 제품(Green Product)개발에 열중하고 있었다. 녹색 제품은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는데 하나는 절전형 제품, 그리고 또 하나는 친환경 소재와 재활용 재료로 만든 제품을 뜻했다.

이들은 녹색 제품에 눈을 돌리는 이유가 크게 두 가지라고 했다. 첫째는 본사가 위치한 스웨덴 소비자들이 제품의 환경 요소를 중요한 구매기준으로 삼기 때문이고, 둘째는 자신들이 대기업으로서 기후변화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있어서라고 했다.

(기자가 방문했을 당시에는 기후변화가 아니라 ‘지구온난화’라는 단어로 표현하던 시절이다)

솔직하게 말하면 마음을 크게 울리는 대답은 아니었다. 우선 스웨덴 소비자가 다른 나라 사람보다 유난히 환경적이라는 근거는 없다고 생각했고, 기업의 책임감 얘기도 기자와 만난 홍보담당자가 습관적으로 내놓는 모범답안 중 하나로 들려서다. 그런데 현지에 머물며 취재해보니 ‘어쩌면 정말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떤 까닭일까.

◇ 북유럽 소비자는 우리보다 더 환경적이라고?

당시 기자는 스웨덴 예테보리를 방문했다. 그곳은 과거 북유럽 최대 공업도시로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여러 공장에서 배출하는 오염물질 문제가 심각했다. 그런데 예테보리는 시 당국과 주민들의 오랜 노력으로 유럽의 대표 환경도시가 됐다고 했다.

예테보리는 탄소배출을 줄이고 재활용 비율을 높여 도시의 이미지를 바꿨다. 이미 1980년대부터 버스 연료를 천연가스로 바꾸고 12년 이상 운행한 트럭은 도심 진입을 금지했다. 대형 공장들은 천연가스를 에너지로 사용하고 공장에서 발생하는 열을 난방용 에너지로 재활용했다. 항구 도시 특색을 살려 오래된 선박 자재를 호텔과 레스토랑, 상점 등의 인테리어 재료로 재활용했다. 거리 조형물과 조각도 대부분 재활용품으로 만들었다. 일부 고급 호텔에서도 객실 물품 등을 재활용 한다고 했다.

예테보리의 노력이 결실을 거둔 건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 덕분이었다. 이곳에서는 1997년 부터 ‘지방 아젠다21 운동’이 일어났다고 했다. 아젠다21은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환경과 개발에 관한 유엔회의’에서 채택된 선언 후속조치다. 여러 주제가 있는데 대기보전과 생물 다양성, 유해 폐기물 안전관리 등 환경 관련 내용을 많이 다룬다. 예테보리는 이 강령을 지역에 맞게 만들어 거리의 쓰레기를 치우고 재활용 센터를 세웠다. 소비자들은 서로 친환경 제품 구매를 권하고 실천했다. 요즘에야 그런 일이 우리 주위에서도 많이 보이지만 1997년부터 그랬다는 건 인상적이었다.

그곳에서 흥미로운 얘기를 들었다. 북유럽 사람들은 자연과 환경을 보호하는 것을 매우 당연한 일로 받아들인다는 얘기였다. 서울에서 태어나 스웨덴에서 23년 동안 살았다는 마리아 안씨가 기자에게 그 얘기를 해줬는데, 그는 이런 경향이 ‘자연’ 때문이라고 했다. 그의 얘기는 이랬다.

“북유럽의 겨울은 아주 길어서 오후 3시만 되면 해가 져요. 그러다 봄이 오면 세계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멋진 경치를 드러내죠. 어둡고 긴 겨울을 보내는 동안 밝고 환한 계절을 절실하게 그리워합니다. 어려서부터 이런 환경에서 자라서인지, 이곳 사람들은 자연이 정말 소중하고 꼭 보호해야 하는 가치라고 생각해요”

그는 또 다른 얘기도 들려줬다. 스웨덴을 비롯한 북유럽 사람들은 ‘Pro active’에 대해 유별난 자부심을 가진다는 얘기였다. ‘Pro active’는 뭔가를 처음 시작한 선두주자, 창시자나 첫 개발자를 뜻한다. 남보다 먼저 시작하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는 얘기다.

마리아씨는 “정부에서 환경 규제나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면, 각 기업에서는 저마다 실천지침을 보강해 남과 다르게 만들어 먼저 실천하고 그것을 하나의 자부심으로 여긴다”라고 말했다. 당시 스웨덴에서는 ‘환경을 위해 당신의 남다른 행동이 필요합니다’라는 광고판을 시내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안씨는 “소비자들을 계몽하는 취지가 아니라 프라이드를 자극해 자발적으로 움직이도록 유도하기 위한 메시지”라고 했다.

◇ 소비자의 실천보다 먼저 이뤄져야 할 일들

환경에 대한 남다른 의식을 가진 소비자들이 주도적으로 친환경 제품 시장을 온전히 이끌었을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당시 기자가 방문한 기업 본사 환경관리관 (environment director)은 “환경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아주 적다”고 말했다.

그는 기자에게 “(소비자의 참여는) 자발적으로 실천해 힘을 보탠다는 측면에서는 중요하지만 결국은 기업과 국가가 노력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제품을 만들어 파는 과정에서 돈을 벌고, 그 과정에서의 환경적인 영향을 함께 고려하는 것이 기업과 정부의 숙제라는 의미였다. 그 숙제를 잘 풀어내면, 소비자들은 환경에 대한 고민 없이 편하게 지갑을 열 수 있다.

그 기업 언론홍보담당자는 환경에 좋은 영향 미치는 제품을 생산하는 게, 결국 기업에도 좋은 일이라고 했다. 예를 들어 기업이 제대로 된 절전형 제품을 만들면 소비자의 경제 부담을 덜고 환경에도 좋은 영향을 미치며, 그 제품이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져 결과적으로 기업의 이익도 늘어난다는 얘기였다.

당시 스웨덴에서 소비자가 고급형 세탁기를 구매해 15년 동안 사용하면 지출 구조는 이렇게 구성된다. 세탁기 구매 가격 30%, 세제 구입비 등 유지비 24%, 물 사용료 9%, 기타 서비스 이용료 3%다 모두 더하면 66%다. 그러면 나머지 34%는 뭘까. 바로 전기세다. 언론홍보 담당자는 “최근에 출시된 제품들은 이전 모델들과 비교해 약 30%의 전력감소 효과가 있으며 15년 전과 비교하면 50% 이상 절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 장점을 내세워 소비자도 유혹하고 환경 영향도 줄이고, 기업의 매출도 늘린다는 것. 이 지점이 바로 이들의 중요한 마케팅포인트였다.

이 기업은 사용하는 과정에서 전기를 덜 소모할 뿐만 아니라 생산 과정에서의 오염물질 배출 감소에도 주력한다고 했다. 생산라인 전력 사용량을 줄이기 위한 기술개발에 애쓴 결과 4년 전보다 전력 사용량을 15% 줄였고, 재생 가능한 친환경 소재나 재활용 소재로 제품 외관을 꾸몄다고 했다. 생산 과정에서 탄소 배출량이 줄었거나 친환경 소재로 만든 제품에는 ‘그린라벨’을 붙였다.

환경감독관은 기자에게 “제품 겉면에 전력소모량을 의무적으로 표시하는 것처럼 얼마나 친환경적으로 생산됐는지 소비자들이 알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품의 환경적인 영향을 기업이 먼저 나서서 적극적으로 소비자에게 알려야 한다는 얘기다.

환경감독관은 당시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가전제품을 절전형 저탄소 제품으로 교체할 경우 가구당 연간 탄소배출이 325Kg 줄어든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동차를 리스하거나 공유하는 것처럼 세탁기 같은 가전제품도 렌탈하거나 몇 가구가 공동으로 사용하는 방법도 좋다”라고 제안했다. 아울러 “고급 이미지만을 강조하는 마케팅 대신 재활용 소재를 이용한 실용적인 제품으로 소비자에게 어필하는 전략도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정리하면, ‘기업과 국가가 친환경 제품과 정책을 먼저 완성하고 그걸 바탕으로 소비자에게 잘 안내하라’는 얘기였다. 물론 앞서 언급한 것처럼, 자연과 환경의 소중함을 생각하고 실천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소비자가 있다면 그 효과는 더욱 커지겠지만 말이다.

곱씹어볼 얘기를 하나 하자. 사실 위에 언급된 내용은 고개를 끄덕거릴만한 소재지만 매우 놀랍거나 새로운 얘기는 아니다. 우리나라 기업과 소비자들도 늘 하는 얘기니까. 그런데 기자가 유럽 취재를 준비한 건 2008년, 직접 방문해 저 내용을 바탕으로 ‘여성중앙’에 기사를 쓴 건 2009년이다. 벌써 12년 전에도 지구촌 곳곳에서 저런 얘기들이 오가고 있었다는 의미다.

지금은 2020년이다. 인류의 탄소 배출, 그리고 소비와 산업활동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2008년보다 얼마나 줄었을까? 지난 12년 동안 친환경 제품 생산과 에코 소비의 선후 관계는 잘 구축됐을까? 스웨덴 예테보리는 지금 친환경 대중교통 시스템으로 유명한 ‘일렉트릭 시티’가 됐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아직 뭔가 부족하다고 느낀다면 지금부터라도 바꾸자. 내일이 아니고, 당장 지금부터다.

leehan@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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