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임새를 잃은 재활용품 수거함...왜 여전히 그 자리에 있을까

때로는 긴 글 보다 한 장의 사진이 더 많은 메시지를 담습니다. 과거 잡지기자로 일하던 시절에 그런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포토그래퍼나 디자이너에게 어떤 느낌의 작업물을 원하는지 전달하려면 빽빽한 글을 채운 작업지시서보다 딱 한 장의 ‘시안’이나 ‘레퍼런스’가 훨씬 더 효과적이었습니다.

살면서 마주치는 여러 가지 환경 관련 이슈, 그리고 경제 관련 이슈가 있습니다. 먼 곳에 있는 뉴스 말고 우리가 아침저녁으로 마주하는 공간에서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것들 말입니다. 그런 풍경들을 사진으로 전하겠습니다.

성능 좋은 DSLR이 아닙니다. 그저 주머니에서 꺼내 바로 찍을 수 있는 폰카입니다. 간단하게 촬영한 사진이지만 그 이미지 이면에 담긴 환경적인 내용들, 또는 경제적인 내용을 자세히 전달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사진으로 읽는 환경 또는 경제 뉴스입니다. 아홉 번째 사진은, 최초 보급 취지와 관계 없이 흉물이 되어버린 재활용 수거함의 모습입니다. [편집자 주]

서울 송파구 한 어린이공원 근처의 재활용품 수거함. 재활용품 분리배출을 위한 도구로서가 아니라 자전거 보관대로서의 역할만 하고 있다. (이한 기자 2020.09.28)/그린포스트코리아
서울 송파구 한 어린이공원 근처의 재활용품 수거함. 재활용품 분리배출을 위한 도구로서가 아니라 자전거 보관대로서의 역할만 하고 있다. (이한 기자 2020.09.28)/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이한 기자]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오래 전 유행했던 힙합 음악 가사 속 한 구절이다. 가사가 담은 함축적인 의미 덕일까. 요즘도 ‘난 누구? 여긴 어디?’라는 밈으로 SNS등에 자주 등장한다. 거기서 한 글자만 바꿔보자. 넌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9월 28일 아침 출근길, 동네 어린이공원 옆에 놓인(이라고 쓰고 방치된 이라고 읽는다) 재활용 수거함을 보고 든 생각이다.

누군가 자전거를 묶어놨다. 재활용품 수거함에 자전거를 묶어놓는 건 잘못된 일이다. 내 자전거 안전하자고 여러 사람 불편하게 하는 일이니까. 그런데 저 수거함을 보면 자전거 주인의 마음이 한편으로는 이해도 된다. ‘재활용품 수거’라는 본연의 임무를 잊은지 오래 된, 그저 튼튼한 구조물로서의 역할만 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버리기 전, 분리가 먼저입니다’라고 적힌 문구가 참 무색하다. 분리를 아무리 잘 한 대도, 저기다 도대체 어떻게 배출하라는 얘기인가.

쓰임새를 잃은 지 오래인 것 같은 저 수거함(?)은 왜 여기 있는걸까. 어쩌면 오래 전에 사용하던 것이어서 지금은 안 쓰는 물건일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렇다면 저 수거함은 더더욱 여기 있어선 안된다. 수거함 옆은 어린이공원 출입구다. 놀이터와 공원이 함께 있어서 아침 저녁으로 동네 사람들이 자주 나와 시간을 보내는 곳이다. 문제는 또 있다. 저 수거함은 이 동네 여기저기 놓여 있다. 아래 사진처럼 말이다.

아래 수거함은 그래도 비교적 원형을 유지하고는 있지만, 그래도 분리수거함으로서의 역할은 오래전에 끝난 것 같다. 이건 여기 계속 놓여있어야 할까? 저기는 초등학교 담장 옆으로 수많은 아이들이 등하교하는 이면도로다. 편도 1차선을 살짝 넘을 정도여서 차라도 한 대 지나가면 아이들이 길 옆으로 비켜서야 한다. 저 각진 쇳덩이가 아이들에게는 둔기 또는 흉기가 될 수도 있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수거함 한쪽에는 동 주민센터 연락처가 적혀있는데 전화를 걸어볼 수는 없었다. 뒷자리 번호 부분이 이미 오래전에 뜯겨 나가서다. 수거함의 모습을 한 저 쇳덩이에게 다시 한번 묻는다. ‘넌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수거함의 모습을 했지만, 수거함으로서의 기능은 하지 못하고 있는 저 쇳덩이에게 다시 한번 묻는다. ‘넌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이한 기자 2020.09.28)/그린포스트코리아
수거함의 모습을 했지만, 수거함으로서의 기능은 하지 못하고 있는 저 쇳덩이에게 다시 한번 묻는다. ‘넌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이한 기자 2020.09.28)/그린포스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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