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 혁명의 시작, 잘 고르고 적은 양만 사서 다 먹기
주방 노하우에 IT기술 더하면 식재료 순환 효율화 가능
기업들의 또 다른 숙제, 사용되지 않는 식재료 줄여라

역사 이래로 인류는 늘 무언가를 더하기 위해 살아왔습니다. 과거보다 더 많은 자본, 나아진 기술, 늘어나는 사업영역에 이르기까지, 미지의 분야를 개척하고 예전에 없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며 문명을 발전시켰습니다. 그 결과, 인류는 번영을 이뤘습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지구의 건강이 위협받기 시작했습니다. 인류가 무언가를 많이 사용하고 또 많이 버릴수록 지구에 꼭 필요한 자원과 요소들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열대우림이 줄어들거나 빙하가 녹고 그 과정에서 생태계의 한 축을 이루던 동물과 식물들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더하기가 아니라 빼기에 주목해야 합니다. 적게 사용하고 덜 버려야 합니다. 에너지나 자원을 덜 쓰고 폐기물이나 쓰레기를 적게 버리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환경적인’ 일입니다. 인류는 무엇을 줄여야 할까요. 줄여야 산다 일곱 번째 시리즈는 사람들이 하루에 세 번씩 버리는 ‘음식물 쓰레기’입니다. [편집자 주]

일회용품이나 플라스틱 또는 쓰레기를 배출하지 말자는 활동들을 일컫는 단어가 있다. ‘제로 웨이스트’다. 이 단어의 사전적인 의미는 ‘포장을 줄이거나 재활용이 가능한 재료를 사용해서 쓰레기를 줄이려는 세계적인 움직임’이다. (픽사베이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려면 주방에서의 노력이 필수다. 하지만 주방에서만 노력한다고 음식물 쓰레기를 둘러싼 전체적인 순환구조가 개선되기는 어렵다. 어떤 재료를 얼마나 사용해 무엇을 만들어 언제까지 먹을지를 꼼꼼하게 체크하고 그 과정에서 버려지는 것을 줄여야 해서다. (픽사베이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이한 기자]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는 가장 쉬운(또는 현실적인) 방법은 버려지는 재료와 남는 음식을 줄이는 것이다. 어떤 재료를 얼마나 사용해 무엇을 만들어 언제까지 먹을지를 꼼꼼하게 체크하고 그 과정에서 버려지는 것을 줄이라는 의미다.

식탁을 효율적으로 차리는 건 사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관심을 가져온 분야다. 건강이나 다이어트 측면에서, 그리고 환경적인 이유로 이런 경향들은 꾸준히 주목받아왔다. 실제로 외국에서는 셰프들을 중심으로 버리는 식재료를 없애자는 이른바 ‘제로웨이스트 레시피’가 유행했다. 커피찌꺼기로 접시를 만들거나, 먹어도 괜찮은 식기를 개발하는 등 다양한 시도들도 이미 이뤄졌다.

이런 시도는 크게 두 가지 경향에서 이뤄졌다. 재료를 고르고 조리해 먹는 과정에서 낭비를 줄이려는 개인적인 시도, 그리고 식재료와 식단의 구성 등을 체계적으로 데이터화하고 남거나 버리는 음식을 IT기술로 데이터화 해 음식 낭비를 줄이려는 기업들의 시도다. 그린포스트코리아에서는 지난 3월 '냉장고 줄이고 지구를 구하라' 기사를 통해 관련 경향을 소개한 바 있다. 당시 전했던 내용에 최근 사례를 더해 아래 소개한다. 

◇ 식탁 혁명의 시작, 잘 고르고 적은 양만 사서 다 먹기

우선 주방에서의 노력을 돌아보자. 독일에서는 포장지 없는 슈퍼마켓이 문을 열었고 라떼 만들고 남은 우유거품으로 리코타 치즈를 만드는 카페가 생겼다. 덴마크 코펜하겐에는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한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이 유명세를 끌기도 했다.

독일 베를린의 셰프이자 블로거 소피아 호프만은 지난해 <제로 웨이스트 퀴헤(Zero Waste Kuche) : 쓰레기 없는 주방>라는 책을 출간해 화제가 됐다. 호프만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쓰레기 없는 주방을 위해 실천해야 할 3대 원칙을 밝혔다. 그것은 적게 사고, 잘 고르고, 끝까지 쓰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관련 경향들이 셰프를 중심으로 화제가 된 적 있다. 뿌리와 잎 등도 모두 먹는 마크로비오틱, 비계 등 기름 한덩이까지 모두 남김없이 재료로 사용하는 제로 레시피가 서점가 등에서 화제였다. 마크로비오틱은 기네스 팰트로와 마돈나 등 해외 유명 스타들의 건강관리법으로도 화제가 된 바 있다.

‘잘 골라서 적은 양만 사고 끝까지 쓰라’는 조언은 이해하기 쉽지만 실천이 어렵다. 식재료를 구입하는 사람들의 오랜 고민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도 필요하고 저것도 괜찮을 것 같아 많이 샀다가 결국 처치 곤란에 빠지는 문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결국 재료 구입 단계부터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식재료는 많이 살수록 단위당 가격이 내려간다. 대량구매가 싸다는 얘기다. 하지만 실제로 사용되는 양을 감안해 소비하는게 중요하다. 냉장고에 쌓인 식재료의 전체적인 양을 줄여 결과적으로 식탁 회전율을 높이는 게 집안일의 가장 큰 숙제이자 쓰레기 줄이는 지름길이다. 자취생 등을 중심으로 한때 유행했던 ‘냉장고 파먹기’도 식비를 줄이는 취지 외에 환경적인 면에서도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지난 5월 풀무원이 서울 송파구 올가 방이점에 오픈한 올가홀푸드 사례도 주목할 만 하다. 이곳은 식재료를 구매하는 과정에서의 쓰레기를 줄이는데 기여하는 녹색특화매장이다. 채소 코너에서는 불필요한 비닐 포장을 없애고 냉장된 고기는 곡물 껍질을 원료로 만든 바이오매스 포장재로 포장했다. 옥수수 전분으로 만든 생분해 트레이에 고기를 담아 파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음식물쓰레기를 효과적으로 '컨트롤'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푸드테크 기업들은 데이터와 IT기술에서 해법을 찾는다. 사진은 버려지는 음식을 DB화해서 데이터분석을 통해 음식물 줄이기에 공헌하는 기업 린패스의 인터넷 홈페이지 첫 화면. (린패스 홈페이지 캡쳐)/그린포스트코리아
음식물쓰레기를 효과적으로 '컨트롤'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푸드테크 기업들은 데이터와 IT기술에서 해법을 찾는다. 사진은 버려지는 음식을 DB화해서 데이터분석을 통해 음식물 줄이기에 공헌하는 기업 린패스의 인터넷 홈페이지 첫 화면. (린패스 홈페이지 캡쳐)/그린포스트코리아

◇ 주방 노하우에 IT기술 더하면 식재료 순환 효율화 가능

버려지는 음식을 줄이고 ‘식탁의 효율화’를 꾀하려면 적당한 양이 얼마인지 구체적으로 아는 게 중요하다. 사용되지 않은 식재료나 남은 음식이 있으면 그것을 효과적으로 쓸 수 있는 방법도 찾아야 한다. 주방에서의 노하우 뿐만 아니라 IT 기술이 함께 필요한 이유다.

생산과 유통, 보관, 조리, 식사, 남은 음식물 처리라는 전체 과정에서 비효율적으로 낭비되는 부분이 어디인지 찾아내서 그것을 줄여야 한다. 이 패턴은 일정하지 않다. EU 등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선진국에서는 소비단계에서, 개발도상국에서는 식품을 저장하거나 운반하는 단계에서 폐기가 많이 발생한다. 그러므로 음식의 순환구조를 전체적으로 들여다보면서 데이터화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IT스타트업들이 오래전부터 이 문제에 집중했다 미국에서 창업한 린패스는 ‘어떤 음식이 언제 얼마나 버려지는지’, ‘버려진 음식물의 경제가치는 얼마인지’ 따졌다. 소비하는 양을 예상하는 건 어려웠지만 버려지는 양을 집계하는 건 상대적으로 쉬웠다. 카메라와 스마트저울이 해법을 마련했다. 주방에서 음식을 버리면 카메라가 사진을 찍어 분석하고 직원이 추가 정보를 입력한다. 무엇이 얼마나 버려지는지 데이터가 모이고 그에 따라 식재료 주문양을 조절한다. 데이터가 쌓이면서 버려진 음식물의 경제적·환경적 가치도 숫자로 환산됐다.

예를 들어 대형 구내식당에서 양배추 1.4kg을 1년 동안 매일 버렸다고 가정하면 돈으로 환산해 175달러, 물 2625리터 등의 수치를 보여준다. 요일별로 쓰레기가 얼마나 나왔는지, 가장 많이 버려진 재료가 무엇인지 등도 그래프로 시각화한다.

린패스 CEO 앤드류 샤트맨은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셰프들은 누구나 음식물을 절약하고 싶어하지만 매일 많은 양의 음식을 만들기 때문에 (버려진 것들을) 정확히 계량하고 수치를 분석할 시간이 없다. 우리가 데이터 분석을 통해 이를 돕는다”고 설명했다.

◇ “굶주림, 음식이 부족한 게 아니라 정보가 부족한 것”

린패스는 구글과 손 잡았다. 구글은 지난 2014년부터 린패스와 음식물 쓰레기 현황을 분석했다. 구내식당 식기반납 코너에는 음식물 쓰레기 배출 현황 정보를 알리는 모니터도 설치했다. 해당 시스템 도입 후 5년 동안 구글 본사 식당에서 2.7톤 이상의 음식물 쓰레기를 감축한 것으로 추정된다. 구글은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굶주리는 이유는 음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 문제를 해결하도록 잘 조직된 정보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구글은 구내식당에서 주문한 식재료의 상당수가 버려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다양한 정책을 시도했다. 맛이나 품질이 떨어지지 않는데도 흠집이나 모양 때문에 상품가치가 떨어진 ‘못생긴 농산물’을 구입해 사용하고 자투리 재료로 새로운 요리를 개발했다. 아스파라거스 줄기로 수프를 끓이거나, 남은 커피 원두를 건조한 다음 분쇄해 글루텐프리 밀가루로 사용했다.

미국 위스콘신 병원 GLHS도 음식물 쓰레기를 정확하게 집계하면서 식재료 구매량을 재조정하고 폐기량을 줄였다. 언론 보도 등에 따르면 해당 병원은 스마트 인식 기술을 사용하고 8개월 간 음식물쓰레기 배출량을 50%이상 감축한 것으로 알려졌다.

샌프란시스코 대학도 린패스 시스템을 사용해 식재료 낭비를 줄였다. 대학병원이 분석한 결과 주방에서의 음식 쓰레기가 2년간 34.5% 감소했고 약 6만 달러의 비용이 절약된 것으로 전해졌다.

'다인테이블'은 서울대 재학생들로 구성된 청년 스타트업이다. 이들은 미판매로 전환될 위기에 놓인 여유식품 등을 사회취약계층에게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는 중개 플랫폼을 구축했다. (다인테이블 제공)/그린포슽트코리아
국내 스타트업 사이에서도 '음식의 효율적인 순환구조'에 주목한 사례가 있다. 서울대학교 재학생들로 구성된 청년 스타트업 '다인테이블'은 미판매로 전환될 위기에 놓인 여유식품 등을 사회취약계층에게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는 중개 플랫폼을 구축했다. (다인테이블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 기업들의 또 다른 숙제, 사용되지 않는 식재료 줄여라

적당한 식재료를 구매하는 것과 더불어 중요한 게 있다. 사용되지 않은 식재료가 제대로 소비되도록 돕는 일이다. 이를 위해 앞서 언급한 ‘못생긴 농산물’에 집중한 푸드테크도 있다. 미국 스타트업 ‘임퍼텍트 프로듀스’는 외관상의 이유 등으로 대형 유통사에 판매되지 못한 ‘어글리 푸드’를 농가에서 구매해 소비자에게 싼 가격에 팔았다. 현지 농가는 폐기 위기에 처했던 농산물을 판매할 수 있고 소비자는 저렴한 식재료를 구매했다.

국내 푸드테크 ‘지구인컴퍼니’도 음식물 재고를 줄이자는 생각에서 못생긴 농산물에 주목했다. 외관상 문제로 상품성이 떨어진 과일이나 채소를 가지고 다양한 먹거리를 만들었다. 못생긴 귤로 만든 스프레드, 못생긴 사과로 만든 피클, 못생긴 포도로 만든 즙 등을 판매해 인기를 끌었다.

서울대학교 재학생들이 창업한 스타트업 ‘다인테이블’은 환경적인 문제와 사회적인 가치를 접목시킨 사례다. 유통기한이 원래의 절반만 남은 ‘여유식품’이 소비되기도 전에 버려진다는 점에 착안, 사회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유통기한이 남은 음식을 시중가 대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는 중개 플랫폼을 구축했다.

업사이클링을 식탁에 접목한 기업도 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출발한 스타트업 ‘리그레인드’는 맥주를 만들고 남은 곡물로 에너지바를 만들었다. 양조장에서 남은 곡물찌꺼기를 활용한 그래놀라 바다. 리그레인드는 도심 속 수제 맥주 양조장들이 많은 양의 곡물 쓰레기를 처리해야 한다는 점에 착안해 남은 곡물을 활용해 에너지바로 만들었다.

영국 ‘토스트 에일’은 자투리 빵으로 맥주를 만들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맥주를 만들기 위해서는 밀과 보리 등 곡물이 필요한데 사용하지 않은 자투리 빵 조각을 잘게 부숴 맥아 보리를 일부 대체했다. 샌드위치를 만들 때 보기 좋으라는 이유로 빵 끝부분을 잘라내거나 크기를 맞추기 위해 자투리 빵을 버리는 경우가 많다는데서 착안한 아이디어다.

학교보건진흥원 자료에 따르면, 음식물 쓰레기의 70%는 가정과 소형음식점에서 나온다. 대형음식점은 16%, 집단급식소는 10%, 그리고 유통과정에서 4%가 발생한다. 4인 가족이 음식물쓰레기를 통해 배출하는 연간 온실가스를 없애려면 소나무 149그루가 필요하다. 개인의 노력과 더불어, 식재료와 음식의 순환구조 전체를 큰 틀에서 내려다보고 문제점과 해결방안을 구체화하는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leehan@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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