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애물단지 된 공중전화의 경제·환경학
[기자수첩] 애물단지 된 공중전화의 경제·환경학
  • 이한 기자
  • 승인 2020.09.25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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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가 줄어든 물건의 새로운 쓰임새를 생각하다

[그린포스트코리아 이한 기자] 한 중년 남성이 공중전화로 누군가와 통화하고 있었다. 낯설다. 기자가 공중전화 수화기를 마지막으로 누른 건 2000년 6월이다.

20년째 내 기억 속 저편으로 사라졌던 공중전화로 저 아저씨는 누구와 어떤 대화를 나누고 있을까? 지난 9월 24일 저녁, 서울 송파구의 한 공원 근처에서 기자가 목격한 장면이다.

사실은 기자도 공중전화 세대다. 조금 더 정확하게 얘기하려면 ‘삐삐 세대’라고 하는 게 좋겠다. 무선호출기라는 공식 이름이 더 그럴듯하지만 그냥 삐삐라고 부르자. 그때도 그렇게 불렀으니까.

기자가 삐삐를 사용한 건 1994년부터 1998년까지 4년 동안이다. 휴대전화를 사용한지 올해로 22년째니까 이제 삐삐는 기억 저편에 묻어둬도 될 물건이다.

하지만 이 물건은 여전히 기억 속 서랍 한 켜에 명징하게 남았다. 고등학교 1학년때부터 대학교 2학년때까지, 인생에서 가장 감수성이 예민하던 시기에 사용한 것이어서 그런 것 같다.

삐삐는 혼자서는 그 힘을 발휘할 수 없다. 공중전화와 함께여야 한다. 그 시절에는 쉬는시간마다 공중전화 앞에 음성메시지를 확인하려는 사람들로 긴 줄이 늘어섰다. 강남역 6번출구에서 친구와 만나기로 했는데 삐삐가 왔다면 그걸 확인할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았다. 강남역 공중전화 앞에 늘어선 대기줄은 마치 골목식당 맛집의 그것과 다름 없었으니까.

공중전화는 모두의 필수품이었다. 휴대전화를 가진 사람은 열명 중 한명도 안 됐고 시티폰은 유행하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3천원짜리 공중전화 카드 하나를 새로 사면 마음이 든든했다. ‘보배’가 없으면 마치 금단증상이라도 나타나듯 괜히 찝찝한 요즘 Z세대처럼, 그 시절 X세대 기자는 전화카드가 없으면 마치 총 없이 전쟁터에 떨어진 군인 같은 심정이었다.

삐삐의 폭발적인 성장세와 맞물려 공중전화는 호황을 누렸다. 학교나 번화가에 공중전화가 아무리 많아도 그 전화를 쓰려는 사람이 더 많았다. 25년 전에는 그랬다.

그 공중전화들이 지금은 애물단지가 됐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공중전화로 누군가와 통화해 본 마지막 기억이 언제인가? 혹시 누군가 공중전화를 쓰는 모습은 본 적 있는가?

X세대 필수품이던 공중전화는 이제 점점 ‘쓸모없는 물건’이 되어가고 있다. 실제로, 기자가 오늘 아침 목격한 송파구의 또 다른 공중전화 (어제 저녁 누군가 사용하던 그 전화기와 같은 블록에 있다)에는 버려진 종이컵과 담배꽁초 수십개만 널부러져 있었다. 아마 근처 직장인들의 흡연장소로 전락해 버렸나보다.

공중전화의 오랜 고객이었던 군인들도 요즘은 휴대전화를 쓸 수 있다. 고사리손으로 엄마에게 급한 전화를 걸던 초등학생들도 요즘은 스마트폰을 능숙하게 다룬다. 값비싼 통신요금을 부담하기 어려운 사람들도 많겠지만, 스마트폰 요금제 역시 잘 고르면 싸다. 공중전화 수요가 줄었다는 얘기다.

그 와중에 공중전화는 ‘매출’ 없이 ‘유지비’만 들어가는 낡은 산업이 돼버렸다. 오가는 사람들이 담배꽁초를 버리는 ‘쓰레기통’이 됐다. 남이 만진 물건, 다른 사람의 비말이 묻은 물건을 절대 멀리해야 하는 요즘같은 시대에는 공중전화에서 전화를 거는 것 자체가 무서운 일이기도 하다. 경제적으로, 그리고 환경적으로 공중전화가 점점 ‘처치곤란’ 상태에 놓여간다는 얘기다.

개선 노력은 있었다. 공중전화에서 전기차 충전이 가능하도록 하려는 시도, 전국 곳곳에 놓인 공중전화 부스를 거점으로 활용해 미세먼지를 측정하는 등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려는 시도 역시 있었다. 미니 도서관이나 범죄 위험으로부터 잠시 피신할 수 있는 안심부스가 되려는 노력도 진행된 바 있다. 하지만 그런 시도들에도 불구하고 “쓸모가 줄어든 이 많은 물건들을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은 남는다.

여전히 전국에 수만대의 공중전화가 있다. 경제적으로, 그리고 환경적으로 이 곳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새로운 논의기 필요하다. 그린포스트코리아는 ‘폰카 속 생활환경’ 콘텐츠와 ‘트렌드 키워드 속 환경’ 기사를 통해 달라진 공중전화의 위상과 앞으로의 운명에 대해 자세하게 다룰 예정이다.

leehan@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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