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도 국내도...일회용품 없는 가게를 아시나요?
쓰레기를 안 버리고 살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
“개인의 시간과 노력보다, 기업의 노력이 먼저”

역사 이래로 인류는 늘 무언가를 더하기 위해 살아왔습니다. 과거보다 더 많은 자본, 나아진 기술, 늘어나는 사업영역에 이르기까지, 미지의 분야를 개척하고 예전에 없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며 문명을 발전시켰습니다. 그 결과, 인류는 번영을 이뤘습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지구의 건강이 위협받기 시작했습니다. 인류가 무언가를 많이 사용하고 또 많이 버릴수록 지구에 꼭 필요한 자원과 요소들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열대우림이 줄어들거나 빙하가 녹고 그 과정에서 생태계의 한 축을 이루던 동물과 식물들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더하기가 아니라 빼기에 주목해야 합니다. 적게 사용하고 덜 버려야 합니다. 에너지나 자원을 덜 쓰고 폐기물이나 쓰레기를 적게 버리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환경적인’ 일입니다. 인류는 무엇을 줄여야 할까요. 줄여야 산다 여덟 번째 시리즈는 한번 쓰고 버리는, 깨끗하고 편리하지만 환경에는 부담을 주는 일회용품 입니다. [편집자 주]

필환경은 공식적인 용어는 아니지만 최근 널리 통용되는 단어다. 네이버 어학사전 오픈사전에는 '반드시 필(必)과 환경의 합성어로, 필수로 환경을 생각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한다. 사진은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플라스틱 없는' 칫솔 모습. (픽사베이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쓰레기는 버려지면 소각되거나 매립되거나 재활용된다. 우리나라는 (해외와 비교하면) 재활용이 비교적 잘 이뤄지는 편이지만, 한번쓰고 버려지는 물건이 너무 많다는 건 그래도 문제다. 사진은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플라스틱 없는' 칫솔 모습. (픽사베이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이한 기자] 쓰레기는 버려지면 소각되거나 매립되거나 아니면 여러 공정을 거쳐 재활용된다. 우선 좋은 얘기 하나 먼저 하자. 우리나라는 재활용이 비교적 잘 이뤄진다. 2018년 기준 국내 생활계폐기물 재활용률은 62%로 OECD국가 중 2위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은 “한국은 폐기물 관리체계가 선진적으로 잘 갖춰진 국가로 분류되며 관련 제도나 시스템도 현대화 되어있다”고 말했다. “쓰레기종량제와 재활용품 분리배출 체계가 전 세계 평균 대비 잘 갖춰져 있다”고도 했다.

문제는 버려지는 양이다. 한번 쓰고 버리는 물건이 많고, 재활용되지 않는 것들을 재활용품으로 분리 배출하는 경우도 많아서다. 서로 다른 소재와 재질이 마구 뒤섞여 버려지면서 재활용을 어렵게 하는 문제도 있다. 국토가 좁은데 수도권 인구밀도는 높아 그곳에서 발생하는 쓰레기를 처리하기가 버거운 것도 문제다. 게다가, 버려지는 것들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의 공통 과제다. 그래서 인류는 버려지는 쓰레기의 ‘양’에도 집중해야 한다. 제대로 수거하고 처리하는 과정도 중요하지만, 처음부터 덜 버리자는 얘기다.

이런 취지에서,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는 건 최근 이슈인 제로웨이스트 또는 로우웨이스트 활동과 관련이 깊다. 소비와 사용 자체를 줄이자는 움직임이다. 제로 웨이스트의 0(제로)을 숫자적 의미로 해석하면 쓰레기를 처음부터 만들지 않는 생활을 뜻한다.

독일 베를린의 스타 셰프이자 파워 블로거 소피아 호프만은 지난해 <제로 웨이스트 퀴헤(Zero Waste Kuche) : 쓰레기 없는 주방>라는 책을 출간해 화제가 됐다. 호프만은 언론 인터뷰에서 쓰레기 없는 주방을 위해 실천해야 할 3대 원칙이 “적게 사고, 잘 고르고, 끝까지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 노하우를 적용하면 주방이 아닌 다른 곳에서도 일회용품을 줄일 수 있다. 그런데, 그게 과연 가능할까?

◇ 해외도 국내도...일회용품 없는 가게를 아시나요?

제로웨이스트는 일부 환경운동가 등의 전유물이 아니라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이미 익숙한 단어다. 산림청은 지난 6월 11일 블로그를 통해 ‘제로 웨이스트 운동은 더 이상 소수의 몫이 아니다’라는 글을 남겼고, 국립낙동강생물자원관은 블로그를 통해 ‘제로웨이스트 이벤트’를 진행했다. 정부기관 등이 블로그를 통해 소통하려는 대상이 일반적이고 평균적인 성향의 보통 국민들이라고 고려하면, 일반 소비자들에게도 제로 웨이스트가 익숙한 단어라는 의미다.

버리는 걸 줄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일이 있다. 사는 걸 줄여야 한다. 소비 단계에서 일회용을 줄여 쓰레기를 없애자는 시도는 2014년 독일에서 본격적으로 출발했다. 당시 독일에서는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세워진 ‘오리기날 운페어팍트’가 포장되지 않은 제품을 판매했다. 일회용 포장용기가 없는 가게의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운페어팍트는 독일어로 ‘포장되어 있지 않은’이라는 뜻이다. 이곳은 소비자가 직접 빈 그릇이나 봉투를 가져와 원하는 제품을 무게만큼 구매했다. 농산물을 포함해 비누와 샴푸 등 생활용품까지 총 600여 가지의 제품이 포장재 없이 판매됐다. 제품 포장 비용이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다른 매장보다 가격도 상대적으로 저렴했다.

포장지 없는 슈퍼마켓이 문을 연 후 독일에는 라떼 만들고 남은 우유거품으로 리코타 치즈를 만드는 카페가 등장했고, 덴마크 코펜하겐에는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한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이 유명세를 끌기도 했다. 덴마크 ‘뢰스 마르케트’는 로컬 식재료와 생활용품을 파는 곳으로 현지 유기농 생산자, 제조업체 등과 직접 거래해 바로 소비자에게 중개했다.

이곳에서는 재활용 용기를 소비자에게 제공하기도 하고 배달 서비스도 이뤄져 화제가 된 바 있다. 배달은 탄소배출을 줄인다는 이유로 자동차가 아닌 자전거로 이뤄졌다. 쓰레기를 버리지 않기 위해 소비 행동부터의 변화를 꾀한다는 취지였다

◇ 쓰레기 안 버리고 살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

쓰레기를 버리지 않으며 살겠다는 개인들의 노력도 있었다. 뉴욕대에서 환경과학을 전공한 청년 로렌 싱어는 지난 2012년 ‘플라스틱 웨이스트 제로’에 도전했다. 로렌 싱어는 플라스틱 생활용품을 줄이며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했고 4년 동안 그가 버린 쓰레기는 작은 유리병 하나에 다 들어갈 정도에 불과했다.

로렌 싱어는 구입한 옷의 가격표와 약통에 들어있던 습기제거제 정도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버리지 않았다. 로렌 싱어의 플라스틱 웨이스트 제로 도전기는 TED 강의 등을 통해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오스트리아에는 5인 가족이 플라스틱 줄이기 없애기에 도전했다. 현지 물리치료사 산드라 크라우트바슐은 2009년 가을, 다큐멘터리 영화 ‘플라스틱 행성’을 보고 앞으로 플라스틱을 쓰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지구를 덮은 플라스틱의 영향과 피해를 알게 되면서 생활 습관을 바꾸기로 결심한 것. 그는 남편, 그리고 세 아이와 함께 플라스틱 줄이기를 실천했고 평범한 시민이자 엄마에서 환경운동가로 거듭다. 이 내용을 엮어 ‘우리는 플라스틱 없이 살기로 했다’ 라는 이름의 책으로도 펴냈다.

국내에서도 제로웨이스트숍이 문을 연 바 있다. ‘알맹상점’은 집에서 쓰던 빈 용기를 가져와 필요한 만큼만 담고 무게를 재서 내가 구매한 만큼만 돈을 낸다. 개인 용기를 가져와 에탄올로 소독한 다음 살짝 말려 그 용기에 제품을 담아가는 방식이다. 샴푸나 커피도 이런 방식으로 구매한다. 배우 류준열이 #용기내 라는 이름으로 SNS에 올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용기’를 냈다는 건 단어 그대로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된다.

지난해 3월에는 환경단체 그린피스가 ‘플라스틱 없이 장보기’를 실현하자는 취지로 시민 32명과 함께 플라스틱 소비 없이 장 볼 수 있는 가게를 찾아다녔다. 이를 통해 ‘플라스틱없을지도’라는 지도를 제작했다. 여성환경연대는 일회용 플라스틱 없는 카페를 찾아 ‘방방곡곡 플라스팅없다방’이라는 지도를 만들었다.

환경단체 그린피스는 보고서를 통해 “생활의 편리를 위해 한 번 쓰고 버리는 일회용 플라스틱이 보편화 됐다”고 언급하면서 “일회용이 플라스틱 폐기물 급증을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픽사베이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환경단체 그린피스는 보고서를 통해 “생활의 편리를 위해 한 번 쓰고 버리는 일회용 플라스틱이 보편화 됐다”고 언급하면서 “일회용이 플라스틱 폐기물 급증을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픽사베이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 “개인의 시간과 노력보다, 기업의 노력이 먼저”

일반인이 장보기 과정에서 실천할 수 있는 ‘제로웨이스트’ 노하우는 뭘까. 그린피스는 장바구니와 다회용 용기 등 대안 물품과 용기를 가지고 장을 보되, 소량 포장된 제품보다는 대량 진열된 제품을 구매하고 포장재 없이 진열된 식료품을 구매하라고 조언한다. 과일과 채소는 신문지나 보자기, 그물망에 담고 곡물은 유리병에, 수산물과 축산물은 밀폐 용기에 담으면 된다.

경기도 기흥에 사는 소비자 유모씨(65씨)는 일회용 비닐 봉투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이 소비자는 주말마다 동네에서 열리는 로컬푸드 마켓에서 주로 채소를 구매한다. 소규모 장터 형식으로 열리는 이 마켓은 용인 지역에서 재배한 식재료를 소량 구매할 수 있는 곳이다. 비닐로 개별 포장되어있지 않고 필요한 만큼만 구매할 수 있는 곳이 있어 장바구니만 가지고 장을 볼 수 있다,

요리 전문 에디터 출신으로 현재 푸드 관련 콘텐츠 제작사를 운영하는 조모씨는 평소 냉장고에 고춧가루와 쌀, 닭가슴살 약간만 보관하고 채소나 나물 등은 소량만 구매한다. 중대형 슈퍼나 마트는 제품이 대부분 이미 포장 되어 있어서, 원하는 만큼만 구매할 수 있는 재래시장 등도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조 대표는 이에 대해 “구매 패턴을 바꾸면 경제적으로나 환경적으로도 이익이고 신선하게 먹을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라고 덧붙였다.

일회용품 쓰레기를 줄이는 것은 장보기나 요리 등에서 주로 이슈지만 최근에는 생활 속 여러 분야로 그 범위를 넓혔다. 포장재를 사용하지 않고 제품을 구매하거나 플라스틱 용기가 없는 제품을 쓰려는 노력이 주로 이뤄진다. 실제로 최근 인터넷 게시판이나 SNS 등에서 ‘제로웨이스트’ 키워드를 검색하면 면 생리대를 사용하거나 소프넛 열매로 설거지를 한다는 사연, 천연수세미를 사용하거나 폼클렌저 대신 유기농 고체비누를 직접 만들어 사용한다는 사연이 다수 검색된다.

일각에서는 소비자들 개인의 노력보다 기업의 노력이나 정부의 정책, 또는 규제가 더욱 중요하다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일회용 비닐 봉투를 여러 번 재사용한다는 경기도 기흥의 소비자 이모씨(72)는 “물건을 사는 사람들이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것 보다는 기업이 제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포장과 쓰레기를 줄이려고 노력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밝혔다.

줄여야 산다 일회용품 4편에서는, 포장재 등 일회용품 쓰레기를 줄이려는 정부와 기업의 노력에 대해 소개한다.

leehan@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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