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는 일류 상품 개발…마침내 ‘디스플레이 강자’로 올라
‘이제는 2차 전지다’…성장 동력의 변화
지속적인 연구개발 투자…코로나19에도 흔들리지 않아

코로나19 여파로 재계와 산업계 전반에 위기감이 감돕니다. 세계 곳곳의 공장과 상점이 문을 닫고 소비자들의 생활 습관이 변하면서 기업들은 줄줄이 타격을 입었습니다. IMF와 글로벌 금융위기에 이은 또 한 번의 시련입니다.

대한민국은 이 위기에서 슬기롭게 벗어날 수 있을까요? 절망할 필요 없습니다. 난세에는 영웅이 등장합니다. 코로나 최일선에서 밤낮으로 바이러스와 싸운 의료진의 노력이 빛을 본 것처럼,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경제위기에 굽히지 않고 정면으로 맞설 또 다른 영웅들이 있습니다.

동방의 작은 나라, 내수 시장 규모가 크지 않은 국가지만, 우리에게는 세계 시장을 이끌만한 여러 기술과 앞선 제품이 있습니다.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던 선배,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던 선배가 지금은 없지만, 그들 못잖은 후배 기업인들이 앞선 세대가 일군 땅에서 또 다른 도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떨어진 ‘기운’을 확실하게 ‘업’ 시켜 줄 경제 주역들, 국내 대표 기업과 CEO의 ‘포스트 코로나 전략’을 연재합니다. 스물여섯 번째 순서는 진공관과 브라운관으로 시작해 지금은 배터리 회사로 더 널리 알려진 삼성SDI입니다. [편집자 주]

지난해 열린 독일 프랑크푸르트 모토쇼에서 삼성SDI가 선보인 다양한 배터리 제품들. (삼성SDI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지난해 열린 독일 프랑크푸르트 모토쇼에서 삼성SDI가 선보인 다양한 배터리 제품들. (삼성SDI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김동수 기자] 50년 전 지금의 울산광역시 울주군 산남면 일대에 공장 하나가 들어섰다. 수많은 공장이 건설되는 지금 상황과 비교해 보면 큰 의미가 있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곳은 한국 산업계에서 역사적인 곳 중 하나다. 바로 국내 최초로 ‘진공관’이 생산된 곳이기 때문이다. 이곳 삼성SDI의 전신 ‘삼성-NEC주식회사’의 가천 공장에서 말이다.

시대와 사업영역의 변화로 지금의 삼성SDI는 배터리 중심의 친환경 에너지사업으로 회사 동력을 전환했다. 하지만 브라운관과 VFD, PDP, LCD, OLED 등 세계 최초, 세계 최고 제품을 지속적으로 만들어온 경험을 토대로 혁신을 통한 초격자 제품을 개발하려는 일념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그 결과, 코로나 팬데믹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가운데 혁신을 위한 투자도 끊이질 않고 있다. 오히려 연구개발비를 확충하는 등 끊임없이 초격자 제품 개발을 위해 발돋움 하고 있다.

◇ 진공관과 브라운관, 그리고 디스플레이 시장 평정

1970년 말 매출액 12억원에서 시작해 2019년 매출액 10조974억원 규모로 성장한 삼성SDI의 원동력에는 세계 최고의 제품을 만들겠다는 일념이 깃들어 있었다. 이는 과거 브라운관과 디스플레이 등을 주로 생산했던 시절부터 이 회사가 걸어온 행보에서 엿볼 수 있다.

앞서 언급한 국내 최초 진공관 생산을 시작으로 삼성-NEC는 1970년 10월 약 3억원을 투자해 흑백 브라운관 공장 건설에 착수했다. 당시 신설TV 제조사들이 대규모 공장을 가동할 전망이어서 진공관 이후 신규 사업으로 흑백 브라운관을 낙점한 것이다. 이후 12월 5일 첫 흑백 브라운관 생산에 성공을 시작으로 1974년 삼성-NEC는 NEC와 협상을 통해 독자적인 영업권과 부품·재료, 설비 구매의 독자적 조달권 등을 확보하게 된다. 이에 세계적인 전자관 메이커로 도약한다는 의지를 담아 ‘삼성전관공업주식회사’로 사명을 변경하고 영업활동은 물론 수출시장을 적극적으로 개척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의지는 마침내 실현된다. 1975년 세계에서 세 번째이자 국내 최초로 ‘이코노(Econo) 브라운관’ 개발에 성공한다. 이 브라운관은 당시 획기적인 제품이었다. 순간수상방식으로 절전 효과에 탁월하며 기존 제품 대비 수명이 2배 이상 길었기 때문이다.

삼성SDI의 성과는 이뿐만이 아니다. 1979년 국내 최초 20인치 TV용 브라운관을 시생산했으며 컬러 브라운관 사업은 날로 성장했고 1993년 세계 최초 바이오 브라운관과 1998년 완전평면 브라운관 등 고부가가치 제품을 잇달아 개발했다.

1999년 12월 1일 드디어 우리가 익숙한 ‘삼성SDI’라는 사명으로 변경하게 된다. 그리고 이 당시 삼성SDI는 세계 최대 컬러 브라운관 업체의 위치를 확고히 한다. 2000년 삼성SDI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20%에 달해 전 세계 TV와 PC용 모니터 5대 중 1대가 삼성SDI가 만든 제품을 채용하고 있을 정도였다. 여기에 2004년 7월 세계 최초로 32인치 빅슬림(Vixlim) 브라운관을 개발해 폭발적인 반응을 얻기도 했다.

이후 PDP 사업을 본격 추진한 삼성SDI는 세계 최대 63인치 HD를 개발했고 사업 다각화를 위해 신사업으로 추진한 AMOLED도 2003년 세계 최초 15.5인치, 2004년 세계 최대 17인치 연이어 개발에 성공했다. 2006년에는 세계 최초 3D 및 가장 얇은 2.0인치 AMOLED를 선보여 이듬해 세계 최초로 양산을 공식화해 신사업에서도 세계 최고의 제품을 연이어 만들어내는 기염을 토했다.

1975년 세계에서 세 번째이자 국내 최초로 개발한 ‘이코노(Econo) 브라운관’. (삼성SDI 제공)/그린포스트코리
1975년 세계에서 세 번째이자 국내 최초로 개발한 ‘이코노(Econo) 브라운관’. (삼성SDI 제공)/그린포스트코리

◇ 디스플레이에서 성장 동력 변환…소형 배터리부터 중대형 배터리까지

이제는 삼성SDI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업은 전기차 배터리를 포함한 2차 전지 사업이다. 소형배터리와 중대형 배터리인 전기차 배터리,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무엇 하나 세계 시장에서 뒤처지는 제품이 없다. 일본 등 선두업체에 비하면 비록 늦은 출발이었지만 진공관부터 브라운관까지 세계 최고 제품을 연이어 개발한 경험은 새로운 동력원인 2차 전지 사업에도 깃들어 있다.

삼성SDI의 배터리 사업은 생각보다 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1994년 각 계열사의 중복된 사업을 조정하면서 삼성SDI의 모니터 사업은 삼성전자로 이관하고, 삼성전자 등에서 연구하던 배터리 사업은 삼성SDI로 일원화했다. 하지만 우리 생각보다 배터리 사업이 오래됐을 뿐 분명한 것은 세계 시장에선 후발주자였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업 초기에는 핵심기술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어려움 속에서도 묵묵히 연구 개발이 매진한 결과, 1998년 당시 최고 용량인 1650mAh 원형 리튬이온 배터리개발에 성공해 소형 배터리 분야 1위 업체를 향한 첫 발걸음을 내디딘다.

2000년 초반 당시 리튬이온 배터리 시장은 일본 업체들의 독무대였다. 전 세계 시장의 94%를 이들이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지만 삼성SDI는 오히려 뛰어난 기술력을 바탕으로 세계 시장에서 그 존재감을 알리기 시작했다. 2001년 12월 세계에서 가장 얇은 두께인 2.8㎜ 각형 배터리 개발에 성공하고 이듬해에는 최고 용량인 2200mAh 원형 배터리를 양산했다. 이후 2400mAh, 2600mAh 등 최고용량 제품들을 속속 선보이는 저력을 보여 세계를 놀라게 했다.

착실한 기술 개발을 통해 세계 시장에서 이름을 알린 결과, 2008년 시장조사기관 IIT가 세계 2차 전지 기업들을 상대로 한 종합평가에서 기술과 안전성 부문에서 호평을 받으며 1위를 기록하는 쾌거를 올리기도 했다.

삼성SDI는 2005년 소형 배터리사업에서 흑자를 달성하며 사업 초기부터 구상한 사업을 본격 추진하게 된다. 이제는 삼성SDI를 대표하는 ‘전기차 배터리’가 그것이다. 2009년 9월 삼성은 보쉬와 함께 합작사인 'SB리모티브(SB LiMotive)'를 공식 출범하고 전기차 배터리 사업 시작의 포문을 연다. 이는 소형 배터리 중심의 사업을 전기차 배터리와 같은 중대형 영역까지 확장할 수 있는 계기였다.

이후 전기차 배터리 시장의 후발주자였던 삼성SDI는 또 한 번 세계를 놀라게 한다. 전기차 배터리 사업에 공식 진출한 지 1년도 안 된 시점이었다. 2009년 6월 BMW의 전기차용 배터리 단독공급업체로 최종 선정. 자동차 업계에선 매우 이례적인 것으로 이미 시장을 선점하고 있던 경쟁사를 제친 것은 가장 안전한 배터리를 만들겠다는 목표로 기술개발을 한 게 유효했다.

후발주자임에도 불구하고 성장 가도를 달려온 삼성SDI는 올해 상반기 세계 전기차 배터리 누적점유율에서 4위를 기록하는 성과를 보였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무려 34.9% 성장한 수준이다. 특히, 코로나19로 전 세계 전기차 배터리 시장이 축소되고, 대다수 업체가 역성장을 경험하는 가운데 이룬 성과라 그 의미가 한층 빛나는 대목이다.

삼성SDI 전영현 사장이 창립 50주년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발표하고 있다. (삼성SDI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삼성SDI 전영현 사장이 창립 50주년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발표하고 있다. (삼성SDI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 혁신의 원동력 연구개발 투자…코로나 불구하고 오히려 증가

2019년 12월 최초 발생한 코로나19가 전 세계에 맹위를 떨치면서 이듬해 3월 세계보건기구(WHO)는 전염병 경보 6단계인 팬데믹을 선언했다. 전례 없는 이 전염병은 국가와 산업을 막론하고 흔들어 놓고 있다. 이런 위기 속에서 삼성SDI는 지난달 28일 올해 2분기 실적을 발표했다.

업계에서는 올해 2분기 실적을 꽤나 의미 있게 보는 모양새다. 매출액 2조5586억원, 영업이익 1038억원. 영업이익은 비록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4% 줄은 수준이지만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올해 1분기에 비하면 무려 92.2% 증가한 수치였다. 전 세계를 뒤흔든 위기 속에서도 ‘선방’한 것이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삼성SDI의 행보가 더욱 주목되는 점 또 있다. 바로 지속적인 연구개발 투자다. 금융감독원의 금융공시시스템에 따르면 2017년 5270억5900만원이었던 삼성SDI의 연구개발비는 이듬해 6047억9500만원으로 14.75%가 증가했다. 이어 2019년에는 7125억5800만원을 투자해 무려 17.82%가 상승했다. 각 해마다 매출에서 연구투자비가 차지하는 비중 역시 2017년 8.32%, 2018년 6.59%, 2019년 7.06% 수준으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여기에 코로나19에 따른 영향에도 올해 상반기에만 4091억7000만원을 투자해 지난해 전체의 절반 수준을 이미 넘어섰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인 지난해 상반기 연구개발비와 비교해도 3497억원을 훌쩍 넘는 규모다.

이러한 삼성SDI의 전략은 지난달 1일 창립 5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전영현 사장의 기념사에서 잘 나타난다. 당시 전 사장은 “초격차 기술 중심의 새로운 50년을 만들어 나가자”고 말하며 이를 위한 실행과제로 △초격차 기술 확보 △일류 조직문화 구축 △사회적 책임제고 등 3가지 과제를 제시한 바 있다.

특히, 최고의 품질과 안전성을 기반으로 한 초격차 기술을 확보해야 기술 중심의 초일류 회사가 될 수 있다며 차세대는 물론 차차세대 배터리까지 염두에 두고 관련 기술을 확보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취임 4년 차를 맞은 전 사장이 강조한 것처럼 삼성SDI는 기술 중심의 회사로 나아가고 있다. 과거 브라운관과 디스플레이 시장을 제패할 때도 그렇고 지금의 주력 사업인 2차 전지 사업도 마찬가지다. 전 세계에 드리워졌던 코로나19라는 먹구름이 걷히고 위축됐던 전기차 시장이 다시금 활성화되면 이번엔 어떤 일로 삼성SDI가 세계를 놀라게 할지 주목된다.

ㅇㅇ
삼성SDI의 최근 3년 및 올해 상반기 연구개발비. (자료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그래픽 최진모 기자)/그린포스트코리아

 

kds0327@greenpost.kr

관련기사

저작권자 © 그린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