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워서 읽는 환경 ①] “스팸 노란뚜껑 없애주세요”...불필요한 물건의 환경학
[누워서 읽는 환경 ①] “스팸 노란뚜껑 없애주세요”...불필요한 물건의 환경학
  • 이한 기자
  • 승인 2020.09.30 15:5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구 위한 질문...밀봉된 캔에 왜 플라스틱 뚜껑이 필요한가요?
소비자의 목소리에 기업이 답했다, 노란 뚜껑 없는 스팸 출시
편리한 쓰임새 대신 ‘환경’ 시선으로 물건 가치 판단한다면...

연말 시상식 보며 한해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은 기억이 생생한데 벌써 추석입니다. 올해는 코로나19로 1년 내내 정신 없이 보내고 있네요. 여러분은 모처럼 고향 집에 내려갔나요? 아니면 연휴를 맞아 소중한 사람과 함께 여행을 떠났나요? 하지만 기억하세요. 민족 대명절이자 황금 같은 연휴지만 아직은 ‘거리두기’를 할 때입니다.

고향집에 있다면, 호캉스를 즐기는 중이면, 혹시 거리두기를 몸소 실천하려고 댁에 머물고 있다면 사람이 붐비는 곳에 나가기보다는 거실이나 안방에 편하게 누워서 재미있는 콘텐츠들을 소비하세요. 영화나 드라마도 좋고, 다큐도 좋습니다. 이북도 괜찮고 평소 못 읽었던 흥미로운 뉴스나 컬럼도 괜찮겠죠.

환경경제신문 그린포스트코리아가 추석을 맞아 ‘누워서 읽는 환경’ 시리즈 3편을 연재합니다. 살면서 일상적으로, 특히 요즘 자주 마주하던 라이프스타일 소재 속에 숨은 환경 얘기입니다. 첫 번째 기사는 편리한 쓰임새 대신, 환경적인 관점으로 제품의 가치를 판단하려는 최근의 경향들입니다. [편집자 주]

추석을 앞둔 지난 9월 20일, 서울 한 마트에 진열된 선물세트의 모습. 스팸 위에 덮인 노란색 플라스틱 뚜껑에 대한 환경적인 지적이 최근 제기됐다. 사진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로 기사 특정 내용과는 관계 없음. (이한 기자 2020.09.20)/그린포스트코리아
추석을 앞둔 지난 9월 20일, 서울 한 마트에 진열된 선물세트의 모습. 스팸 위에 덮인 노란색 플라스틱 뚜껑에 대한 환경적인 지적이 최근 제기됐다. 사진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로 사진 속 제품과 브랜드, 장소 등은 기사 특정 내용과는 관계 없음. (이한 기자 2020.09.20)/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이한 기자] 원치 않는 광고로 들어오는 이메일이나 문자메시지를 ‘스팸메일’ 또는 ‘스팸메시지’라고 부른다. 지난해 TV예능프로그램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에서는 영국 청년들이 부대찌개 속 깡통햄을 보고 “이걸 왜 돈 주고 사먹느냐”면서 깜짝 놀라는 장면이 방영됐다. ‘스팸’에 대한 나쁜 인식이다.

이미지와 다르게, ‘스팸’은 국내 시장에서 스테디셀러다. 지난해 누적 매출 4조원을 돌파한 바 있다. 이 기사를 독자들이 읽을 때 즈음이면 스팸의 매출이 아마 절정에 달했을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연간 매출의 약 60% 내외가 명절 시즌에 발생하기 때문이다. 스팸 선물세트는 추석과 설 연휴 기간의 대표적인 스테디셀러다.

스팸 선물세트의 인기 요인은 ‘보편타당성’이다. 스팸은 호불호가 없다. 싫어하는 사람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다른 선물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향을 덜 탄다는 의미다. 선물로 흔히 주고 받는 제품들을 생각해보자. 바디제품은 향이나 질감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고, 올리브유나 식용유 대신 카놀라유나 아보카도 오일을 쓰는 집도 있다. 화장품은 피부 상태나 평소 취향에 따라, 과일 등 먹거리도 식성 따라 호불호가 갈리기 쉽다.

하지만 스팸은 소비하기 쉽고 활용도 역시 높다. 적당히 구워 밥이랑 같이 먹으면 된다. 요리실력이 부족해도, 에어프라이어나 오븐이 없어도 쉽게 해먹을 수 있다. 최근에는 백종원이 스팸을 잘게 부숴 고기와 함께 자작하게 끓인 ‘스팸 짜글이’ 레시피가 온라인에서 유행하기도 했다. 유통기한이 길고 보관이 쉽다는 것도 장점이다. 이런 이유로 스팸 선물세트는 ‘명절의 강자’가 됐다.

◇ 지구 위한 질문...밀봉된 캔에 왜 플라스틱 뚜껑이 필요한가요?

추석을 맞아 스팸 얘기를 꺼낸 이유가 있다. 통조림햄을 선물하라고 추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환경에 관한 언급을 하기 위해서다.

스팸을 둘러싸고 최근 의미 있는 움직임이 있었다. 온라인을 중심으로 스팸의 뚜껑을 반납하는 운동이 일었다. 캔뚜껑 말고 노란색 플라스틱 뚜껑에 대한 문제제기였다. 밀봉 상태로 출시되는데 왜 굳이 플라스틱 뚜껑을 덮어야 하느냐는 지적이다.

소비자단체 ‘쓰담쓰담’이 ‘스팸 뚜껑은 반납합니다’라는 운동을 진행했다. 불필요한 플라스틱을 줄이자는 취지인데, 이들은 매일유업과 남양유업 등을 대상으로 빨대 반납 운동을 벌인 바 있다. 쓰담쓰담은 소비자들과 함께 CJ그룹 본사 고객센터로 스팸 뚜껑과 그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을 보냈다.

기자는 2018년 미국 뉴욕에 머물렀다. 짧은 여행이 아니라 현지에 오래 머무른 관계로 직접 밥을 해 먹고 반찬도 만들어 먹었다. 당시 미국에서 구매한 스팸은 우리나라 스팸보다 훨씬 더 짰다. 확인해보니 CJ는 미국 오리지널 스팸보다 짠맛이 덜한 자체 레시피로 국내 공장에서 직접 만든다. 미국 스팸과 우리나라 스팸이 다르다는 얘기인데, 미국 스팸에는 플라스틱 뚜껑이 없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스팸에만 유독 플라스틱 뚜껑이 덮인 이유는 뭘까.

멸종위기 전문뉴스 뉴스펭귄이 보도한 바에 따르면, CJ제일제당은 “가공햄 유통 중 통조림 개봉 부분 보호 차원에서 플라스틱 뚜껑을 도입했다”고 밝혔다. “해외 판매되는 스팸과는 달리 국내에서 직접 제조하기 때문에 뚜껑 유무는 다르다”는 것이 CJ제일제당의 설명이었다.

지난 2018년 기자가 웨스트뉴욕 Blvd East 인근 마트에서 촬영한 스팸. 다양한 맛을 가진 제품들이 다수 진열돼 있었으나 플라스틱 뚜껑으로 2중포장된 제품은 없었다. (이한 기자 2018.03.09)/그린포스트코리아
지난 2018년 기자가 웨스트뉴욕 Blvd East 인근 마트에서 촬영한 스팸. 다양한 맛을 가진 제품들이 다수 진열돼 있었으나 플라스틱 뚜껑으로 이중포장된 제품은 없었다. (이한 기자 2018.03.09)/그린포스트코리아

◇ 소비자의 움직임에 기업이 변했다. 플라스틱 뚜껑 없는 스팸 출시

소비자들의 움직임은 변화를 이끌었다. 제조사가 시장의 의견을 수용해 플라스틱 뚜껑을 없앤 추석 선물세트 2종을 내놨다. 200그램짜리 제품 9개가 포장된 ‘스팸8호 시리즈’와 스팸 6캔에 카놀라유, 물엿 등이 함께 포함된 ‘스팸 스위트1호’제품의 뚜껑을 없앤 것. CJ제일제당은 앞으로 순차적으로 스팸 뚜껑을 없앨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스팸 뚜껑에 대한 논의는 사실 예전에도 있었다. 런천미트를 판매하는 롯데푸드, 리챔을 판매하는 동원F&B 등에서도 플라스틱 뚜껑에 대한 내부 논의가 진행된 바 있다. 제품의 안정성 등을 고려하면 뚜껑의 장점도 있다는 의견 역시 제기되는 상태다. 다만, 플라스틱 절감 차원에서의 통조림햄 뚜껑 줄이기 노력은 앞으로 꾸준히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일각에서는 스팸뚜껑 논의가 일회성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내놓는다. 기능이나 안전상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 아닌데도 관행적으로 사용되는 플라스틱이나 일회용품을 꾸준히 줄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추석연휴를 1주일 앞둔 지난 9월 23일, 동네 중형 슈퍼에서 선물세트 7종을 구매한 한 소비자는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니 제품 포장을 위해 사용된 플라스틱이나 일회용품이 너무 많더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 소비자는 “뚜껑 등 기능상 꼭 필요한 소모품은 이해할 수 있지만, 통조림에 덧씌워진 플라스틱 캡이나 식용유 병에 매달린 플라스틱 손잡이, PET병 전체를 덮고 있는 라벨, 음료에 부착된 일회용 빨대 등이 찝찝했다”고 말했다.

◇ 편리한 쓰임새 대신 ‘환경’ 시선으로 물건의 가치 판단하면?

실제로 스팸 뚜껑이 이슈화 되기 전에도 ‘환경적으로 불필요한 물건을 줄여보자’는 취지의 소비자 활동은 꾸준히 있었다. 지난 2월, 한 소비자가 매일유업에 편지와 함께 자신이 마신 음료에 붙어있던 빨대를 (사용하지 않고) 돌려보냈다. 빨대가 없어도 된다는 주장이었다.

당시 매일유업 임원이 자필로 답장을 보낸 사실이 온라인 등에서 화제가 됐다. 매일유업은 친필 편지에서 “빨대를 사용하지 않아도 음용하기 편리한 구조의 포장재를 연구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포장재 개발과 함께 빨대 제공에 대한 합리적인 방식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후 매일유업은 내부 검토를 거쳐 '엔요100'제품에서 빨대를 제거하기로 결정하고 지난 6월부터 빨대 없이 생산하고 있다. 액상발효유 중 유일하게 개별 빨대를 부착하고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한 바 있는 제품이어서. 더욱 의미 있는 행보다.

언론보도 내용 등을 종합하면, 매일유업은 '엔요100' 제품에서 빨대를 제거함으로써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을 44톤 저감할 수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이는 30년산 소나무 약 9700그루를 심는 것과 같은 효과다. 매일유업은 빨대 없이 마실 수 있는 컵커피 용기와 떠먹는 발효유를 보관할 수 있는 종이 용기 연구 개발도 진행 중이다.

세상의 모든 물건은 각자의 쓰임새가 있다. 하지만 물건의 쓰임새를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있다면, 또는 약간의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더 나은 가치를 추구할 수 있다면 그 물건에 대한 가치평가를 환경적인 시선으로 해보는 것도 좋은 기준일 수 있다.

leehan@greenpost.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