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회용 숟가락 재활용 안 되는거 알아요”라고 물었더니
“소비자에게만 짐 지우지 말고 정부와 기업이 바뀌어야”
“시민들이 불편 감수 안 해도 쓰레기 덜 나오는 체제 만들어야”

'지구를 정복한 것은 인류가 아니라 플라스틱'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최근의 지구를 보면, 아니 당장 집 안을 잠시만 둘러보아도 고개가 끄덕여질만한 주장이다. (픽사베이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환경에 대한 관심이 꾸준히 높아지는 가운데 재활용품 분리배출의 중요성 역시 계속 강조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소비자들의 실천만을 요구할 게 아니라 정부와 기업이 먼저 나서 제품 혁신을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처음부터 재활용이 쉽도록 생산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픽사베이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이한 기자] 환경에 대한 관심이 꾸준히 높아지는 가운데 재활용품 분리배출의 중요성 역시 계속 강조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소비자들의 실천만을 요구할 게 아니라 정부와 기업이 먼저 나서 제품 혁신을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처음부터 재활용이 쉽도록 생산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환경부가 지난 9월 28일 공식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재활용품인 척 깜빡 속인 쓰레기’라는 내용의 안내물을 내놓았다. 분리배출 대상이 아닌데도 소비자가 오해하기 쉬운 품목을 알려주는 내용이었다.

해당 안내에 따르면 코팅된 종이, 일회용 숟가락 등 크기가 작은 플라스틱류, 펌프용기와 플라스틱 칫솔, 비닐랩 등은 분리배출하지 말고 종량제 봉투에 버려야 한다. 당시 환경부 안내에 따르면, 작은 플라스틱은 선별하기 어렵고 선별과정에서 기계에 끼이면 오히려 재활용 공정을 방해하므로 종량제 봉투에 넣어야 한다.

환경부는 칫솔처럼 하나의 제품에 여러 재질이 섞인 경우 반드시 일반 쓰레기로 버리고 무심결에 비닐류로 버리는 비닐 랩은 PVC소재여서 재활용이 쉽지 않은데다 처리 과정에서 유해물질이 나오므로 비닐 랩을 종량제 봉투에 버리라고 안내했다.

환경부에 따르면 과일망이나 과일포장재도 재활용이 어렵고 볼펜과 샤프 등 문구류도 다른 재질과 혼합돼 재활용이 어렵다. 조명기구용유리도 재활용이 어려우며 노끈도 끈마다 재질이 다양해 구분이 어려우므로 재활용이 어렵다.

◇ “일회용 숟가락 재활용 안 되는거 알아요”라고 물었더니

위 내용들은 사실 새롭게 알려진 게 아니다. 분리배출에 관심이 많은 소비자나 자원순환 전문가들은 대개 알고 있던 내용이다. 하지만 적지 않은 소비자들이 분리배출에 대한 정확한 가이드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기자가 “일회용 숟가락과 볼펜이나 칫솔 등이 플라스틱으로 재활용되지 않는 걸 아느냐”라고 7명의 소비자들에게 물어보았더니 알고 있다고 대답한 사람은 1명 뿐이었다.

서울 송파구에 사는 전업주부 양모씨(43)는 “볼펜과 칫솔은 여러 재질이 섞여있어 재활용이 안 되는걸 알았는데 일회용 숟가락은 깨끗이 닦아 버리면 되는 줄 알고 늘 분리배출했다”고 말했다. 양씨는 “재활용 방법에 대해 비교적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다”라고 덧붙였다.

경기도 분당에 사는 워킹맘 김모씨(40)는 “전체적으로 플라스틱이라고 생각해 따로 버렸고 작은 부위까지 모두 분리하지는 않았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씨는 “일회용 숟가락이 플라스틱이 아니면 뭘 플라스틱으로 버려야하느냐”라고 기자에게 반문했다.

서울 서초구에 사는 직장인 차모씨(39)는 “일회용 포크나 숟가락을 자주 사용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종종 쓰는데 절반 정도는 물에 적당히 헹궈서, 나머지 절반은 그냥 플라스틱으로 분리배출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작아서 분리가 안된다고 하기엔 숟가락은 그래도 좀 큰 사이즈 같다”라고 말했다. 이 외에도 여러 소비자가 위 내용을 잘 몰랐다면서 “분리배출을 평소에 늘 하는데도 자세히 따지고 들어가면 복잡하고 어렵다”고 말했다. 서울 강동구에 사는 직장인 이모씨(36)만 해당 내용 등에 대해 “최근에 인터넷에서 보고 알았다”라고 답했다.

◇ “소비자에게만 짐 지우지 말고 정부와 기업이 바뀌어야”

재활용이 복잡하다는 주장은 일리가 있다. 환경부 ‘내 손안의 분리배출’ 앱에 따르면 플라스틱 용기류도 PET병과 플라스틱을 따로 구분해야 하고 종이팩은 종이류와 다르다. 영수증처럼 다른 재질과 혼합된 종이, 다른 재질이 혼합된 벽지, 그리고 부직포 등은 또 종이가 아니다. 종이컵은 또 따로 버려야 한다. 유리병은 분리배출하지만 크리스탈 유리제품이나 유리 뚜껑, 거울은 유리병과 함께 버리면 안 된다. ‘지구를 위한 실천’이고 찾아보면 정보가 정리된 곳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복잡한 건 사실이다.

소비자들은 “개인들의 실천도 중요하지만 처음부터 기업이 재활용 잘 되는 재료로 통일된 소재의 제품을 만들고 정부 역시 그렇게 유도하는 게 먼저 아니냐”는 의견도 낸다.

앞서 의견을 냈던 송파구 거주 소비자 양모씨는 “얼마 전 집으로 투명 페트병은 따로 모아서 버리라는 안내문이 왔다”면서 “투명한 페트병과 불투명한 페트병을 소비자들에게 일일이 골라 버리라고 할게 아니라 애초에 투명한 페트병으로만 제품을 만들면 되지 않느냐”고 말했다.

강동구 거주 직장인 이모씨는 “분리배출 방법을 알아보려고 환경부나 구청 SNS를 돌아다니고 유튜브를 검색한다”면서 “일반인들이 매번 이걸 찾아보고 외우는 게 어려우니까 패키지나 포장지를 환경적인 소재로 대체하거나 통일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하는데, 요즘은 개인에게만 계속 무언가를 열심히 하라고 독려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씨는 “조금만 사용해도 금방 뜨거워지는 가전제품을 만들어놓고 그걸 구매한 소비자에게 ‘발열이 있으니까 하루에 5분만 쓰세요’라고 말하면 소비자들이 뭐라고 하겠나. 발열 문제를 해결하는게 기업의 숙제 아니냐”라고 반문하면서 “분리수거 쉽고 재활용이 잘 되는 제품이 많이 나오면 되는데 너무 소비자들의 환경의식만 강조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 “시민들이 불편 감수 안 해도 쓰레기 덜 나오는 체제 만들어야”

소비자들만의 주장이 아니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최근 본지 인터뷰에서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원칙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딱 하나를 꼽으라면 ‘물건을 잘 만 들어야 된다’고 말하겠다. 기업이 물건을 잘못 만들면 그 이후에는 소비자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재활용 안 되는 제품을 만들면 열심히 분리해봤자 버려지면 그만이다. 쓰레기가 되는 과정까지를 고려한 제품 설계를 하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하다. 그 속에서 소비자 실천이 강조돼야 한다. 무조건 ‘할 수 있다’ ‘실천하자’면서 구호만 외치면 안 되고 시스템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이동학 쓰레기센터 대표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쓰레기를 어떻게 줄여야 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정책적인 관점에서, 기업들이 쓰레기가 덜 나오는 방향으로 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시민들이 불편을 감수하지 않아도 쓰레기가 덜 나오는 체계와 방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당시 이동학 대표는 독일 프라이부르그 사례를 예로 들면서 ‘보증금 환불제도’ 등의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소비자들에게 텀블러를 가지고 다니라고 할 것이 아니라, 카페와 빵집들이 모두 다회용 컵을 사용하되 소비자가 어느 카페에서든 자유롭게 컵을 반납하고 보증금을 환불 받을 수 있게 하자는 아이디어다. 시민들 개개인의 실천이 없더라도 정책과 시스템을 통해 쓰레기를 줄이는 시도가 필요하다는 조언이다.

환경에 대한 관심이 꾸준히 높아지는 가운데 재활용품 분리배출의 중요성 역시 계속 강조되고 있다. 그에 따라 환경적인 소비와 습관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는 가운데, 정부와 기업이 지금보다 더 많은 몫을 해내야 한다는 목소리 역시 날로 높아지고 있다.

leehan@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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