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니지·바람의나라 개발 1세대 게임 거물...모바일로 재대결
시장 뒤흔든 국내 게임 대작들, 오랜 인연으로 얽혔다
게임업계 ‘조상님’들의 모바일 경쟁...당분간 이어질 전망

‘엘 클라시코’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스페인 프로축구 레알 마드리드와 FC바르셀로나가 펼치는 매치를 뜻합니다. 두 팀은 전통의 명문 구단이자 오랜 라이벌로 통해서 이 매치는 전 세계 축구팬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곤 합니다. 경기 내용은 매우 치열하고 때로는 그라운드에서 거친 행동이 오가기도 합니다.

라이벌의 사전적 의미는 ‘같은 목적을 가졌거나 같은 분야에서 일하면서 이기거나 앞서려고 서로 겨루는 맞수’라는 뜻입니다. 치열하게 다투고 때로는 선의의 경쟁도 펼치는 사이겠지요. 얄궃은 운명 때문에 누군가는 1등이 되기에 충분한 조건이나 자질을 갖추고도 늘 2등에 머물기도 합니다. 어쩌면 ‘지기 싫은 상대’를 표현하는 말이 될 수도 있겠네요.

재계에도 라이벌이 있습니다. 같은 시장을 두고 경쟁하거나, 서로 비슷한 상황 또는 처지에 놓여서 늘 비교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이들 역시 ‘엘 클라시코’에 나선 선수들처럼 어떻게든 상대를 꺾기 위해 치열하게 다툽니다.

재계의 라이벌들은 역사적으로 어떤 관계를 쌓았을까요. 그들은 지금 어느 분야를 두고 경쟁하고 있으며 다가올 미래에는 관계가 어떻게 변할까요. 국내 재계 대표 라이벌들의 사연과 치열했던 다툼을 소개합니다. 두 번째는 ‘리니지’ 초기 주역들이 최근 벌이고 있는 게임업계의 새로운 경쟁구도입니다. [편집자 주]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가 리니지M 3주년을 앞두고 '하나의 서버'라는 청사진을 내놓았다. (엔씨소프트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90년대 후반 PC게임 시장을 둘러싸고 치열하게 경쟁해온 국내 게임업계는 현재 모바일 시장에서 다시 한번 팽팽한 자리싸움중이다. '리니지'와 '바람의 나라'등 국내 1세대 온라인 게임을 주도해온 인물들이 여전히 그 경쟁의 중심에 있다. 사진은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가 리니지M 3주년을 앞두고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해 설명하던 당시의 모습. (엔씨소프트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이한 기자] 국내 게임업계 대표 기업을 일컬어 ‘3N’이라고 부른다. 넥슨과 넷마블, 그리고 엔씨소프트를 함께 묶어 부르는 단어다. 그 중 누가 누구와 콕 짚어 라이벌이라고 정하기는 어렵다. 라면에서의 농심과 삼양, 유통에서의 신세계와 롯데, TV등 가전시장에서의 삼성과 LG처럼 직관적으로 보이는 라이벌이 게임업계에서는 상대적으로 드물었다.

게임업계가 재계의 선배 기업들과 달리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부터 몸집을 키워왔다는 점도 라이벌 구도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 업계마다 오랜 세월 동안 쌓여온 경쟁 관계가 존재하는데, 게임 기업들은 전통적인 기업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역사가 짧고 경쟁이 쌓여온 기간도 그만큼 짧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지난해 4분기 즈음부터 묘하게 형성된 관계가 있다. ‘리니지’ 그리고 ‘바람의 나라’를 둘러싼 게임업계 거물들의 관계다. 약 40여일 사이의 기간을 두고 연달아 신작 게임을 출시한 엔씨소프트(리니지2M)와 넥슨(V4), 그리고 (3N은 아니지만) 엑스엘게임즈(달빛조각사) 사이에서 그런 관계가 관찰된다.

◇ 시장 뒤흔든 게임 대작들, 오랜 인연으로 얽혔다

이 게임들은 지난해 하반기 국내 최대 기대작들이었다. 가장 먼저 출시된 것은 달빛조각사다. 이 게임은 지난해 10월 10일 출시했다. 뒤를 이어 11월 7일 V4가, 그로부터 20일 후인 27일에 리니지2M이 각각 출시됐다. 이 게임들은 지난해 기대에 걸맞게 출시 이후 꾸준히 인기를 끌었다.

성적표와 관계를 짚어보자. 달빛조각사는 판타지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인데 사전예약자 320만명을 기록했고 출시 하루만에 애플스토어 및 구글 플레이 양대 마켓 1위를 차지했다. 하반기에 출시했지만 2019 한국게임대상에서 최종심사까지 올랐다.

이 게임을 만든 사람은 엑스엘게임즈 송재경 대표이사다. 그는 우리나라 1세대 게임업계 거물 중 한명으로 과거 리니지 개발자였다. 리니지 개발에 단순 참여한 여러 스태프 중 한 명이 아니라 원작 작가에게 사용 허가를 받고 초기 개발을 주도한 주축 인물이다. 실제로 게임 업계에서는 그를 두고 ‘리니지의 아버지’라고도 부른다, 송재경 대표는 2003년까지 엔씨소프트에서 개발 총괄 부사장으로 일했다.

송 대표는 넥슨 지주사 NXC 김정주 대표와 서울대학교 86학번 동기다. 두 사람은 테헤란 벤처 1세대로 함께 넥슨을 창업했다. 송 대표는 당시 유명 게임 ‘바람의 나라’ 개발 과정에 참여했고 퇴사 이후에는 리니지 판권을 확보해 개발하다 당시 벤처기업인 엔씨소프트에서 리니지 출시를 주도했다. 엔씨소프트 김택진 대표와도 이미 20대 시절부터 교류했다.

이후 엔씨소프트를 떠나 엑스엘게임즈를 창업한 송재경 대표가 출시한 게임이 바로 ‘달빛조각사’다. 그는 이 게임을 통해 지난해 하반기 게임업계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흥미로운 것은, 이 과정에서 리니지 개발을 함께했던 김민수 이사가 힘을 보탰다는 사실이다. 송재경 대표와 엔씨소프트 시절에도 함께 일한 동료다.

지난해 하반기 모바일 게임 시장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달빛조각사'는 엑스엘게임즈 송재경 대표의 작품이다. 그는 과거 리니지와 바람의 나라 개발에 참여한 바 있다. (달빛조각사 홈페이지 캡쳐)/그린포스트코리아
지난해 하반기 모바일 게임 시장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달빛조각사'는 엑스엘게임즈 송재경 대표의 작품이다. 그는 과거 리니지와 바람의 나라 개발에 참여한 바 있다. (달빛조각사 홈페이지 캡쳐)/그린포스트코리아

◇ 리니지·바람의나라 만들던 1세대 게임 거물, 모바일로 재대결

11월 7일 넥슨에서 출시한 V4도 지난해 하반기 게임 시장을 흔들었다. 정식 출시하기 전부터 공식카페 가입자 수가 30만을 넘었고 출시 한 달 전 진행한 서버 선점 행사에서는 하루만에 25개 서버가 모두 마감됐다. 출시 이틀만에 앱스토어 최고 매출 1위를 달성했다.

V4는 넥슨 자회사 넷게임즈가 개발했다. 흥미로운 것은, 넷게임즈 박용현 대표가 과거 엔씨소프트에서 리니지2 총괄 프로듀서로 일했다는 점이다. 넥슨의 창업과 바람의 나라 개발 과정에서 송재경 대표와 김정주 대표 사이의 연결고리가 있고, 자회사 넷게임즈가 V4를 개발해 출시하는 과정에서는 엔씨소프트와 연결지점이 있는 셈이다. 여기에 앞서 언급한 것처럼 송재경 대표 역시 리니지와의 연결고리가 있다.

V4가 출시 초반부터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하던 당시, 공교롭게도 달빛조각사 매출 순위가 일부 하락하는 흐름도 보였다. 대작 게임이 출시되면서 경쟁 중인 다른 게임 매출이 하락하는 경우는 과거에도 많이 관찰되었는데, 호사가들은 이들의 경쟁구도에 유난히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당시 여러 언론에서도 ‘1세대 리니지 개발자들의 대결’ 구도를 보도하기도 했다.

실제로 박용현 대표는 게임 관련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시기상 묘한 경쟁구도가 형성됐다. 서로 잘 경쟁했으면 좋겠다. 그래야 사람들 이목도 모이지 않겠나? 같이 잘 살아남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기록적인 흥행 기록한 리니지2M

송재경 대표와 박용현 대표가 리니지 브랜드에 공헌한 부분이 있지만, 어찌되었든 최근의 게임 소비자들은 ‘리니지’라는 브랜드에서 직관적으로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이름을 떠올린다. 실제로 엔씨소프트는 리니지2M 출시를 앞두고 “택진이형 밤 샜어요? 근데, 리니지2M 언제 나와요?”라는 카피의 영상 광고를 내보내기도 했다. ‘리니지=엔씨소프트=김택진’으로 이어지는 이미지다.

김택진 대표는 지난해 9월 리니지2M 콘텐츠를 일부 언론에 공개하면서 “경쟁자들이 리니지 M을 따라올 때, 우리는 리니지2M을 따라다섰다”고 언급하며 자신감을 보였다. 당시 그는 기자들 앞에서 “향후 몇 년 동안 기술력으로는 더 이상 따라올 수 있는 게임이 없을 것”이라는 메시지도 내놨다.

김택진 대표가 경쟁사나 경쟁게임 이름을 따로 언급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달빛조각사와 V4, 리니지2M의 연이은 출시를 두고 게임업계에서는 이미 ‘하반기 기대작들의 대결’ ‘리니지 개발자들의 새로운 대결’ 등의 구도에 주목하고 있었다.

리니지2M의 흥행도 기록적이었다. 사전예약자 738만명이 몰리고 출시 첫날 늦은 새벽 시간에도 유저 수천명이 서버에 입장하기 위해 대기하는 등 흥행에 성공했다. 엔씨소프트는 리니지2M 등의 대성공에 힘입어 지난 1분기 역대 분기 최고 매출을 기록했다. 1분기 당시 리니지2M 매출은 3411억원에 달했다. 엔씨소프트 1분기 매출(7311억)의 46.65%규모다.

바람의 나라로 읽을 수 있는 키워드는 두 가지다. 넥슨이 국내 1세대 대표 게임사라는 점, 그리고 또 하나는 PC에는 강하지만 모바일에는 약했다는 기존의 평가를 벗었다는 점이다. (바람의 나라: 연 공식홈페이지 캡쳐)/그린포스트코리아
지난 7월 중순 바람의 나라: 연(넥슨)이 구글 매출 순위 2위에 오르면서 리니지2M을 3위로 밀어냈고, 이 즈음 엔씨소프트 주가가 하락하기도 했다. 이 게임은 올해 7월 15일 출시했는데, 1996년 출시된 국내 최장수 온라인게임 ‘바람의 나라’에 바탕을 두고 있다. (바람의 나라: 연 홈페이지 캡쳐)/그린포스트코리아

◇ 1세대 거물들의 모바일 경쟁, 당분간 이어질 전망

리니지 파워는 최근까지 여전했다. 엔씨소프트는 2분기 실적 결산(이하 연결기준) 결과 매출 5,386억 원, 영업이익 2,090억 원, 당기순이익 1,584억 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과 영업 이익은 31%, 61%, 당기순이익은 36% 상승한 숫자다. 리니지2M이 1973억원, 리니지M이 1599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를 둘러싼 경쟁은 여전하다. 앞서 V4가 달빛조각사의 순위를 내린 것처럼, 최근 리니지2의 순위를 위협한 게임이 있다. 지난 7월 중순 바람의 나라: 연(넥슨)이 구글 매출 순위 2위에 오르면서 리니지2M을 3위로 밀어냈고, 이 즈음 엔씨소프트 주가가 하락하기도 했다. 이 게임은 올해 7월 15일 출시했는데, 1996년 출시된 국내 최장수 온라인게임 ‘바람의 나라’에 바탕을 두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 김정주 대표가 바람의 나라를 처음 개발할 때 지금의 엑스엘게임즈 대표인 송재경이 함께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리니지와 바람의 나라를 탄생시킨 게임업계 1세대 ‘조상’들이 여전히 국내 모바일 게임 시장에서 치열한 대결을 벌이는 모양새다.

증권가 등에서는 이들의 치열한 경쟁을 긍정적인 요소로 본다. 특정 게임이 또 다른 게임의 시각을 잠식하는 게 아니라 전체 시장의 크기가 커지는 징조로 보아야 한다는 평가다. 하이투자증권 김민정 연구원은 “국내 MMORPG 시장이 신작 출시로 여전히 파이가 성장할 수 있다는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평가한 바 있다.

1세대 게임 거물들의 경쟁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모바일 빅데이터 분석 플랫폼 ‘모바일인덱스’가 최근 발표한 7월 모바일 게임 랭킹에 따르면, 리니지M과 리니지2M이 나란히 매출 1~2위를 기록한 가운데 바람의 나라: 연이 3위를 기록했다. 다만 바람의 나라: 연이 최근 일간 1위를 기록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8월에는 최상위권 순위 변동도 예상된다. V4는 톱10에 이름을 올렸고, 앞서 언급한 게임들 가운데 가장 먼저 출시한 달빛조각사는 30위를 기록했다. 다만 다빛조각사는 전월 대비 순위가 크게 반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외교가의 오랜 격언이 있다.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영원한 친구도 또 영원한 적도 없다는 의미인데, 2020년 모바일 게임시장을 둘러싼 모습도 바로 그렇다.

leehan@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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