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년간 이어온 ‘최초’신화, 가전업계 이끈 재계 1세대 거물
코로나19 위기 속 상대적 선방, 프리미엄·스팀 가전 판매 호조
증권가 전망 대체로 안정적 “언택트 수혜로 2분기 선방 예상”
DX전담조직 신설 등 디지털 전환 가속화, ‘과감한 도전’으로 파도 넘는다
디지털 전환 기반 R&D 혁신, ‘이노베이션 카운실’서 신사업 발굴도

코로나19 여파로 재계와 산업계 전반에 위기감이 감돕니다. 세계 곳곳의 공장과 상점이 문을 닫고 소비자들의 생활 습관이 변하면서 기업들은 줄줄이 타격을 입었습니다. IMF와 글로벌 금융위기에 이은 또 한 번의 시련입니다.

대한민국은 이 위기에서 슬기롭게 벗어날 수 있을까요? 절망할 필요 없습니다. 난세에는 영웅이 등장합니다. 코로나 최일선에서 밤낮으로 바이러스와 싸운 의료진의 노력이 빛을 본 것처럼,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경제위기에 굽히지 않고 정면으로 맞설 또 다른 영웅들이 있습니다.

동방의 작은 나라, 내수 시장 규모가 크지 않은 국가지만, 우리에게는 세계 시장을 이끌만한 여러 기술과 앞선 제품이 있습니다.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던 선배,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던 선배가 지금은 없지만, 그들 못잖은 후배 기업인들이 앞선 세대가 일군 땅에서 또 다른 도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떨어진 ‘기운’을 확실하게 ‘업’시켜 줄 경제 주역들, 국내 대표 기업과 CEO의 ‘포스트 코로나 전략’을 연재합니다. 열아홉번째 순서는 백색가전 명가로 50년을 넘게 명성을 이어온 LG전자입니다. [편집자 주]

LG전자는 최근 디지털 전환에 기반한 R&D혁신을 위해 글로벌 전문가와 교류하는 ‘이노베이션 카운실을 발족했다. (LG전자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LG전자는 최근 디지털 전환에 기반한 R&D혁신을 위해 글로벌 전문가와 교류하는 ‘이노베이션 카운실을 발족했다. (LG전자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이한 기자] 미래를 얘기하기 앞서 과거를 먼저 말해야 하는 기업들이 있다. 국내 재계 역사에서 굵직한 뿌리를 가지고 있는 기업들이 그렇다. 1958년 전자회사 금성사를 시작으로 국내 첫 라디오를 생산한 LG전자가 바로 그런 사례다. LG전자는 수많은 ‘최초’ 기록을 세우며 국내 가전업계와 재계를 이끌어온 1세대 ‘거물’ 기업이다.

LG전자는 지난 1958년, 당시 락희화학 구인회 사장이 부산에 금성사라는 이름의 전자회사를 세우고 초대 사장을 겸하면서 역사를 시작했다. 금성사는 1년 뒤인 1959년 최초의 국산 진공관식 9구 라디오 'A-501'을 개발, 생산했고 1960년에 최초로 6석 트랜지스터 라디오와 선풍기를 생산했다. 1061년에는 국산 자동전화기를 만들며 한국최초 기록을 이어갔다. LG전자는 홈페이지를 통해 당시 금성사에 대해 “LG전자라는 느티나무는 고객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큰 그늘을 드리우게 됐다”고 설명한다.

LG전자를 두고 흔히 ‘백색가전 명가’라고 부른다. 백색가전은 과거 한 외국 가전회사가 냉장고와 세탁기, 에어컨, 전자레인지 등을 백색으로 통일하고 TV나 오디오, 비디오 제품은 갈색으로 통일하면서 굳어진 용어다. 최근 가전제품 컬러는 형형색색 다양하지만 백색가전은 앞서 언급한 냉장고와 세탁기 등을 뜻한다.

◇ 수십년간 이어온 ‘최초’신화...국내 가전업계 이끈 재계 1세대 거물

‘백색가전=LG’는 최근의 이슈가 아니다. 벌써 40년도 더 된 공식이다. 역사를 조금 더 짚어보자. 1960년대 당시 금성사는 라디오와 전화기에 이어 국내 최초 냉장고, 국내 최초 흑백TV, 국내 최초 에어컨, 국내 최초 세탁기를 연달아 생산 또는 개발하며 우리나라 가전 시장을 이끌었다. 국내 전자시장을 거의 독보적으로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장을 거듭하던 LG전자는 지난 1970년 국내 전자업계 최초로 기업공개를 하고 1차 주식을 공모했다. 1975년에는 구미공장을 준공하고 그해 연말 국내 민간기업 최초로 중앙연구소를 세웠다. 이후 1976년에는 창원공장을 세우고 2년 후 전자업계 최초로 수출 1억 달러를 돌파했다. 이로부터 3년 후인 1979년에는 국내 최초를 넘어 세계 최초로 컴퓨터 컬러TV 개발에 성공했다. 해당 제품은 ‘CNP-804’다.

LG전자의 ‘최초’ 행보는 1980년대 들어서도 계속됐다. 1981년 가전업계 최초로 소비자상담실을 설치했고 이듬해 컬러 비디오 카메라를 개발한 다음 해외 생산기지(컬러TV 공장)를 세웠다. 1년 후에는 디자인 종합연구소도 설치했다. 1985년에는 제품시험연구소를 설치했고 1987년에는 유럽 현지에 생산공장을 세웠다. 여기 언급한 다섯가지 사례 모두 국내 기업 최초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이름을 알렸다.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 1990년 베이징 아시안 게임 당시 전광판 스폰서로 참여했고 1994년에는 UN 50주년 공식 후원사로 선정되면서 해외에 꾸준히 이름을 알렸다. 이 시절 LG전자의 영향력과 대표성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가 하나 있다. 당시 시절을 배경으로 담았던 인기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주인공 가족들이 세들어 사는 주인집 아저씨가 주택복권 당첨 후 ‘금성사 대리점’을 차린 사람으로 설정됐다.

1995년에는 사명을 현재 사용하는 LG전자로 바꾸고 미국 최대 가전회사 제니스를 인수했다. 1997년에는 디지털경영을 선포했고 국내 최초로 완전평면 모니터를 개발했다. 2000년대 들어서도 세계 최초 60인치 PDP TV를 시판하고 2007년 가전사업에서 세계 최고의 영업이익률을 달성했다. 2010년에는 세계 최초로 풀LED 3D TV를, 2013년에는 세계 최초 곡면 올레드 TV를, 2015년에는 세계 최초로 트윈워시 세탁기를 출시하는 등 백색가전 명가의 위용을 이어왔다.

LG 구광모 회장은 1978년생 'X-세대'다. 밀레니얼 세대나 Z세대가 보기에야 똑같은 기성세대로 보이겠지만, 국내 재계를 이끄는 3~4세 총수 중에서는 가장 젊다. 사진은 LG그룹본사(LG그룹제공) / 그린포스트코리아
LG전자는 백색가전에서의 강세를 바탕으로 삼성전자와 함께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며 성장을 거듭해왔다. 사진은 LG그룹본사(LG그룹제공) / 그린포스트코리아

◇ 코로나19 위기 속 실적 선방, 프리미엄·스팀 가전 판매 호조

LG전자는 백색가전에서의 강세를 바탕으로 삼성전자와 함께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며 성장을 거듭해왔다. 현재 국내 휴대전화 부문에서는 다소 고전하지만 가전과 디스플레이 등에서는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다. 휴대전화도 해외시장에서는 호평을 받은 사례가 많았고 인기작을 출시한 경험도 풍부하다.

최근의 경영 성적표는 어땠을까. LG전자는 최근 2분기 연결기준 매출액 12조 8,340억원, 영업이익 4,391억원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다만 이 숫자는 잠정실적으로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에 의거한 예상치다. 연결기준 순이익 및 사업본부별 실적은 이달 말 예정된 실적설명회에서 발표될 예정이다.

1분기에는 기대보다 선전했다. LG전자는 지난 1분기 연결기준 매출 14조 7,278억 원, 영업이익 1조 904억 원을 기록한 바 있다. 당시 전년 동기 대비 매출액은 1.3% 감소하고 영업이익은 21.1% 늘어난 숫자였다. 영업이익률(7.4%)은 역대 1분기 기준 가장 높고 1분기 영업이익이 1조원을 넘은 것은 2018년에 이어 2년만이다.

코로나19 여파가 산업계 전반에 영향을 미쳤지만, 당시 LG전자는 건강과 위생에 대한 고객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국내시장에서 건조기, 스타일러, 식기세척기 등 스팀가전의 판매 호조가 이어졌다. 해외 매출이 줄면서 매출이 전년동기 대비 소폭 감소했지만,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으로 1분기 매출은 5조원을 넘었다.

TV사업을 담당하는 HE사업본부는 매출 2조 9707억원, 영업이익 3258억원을 기록했다. 전년동기 대비 매출액은 4.8% 줄었지만 영업이익은 31.7% 늘어난 수치다. 올레드TV 등 프리미엄 제품의 견조한 판매, 원가절감과 같은 비용 효율화에 힘입은 것으로 평가됐다.

스마트폰을 담당하는 MC사업본부는 매출 9986억원, 영업손실 2378억원을 기록했다. 전장사업을 맡고 있는 VS사업본부는 매출 1조 3193억원, 영업손실 968억원을 기록했다. B2B등을 담당하는 BS사업본부는 매출액 1조 7091억원, 영업이익 2122억원을 거둔 바 있다.

◇ 증권가 전망 대체로 안정적 “언택트 수혜로 2분기 선방 예상”

증권가의 전망은 대체적으로 안정적이다. IBK투자증권 김운호 연구원은 7월 14일자 보고서에서 LG전자에 대해 “매출액은 예상 대비 유지했으나 영업이익은 크게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MC사업부 적자는 1분기 대비 감소하고 HA, HE는 기대 이상의 영업이익률을 달성했을 것으로 내다보았다. 김 연구원은 “가전의 제품믹스 개선으로 이전 전망치 대비 수익성이 개선되었을 것으로 예상한다”면서 “TV는 마케팅 비용이 축소된 반면 온라인 매출이 증가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망했다.

하이투자증권 고의영 연구원은 지난 8일자 보고서에서 “경제 활동 차질에 따른 수요 불확실성이 지속됨에도 불구하고 LG전자는 오히려 이를 기회로 살리는 모습”이라며 긍정적인 평가를 내놨다. 고 연구원은 “가전은 살균에 특화된 스팀 기능을 차별점으로 코로나 19 속에서도 견조한 수요를 창출 중이고, TV도 집에 머무른 시간이 길어지면서 OLED 제품을 포함한 대면적 프리미엄 라인에 대한 수요가 기대 이상인 것으로 파악된다”고 내다보았다.

DB금융투자 권성률 연구원은 “LG 이노텍을 제외한 순수 LG 전자만의 올해 2분기 영업이익은 4,500 억원 정도로 추정된다”고 전망하면서 “이는 DB금융투자 추정치 3,950 억원을 상회하는 것으로 H&A와 MC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권 연구원은 “여전히 수요와 시장 환경이 좋지 않지만 당초 우려보다는 선방하고 있다”면서 “특히 어려운 시기에 가전의 약진과 TV에서 점유율 상승 등은 주목할 만하다”고 평가했다.

이베스트증권 이왕진 연구원은 2분기 전망에 대해 “코로나19로 인한 재택환경 증가로 생활 제품 수요가 늘었고, 특히 국내 프리미엄 가전을 중심으로 수익성 회복이 크게 증가한 것으로 분석된다”고 전망했다. 이 연구원은 “중저가 중심의 LCD TV 수요가 크게 감소한 반면 코로나 확산으로 인한 ‘홈코노미’ 활동 증가로 프리미엄급 TV 판매는 견조했을 것”이라고 예상하면서 “주력 사업부가 언택트 활동 수혜를 받으며 상당히 선방했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영상 메시지를 통해 임직원들에게 신년사를 전달하는 구광모 ㈜LG 대표(LG그룹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LG전자 미래전략을 엿볼 수 있는 키워드는 ‘과감한 도전’이다. 이는 구광모 LG그룹 회장(LG 대표)이 최근 임직원에게 강조하고 나선 가치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곧 실패’라는 주문이다. 사진은 구광모 LG 대표가 올해 초 영상을 통해 신년사를 전하던 당시의 모습. (LG그룹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 DX전담조직 신설 등 디지털 전환 가속화, ‘과감한 도전’으로 파도 넘는다

LG전자 미래전략을 엿볼 수 있는 키워드는 ‘과감한 도전’이다. 이는 구광모 LG그룹 회장(LG 대표)이 최근 임직원에게 강조하고 나선 가치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곧 실패’라는 주문이다.

구광모 대표는 최근 서울 마곡 LG사이언스파크를 방문했다. 이곳은 LG 연구단지로 지난 2018년 6월 취임한 구 회장이 취임 후 첫 현장경영 행보를 보인 곳이다. 구 회장은 취임 3개월 만인 같은 해 9월 LG사이언스파크를 방문해 R&D 현황과 미래 먹거리 산업 등을 직접 챙긴 바 있다.

구 회장은 현장 방문에서 그룹 차원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과 인공지능(AI) 추진 전략, 우수 인재 확보 방안 등을 논의했다. 그러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과감하게 도전하지 않는 것이 실패”라고 언급하면서 “사이언스파크만의 과감한 도전 문화를 만들어달라”고 주문했다. 이날 현장 방문에는 이삼수 LG사이언스파크 대표, LG사이언스파크에서 DX·AI·빅데이터·오픈이노베이션전략을 담당하는 책임자 등이 참석했다.

LG 측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고객에게 새로운 가치를 줄 수 있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과 AI와 같은 혁신 기술을 앞서 준비하고, 개방과 소통, 도전의 문화를 정착시켜 LG의 혁신 문화를 이끌어 달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LG에 따르면 LG사이언스파크는 DX·AI 분야 역량 강화를 지원하며 그룹 차원의 '디지털 혁신'을 주도하고, 중소·스타트업들과 서로 도움이 될 수 있는 혁신 생태계를 만드는 '개방형 혁신'의 거점이다. 이에 따라 LG전자 등은 DX 전담조직을 신설했고, IT 시스템의 90% 이상 클라우드 전환, 업무지원로봇 및 소프트웨어 표준 도입 등 디지털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 디지털 전환 기반 R&D 혁신, ‘이노베이션 카운실’서 신사업 발굴

LG전자는 최근 디지털 전환에 기반한 R&D혁신을 위해 글로벌 전문가와 교류하는 ‘이노베이션 카운실’을 발족했다. 빠르게 변하는 시장환경에 대비하기 위해 오픈 이노베이션 관점에서 다양한 시각과 인사이트를 통해 미래기술과 신사업 기회를 발굴한다는 취지다.

이 카운실은 LG전자 CTO(최고기술책임자) 박일평 사장이 의장을 맡고 인공지능, 빅데이터, 클라우드, 로봇, 모빌리티 등 각 분야 전문가 12명이 참여한다. 카운실 멤버는 로봇 공학계의 세계적인 권위자이자 지능형 로봇 스타트업 ‘로버스트.AI)’의 CTO 로드니 브룩스, 글로벌 결제서비스 기업 ‘페이팔’의 CTO 스리 시바난다 등이다.

LG전자는 지난 7월 14일 첫 번째 이노베이션 카운실을 열고 멤버들과 미래기술 트렌드와 산업동향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이날 모임에는 인공지능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앤드류 응과 서울대학교 데이터사이언스 대학원장 차상균 교수도 참석했다.

첫 카운실에서 박일평 사장은 LG전자가 제조업을 넘어 인공지능 등 차별화된 소프트웨어 기술에 기반한 새로운 서비스와 솔루션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대해 간다는 디지털 전환 비전을 공유했다. 멤버들은 코로나19로 인한 글로벌 경기침체 상황에서 디지털 전환을 통해 유연하게 대처해 성공한 사례를 공유했다. 또 뉴노멀 시대에 고객들의 변화된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한 홈IoT, 로보틱스, 모빌리티 등 미래기술과 신사업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LG전자 CTO 박일평 사장은 “빠르게 변화하는 고객, 시장, 기술에 대응하기 위해 각 분야의 글로벌 전문가들과 체계적인 네트워킹이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디지털전환에 기반해 미래기술 역량과 신사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법을 전문가들과 함께 모색해 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백색가전 명가의 자존심을 이어온 LG는 디지털전환과 과감한 도전 등을 통해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대비하고 있다.

leehan@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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