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리치기아 항만공사 수주 시작으로 해외진출 본격화
대림산업의 숨결이 높아 있는 국내 랜드마크
‘e편한세상’으로 브랜드 아파트 시대 개척
코로나19 위기로 업계 침체…사업재편 잰걸음

코로나19 여파로 재계와 산업계 전반에 위기감이 감돕니다. 세계 곳곳의 공장과 상점이 문을 닫고 소비자들의 생활 습관이 변하면서 기업들은 줄줄이 타격을 입었습니다. IMF와 글로벌 금융위기에 이은 또 한 번의 시련입니다.

대한민국은 이 위기에서 슬기롭게 벗어날 수 있을까요? 절망할 필요 없습니다. 난세에는 영웅이 등장합니다. 코로나 최일선에서 밤낮으로 바이러스와 싸운 의료진의 노력이 빛을 본 것처럼,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경제위기에 굽히지 않고 정면으로 맞설 또 다른 영웅들이 있습니다.

동방의 작은 나라, 내수 시장 규모가 크지 않은 국가지만, 우리에게는 세계 시장을 이끌만한 여러 기술과 앞선 제품이 있습니다.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던 선배,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던 선배가 지금은 없지만, 그들 못잖은 후배 기업인들이 앞선 세대가 일군 땅에서 또 다른 도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떨어진 ‘기운’을 확실하게 ‘업’ 시켜 줄 경제 주역들, 국내 대표 기업과 CEO의 ‘포스트 코로나 전략’을 연재합니다. 열여덟 번째 순서는 국내 1호 건설社 대림산업입니다. [편집자 주]

 
1939년 '부림상회'로 출발한 국내 1호 건설사 대림산업. (본사DB)/그린포스트코리아
1939년 '부림상회'로 출발한 국내 1호 건설사 대림산업. (본사DB)/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김동수 기자] 1939년 10월 10일, 지금의 인천 부평역 앞 한 초가집에 국내 1호 건설사의 등장을 알리는 간판 하나가 걸렸다. 당시 허허벌판과 같은 이곳에 자리 잡은 회사의 이름은 ‘부림상회. 이 작은 점포가 80여년의 역사를 가진 ‘대림산업’의 출발이다.

건설자재인 목재 판매를 주로 하는 부림상회는 당시 남다른 방식으로 운영됐다. 주문이 들어온 목재를 단순히 수량만 맞춰 판매하는 게 아니라 지금으로 따지자면 ‘고객 맞춤형’ 판매 방식을 취했다. 소비자에게 주문한 목재가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인지를 묻고 그 쓰임새를 따져 판매하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부림상회는 1947년 주업종인 목재 판매업에서 건설업으로 전환한다. 국내 재계 18위, 자산총액 18조7000억원인 국내 건설업계의 맏형 ‘대림산업’이란 이름이 이때부터 사용됐다. 본격적인 건설업에 진출한 대림산업은 1960년대 들어 대한민국 경제성장과 궤를 함께하기 시작한다. 국내 경제성장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해외건설을 통해 최초로 외화를 획득했다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만큼 이미 대림산업은 1960년대부터 국내는 물론 해외 건설시장 진출에 박차를 가했다. 각종 분야에서 ‘1호’라는 전무후무한 성과를 내면서 말이다.

◇ 건설업은 수출할 수 없다?…해외시장에서 승승장구

1960년대 중반 대한민국 총수출 실적이 1억달러를 달성했다고 온 나라가 떠들썩했지만 건설에 대한 정부 지원은 전혀 없었다. 당시 건설은 수출할 수 없다는 인식이 팽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1966년 2월 한국은행에 외화가 송금되면서 이러한 인식은 깨졌다. 4만5000달러 규모의 이 외화는 한 달 전 대림산업이 미국 해군시설처(OICC)에서 발주한 리치기아 항만공사를 수주하면서 받은 착수금이다. 국내 건설사 ‘외화 획득 1호’라는 역사적인 순간은 물론 기존 낡은 인식이 변화되는 순간이었다.

1970년대에 들어서며 대림산업의 해외진출은 순풍에 돛을 단 듯 순항했다. 1973년 사우디 아람코가 발주한 정유공장 보일러 설치공사 수주로 ‘해외 플랜트 수출 1호’, 1975년 슈아이바 정유공장 기계 보수 공사 수주로 ‘쿠웨이트 진출 1호’를 기록한 데 이어 남아프리카공화국 정유공장 건설 공사를 통해 ‘아프리카 진출 1호’라는 타이틀까지 획득했다. 해외 건설시장 진출에 각종 ‘1호’라는 타이틀을 거머쥐며 명실상부 국내 대표 건설사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수많은 현장 경험으로 탄탄한 기술력을 쌓은 대림산업의 저력은 2011년 필리핀 최대 정유회사인 페트론이 발주한 20억 달러 규모의 RMP2(석유정제공장 마스터플랜 2단계) 프로젝트에서 빛을 발휘했다.

당시 페트론 경영진은 제일 먼저 플랜트시장의 강자로 알려진 프랑스 테크닙社에 러브콜을 보냈다. 이에 테크닙 측은 54개월 동안 해당 프로젝트를 완공할 수 있다는 답을 보내왔다. 테크닙이 이러한 답변을 한 이유는 간단하다. RMP-2 프로젝트의 엄청난 규모만큼 공기가 길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37만여㎡ 땅에 기존 정유공장을 현대식 설비로 신·증설하는 이 공사는 규모로만 따져보면 축구장 52개 넓이에 달하는 대형 프로젝트였다.

페트론이 두 번째로 찾은 곳은 일본 JGC였다. JGC 측은 프로젝트 완공 기간을 테크닙보다 6개월 짧은 48개월을 제안했지만 페트론은 이 역시 만족스럽지 않았다. 이후 대림산업에 기회가 찾아왔다. '페트론 FCC'와 '페트론 BTX' 프로젝트를 통해 이미 페트론과 연을 맺은 바 있는 대림산업은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기업들도 제안하지 않은 36개월을 제안했다. 기본 설계에서 시공까지 한꺼번에 수행이 가능한 능력을 갖췄기에 내릴 수 있는 결론이었다. 

대림산업은 이 프로젝트에서 공기를 지키는 것 외에 또 다른 기록도 남겼다. 바로 '8000만 인시(人時) 무재해'다. 직원 1000명이 매일 10시간씩 21년 9개월 동안 사고 없이 공사를 해낸 것이다. 특히, 이러한 성과는 폭염과 폭우가 계속되는 악조건 속에서 이뤄낸 것이라 더욱 빛났다.

2011년 대림산업이 36개월 공기를 제안한 20억 달러 규모의 RMP2 프로젝트. (대림산업 홈페이지)/그린포스트코리아
2011년 대림산업이 36개월 공기를 제안한 20억 달러 규모의 RMP2 프로젝트. (대림산업 홈페이지)/그린포스트코리아

◇ 대림산업, 국내 랜드마크 건설부터 아파트 브랜드 시대 열다

경부고속도로와 포항제철 1기, 아시아 최대 규모 국회의사당, 서울종합운동장, 청계천 복원공사. 이순신대교 등 국내를 대표하는 랜드마크와 사회간접자본(SOC)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이 모든 건축물과 시설에 대림산업의 ‘손길’이 닿아 있다는 점이다.

1962년 건설업체 시공능력평가제도 생긴 후 55년 연속 10대 건설사의 자리를 지켜온 대림산업. 그 오랜 역사와 위상에 걸맞게 국내 랜드마크 중 대림산업의 손을 거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여기에 도로와 교량, 댐, 발전소 등 사회간접자본(SOC)에도 대림산업의 기술이 녹아 있다.

대림산업이 참여한 국내 랜드마크 중 가장 대표적인 건축물은 바로 ‘국회의사당’이다. 33만여㎡(약 10만평)의 광활한 규모와 멀리서도 눈에 띄는 1000톤 규모의 푸른색 철골 돔. 총 공사비는 130억여원 규모의 국회의사당 건설에 대림산업이 현대건설과 함께 참여, 6년 만에 준공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대림산업의 손을 거친 국내 랜드마크는 우리 일상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국내 경제성장의 밑거름이 된 포항제철 1기부터 세종문화회관과 잠실종합운동장, 그리고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광화문 광장 역시 대림산업의 숨결이 녹아 있다.

대림산업의 역사적인 기록은 랜드마크나 토목, 플랜트 분야에서만 국한되지 않았다. 주택시장인 아파트 분야에서도 새로운 시대를 연 장본인이 바로 대림산업이기 때문이다. "진심이 짓는다"라는 광고 카피로 유명한 대림산업의 아파트 브랜드 ‘e편한세상’은 2000년에 아파트 개별브랜드 시대의 포문을 열었다. 여기에 전등갓을 갈아주고 창문을 닦아주는 등 당시 업계 최초로 고객 만족 서비스인 ‘오렌지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하는 등 주택시장에서 시대를 앞서 나간 회사가 대림산업이었다.

대림산업이 건설에 참여한 국회의사당의 현재 모습. (김동수 기자)/그린포스트코리아
대림산업이 건설에 참여한 국회의사당의 현재 모습. (김동수 기자)/그린포스트코리아

◇ 코로나19 위기 속 변하는 대림산업…‘사업재편’ 잰걸음

대림산업은 지난해 역대 최고 실적을 올리며 창사 이래 처음으로 영업이익 ‘1조 클럽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 연결 기준 영업이익은 1조1301억원으로 집계돼 전년 8454억원 대비 약 34% 증가했다. 이는 2018년 창사 이래 최대 영업이익을 달성한 데 또 한 번 최고치를 경신한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19로 국내외를 막론하고 산업계가 침체되면서 대림산업 역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시기를 맞았다. 이에 대림산업 역시 사업재편에 잰걸음을 보여 그 귀추가 주목된다.

먼저 대림산업은 최근 콘크리트 파일과 강교 분야에서 국내 1위 기업인 대림씨엔에스 지분 50.81%를 국내 건설용 골재업체에 전량 매각했다. 매각 대금은 719억원이다. 이에 앞서 4월에도 서울시 성동구 성수동 아크로 서울 포레스트 내 비주거시설을 6000억원에 매각해 현금 확보에 나섰다. 또한 국내 1위 오토바이 업체인 대림 오토바이도 최근 매각을 추진 중에 있다. 현재 인수 추진 주체는 AJ컨소시엄으로 인수가액은 200억원가량이 될 것으로 알려졌다.

대림산업의 잇따른 계열사 매각 이유는 비핵심 계열사를 정리해 건설·석유화학·에너지 등의 핵심 사업에 집중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즉, 보다 경쟁력 있는 핵심 사업부문에 선택과 집중을 위한 포석인 셈이다.

이와 함께 주력 사업 중 하나인 건설 부문에서 몸집을 키우는가 하면 변화하는 시장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조직 개편에도 발 빠르게 나서고 있다. 이달 초 대림산업의 자회사인 삼호와 고려개발을 합병해 탄생한 대림건설이 공식출범했다. 이번 합병을 통해 기존 회사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합병을 통한 경영 시너지를 극대화해 2025년까지 10대 건설사 진입이라는 야심찬 목표를 세웠다.

삼호와 고려개발은 지난해 기준 시공능력평가순위 30위, 54위에 위치하고 있다. 단순 합상으로 고려건설은 시공능력평가순위 16위까지 오르게 된다. 여기에 두 회사 모두 각자의 전문성을 두루 갖춘 중견 건설사로, 삼호는 물류센터, 호텔 등 건축사업 전반에서 시공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고려개발의 경우 고속도로와 고속철도, 교량, 항만 등 토목 분야에 특화돼 있다.

대림건설은 확장된 외형을 바탕으로 대형 건설사 중심의 시장인 수도권 도시정비사업과 데이터센터, 대형 사회간접자본(SOC) 사업, 글로벌 디벨로퍼 사업 등 신시장을 개척한다는 방침이다.

또한 대림건설은 수주 확대와 집행 경쟁력, 혁신 실행력 제고를 위한 조직 개편도 시행했다. 건축사업본부, 토목사업본부, 경영혁신본부로 구성된 3본부 체제를 유지하면서 도시정비 및 건축사업 수주 조직을 강화했다. 최근 대형 건설사들의 경쟁이 치열해지는 도시정비 사업에 더욱 집중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토목 인프라 개발사업 추진을 위한 조직도 신설했다.

코로나19가 산업 전방위를 휩쓸고 있는 가운데 대림산업의 향후 시장 전망도 그리 어둡지는 않다. 업계에서는 대림산업이 자회사의 호조에 힘입어 하반기에도 좋은 실적을 낼 것으로 전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기룡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리포트를 통해 “코로나19로 건설업종 실적이 전반적으로 불확실한 가운데 대림산업은 자회사 편입 효과로 좋은 실적 흐름을 보이고 있다"며 "하반기에도 자회사 실적 편입 효과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선택과 집중으로 사업재편을 추진한 대림산업이 포스트 코로나 이후 어떤 성과를 달성해 80년 역사에 새로운 기록을 남길지 귀추가 주목된다.

kds0327@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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