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비닐’을 보면서 생긴 의문...개인의 실천만으로 정말 변할까?

[그린포스트코리아 이한 기자] 환경경제신문 그린포스트코리아에 입사하면서 스스로 세운 몇 가지 원칙이 있다. 거창한 것도 있고 소소한 것도 있는데, 그 중 가장 소소한 다짐은 ‘앞으로 일회용 비닐봉투를 받거나 사지 말자’였다.

그러나 소소한 다짐은 알고 보니 소소하지가 못했다. 비닝봉투를 받지 않기 위해서는 거창한 각오가 필요했다. 편의점이나 약국에서야 장바구니를 가져가거나 손에 들고 오면 되니까 괜찮았는데 문제는 배달음식이었다.

찜닭도, 보쌈도, 돈가스도, 제육볶음도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채) 커다란 비닐에 담겨 왔다. 일회용 그릇 대신 다회용 용기에 담겨오는 중국집에서 주문했더니, 거기서는 다 먹은 그릇을 내놓을 때 쓰라고 커다란 비닐봉투를 줬다.

고백하자면, 배달음식은 끊지 못했다.

며칠 전에도 커다란 비닐봉투가 생겼다. 재활용품 분리수거하는 용도로 쓰다가 올바른 배출방법에 따라 분리배출 했지만 ‘비닐봉투를 소비했다’는 찝찝함은 남았다.

그나마 한가지 다행인 것은, 편의점이나 동네 슈퍼, 약국 등에서는 비닐봉투를 안 받는다. 2월 이후로 그런 곳에서 받은 비닐봉투는 딱 2개다. 하나는 지난 4월, 약사가 ‘이건 생분해 봉투여서 괜찮다’고 추천하기에 받았고, 또 하나는 지난 5월 저녁, 가방 없이 동네 산책 나왔다가 급히 식재료를 많이 사야할 일이 있어 어쩔 수 없이 비닐봉투에 담아왔다.

◇ 혼자만의 도전...가방에 담기고 땅속에 묻힌 2장의 비닐봉투

2장의 비닐은 지금 기자에게 ‘일회용’이 아니다. 비닐봉투 사용을 줄이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나름 꼼꼼하게 ‘재활용’ 되고 있다. 약국에서 받은 생분해봉투는 땅에 묻었다. 몇 개월 후 땅을 파보고 ‘정말로 그 봉투가 잘 분해되는지’ 눈으로 직접 확인해볼 생각이다. 그 결과를 그린포스트코리아 지면에 공개할 마음도 있다.

편의점에서 급하게 받아 온 봉투는 네모반듯하게 접어 작은 손가방 안에 넣어뒀다. 출퇴근할 때도, 저녁에 운동 갈 때도 늘 들고 다니는 가방이다. 안 버리고 다시 쓰기 위해서다. 최근 몇 개월간 동네에서 간단하게 장 볼 때는 늘 그 봉투를 사용했다. 정확한 횟수를 세어보지는 않았으나 적어도 스무 번 정도 사용한 것 같다. 어제도 저녁 9시가 넘은 시각에 계란 10알과 의성마늘햄을 갑자기 사야 해서 그 비닐봉투를 가지고 집 앞 슈퍼에 다녀왔다.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일회용 비닐봉투는 정말이지 튼튼하다. 얇은 재질에 가벼운데도 질겨서 잘 찢어지지 않는다. 1.5리터 음료수 세병을 담아온 적도 있고, 냉동식품을 담아온 적도 있는데 봉투는 구석만 살짝 닳았을 뿐 여전히 찢긴 곳 없이 튼튼하다. 4개월째 사용하고 있는데도 내년까지는 거뜬해 보인다.

사실 가볍고 튼튼한 건 비닐봉투의 큰 장점이었다. 우리가 흔히 비닐봉지라고 부르는 이 제품은 사람들이 종이봉투를 너무 많이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나무가 빠르게 줄어드는 것이 안타까워 대체재로 개발되었다고 한다. 얇은데도 잘 찢어지지 않고, 모양을 쉽게 바꿀 수 있으면서도 물과 공기를 통과시키지 않아 편리했다. 다만, 바로 그 특성 때문에 지금 환경적으로 문제가 되기는 했지만 말이다.

일회용품과 플라스틱의 사용을 줄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사용을 안 하면 가장 좋겠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럴 수가 없다. 그렇다면 ‘일회용 제품을 여러 번 사용해보는 건 어떨까?' 혼자만의 도전은 이런 마음으로 시작됐다.

남들과 돌려쓰는 그릇이나 컵, 여러 사람이 만지는 공용 물건은 아무리 세척하고 소독해도 찝찝함이 남는다. 코로나 시국에는 더욱 그렇다. 위생이나 청결에 관한 기준치가 있겠지만, 기준치 이내라고 해서 몸에 문제없이 안전한 것인지도 의문이 생길 수 있는 문제다.

하지만 동네에서 간단히 장을 보거나 가벼운 물건을 넣어올 만한 비닐봉투라면, 그리고 비닐이 정말로 얇고 가벼운데 찢어지지 않고 잘 썩지도 않아서 문제라면 그 비닐을 일회용이 아니라 다회용으로 써보면 어떨까. 흙이 잔뜩 묻거나, 끈적한 오염물질이 묻었다면 몰라도 잘 포장된 물건을 담았다면 몇 개월이라도 쓸 수 있다. 물이 묻었을 때는 슥슥 닦기만 해도 금새 매끈해진다. 기자의 경험담이다. 이 기사를 읽는 독자들도 가능하면 비닐봉투를 다회용으로 써보길 바란다.

◇ ‘17만개의 비닐’ 뉴스에 생긴 의문...개인의 실천만으로도 큰 변화 생길까?

그런데, 2개의 비닐을 둘러싸고 생긴 몇 가지 의문이 있다. 생분해봉투는 땅에 묻으면 자연으로 돌아간다는데 종량제 봉투에 담아서 버리라고 적혀있다. 종량제 봉투는 소각장에서 태운다. 불에 모두 태운 다음 재를 매립지에 묻는 방식이다. 그런데 왜 생분해봉투는 ‘땅에 묻으면’ 이라고 홍보할까. 물론 생분해 성분이라 태우는 과정에서도 다이옥신 등 유해물질 배출이 없거나 적다고 알려져 있긴 하다. 하지만 봉투에 태우는 과정에 대한 설명이 없는 걸 보면, 봉투를 만든 곳에서도 이 봉투가 어떤 과정을 거쳐 처리되는지는 잘 모르거나 관심이 없는 듯 하다.

4개월째 들고 다니는 비닐봉투도 마찬가지다. 환경부와 지자체 등은 최근 폐페트와 폐비닐은 따로 모아서 수거하기 시작했다. 소비자들을 대상으로도 적극적으로 홍보에 나섰다. 페트병을 감싸는 비닐 라벨을 없애려는 움직임도 요즘에는 보인다. 그런데 일부 지자체 등에서는 페트병을 모아서 버리라며 커다란 비닐봉투를 소비자들에게 나눠줬다. 중앙일보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환경부는 이를 위해 서울시에 마대자루 1만 7000장과 비닐봉투 17만매를 제공했다고 한다.

비닐 하나를 접고 또 접어 4개월을 썼는데 페트병을 버리기 위한 비닐봉투가 잔뜩 배부된다는 소식에 힘이 좀 빠졌다. 물론 페트병을 한 곳에 잘 모아 제대로 버리면 재활용 효율이 늘어날 테다. 비닐봉투도 오염되지 않고 깨끗하게 사용된 채 수거가 잘 이뤄지면 재활용될 수 있다. 투명 페트병을 비닐봉투에 모으는 건 그런 취지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비닐봉투 사용을 줄이겠다고 편의점 봉투를 4개월 동안 쓰다가 큼지막한 새 비닐을 보니 “과연 이게 최선의 방법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페트병을 잘 버려야 하니까 그걸 모아서 커다란 비닐에 담으라고? (한편으로는 오죽하면 그랬을까 하는 생각도 들기는 한다)

사람들은 제대로 버리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덜 쓰는 것’이다. 기자는 어제 오스트리아의 한 소비자가 쓴 ‘우리는 플라스틱없이 살기로 했다’라는 책을 읽었다. 지구 환경을 지키기 위해 다섯 가족이 플라스틱을 쓰지 않고 살기에 도전하는 내용이다.

개인의 노력이 세상을 얼마나 바꿀 수 있을까. ‘나 하나 쯤이야’하는 마음이 나쁘다는 건 유치원에서 모두 배웠다. 소비자 개인이 모두 직접 움직여야 한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정부의 큰 그림과 기업·기관·지자체의 실천이다. 개인이 비닐봉투 사용 줄이고, 어쩔 수 없이 생긴 비닐봉투를 몇 번씩 재사용하는 건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세상엔 많다. 그런 일들이 조금 더 이뤄지길 바란다.

4개월 된 비닐봉투는 여전히 손가방에 들어있다. 지금도 기자의 마음 속 악마는 이렇게 외친다. “비닐 하나 가지고 지지리 궁상이야~ 그냥 버려, 네가 그런다고 세상이 변해?”

기자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그저, 다른 이들이 힘 모아 세상을 바꿀 때 작은 힘을 보탤 수 있을 뿐이다. 그런 마음으로 오늘도 비닐을 다시 가방에 넣어본다.

leehan@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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