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하고 편안하게 보행할 권리에 대하여

때로는 긴 글 보다 한 장의 사진이 더 많은 메시지를 담습니다. 과거 잡지기자로 일하던 시절에 그런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포토그래퍼나 디자이너에게 어떤 느낌의 작업물을 원하는지 전달하려면 빽빽한 글을 채운 작업지시서보다 딱 한 장의 ‘시안’이나 ‘레퍼런스’가 훨씬 더 효과적이었습니다.

살면서 마주치는 여러 가지 환경 관련 이슈, 그리고 경제 관련 이슈가 있습니다. 먼 곳에 있는 뉴스 말고 우리가 아침저녁으로 마주하는 공간에서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것들 말입니다. 그런 풍경들을 사진으로 전하겠습니다.

성능 좋은 DSLR이 아닙니다. 그저 주머니에서 꺼내 바로 찍을 수 있는 폰카입니다. 간단하게 촬영한 사진이지만 그 이미지 이면에 담긴 환경적인 내용들, 또는 경제적인 내용을 자세히 전달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사진으로 읽는 환경 또는 경제 뉴스입니다. 스물 네번째 사진은 보행자를 불편하게 하는 보도 위의 적재물입니다. [편집자 주]

서울 시내의 한 보도. 절반은 자전거가 다니는 길이다. 커다란 나무 판자가 곳곳에 쌓여있다. 어디로 걸어야 편하고 안전할까. (이한 기자 2020.10.17)/그린포스트코리아
서울 시내의 한 보도. 절반은 자전거가 다니는 길이다. 커다란 나무 판자가 곳곳에 쌓여있다. 어디로 걸어야 편하고 안전할까. (이한 기자 2020.10.17)/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이한 기자] 도로교통법 제2조에 따르면 보도는 “연석선, 안전표지나 그와 비슷한 인공구조물로 경계를 표시하여 보행자가 통행할 수 있도록 한 도로의 부분”을 말한다. 쉽게 말해 사람이 걸어 다닐 수 있게 인위적으로 만든 길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그 길에 통행을 방해하는 물건이 쌓여 있으면 어떻게 될까. 길 위에 놓인 번거로운 물건을 피해 차도로 내려가다 사고를 당하면 누가 책임질까?

도로교통법 제27조에 따르면 모든 차의 운전자는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통행하고 있을 때 횡단을 방해하거나 위험을 주지 않도록 정지선에 일시 정지해야 한다. 차도가 설치되지 않은 좁은 도로에서 보행자의 옆을 지나갈 때는 안전한 거리를 두고 서행해야 한다. 보행자의 통행을 보호하고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다. 하물며 보도 위에 저런 것들을 쌓아두면 그 길을 걷는 사람이 안전할까? 저 길 위에는 거동이 불편한 사람이나 실버 세대 환자가 자주 방문하는 정형외과도 있고, 하루 종일 여러 소비자가 드나드는 올리브영 매장도 있고, 인근 주민들의 단골 산책로인 넓은 공원도 있다

저 사진을 찍고 며칠 후 같은 곳을 또 지나갔다. 1톤 트럭이 보도 위에 정차돼있었다. 물건을 싣는 중인 것으로 보였다. 그 옆을 자전거 한 대가 휘청휘청 지나가다 결국 중심을 잃고 트럭과 부딪혔다. 다친 사람은 없었으나 아찔한 순간이었다. 정차된 차와 주행 중인 자전거가 부딪히면 누구의 과실일까. 아니, 그것보다 먼저, 그 자동차와 자전거는 왜 보도 위에 있을까. (사진 속 붉은색 부분이 자전거길이긴 하다). 기자는 그 길을 지나면서 자전거 운전자에게 “죄송한데요, 좀 지나갈게요”라고 말했다. 나는 왜 죄송해야 했을까? 안전하게 이 길을 걷고 싶은 게 죄송할 일은 아닌데 말이다. 보행자와 자전거, 트럭과 물건 중 이 길의 우선순위는 누구에게 있을까?

leehan@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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