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있는 SPC그룹 본사를 방문한 적이 있다. SPC그룹은 빵 회사 삼립식품이 모태인 식품전문 그룹이다. 기자는 이날 이 회사를 방문하면서 두 가지 사실에 크게 놀랐다. 우선 건물 외관에서 SPC라는 글자를 단 하나도 찾지 못했다. 식품회사 답지 않게 다소 친근감이 떨어지는 검은 색 건물 바깥 어디에서도 회사 간판을 볼 수 없었다. 외관을 유리로 덮어서 간판을 걸기가 마땅치 않았다면 건물 앞 어디에 입간판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야속하게도(?) 처음 찾는 방문객을 위한 배려는 없었다. 덕분에 기자는 건물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잠시 헤매야 했다.

두 번째는 이 회사 1층에 있는 빵집에서 커피를 사다가 하마터면 뒤로 자빠질 뻔 했다. 아메리카노 한 잔 값이 7,000원! 놀란 기자가 재차 가격을 확인하자, 주문을 받는 종업원이 조금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면서 “아침 9시 전이었으면 50% 할인이 되는데 시간이 지나서 할 수 없이 7,000원을 다 받아야 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 회사의 한 팀장과 약속한 시간까지는 조금 여유가 있고 또 커피가 몹시 당기는 터라 일단 계산을 하고 커피가 나올 때까지 잠시 자리에 앉아 있자니, 빵집 커피 값이 왜 이리 비싼지 궁금증이 솟구쳤다. 커피를 주문받은 종업원에게 물었다. “어떤 원두를 쓰시나요?” 이 종업원이 바로 답을 하지 못한다.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종업원이 답을 거들었다. “네, 저희 매장에서 자체적으로 블렌딩한 원두를 씁니다.” “어떤 커피들을 블렌딩하나요?” “네, 브라질, 자마이카, 이것저것...”

 

 

잠시 후 커피전문점에서 일반적으로 작은 사이즈에 해당하는 테이크 아웃 용기에 커피가 담겨져 나왔다. 특별한 맛은 없었고, 일반적인 아메리카노 맛이었다. 마시면서 내내 기분이 개운치를 않았다.

한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의 아메리카노 한 잔 평균 가격은 3,500원이다. 특별히 핸드드립으로 내린 커피값이 6,500원 수준이다. 커피의 품종에 따라, 또 커피점의 소재지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는 7,000원을 넘지 않는다.

따라서 빵집에서 파는 아메리카노 한 잔의 가격이 7,000원이라는 것은 터무니없다. 이 값은 여의도에 있는 모 호텔 커피숍의 아메리카노 가격과 동일하다. 더욱이 이 호텔 커피숍에서는 리필도 해 준다. 빵집에서, 그것도 글로벌 식품전문기업을 표방하는 그룹의 본사에 있는 직영 빵집에서 시중 커피전문점의 두 배에 해당하는 값을 받는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 회사가 고급 커피를 생산, 판매하는 커피 전문회사라면 얘기가 다르다. 특별히 다른 원두를 다른 방식으로 로스팅한 뒤 다시 특별한 방법으로 추출하여 제공하기 때문에 맛이 특별하다면 그 값을 기꺼이 치를 소비자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빵을 주 품목으로 하는 상점에서 이처럼 터무니없이 커피 값을 받는 것은 바가지 치고도 아주 심하다. 커피는 이 빵집은 보조 상품이지, 절대 주력 품목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들 알고 있는 얘기지만, 대한민국의 커피 값은 세계적으로 가장 비싸다. 전세계적인 커피 브랜드인 스타벅스의 경우 미국과 우리나라의 가격차가 한 잔에 1,000원가량 난다. 우리나라 직장인들이 점심 값에는 덜덜 떨면서도 점심 후 마시는 커피 값에는 아주 관대(?)하다는 점을 이용한 교묘한 상술이 커피 값의 거품에 포함돼 있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유명 커피전문점들은 커피 값을 인상할 때마다 여론의 뭇매를 맞곤 한다.

그런데 SPC그룹 본사에 있는 빵집은 7,000원을 받는다. 이날 커피를 마시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회사는 커피로 돈을 벌 심산인가?” 그렇지 않고서야 커피 값을 그렇게 비싸게 받을 수 없다. 커피의 마진이 빵 못지않게 많을 텐데, 거기에 바가지까지 크게 씌우니 아마 앞으로 빵 대신 커피에 주력할 계획인 것 같다는 다소 우스꽝스러운 추측이 들기까지 했다.

그런데 최근 뉴스를 보니 꼭 그렇지도 않은 듯하다. 이 회사 허영인 회장이 지난 3월30일 베트남 호찌민의 100번째 해외지점을 방문해 “이제부터 ‘한국의 맛’으로 세계경영을 실현해 나가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고 한다. SPC는 베트남 호찌민에 100번째 해외지점을 낸데 이어, 2020년까지 60개국에 진출해 3000개의 해외매장을 개설하고, 2조원의 해외매출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단다.

SPC그룹은 빵 회사 삼립식품이 모태인 식품전문 그룹이다. 삼립식품의 보름달 빵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먹었을 법한 이 회사의 대표상품이다. 지난 2009년 이 회사의 공식발표에 따르면 보름달 빵은 지난 1976년 시판 이후 45년간 무려 15억 개가 판매됐다. 이 정도라면 빵공장으로는 대단한 성공이다. 현재는 파리크라상, 파리바게뜨, 던킨도너츠, 배스킨라빈스 등을 계열사로 거느린 기업으로 허 회장 부부와 가족이 지분 대부분을 소유한 가족기업이다.

보름달의 예에서처럼, 빵집은 빵맛으로 승부를 걸어 빵으로 성공해야 한다. 좋은 재료로 좋은 품질의 빵을 만들면 소비자들은 얼마든지 그에 맞는 값을 지불할 용의가 있다.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사업다각화에 눈을 돌리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식품 전문기업으로서 세계경영에 나서겠다면 주력 품목의 품질 및 가격경쟁력을 높이는데 매진해야 한다는 말이다. 터무니없는 커피 값으로 방문객의 아침 기분을 망쳐버리면서 어찌 세계경영을 운운할 수 있겠는가. (2012. 3.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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