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트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 초판 (위키피디아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이민선 기자] 우리가 코로나로 인해 겪게된 감염병의 공포는 어마무시하다. 지금도 코로나는 전세계 많은 이들에게 퍼져나가고 있으며, 사망자 또한 늘어나고 있다. 

아직 진행중인 감염병의 공포가 무자비한 시대. '신이 내린 형벌'이라는 감염병은 과거부터 존재해왔다. 14세기 중기 전유럽에 대유행한 흑사병, 바로 페스트가 그 것이다.

페스트는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들을 죽인 전염병 중 하나다. 쥐나 다람쥐 등 설취류의 돌림병이었던 이것은 벼룩에 의해 동물에게 퍼지고, 사람에게 까지 옮겨지게 된다. 

1347년 킵차크 부대에 의해 아시아 내륙의 페스트가 유럽에 전파된 이래로 유럽은 수 년에 걸쳐 대규모의 피해를 보게 된 페스트. 한때 유럽 인구의 3분의 1을 앗아갔으며, 인류의 전쟁을 중단시키기도 한 이 병. 이 페스트가 알제리의 오랑이라는 작은 항구도시에서 갑작스럽게 퍼지게 되고, 이 전염병으로 봉쇄된 소도시 내부의 기록을 담은 것이 소설 페스트다. 

◇ '페스트 사태를 공표하라. 도시를 폐쇄하라.'

의사 각자가 기껏 두세 사례밖에 겪지 않았을 때에는 그 누구도 움직일 생각을 안 했다. 하지만 어쨌든 누군가가 이 모든 사례를 더해 볼 생각을 하는 것으로 충분했을 것이다. 합계는 참담했다. 겨우 며칠 사이에 죽은 자들의 수가 배가되었고, 따라서 이 기이한 병에 주의를 기울여 온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진짜 전염병이라는 것이 명백해졌다. 

오랑이라는 작은 항구도시에서 어느 날 쥐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가 죽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한 두마리 쥐들의 죽음에 단순히 불쾌하게 여기던 사람들은 쥐들이 떼로 몰려와 죽기 시작하고 거리를 잠식해나가자 점점 더 불안함을 느끼게 된다.

'아무래도 이 병은 페스트인 것 같아요.' 하지만 당국의 보건관계자들은 애써 무시한다. 유럽을 휩쓴 페스트의 공포를 피하고 싶었기 때문일까. 하지만 사람들에게 점점 퍼져나가기 시작하고, 며칠 사이 사망자가 배가 되면서 국가는 뒤늦게서야 전염병 사태를 받아들이고 도시를 폐쇄한다. 

페스트로 인해 도시가 폐쇄되면서, 이 병에 대해 준비를 하지 못한 이들은 가족, 연인, 친구들과 갑작스러운 이별을 맞이하게 된다. 취재 차 오랑을 찾았다가 얼떨결에 '귀양살이'를 겪게 된 신문기자 랑베르는 의사 리외에게 자신이 도시를 빠져나갈 수 있도록 페스트 증명서를 써주기를 원하지만, 의사 리외는 이를 거절한다. 랑베르는 리외가 이별을 당한 사람들의 상황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며 비난하며 계속해서 탈출을 시도한다.

◇ 신께 기도하라.

"이 재앙이 역사 속에 처음으로 나타난 것은 신의 적을 치기 위해서였습니다. 파라오가 하느님의 영원한 계획에 대항하자 페스트는 그의 무릎을 꿇게 합니다. 모든 역사의 시작부터 하느님의 재앙은 오만한 자들과 눈먼 자들을 그발 아래에 뒀습니다. 이 점을 잘 생각하시고 무릎을 꿇으십시오."

페스트가 점점 더 도시를 잠식해나가면서 많은 사람들이 혼란에 빠지기 시작하고, 사람들은 절망적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술을 마시기도 하고, 성당을 찾아 기도하기도 한다.

"(인간의 죄로) 하느님의 광명을 잃고 우리는 이제 오랫동안 페스트의 암흑 속에 빠지고야 말았다. 여러분이 불행을 겪는 건 당연하다"며 파늘루 신부는 페스트가 '신이 내린 형벌'이라고 설교한다. 이 설교로 인해 자신의 죄악으로 인한 것임을 깨닫는 이가 있는 반면, 어떤 이는 도시에서 탈출해야겠다는 생각만을 갖기도 하는 등 사람들은 다양한 모습으로 이 질병을 마주한다. 

한편, 랑베르와 같이 외지인인 타루는 보건 위생과의 조직이 잘못되어 있음을 깨닫고 민간인 자원봉사단인 '보건대'를 결성하게 된다. 번번히 탈출에 실패한 랑베르는 정세를 살피기 위해 타루와 리외를 초대하게 되고, 병에 걸린 아내와 생이별하고도 페스트를 퇴치하기 위해 성실함을 보여준 리외에 감명한 랑베르 역시 보건대에 합류하게 된다. 

◇ "주여, 이 아이를 구해주소서."

벌겋게 된 눈꺼풀 아래에서 굵은 눈물이 솟아 납빛 얼굴 위로 흐르기 시작했고, 발작이 끝나 갈 무렵 탈진한 아이는 48시간만에 살이 녹아 버려 뼈만 앙상해진 팔다리를 오그라뜨리며 헝클어진 침대 속에서 십자가에 못 박힌 듯한 기이한 자세를 취했다.

페스트가 급속히 퍼지기 시작한 오랑시. 유족들의 애도도 없이 공터로 수송돼 땅에 매장돼 버리는 사망자들. 매장지가 점점 부족하게 되면서 빈 공터가 매장지로 변해버리는 모습들을 그리며 오랑시는 점점 황폐해진다.

게다가 아무 잘못도 없는 마을 예비판사의 어린 아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분노를 느끼게 된 리유는 파늘루 신부에게 항의한다. 파늘루 신부 역시 처음 자신이 주장했던 설교에서 조금씩 흔들리게 된다. 

오랑시의 일은 자신과 상관없다며 탈출을 시도했던 랑베르 역시 떠날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남아 보건대 일을 돕기로 결정하고, 아들을 잃은 예비판사도 보건대에 합류한다. 하지만 보건대에 참여했던 파늘루 신부도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한다. 

◇ 언제 다시 찾아올지 모르는 재앙

페스트로 인해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슬픔을 이기지 못했다. 이름도 없이 구덩이에 묻혔거나 화장으로 녹아 없어진 사람들과 더불어 기쁨을 잃어버린 가족들과 연인들에겐 아직도 페스트가 계속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의 외로움엔 아랑곳없이 도시는 고통의 시간이 끝난 것을 축하하고 있었다.

소설이 막바지에 이르면서 페스트의 수는 갑자기 줄게되고, 어제까지만해도 생사를 가르던 이들이 갑자기 살아나게 된다. 페스트에 걸려 생과 사를 넘나들던 그랑 역시 기적적으로 완치된다. 랑베르도 봉쇄가 해제되면서 꿈에 그리던 아내를 만나게 된다. 하지만 보건대에 헌신적으로 참여했던 타루는 죽음을 맞이하고, 리외는 요양차 다른 도시로 떠났던 아내의 사망소식을 듣는다. 

언뜻 보면 페스트가 끝난 것처럼 보이지만 페스트로 인해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슬픔을 이겨내지 못했다. 이름도 없이 구덩이에 묻혔거나 화장으로 녹아 없어진 사람들과 더불어 기쁨을 잃어버린 가족들과 연인들에겐 아직도 페스트가 계속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의 외로움엔 아랑곳없이 도시는 고통의 시간이 끝난 것을 축하하고 있었다.

모든게 끝났다고 안심하는 순간, 이 재앙은 언제 다시 찾아올지 모른다고 소설 속 리외는 경고한다. 과거 고전문학으로만 접했던 이 소설이 새삼 다르게 와 닿는 이유는 우리가 겪고있는 현실과 어느정도 맞닿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책에서는 끝이 났지만, 현실에서는 아직 진행중인 감염병. 그러나 소설 속 이야기처럼, 우리도 언젠가는 이 병의 끝을 마주하고 마스크를 집어던지는 그 날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minseonlee@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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