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멸-질병X 시대, 동물들의 시국선언’
작가 뮤지션 등 30명, 동물 입 빌려 인류에게 메시지

멸종위기 동물이 인류에게 시국선언을 한다면 무슨 발언을 할까. 작가와 언론인, 활동가 등이 동물의 입을 빌려 환경 메시지를 전했다. 사진은 참여작가들이 각자 낭독한 사진을 한데 모아 합성한 모습. (이동시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멸종위기 동물이 인류에게 시국선언을 한다면 무슨 발언을 할까. 작가와 언론인, 활동가 등이 동물의 입을 빌려 환경 메시지를 전했다. 사진은 참여작가들이 각자 낭독한 사진을 한데 모아 합성한 모습. (이동시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이한 기자] 멸종 위기에 놓인 동물들, 인간에 의해 서식지를 잃고 감염병 매개체라는 누명(?)을 쓴 동물들이 만일 시국선언을 한다면 인류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질까. 유명 뮤지션 요조와 작가 김한민, 동물권 변호사와 동물법 연구자, 기생충 연구자 등이 동물들을 대신(?)해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그 내용을 소개한다.

지난 8월 20일 세종문화회관 야외 계단에서 서른명의 작가와 예술가, 활동가 등이 모여 ‘절멸-질병X 시대, 동물들의 시국선언’이라는 이름의 퍼포먼스를 열었다. 창작집단 이동시(이야기와 동물과 시)와 생명다양성재단이 주최한 행사다.

행사를 이해하려면 질병X의 개념을 먼저 알아야 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2018년 2월, 앞으로 세계 대유행을 일으킬 바이러스 8가지'를 발표했는데, 리스트 맨 마지막 8번째 바이러스를 ‘미지의 질병 X’라고 이름 붙였다. 앞으로 나타날 것이 예측돼 대비해야 할 신종 질병을 아우르는 단어로, 2018년 기준이라면 코로나19 역시 여기 해당한다.

이동시와 생명다양성재단에 따르면, 하버드 T.H. 챈 공중보건대학 연구진은 지난 7월 발표한 논문 에서, 코로나19의 원인을 동물 서식지 파괴(벌채) 및 야생동물 거래로 규정하면서, 이 두 요인에 대한 규제를 약 10년간 실시할 때 드는 비용(220억 달러:한화 26조 원)이 팬데믹에 의한 피해액(10-20조 달러:한화 2만4천조 원)의 2%도 안 된다고 밝혔다. 이들은 “질명X를 동물의 문제로 인식하고 관련 대책 마련에 힘써야 하는데 그런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낭독 퍼포먼스 절멸을 통해 동물의 목소리를 빌려 인류에게 경고 메시지를 던졌다. 이들은 퍼포먼스를 통해 “현대 인류의 구성원은 절멸의 재료이고 현대 인류의 운영체제는 절멸의 레시피”라고 언급하면서 “지구의 동물 열 중에서 넷은 인간이고, 여섯은 인간이 키우는 가축이며 나머지 쥐꼬리 만큼의 야생동물은 쫓겨다닌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1760년부터 당신(인간)들이 팬데믹이었다”고 꾸짖는다.

뮤지션 겸 작가 요조는 뱀으로 분해 “내가 사는 곳에 마음대로 침범한 것은 당신”이라고 말하면서 “내 피부를 벗겨 가방과 구두를 만들어 걸치고 다니는 당신을 볼 때마다 나는 목소리도 없으면서 비명을 지르고 싶다”고 말했다. 작가 김탁환은 메르스의 주범으로 꼽혔던 낙타의 입을 빌려 “감금의 이유나 검사의 근거에 대한 답을 못 듣고 나는 죽을 것이다. 그것이 동물원에 갇혀 살다 죽는 낙타를 비롯한 동물들의 운명”이라고 전했다.

이동시와 생명다양성재단은 동물의 유언이라는 형식으로 10가지 메시지를 전한다. 동물이 최대의 피해자이자 취약계층임을 인정하고 서식지 파괴를 중단할 것, 탈성장과 탈개발·탈육식을 시도할 것, 기후위기를 진짜 위기처럼 대할 것, 그리고 동물의 조상들의 화석은 연료가 아니니 도굴을 삼가라고 주장한다.

이들의 주장은 한발 더 나아간다. 사람 중심이라는 말이 더 이상 아름답지 않고 사람이 너무 많다고 지적하면서, 인류가 이룬 모든 것은 ‘값싼 자연’ 덕분이니 제 값을 치르라고 말한다. 지속가능성 말고 가능성의 지속을 추구하며, 썩지 않는 물건을 그만 쓰고 동물 권리를 보편적으로 존중하자고 제안한다.

동물권에 대한 중요성이 점차 커지는 요즘, 동물들의 외침에 인류는 귀를 얼마나 기울이고 있을까. 비록 동물의 입을 가정한 상황극 속의 목소리지만, 저 메시지들은 현실과도 가깝다. 개별 작가들의 발언은 이동시(edongshi) 인스타그램에서 확인할 수 있다.

leehan@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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