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포스트코리아 이한 기자] 최근 12일간 코로나19 누적 확진자는 3175명. 하루 평균 265명 내외다. 해외유입보다 지역발생이 더 많아서 최근 2주간 지역내 일일 확진자 평균은 220여명을 웃돈다.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는 올해 3월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바이러스든 세균이든 블루오션을 만났다. 77억 인간을 공략하지 않으면 누구를 공략하겠는가”라고 말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지구는 어느덧 인간과 가축이 다 차지하고 다른 동물들은 틈새에서 겨우 비비고 사는 모양새”라는 말도 덧붙였다.

최재천 교수는 "야생동물발 전염병은 앞으로도 계속 우리에게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일"이라고도 지적했다.

맞는 얘기다. 바이러스와 세균이 인간을 공격한다. 그들이 일부러 인간을 타겟으로 삼은 게 아니라 인간이 가만히 있던 그들을 건드려 이 사단을 냈다는 의견도 많다. 어찌 되었든, 대한민국 코로나 확진자는 조만간 1만 8000명을 넘어설 기세다.

확진자가 다시 늘어나는 지금 이 시점에서 궁금한 건 바이러스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느냐다. 확진자가 누구에게서 바이러스를 옮겨 받았는지 따져보고, 그 확진자가 누구에게 바이러스를 다시 옮겼을 가능성이 있는지 고려하는 것. 그게 지금 시점에서 방역활동의 핵심 축이다.

문제는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것, 그리고 어디로 갔는지도 일일이 추적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접촉자를 찾아 모두 코로나 검사를 받게 하는 방법을 쓰고 있지만 어디서 감염됐는지 모르는 이른바 ‘깜깜이’ 환자가 늘었고, 이 경우 그들이 누구를 접촉했는지도 알 수 없다. 그저 마스크를 잘 쓰고 다녔기를, 개인위생 수칙을 잘 지켰기를 바랄 뿐.

기자는 바이러스 전문가가 아니어서, 그들이 어떤 사람을 노리는지 잘 모른다. 성별이나 나이를 가리는지, 건강한 사람을 선호하는지 그렇지 않은지도 잘 모른다. 다만 한가지 알고 있는 건, ‘누구든 확진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 뿐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 루트를 둘러싸고 여러 얘기가 오간다. 보수성향의 집회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고, 진보성향의 집회가 문제였다는 목소리도 있다. 어디가 더 먼저였는지, 어디서 더 많이 모였는지를 두고 팽팽한 입씨름도 벌인다. 그리고는 ‘거봐라, 너희들이 먼저였잖아’ 하면서 서로 책임을 미루거나 비난한다. 기자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다. 지금, 그게 중요한가?

누구든 확진자가 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바이러스는 이념이나 정치성향 따위를 가진 생물이 아니다.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누구에게 투표했는지, 대통령이나 집권여당의 정책이 마음에 드는지 안드는지, 평소 어떤 정당에 마음이 갔는지는 지금 중요한게 아니라는 얘기다. 누구를 지지하는 사람은 바이러스에서 안전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바이러스에 취약하다는 얘기인가? 그렇지 않다면 지금 이 시점에서 왜 코로나19를 두고 정치적인 논쟁을 벌인단 말인가.

중·고등학교 시절 국사시간에 붕당정치와 당파싸움이 나쁘다고 배웠다. 관료와 지식인들이 두 패로 나뉘어 서로 대립하고 경쟁하면서 결국 망국의 길에 이르렀다는 평가였다. 정말 그럴까. 반대 의견도 있다. 세간에서 ‘합리적 보수’라는 평을 받았던 한 정치인은 지난 2013년 기자와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51:49로 나뉘는 표심에 대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비율 자체는 문제 없다. 어느 나라든 정치권은 라이벌 관계에서 늘 팽팽하게 경쟁한다. 그래야 선거에 관심도 높아진다. 성향이 나뉘는 국민들은 어디든 있고 그 사이 유동지대도 있지만 공고한 지지자들의 비슷한 수준으로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건 건강한 현상이라고 본다. 다만 문제는 이게 어떻게 형성된 것인가, 보수냐 진보냐에 대한 판단 기준이 논리적이고 명확한지 여부다. 스스로의 정치철학이나 사상이념을 가지고 어떤 후보나 당을 지지하는 건 괜찮다. 하지만 내가 어느 지역에 사니까, 잘 모르지만 주위에서 저 사람은 위험하다고 얘기하니까, 때로는 비합리적인 판단에 의해 갈린다면 안타까운 거다. 그걸 줄여야 한다”

그와의 인터뷰가 다시 생각난 이유는 “판단 기준이 논리적이고 명확한지 여부가 중요하다”는 발언 때문이었다.

내가 지금 투표를 앞둔 유권자라면 스스로의 판단 기준을 가지고 상대 정치인이나 상대 정당에 대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 그게 맞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은 투표를 하려는 게 아니다. 바이러스와 싸우는 중이다. 코로나19 사태를 두고 이념 대결을 벌인다면 그건 싸움의 대상이 잘못된거다.

바이러스는 정치를 모른다. 진보적이지도 않고 보수적이지도 않으며 그와 관련한 어떤 이념도 가지고 있지 않는다. 그저 밀접하게 접촉했는지, 바이러스가 비말 등을 통해 완벽하게 옮겨가서 몸 속에 자리 잡았는지가 중요할 뿐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나라를 크게 발전시킨다고 생각하든, 박근혜 전 대통령을 당장 석방해야 한다고 생각하든 그런 것 따위는 지금 이 문제에서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다.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라는 구호가 미국 정치권에서 큰 이슈가 된 적이 있다. 싸움의 논점을 바꿔버린, 소위 말하는 '잘 먹힌' 구호다. 물론 저 구호 역시 정치적인 발언이었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2020년 8월의 대한민국에 필요한 구호는 뭘까. ‘문제는 이념이 아니야, 바보야!’ 정도면 좋겠다. 바이러스에게는 이념이 없다. 정치적인 성향도 없다. 기자는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바보이기를 원하지 않는다.

leehan@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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