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긴 글 보다 한 장의 사진이 더 많은 메시지를 담습니다. 과거 잡지기자로 일하던 시절에 그런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포토그래퍼나 디자이너에게 어떤 느낌의 작업물을 원하는지 전달하려면 빽빽한 글을 채운 작업지시서보다 딱 한 장의 ‘시안’이나 ‘레퍼런스’가 훨씬 더 효과적이었습니다.

살면서 마주치는 여러 가지 환경 관련 이슈, 그리고 경제 관련 이슈가 있습니다. 먼 곳에 있는 뉴스 말고 우리가 아침저녁으로 마주하는 공간에서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것들 말입니다. 그런 풍경들을 사진으로 전하겠습니다.

성능 좋은 DSLR이 아닙니다. 그저 주머니에서 꺼내 바로 찍을 수 있는 폰카입니다. 간단하게 촬영한 사진이지만 그 이미지 이면에 담긴 환경적인 내용들, 또는 경제적인 내용을 자세히 전달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사진으로 읽는 환경 또는 경제 뉴스입니다. 여섯 번째 사진은, 커다란 가방을 아무렇게나 버려놓고 한 달째 모른척 하고 있는 누군가의 모습입니다. [편집자 주]

 
초등학교 담벼락 옆에 가방이 덩그러니 놓여있다. 필요한 사람 가져다 쓰라고 의류보관함 근처에 놔뒀을까? 그것보다는 버릴 곳을 물색하다 마땅한(?) 장소를 찾았다고 판단해 아무렇게나 놓아둔 것으로 보인다. (이한 기자 2020.08.16)/그린포스트코리아
초등학교 담벼락 옆에 가방이 덩그러니 놓여있다. 필요한 사람 가져다 쓰라고 의류보관함 근처에 놔뒀을까? 그것보다는 버릴 곳을 물색하다 마땅한(?) 장소를 찾았다고 판단해 아무렇게나 놓아둔 것으로 보인다. (이한 기자 2020.08.16)/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이한 기자] 초등학교 담벼락 옆에 가방이 덩그러니 놓여있다. 필요한 사람 가져다 쓰라고 의류보관함 근처에 놔뒀을까? 그것보다는 버릴 곳을 물색하다 마땅한(?) 장소를 찾았다고 판단해 아무렇게나 놓아둔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지퍼가 고장났고 아주 낡았으며 바퀴까지 망가져 가방으로서의 기능이 하나도 남지 않은, 누가봐도 ‘쓰레기’ 여서다. 필요한 사람 가져다 쓰라고 내놓은 게 아니라, 무단투기한 셈이다.

기자가 이 사진을 처음 찍은 건 지난 8월 16일이다. 버려진 것으로 보이는 이 가방에는 8월 26일자로 송파구청 자원순환과에서 발행한 스티커가 붙었다. 신고되지 않은 대형폐기물이고. 규정을 위반했으니 과태료 부과 대상이라는 내용이다. 하지만 9월 16일 오후 현재까지 이 가방은 같은 자리에 한 달째 그대로 놓여있다.

이 가방을 내놓은 사람은 한 달 동안 이 길을 한 번도 안 지나갔을까? 스티커가 붙은 걸 못 봤을까? 다른 동네 사는 사람이 굳이 가방을 버리러 이 동네를 방문한 게 아니라면 원래 주인도 저 가방을 분명 봤을 것이다 그 사람이 길거리에 내다 놓은 건 아무래도 망가진 가방뿐만 아니라 본인의 인성과 양심인 것 같다. 기자가 알기로는 저 정도 사이즈 폐기물을 신고하면 천원이나 2천원 정도를 지불해야 하는데, 혹시 그 돈이 없어서 그랬을까? 참고로 돈이 없어도 규정을 위반하는 건 유죄다.

며칠 전, 송파구청 마크를 달고 있는 1톤트럭이 저 가방 앞을 지나갔다. 두 사람이 내려 가방을 이리저리 확인했다. 수거해야 하는지 일단 더 지켜봐야 하는지 고민하는 눈치였다. 결국 가방은 그 자리에 그대로 놓였고 트럭은 떠났다. 가방의 원래 주인이 책임지라는 의미로 읽혔다. 한 달 째 양심을 내버린 그 사람은 지금 어디 있을까? 있다면 응답하라, 당신의 양심이 길거리에 나뒹굴고 있으니까. 참고로 사진 속 장소는 아이들이 등하교 하는 길이고, 수십명의 집 앞이다.

이 가방에는 8월 26일자로 송파구청 자원순환과에서 발행한 스티커가 붙었다. 신고되지 않은 대형폐기물이고. 규정을 위반했으니 과태료 부과 대상이라는 내용이다. 하지만 9월 16일 오후 현재까지 이 가방은 같은 자리에 한 달째 그대로 놓여있다. (이한 기자 2020.09.08)/그린포스트코리아
이 가방에는 8월 26일자로 송파구청 자원순환과에서 발행한 스티커가 붙었다. 신고되지 않은 대형폐기물이고. 규정을 위반했으니 과태료 부과 대상이라는 내용이다. 하지만 9월 16일 오후 현재까지 이 가방은 같은 자리에 한 달째 그대로 놓여있다. (이한 기자 2020.09.08)/그린포스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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