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온 길 위에 쓰레기를 남긴 누군가에게

때로는 긴 글 보다 한 장의 사진이 더 많은 메시지를 담습니다. 과거 잡지기자로 일하던 시절에 그런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포토그래퍼나 디자이너에게 어떤 느낌의 작업물을 원하는지 전달하려면 빽빽한 글을 채운 작업지시서보다 딱 한 장의 ‘시안’이나 ‘레퍼런스’가 훨씬 더 효과적이었습니다.

살면서 마주치는 여러 가지 환경 관련 이슈, 그리고 경제 관련 이슈가 있습니다. 먼 곳에 있는 뉴스 말고 우리가 아침저녁으로 마주하는 공간에서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것들 말입니다. 그런 풍경들을 사진으로 전하겠습니다.

성능 좋은 DSLR이 아닙니다. 그저 주머니에서 꺼내 바로 찍을 수 있는 폰카입니다. 간단하게 촬영한 사진이지만 그 이미지 이면에 담긴 환경적인 내용들, 또는 경제적인 내용을 자세히 전달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사진으로 읽는 환경 또는 경제 뉴스입니다. 일곱 번째 사진은, 누군가의 건강은 챙겼지만 여러명의 출근길을 불쾌하게 만든 모습입니다 [편집자 주]

9월 22일 오전 7시 20분 서울 송파구 한 이면도로에 버려진 빈 팩의 모습. 먹고 남은 팩은 어디에 어떻게 버려야 할까? 그걸 굳이 말해줘야 아는 사람은 아마 없을터다. 분리배출과 자원순환의 중요성을 모르는 어린이가 버렸을까? 그랬을 것 같지는 않다. 기자는 어린 아이일때 녹용진액을 안 마셨다. (이한 기자 2020.09.22) 그린포스트코리아
9월 22일 오전 7시 20분 서울 송파구 한 이면도로에 버려진 빈 팩의 모습. 먹고 남은 팩은 어디에 어떻게 버려야 할까? 그걸 굳이 말해줘야 아는 사람은 아마 없을터다. 분리배출과 자원순환의 중요성을 모르는 어린이가 버렸을까? 그랬을 것 같지는 않다. 기자는 어린 아이일때 녹용진액을 안 마셨다. (이한 기자 2020.09.22) 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이한 기자] 여기, 고단한 하루를 시작하려는 한 사람이 있었다. 그가 누군지는 모른다.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도 알 수 없다. 사직서를 가슴에 품고 하루에도 몇 번씩 퇴사를 꿈꾸지만 대출 이자와 카드값의 압박에 밀려 소심한 꿈으로만 그치는 직장인일까? 아니면 온갖 손님을 상대하느라 간과 쓸개를 모두 집에 빼놓고 다닌다는 작은 가게의 사장님일까? 그것도 아니면 더 나은 내일을 꿈꾸며 취업 전선에 뛰어든 공시생일까. 그 사람은 바쁜 아침 스케줄에 밀려 아침도 못 먹고 집을 떠났을 가능성이 있다.

그는 피로에 찌든 몸과 마음을 달래려 녹용진액 한 잔을 급히 짜 털어놓고 고된 하루를 시작했을테다. 기자가 이 사진을 찍은게 오전 7시 20분 전후였으니 그의 하루는 정말 긴가보다. 어쩌면 그의 건강을 염려하는 또 다른 가족이 부랴부랴 챙겨준 것일 수도 있겠다. 그 사람의 하루를 상상해본다. 혹시 영화 <타짜>속 정마담 대사처럼, “먹고 살기 힘들다”고 되뇌이며 이 길을 걸었을까? 그가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든, 어떤 꿈을 꾸든, 노곤한 몸을 이끌고 녹용진액 한 잔으로 아침을 대신하며 시작했을 오늘 하루가 부디 뜻깊기를 바란다.

그런데, 그의 고된 삶과 빛나야 할 일상이 있더라도, 얼마나 급하게 녹용 한 팩을 챙겨 마시고 서둘러 출근길에 나섰느냐와는 별개로, 내 몸 챙기자고 먹고 남은 팩을 길 한가운데 저렇게 당당하게 버려두고 간 모습은 사뭇 아쉽다. 자신의 건강은 챙겼지만 다른 사람의 환경은 챙기지 못해서다. 환경운동가들이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자고 아무리 목소리를 높여도, 정부와 지자체가 효율적인 자원순환을 위해 수 많은 제도와 규정을 마련해도, 쓰레기를 아무렇게나 버리는 한 모두 무의미한 일이 되어버린다. 하루가 아무리 바빠도, 팩에 든 무언가를 마셨으면 그 팩은 수돗물에 깨끗이 헹군 다음 따로 버려야 한다. 그걸 모르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우리가 배워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다 배웠다. 사람은 살아온 길 위에 이름을 남겨야 멋있지, 걸어온 길 위에 쓰레기를 남기는 건 흉하다.

leehan@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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