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여파로 재계와 산업계 전반에 위기감이 감돕니다. 세계 곳곳의 공장과 상점이 문을 닫고 소비자들의 생활 습관이 변하면서 기업들은 줄줄이 타격을 입었습니다. IMF와 글로벌 금융위기에 이은 또 한 번의 시련입니다.

대한민국은 이 위기에서 슬기롭게 벗어날 수 있을까요? 절망할 필요 없습니다. 난세에는 영웅이 등장합니다. 코로나 최일선에서 밤낮으로 바이러스와 싸운 의료진의 노력이 빛을 본 것처럼,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경제위기에 굽히지 않고 정면으로 맞설 또 다른 영웅들이 있습니다.

동방의 작은 나라, 내수 시장 규모가 크지 않은 국가지만, 우리에게는 세계 시장을 이끌만한 여러 기술과 앞선 제품이 있습니다.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던 선배,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던 선배가 지금은 없지만, 그들 못잖은 후배 기업인들이 앞선 세대가 일군 땅에서 또 다른 도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떨어진 ‘기운’을 확실하게 ‘업’시켜 줄 경제 주역들, 국내 대표 기업과 CEO의 ‘포스트 코로나 전략’을 연재합니다. 스물 세번째 순서는 국내 라면산업을 전 세계에 알리고 있는 농심입니다. <편집자 주> 

최진모 그래픽 디자이너/그린포스트코리아
(왼쪽부터) 박준·신동원 농심 대표이사 / 최진모 그린포스트코리아 그래픽 디자이너

[그린포스트코리아 최빛나 기자] 코로나19 영향으로 국내 식품업계의 내수 경제는 주춤 했지만, 해외서의 'K푸드' 바람은 거세게 불었다. 전 세계가 코로나19 확산으로 거리두기까지 장기화 되자 집에서 편하게 한끼 할 수 있는 라면을 찾는 소비자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해외 소비자들은 한국 라면을 식사 대용으로 인식하면서 너도나도 한국라면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이에 한국라면이 빠르게 유명세를 타자, 각종 SNS나 유투브에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주춤했던 국내 식품업계는 안도의 한숨을 돌렸다. 

식품업계는 위와같은 결과를 놓고 "국내 내수시장을 포화상태로 평가하고 더 이상의 변화와 확산은 어려울 것으로 내다보면서 그에 대한 대안으로 과거부터 해외시장 문을 계속해서 두드린 것과 코로나19와 맞물린 현재가 더해져 기회가 됐다"는 평이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그린포스트코리아와의 통화에서 "국내 라면 종류만 셀수 없이 많다. 한국인들의 입맛은 전통적이다. 크게 변함이 없기 때문에 매출이 드라마틱하게 변하거나 줄지도 않는다. 하지만 해외시장은 다르다. 신선하다. 한국이나 아시아에서 인기 없는 라면이 북미나 유럽에서는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며 "해외 시장을 계속해서 공략했던 이유는 해외 소비자들, 특히 미국소비자들의 트랜드를 알고 싶었기 때문. 그 노력 끝에 미국에서 통한 한국의 라면이 점점 확산되고 있다. 코로나19에 힘든 국내 경제활성화에는 분명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국내 라면의 도입...1970년부터 본격적으로 자리잡아 

한국의 라면은 1963년 처음 대한민국에 도입 된 이래 국민 식생활 트랜드의 변화에 따라 비빔라면, 용기면, 쌀면, 건면, 볶음면 등으로 조리의 방법과 원재료가 다양화되면서 현재까지 온 국민이 사랑하는 국민간식으로 자리를 잡아오고 있다.

1963년 9월 삼양식품이 일본 묘조식품으로부터 기술을 전수받아 우리나라 최초의 라면(삼양라면)을 생산했다. 이후 1960년대 정부의 혼분식 장려 정책으로 라면시장에 참여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게 된다. 이후 풍년라면(풍년식품), 닭표라면(신한제분), 해표라면(동방유량), 아리랑라면(풍국제면), 해피라면, 스타라면, 롯데라면(농심)’ 등 8개 제품이 시장에 쏟아져 나와 경쟁을 벌이는 상황이 됐지만 삼양식품의 80%에 달하는 압도적 시장점유율에 밀려 1969년에는 삼양식품과 농심만이 남아있게 됐다. 

우리나라 라면 제조사들은 1970년대부터 연구개발을 통해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와 입맛에 잘 맞는 라면의 맛을 내놓기 시작했다. 이 때 형성된 라면의 맛이 지금까지도 한국라면의 기본 맛으로 자리잡으며 한국라면만의 독자적 개성을 만들고 있다.

◇ 농심의 역사 ‘한국 라면’의 독자적 개성 확립

인스턴트 짜장면은 1970년 2월에 농심(당시 롯데공업주식회사)에서 국내 최초로 개발됐고, 이후 소고기 국물을 재료로 한 ‘소고기라면’을 출시했다. 농심의 ‘우리나라 사람들은 닭고기보다 소고기를 좋아하는데 소고기국의 깊은 맛을 라면으로 구현해보자’는 취지에서 개발된 소고기 라면이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농심의 시장점유율은 10%대에서 20%대로 급증하게 됐다. 이후 1980년대 라면은 ‘황금기’를 맞게된다. 

농심은 당시 너구리(’82), 육개장사발면(’82), 안성탕면(’83), ‘짜파게티(’84), 신라면(’86)을, 팔도(당시 한국야쿠르트)는 팔도비빔면(‘84)과 ‘도시락’(1986년)을 출시하는 등 지금까지도 국민들에게 사랑받는 베스트셀러들이 한꺼번에 나왔다. 특히 ‘신라면’은 대부분 순한 맛 위주였던 당시 라면시장에서 한국인의 입맛에 충실한 ‘매운맛’을 제대로 구현해낸 제품으로 지금은 라면시장 부동의 1위이자, 한국을 대표하는 한류제품으로 자리매김 했다.

농심은 변화하는 소비자의 니즈를 반영하기 위해 1982년 스프 전문생산시설인 ‘안성공장’을 설립한다. 스프의 획기적 품질향상 후 ‘너구리’(82년)와 ‘육개장사발면’(82년), ‘안성탕면’(83년), ‘짜파게티’(84년)를 앞세워 농심은 1985년 3월 라면시장에서 1위 자리에 올라선다. 역전 당시 라면시장 점유율은 농심 40.4%, 삼양식품 39.6%, 한국야쿠르트 13.5%, 청보 5.9%을 기록했다. 

이듬해인 1986년 농심은 한국의 매운 맛을 대표하는 ‘신라면’ 내놓으며 2위와의 간격을 더욱 넓혔고, 1988년 ‘사리곰탕면’을 출시하며 오늘날까지도 많은 판매가 이루어지는 유명-히트작 라인업을 완성했다. 1988년 농심의 시장 점유율은 50.6%였다.

80년대 초까지 업계 선두를 유지하던 삼양식품은 경쟁사들의 신제품 출시 전략을 당해 내지 못해 1985년 선두자리를 농심에 내어주고, 1989년 ‘우지파동’을 겪으면서 시장점유율이 급감하게됐다.

◇ 라면 카테고리 다양화, 경계를 넘어서다

이 시기는 다양한 라면제품이 출시됐으며, 본격적인 해외 진출이 이루어진 시기다.

농심 등 라면업체들은 신라면큰사발, 튀김우동, 오징어짬뽕, 생생우동, 왕뚜껑, 수타면 등 다양한 맛을 가진 신제품을 풍성하게 선보였다. 또한 냉장면, 냉동면, 생면 등 기름에 튀기지 않은 신제품들이 출시되기도 했다. 이후 기름에 튀기지 않은 건면까지 출시하면서 1998년 국내 라면시장의 매출 규모가 사상 처음 1조원을 넘어서게됐다. 

또한 이 시기에 본격적인 라면 수출이 시작됐다. 농심은 90년대에 중국 상하이와 칭다오에, 그리고 2000년대 들어서는 중국 선양과 미국 LA에 생산시설을 준공, 해당국가는 물론 인근 지역에 대한 수출을 더욱 확대하기에 이른다. 

◇ 코로나19 위기 속, '농심' 신라면과 해외실적타고 '훨훨' 

이처럼 해외에서 한국라면을 찾는 소비자들이 늘어나자, 국내 식품업계는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다양한 수출용 라면들을 선보이고 있지만, 해외 소비자들의 입맛에는 농심의 신라면이 통했다. 미국 전역에서 가장 많이 찾는 한국 라면으로 농심의 신라면이 꼽혔기 때문이다. 

이를 입증하듯 농심의 올해 상반기 미국법인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5% 성장한 1억 6400만달러로 사상 최대 실적을 거뒀다. 대형마트인 월마트와 코스트코의 상반기 매출이 각각 35%, 51% 성장했고 아마존에서는 79% 급등하는 등의 성과를 거뒀다. 

여기에 최근 신라면 블랙이 뉴욕타임스가 운영하는 제품리뷰 사이트가 꼽은 가장 맛있는 라면으로 선정되면서 해외에서 가장 인기 많은 한국 라면이 신라면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 됐다. 

중국, 일본 라면이 압도적이었던 미국에서 한국 신라면이 앞서 순위를 제친 결과는 이례적이다. 

여기에 올해 상반기에 영화 기생충에 등장한 '짜파구리(짜파게티+너구리)'등의 효과도 한 몫한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에서는 짜파구리 사재기 현상까지 벌어졌다.

농심의 발빠른 움직임도 도움이됐다. 짜파게티와 너구리 두 제품을 넣고 조리해야 하는 과정이 어려운 해외 소비자들을 위해 한번에 먹을 수 있는 단일 상품인 '짜파구리'를 선보였기 때문이다.  

앞서 결과로 미국시장에서는 월마트 전점에 신라면과 짜파구리 등 농심의 다양한 라면제품들이 입점하는가 하면 올 하반기에도 크로거, 코스트코, 샘스클럽 등 미국 내 굵직한 유통 채널에도 입점할 계획이다. 

미국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알리바바 타오바오몰, 징둥닷컴, 허마센셩 등 유통채널을 통해 판매망을 넓힐 예정이다. 시장은 이 기조를 타 올해 영업이익이 1000억 원을 가뿐히 넘을 수 있을 것으로 내다 보고 있다. 

앞서 농심은 2015년 1183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린 후 2016년 897억원, 2017년 964억원, 2018년 886억원, 지난해 788억원을 기록하며 4년째 영업이익이 1000억원을 넘지 못했다.

◇ 국내 경제 활성화 위해 스타트업 늘리고 투자 확대키로...일자리 창출에 기여해야 

농심은 미래 먹거리 발굴에도 힘을 쏟고 있다. 국내 경제활성화를 위해서는 먹거리 스타트업을 늘려야 한다는 의미에서다. 이미 식품업계 최초로 2018년 부터 외부 스타트업 3곳에 투자한 데 이어 최근 3곳에 총 3억원 가량의 투자를 결정했다. 

위와같은 활발한 투자는 스타트업의 역량과 농심의 연구개발(R&D) 인프라를 결합해 새로운 사업기회를 찾기 위한 것으로 보여진다.

농심은 지난 달 스타트업 투자 2기 공모를 통해 달차컴퍼니, 패신저스, 진원온원 등 3곳 스타트업에 각 1억원 규모의 투자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달차컴퍼니는 차를 기반으로 한 푸드테크 스타트업이다. 약 2년간의 연구개발(R&D) 기간을 거쳐 지난해 하반기부터 한국의 차 문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다양한 방식의 제품을 내놓고 있다. 패신저스는 온라인 커머스 스타트업으로, 라이프스타일 커머스 플랫폼 '비보트'를 운영 중이다. 비보트는 패션ㆍ식품ㆍ리빙ㆍ뷰티 등 분야에서 밀레니얼 세대의 소비 트렌드인 '비거니즘, 환경친화, 사회가치' 세 카테고리를 입점 기준으로 한 상품들을 큐레이션 중이다.

진원온원은 장내 미생물의 다양성과 밸런스를 맞춰주는 서비스 '마이 세컨드 브레인', 2030여성을 대상으로 장내 미생물 검사에 기초해 개인 도시락과 맞춤형 보충제를 추천해주는 서비스 '마이어트' 등을 출시한 헬스케어 스타트업이다. 농심은 1990년대 초부터 고기능성 건강식품 소재를 개발해온 데 이어 최근까지 건강기능식품 '라이필 더마 콜라겐'을 선보이는 등 헬스케어 분야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왔다.

또 오픈업(ai상권분석), 스낵포(스낵구독서비스), 요리로(3D 푸드프린터기술) 등에 투자한 바 있다. 현재 사내 공모를 통해 스타트업태스크포스(TF)팀을 형성, 새 먹거리 발굴에 힘을 쏟고 있기도 하다.

관계자는 그린포스트코리아와의 통화에서 "농심은 라면실적 호소에 힘입어 다양한 사회공헌활동을 하고 있다. 위와같은 투자확대나 신규사업 발굴이 그 예다"며 "국내 식품업계가 코로나19로 모두 힘들지만 국가와 기업이 상생하려면 순환 구조를 잘 짜야 한다. 농심이 그 구조를 가장 먼저 앞장서서 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업계도 농심의 성공사례들을 잘 분석해 도입해보는 실험의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농심은 라면 뿐만 아니라 스낵과 생수에 대한 기대도 크다. 

1929년 출시된 최장수 스낵인 새우깡의 매출 역시 29% 성장했다. 연 매출은 700억 원 과자로 이만큼 매출을 올리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여기에 농심은 신라면 신화를 생수 제품인 백산수를 이어가려고 노력한다. 백산수로 삼다수 시장을 넘보겠다는 야심찬 계획도 있다. 중국 전 역 1조원이라는 최대 목표까지 세우면서 농심의 기세가 놀라울 정도로 앞서나가고 있다. 

◇ 박준·신동원 농심 대표이사 해외에 오롯이 집중한 결과...미국 부동 1위 라면 입지 지켜 

위와같은 행보로 농심본사 내부는 코로나19사태 이후 경기 부진으로 울상인 다른 기업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라는 후문이다.

라면 시장의 호황으로 실적은 연일 치솟고, 간편식 시장도 이 기조에 동행을 점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이유에 대해 업계는 농심 수장들의 끊임없는 노력이 낳은 결과의 산물이라고 입모아 말한다. 

1948년생인 박준 농심 대표이사 부회장은 신동원 농심 대표이사 부회장과 함께 농심 대표이사를 맡아 사업을 이끌고 있다. 특히 이 둘은 초창기 부터 주로 해외사업 다각화 성장에 지속적으로 집중하면서 계속해서 다양한 식품관련 시도와 연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들의 이런 꾸준한 노력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자 현재 가장 의미있는 시기를 보내고 있다고 전해졌다. 

그들은 업계에서 ‘국제 식품사업 전문가’로 통하는데, 그도 그럴것이 국내에 주로 머물러 온 라면시장을 글로벌화 하는데에만 집중하겠다는 포부를 자주 밝힌바 있기 때문이다. 

앞서 코로나19 확산이후에도 해외에서의 폭발적인 매출 증가가 그들의 포부를 입증한다.  

농심의 시그니처인 라면을 기점으로 한길만 파면서 국내외 시장에서 부동의 1위를 지킬 수 있었던 비결의 원동력은 신춘호 회장의 노력부터 이어진다. 

1932년생인 그가 몸소 발굴하고 이름 붙이며 브랜드를 정착시켜 온 신 회장의 집념이 오늘의 농심을 낳은 것. 

재계는 신 회장으로부터 내려 온 외길 사업 철학에서 농심이 글로벌 정상을 꿈꾸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반응이다.

업계 관계자는 그린포스트코리아와의 통화에서 "농심이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롯이 식품 군 하나만 바라보며 업을 키웠기 때문이다. 물론 삐걱댈때도 있었지만 그를 뒷받침 해줄 수 있는 기업의 저력이 큰 힘이 됐을 것"이라며 "소비자들과 농심 직원들에게 보답하듯 놀라운 성과를 얻을 수 있었던 건 끊임없는 노력과 시도가 있었기 때문.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되는 기업중 하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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