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보험, 고용보험 등 사각지대 투성이인 택배노동 현장
택배노동자 산재보험적용제외 신청서 대필 작성 사실로 확인
택배노조 “공짜 노동 ‘분류 작업’ 문제 해결돼야”

과로사로 추정되는 택배노동자의 사망이 잇따르면서 대책 마련이 촉구되고 있다. (쿠팡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과로사로 추정되는 택배노동자의 사망이 잇따르면서 대책 마련이 촉구되고 있다. (쿠팡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곽은영 기자] 올해만 12명. 과로사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택배노동자의 숫자다. 이 중 택배기사가 9명, 분류작업 등 택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가 3명이다.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이하 택배노조)에 따르면, 올해만 벌써 12명의 택배노동자가 과로사로 세상을 떠났다. 그 중 세 명이 추석이 끝난 뒤 일주일 사이 목숨을 잃었다. 지난 8일 배송 중 가슴통증을 호소하며 병원에 옮겨졌으나 끝내 사망한 CJ대한통운 택배노동자 김 모(48)씨, 12일 자택에서 숨진 한진택배 택배노동자 김 모(36)씨, 같은 날 경북 칠곡 쿠팡 물류센터에서 야간 근무를 하고 돌아온 직후 사망한 장 모(27)씨까지, 20대에서 40대 택배노동자들이 줄줄이 쓰러졌다. 

택배노동자 사망 이후 노조 측과 사측의 주장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장시간 고강도의 일이 제대로 분배되지 않아 생긴 과로사”라는 노조 및 유가족들의 주장과 달리 사측은 “지병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팽팽히 대립하고 있는 것.

특히 올해 과로사한 택배노동자 중 무려 5명이 소속되어 있던 CJ대한통운은 산재보험적용제외신청서 대필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비난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더불어민주당 양이원영 국회의원은 지난 14일 보도자료를 통해, CJ대한통운 택배노동자 김씨가 사망 한 달 전인 9월 15일 제출한 산재보험적용제외 신청서가 대필로 작성됐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근거는 글씨체가 김씨의 필적과 다르고 오히려 다른 신청서의 글씨체와 유사했다는 것. 아울러 CJ대한통운 사망노동자 소속 대리점에 들어간 12명 중 9명이 산재적용제외신청서를 제출했고 그 중 4명의 신청서 필적에서도 대필 의혹이 보인다고 밝혔다.

이는 20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근로복지공단 강순희 이사장이 “검토한 결과 고 김씨가 제출한 산재보험적용제외 신청서는 대리점에서 대필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답하면서 일부 사실로 드러났다. 김씨의 산재보험 적용제외 신청은 현재 취소 과정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법상 특고노동자 14개 직종 종사자는 산재보험을 적용받는 것이 원칙이다. 다만 본인이 적용제외를 신청하면 산재보험 대상에서 제외된다. 만약 사업주가 보험료를 줄이기 위해 계약 및 일감을 도구로 노동자에게 적용제외 신청을 강요할 경우 노동자는 울며 겨자먹기로 제외신청을 할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 택배노조 관계자는 “사측에서 임의로 산재보험적용제외 신청서를 작성해 서명을 강요하고 심지어 대신 작성해 제출하는 등 불법 사례가 넘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결국 이번 사건으로 이러한 주장이 사실임이 드러났다.

택배노동자들은 그마저 회사에 들어가 입직 신고가 된 사람에게나 이뤄지는 먼 나라 이야기라고 말한다.

택배노조 관계자는 “전국에 택배기사가 5만 명인데 입직 신고를 한 사람은 1만8000명에 불과하다. 원칙적으로 입직 신고가 되면 산재보험은 의무가입이 되기 때문에 당연히 적용을 받아야 하는데 그중 1만1000명이 산재보험적용제외 강요로 신청서를 써 내 약 7000명 정도만 산재 적용을 받고 있다. 7000명 외에는 현장에서 다치거나 상해를 입는 경우 자비로 해결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 택배노조 “공짜 노동 ‘분류 작업’ 문제 해결돼야”

일반 택배노동자는 특수고용직으로 분류되고 있다. 개인사업자로 분류돼 건당 수수료를 받는 형태로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 존재하고 있어 고용노동법의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노동법 밖에 있는 택배노동자들의 하루 평균 노동시간은 얼마나 될까. 택배노조에 따르면, 택배기사의 노동시간이 일 평균 14~16시간, 주 평균 70~80시간이다. 그 중 ‘분류 작업’에 하루 평균 7~9시간을 할애한다. 노동시간의 절반을 차지하는 셈이다. 

일명 ‘공짜 노동’이라 불리는 이 분류 작업은 택배노동자들의 죽음 이후 택배노동 현장의 가장 큰 취약점으로 꼽혔다. 

택배기사가 배달 전 직접 물류창고에서 본인의 물량을 골라내는 분류 작업은 노동 강도가 높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택배회사에서 분류 작업에 대한 비용이 배송수수료에 포함돼 있다고 주장하면서 인력 투입이나 수당 등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 않아 문제가 제기돼 왔다. 

택배기사들이 추석 연휴를 앞둔 지난달 17일 파업을 선언한 배경에도 분류 작업에 대한 문제가 있었다. 코로나로 인한 물량에 추석 성수기 물량까지 더해지는 상황에서 분류 작업에 대한 추가 인원 투입이 없으면 과부하가 걸리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파업은 다음날 정부와 택배사가 2067명의 분류 작업 인력을 투입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철회되었다. 그러나 택배 노동자 대책위원회는 “정작 추가 투입된 인력은 약속한 인력의 20%도 되지 않는 363명에 그쳤다”면서 “그마저도 노동조합이 있는 터미널에만 투입했다”고 전했다.

택배노조 관계자는 “추석 전부터 제대로 된 과로사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택배노동자들의 과로사가 또 다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하고 호소도 했지만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같은 문제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장시간 고강도 노동현장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분류 작업에 대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면서 “택배기사들이 지속적으로 택배기사는 배송만 전담하고 분류작업 업무는 별도의 노동자가 하는 방향을 제안하고 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고 울분을 토했다. 아울러 “아무리 정부에서 대책 마련을 하려고 해도 인력투입과 이로 인한 비용발생에 대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대통령이 나서도 해결되지 않을 문제”라고 회의적인 입장을 전했다.

택배 및 배달 서비스 업종은 코로나19 이후 불황 속에서 호황을 누린 업종으로 꼽혀 왔다. 그러나 그 안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변하지 않은 시스템 속에서 늘어난 일만큼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일 청와대 국무회의에서 택배노동자 과로사 문제를 언급하며 서둘러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주문했다. 지난 16일에는 직접 산재보험 적용제외 신청 실태에 대한 조사를 지시한 바 있다. 고용노동부가 이와 관련해 21일부터 택배업체를 대상으로 긴급점검 실시에 들어갔다. 업계에서는 대통령이 나서도 해결되지 않을 문제라고 고개를 저었지만, 정부 개입으로 실질적인 개선안이 나올지, 새로운 방향으로 한 걸음을 나아갈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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