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하고 귀찮은 분리배출, 소비자 불만 목소리 높아
“실천 자체가 물리적으로 어려운 경우도 많다” 지적도

페트(PET)와 폴리에틸렌(PE)의 재활용 시장이 호전 추세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본사 DB)/그린포스트코리아
투명 페트병을 버리려면 비닐 라벨을 모두 제거해야 한다. 플라스틱 뚜껑은 따로 버리면 좋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우니 잘 닫아서 배출해도 된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비닐 라벨이 잘 뜯어지지 않아서다. 위해 일부 소비자들은 페트병 비닐을 제거하기 위한 또 다른 플라스틱 도구를 사용하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진다. 사진은 독자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로, 사진 속 브랜드와 제품 등은 기사 특정 내용과 관계없음. (본사 DB)/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이한 기자] 투명 페트병을 버리려면 비닐 라벨을 모두 제거해야 한다. 플라스틱 뚜껑은 따로 버리면 좋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우니 잘 닫아서 배출해도 된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비닐 라벨이 잘 뜯어지지 않아서다. 위해 일부 소비자들은 페트병 비닐을 제거하기 위한 또 다른 플라스틱 도구를 사용하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진다.

PET병은 그냥 버리면 안 된다. 환경부 ‘내 손안의 분리배출’ 앱에 따르면 플라스틱 용기류 PET는 내용물을 비우고 물로 헹구는 등 이물질을 제거해 배출하고 부착상표, 부속품 등 본체와 다른 재질은 제거한 후 배출해야 한다. 올해 서울시내 지자체 등이 관내 주민들에게 배포한 안내서에 따르면 (음료·생수용 투명) 페트병은 내용물 세척, 라벨지 제거 후 압착, 뚜껑 닫아 투명 또는 반투명 봉투에 배출하라고 적혀있다.

분리배출에서 가장 중요한 건, 재활용이 되는 것들을 같은 제품끼리 모으는 것이다. 페트병에서 라벨지를 떼고 다른 재질을 제거하라는 건 그런 이유에서다. 뚜껑도 원칙적으로는 떼는 게 맞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도 과거 본지 취재에 응하면서 “최상의 재생원료 품질을 생산하고자 한다면 뚜껑을 떼는 게 좋다”면서 “원칙상 가장 좋은 것은 재활용을 고려해 뚜껑을 따로 버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뚜껑을 잘 닫아서 버려도 괜찮다. 서울시는 지난 5월 투명페트병 분리배출제 관련 내용을 알리면서 “개인이 뚜껑 고리까지 제거하는 게 쉽지 않고, 뚜껑과 뚜껑 고리는 페트병 파쇄, 세척 등의 재활용 처리 과정에서 ‘비중 차이’로 쉽게 분리 가능하므로, 라벨지만 제거 후 압착해 뚜껑을 닫아 같이 배출하라”고 안내했다.

비중 차이로 인한 분리는 버려진 페트병을 잘게 부순 다음 액체에 담가 뜨는 것과 가라앉는 것으로 분리한다는 의미다. 수거된 페트병을 전부 파쇄한 다음 액체에 두면 뚜껑 재질은 뜨고 페트는 가라앉는다. 홍수열 소장도 “최선은 아니고 차선”이라고 전제하면서 “소비자가 뚜껑과 본체를 분리했을 때 뚜껑을 따로 모으는 시스템이 있는 게 가장 좋지만, 작은 크기의 뚜껑을 따로 모으는 게 어려워 일상적인 분리배출 과정에서는 마개를 닫되, 압축은 꼭 해서 버리라는 의미”라고 말했다. 뚜껑을 닫든 열든, 함부로 버리지 않고 잘 모아서 버리면 된다는 의미다.

◇ “분리배출 수고로움, 소비자에게만 전가하면 안 돼”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있다. 페트병 몸체에 붙은 라벨지다. 모두 제거해 버려야 하는데 적잖은 제품 라벨지가 잘 안 뜯어진다. 점선을 따라 뜯어도 손톱으로 어렵게 여러 번 뜯어야 하고, 어떤 제품들은 라벨지가 질겨 힘주어 뜯어도 제거가 안 된다. 성인 남자 힘으로도 잘 안돼서 매끈하게 뜯어내려면 때로는 칼이나 도구를 써야 한다.

서울 송파구에 사는 소비자 윤모씨(46)는 라벨지를 떼어내기 위한 도구를 가지고 있다. 자원순환기업이 버려진 플라스틱을 재활용해 만든 도구다. 과거 병따개 원리처럼 페트병 고리를 제거하고 라벨에 칼집을 내서 고리와 비닐 라벨을 쉽게 제거해주는 도구다. 윤씨는 “버려지는 플라스틱을 재활용해 만든 제품이므로 한편으로는 ‘환경템’이지만, 결국 비닐과 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하려고 또 다른 플라스틱 도구를 사용하는 것 같아 기분이 이상하다”라고 말했다.

윤씨는 그러면서 “어떤 제품은 비닐이 잘 뜯어지는데 반대로 어떤 제품은 칼집을 내지 않으면 전혀 떼어지지 않고, 접착제가 잔뜩 발라져 있어 떼어내도 몸체에 끈끈이가 잔뜩 묻는다”면서 “분리배출을 위해 소비자에게 불편을 전가하면서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같은 동네에 사는 또 다른 소비자 최모씨(47)도 비슷한 문제를 제기했다. 최씨는 “몇몇 제품을 제외하면 아이들은 비닐을 뜯기 어렵다”라면서 “오늘 아침에도 유명 브랜드 오렌지주스를 마셨는데 PET병 몸체 디자인에 굴곡이 있고 라벨지가 완전히 밀착돼있어 칼집을 내지 않으면 전혀 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라벨 없이 몸체에 직접 제품명이나 성분표시를 새기는 등 재활용을 수월하게 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고 들었는데, 일상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물건들에 아직 제대로 적용되지 않은 것 같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실제로 기자가 해당 브랜드 주스를 직접 구매해 먹어본 결과, 도구가 없으면 라벨을 떼기가 매우 힘들었다. 이 밖에도 소비자들이 흔히 찾는 생수 브랜드와 차 브랜드는 라벨이 비교적 잘 떼어졌으나, 또 다른 유명브랜드의 탄산 음료 등은 라벨이 잘 떼어지지 않거나 떼어내도 페트 본체에 접착제 성분이 끈끈하게 남았다.

◇ “방법 알려주기 앞서 그런 제품 만들어야”

윤씨와 최씨는 평소 외식보다 집밥을 선호하는 경향으로 집에서 요리 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런데 이들은 물이나 음료수 투명 페트병 말고도, 주방에서 흔히 사용하는 플라스틱 용기에 여러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윤씨는 소스병이나 기름병 등을 분리배출 하려고 해도 씻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다 쓴 소스나 기름이 담겨있던 통을 씻어서 버리려고 해도 플라스틱 뚜껑이 단단히 고정되어 있어 아무리 힘을 줘도 열리지 않는다”면서 “기름이 새지 않게 하고 제품의 상태를 보존하기 위해 뚜껑이 잘 닫혀있는 건 알겠지만, 그렇다면 소비자는 기름이 잔뜩 묻은 병을 그대로 버려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최씨는 플라스틱 손잡이 등의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요즘 분리배출에 관심이 많아져 인터넷으로 분리수거 방법을 자주 찾아보는데 재질이 다른 것들은 각각 따로 배출하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페트와 플라스틱이 한 제품에 단단히 고정돼있어 칼로 잘라야만 분리가 되는데, 이런 상태로 소비자들이 분리배출을 열심히 한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방법을 자꾸 알려주려고 하지 말고 그런 제품을 만들면 된다”라고 말했다.

최씨는 서울의 한 대단지 신축아파트에 살다가 3년 전 다세대 주택으로 이사를 왔다. 그는 아파트와 비교해 분리배출이 어려운 환경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최씨는 “아파트에는 건전지나 형광등을 따로 모으는 장소가 있었고 소형가전 등도 모아서 배출이 가능했는데, 지금 사는 곳에는 커다란 상자에 온갖 재활용품을 한꺼번에 모은다”면서 “이런 상태에서 라벨 하나, 손잡이 하나도 제대로 분리되지 않은 제품들을 사용하려니 답답하다”고 말했다.

플라스틱 줄이기와 올바른 분리배출에 대한 관심이 꾸준히 높아지는 가운데, 소비자들의 실천에 앞서 정부와 기업의 변화가 선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leehan@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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