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한 자리를 찾지 못한 의류수거함의 모습

때로는 긴 글 보다 한 장의 사진이 더 많은 메시지를 담습니다. 과거 잡지기자로 일하던 시절에 그런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포토그래퍼나 디자이너에게 어떤 느낌의 작업물을 원하는지 전달하려면 빽빽한 글을 채운 작업지시서보다 딱 한 장의 ‘시안’이나 ‘레퍼런스’가 훨씬 더 효과적이었습니다.

살면서 마주치는 여러 가지 환경 관련 이슈, 그리고 경제 관련 이슈가 있습니다. 먼 곳에 있는 뉴스 말고 우리가 아침저녁으로 마주하는 공간에서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것들 말입니다. 그런 풍경들을 사진으로 전하겠습니다.

성능 좋은 DSLR이 아닙니다. 그저 주머니에서 꺼내 바로 찍을 수 있는 폰카입니다. 간단하게 촬영한 사진이지만 그 이미지 이면에 담긴 환경적인 내용들, 또는 경제적인 내용을 자세히 전달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사진으로 읽는 환경 또는 경제 뉴스입니다. 여덟 번째 사진은, 이게 왜 여기 놓여있는지,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하는지 헷갈리는 의류수거함 모습입니다. [편집자 주]

서울 송파구의 한 의류수거함 모습. 헌 옷을 저기에 넣으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걸까? (이한 기자 2020.09.23)/그린포스트코리아
서울 송파구의 한 의류수거함 모습. 헌 옷을 저기에 넣으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걸까? 의류수거함에는 쓰레기 무단투기시 100만원 이하 과태료가 부과된다고 적혀있는데, 얼핏 보기에는 저 의류수거함 자체가 마치 무단투기된 느낌까지 든다. (이한 기자 2020.09.23)/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이한 기자] ‘니가 왜 거기서 나와’를 듣고 영탁의 트로트 노래를 떠올린다면 비교적 요즘 세대거나 트로트를 좋아하는 소비자일 가능성이 높다. ‘어디로 가야하죠? 아저씨’라는 문장을 듣고 김연우의 ‘이별택시’를 떠올린다면 예전 노래에 익숙한 세대일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겠다. 니가 왜 거기서 나와는 2018년 10월에 발매된 노래고 이별택시는 2004년 1월 노래다.

노래 얘기를 꺼낸 건, 이게 왜 거기서 나오는지,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하는지 헷갈리는 곳이 있어서다. 송파구 한 이면도로 의류수거함이다. 의류수거함은 헌옷이나 신발, 가방, 담요나 누비이불 같은 것들을 모으는 용도다. 옷은 종량제봉투도, 재활용품 분리배출도 아닌 이 루트를 통해서 버리라는 얘기다.

사진을 다시 보자. 입구가 없다. 옷을 어디로 넣으라는 얘기일까? 전봇대와 CCTV사이에 덩그러니 놓인 이 의류수거함 입구는 사진 오른편 CCTV쪽에 있다. 도대체 옷을 어떻게 수거해야 할까. 얇은 여름 티셔츠 같은 것들은 CCTV옆으로 살짝 손을 넣으면 담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부피가 큰 옷이나 이불을 넣을 방법은 있을까? 기자로서는 아무리 봐도 잘 모르겠다. ‘니가 왜 거기서 나와’ 그리고 ‘어디로 가야하죠? 아저씨’라는 14년 터울 서로 다른 노래 가사가 한꺼번에 생각난 이유다. 세상 모든 것들은 마땅히 있을 만한 곳에 있어야 제 가치를 발휘하는데 이 의류수거함은 왜 이럴까?

leehan@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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