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여야 산다 #플라스틱 ①] 23초만에 끝난 무모한 실험...플라스틱 없는 삶 가능할까?
[줄여야 산다 #플라스틱 ①] 23초만에 끝난 무모한 실험...플라스틱 없는 삶 가능할까?
  • 이한 기자
  • 승인 2020.07.01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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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를 둘러싼 집 안 모든 것이 대부분 플라스틱
석기·철기 시대 거쳐, 지금은 플라스틱 시대
편리하고 저렴하지만 잘 썩지 않고 태우기도 어려운 애물단지
“지구를 정복한 것은 인류가 아니라 플라스틱”

역사 이래로 인류는 늘 무언가를 더하기 위해 살아왔습니다. 과거보다 더 많은 자본, 나아진 기술, 늘어나는 사업영역에 이르기까지, 미지의 분야를 개척하고 예전에 없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며 문명을 발전시켰습니다. 그 결과, 인류는 번영을 이뤘습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지구의 건강이 위협받기 시작했습니다. 인류가 무언가를 많이 사용하고 또 많이 버릴수록 지구에 꼭 필요한 자원과 요소들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열대우림이 줄어들거나 빙하가 녹고 그 과정에서 생태계의 한 축을 이루던 동물과 식물들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더하기가 아니라 빼기에 주목해야 합니다. 적게 사용하고 덜 버려야 합니다. 에너지나 자원을 덜 쓰고 폐기물이나 쓰레기를 적게 버리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환경적인’ 일입니다. 인류는 무엇을 줄여야 할까요. 줄여야 산다 다섯 번째 시리즈는 우리 삶 속에 깊숙하게 침투해 지구 전체를 뒤덮은 플라스틱 얘기입니다. [편집자 주]

'지구를 정복한 것은 인류가 아니라 플라스틱'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최근의 지구를 보면, 아니 당장 집 안을 잠시만 둘러보아도 고개가 끄덕여질만한 주장이다. (픽사베이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인류가 멸망하고 난 이후의 지구에는 총천연색 플라스틱 더미만 남을 것 같다'고 쓴 작가가 있다. 그 글은 미래를 예측한 글일까 아니면 단순한 상상에 불과할까. 지금 인류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 (픽사베이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이한 기자] 지난해 10월, 환경부가 블로그를 통해 ‘플라스틱 없이 한 달 살기 프로젝트’라는 제목의 게시물을 게재했다. 2016년 출간된 책 ‘우리는 플라스틱 없이 살기로 했다’ 내용을 바탕으로 생활 속 플라스틱 줄이기 팁을 소개한 글이다.

책 저자 산드라 크라우트바슐은 다큐멘터리 영화 ‘플라스틱 행성’에서 지구를 뒤덮은 플라스틱의 적나라한 영향을 눈으로 목격하고 플라스틱 없이 살기에 도전한다. 저자는 오스트리아의 작은 마을에서 남편, 세 아이와 함께 평범하게 살아가던 인물이다. 이들 가족은 과연 플라스틱 없이 잘 살았을까?

기자도 그 책을 읽어봤다. 우선 제목이 놀라웠다. 플라스틱 없이 산다는 도전 자체가 불가능해보였기 때문이다. 저자가 보았다는 다큐멘터리를 만든 감독 베르너 보테는 “그물망처럼 우리 주변을 완벽히 포위하고 있는 플라스틱을 거부한다고? 그걸 해낼 사람이 과연 누구란 말인가?”라는 말로 추천의 말을 대신했다.

저자 가족 역시 아주 작은 플라스틱 조각 하나까지 전부 없는 상태로 살고 있지는 않다. 다만 플라스틱을 완전히 추방하기 위해 힘닿는데까지 애를 쓰고 있다. 부엌에는 밀폐용기가 없고 냉장고에도 비닐로 진공 포장된 식료품이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떨까. 플라스틱 없이 살 수 있을까. 바꿔 말하면, 플라스틱을 얼마나 줄일 수 있을까.

◇ 손만 뻗으면, 거기에는 늘 플라스틱이 있다

기자는 지난 6월 27일과 28일 주말 이틀 동안 ‘플라스틱 없이 살기’에 도전해봤다. 쉽지 않은 도전이 예상됐지만 그 기간 동안 쇼핑을 하지 않고 배달음식을 먹지 않으면서 버텨보기로 다짐했다. 환경경제신문 기자가 된지 4개월여가 훌쩍 지났으니 ‘에코소비’와 ‘환경적인 생활’에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도전은 의욕만으로 끝났다. 기자는 오전 8시 정각에 일어났는데 8시 23초에 곧바로 도전에 실패했다. 왜냐하면 기자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이 대부분 플라스틱이었기 때문이다. 잠에서 깬 후 플라스틱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를 닦으려니 칫솔과 치약이, 세수를 하려니 폼클렌저가, 물을 마시려니 냉장고와 물통이, 누워서 영상을 보려니 스마트폰 케이스가 플라스틱이었다. 에어컨 리모컨과 몸체도, TV리모컨도, 전날 널어둔 빨래를 걷으려니 건조대 밑 제습기도 모두 플라스틱이었다.

햇빛을 막아주는 창문 블라인드도 플라스틱, 베개속 충전재도 플라스틱, 머리맡 시계도 플라스틱, 화장실 변기도 플라스틱이었다. 기자는 플라스틱 칫솔을 플라스틱 살균기에 넣었고 플라스틱으로 만든 휴지를 다 쓰고 플라스틱 휴지통에 버렸다. 손을 뻗으면 닿는 모든 물체부터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몸에 걸친 것들도 전부 플라스틱이었다.

'지구를 정복한 것은 인류가 아니라 플라스틱'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최근의 지구를 보면, 아니 당장 집 안을 잠시만 둘러보아도 고개가 끄덕여질만한 주장이다. (픽사베이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지구를 정복한 것은 인류가 아니라 플라스틱'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최근의 지구를 보면, 아니 당장 집 안을 잠시만 둘러보아도 고개가 끄덕여질만한 주장이다. (픽사베이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 석기·철기 시대 거쳐, 지금은 플라스틱 시대?

<나는 농담으로 과학을 말한다>라는 책에는 ‘인류는 긴 석기 시대와 짧은 철기 시대를 거쳐 새로운 시대에 도착했다. 바야흐로 플라스틱 시대다’라는 구절이 있다. 이 책에는 '인류가 멸망하고 난 이후의 지구에는 총천연색의 플라스틱만 남을 것 같다는 상상도 실렸다' 맞는 얘기다. 이 기사를 읽고 있는 당신도 지금 플라스틱으로 만든 물건을 가지고 기사를 읽고 있을 테니까.

과거 방영된 KBS스페셜 ‘플라스틱 지구’에 따르면 전 세계 플라스틱 생산량이 연간 약 4억 6백만톤, 바다에 버려지는 플라스틱이 매년 1,300만톤 규모다. 수년 전의 통계임을 감안하면 지금보다 더 늘어났을 가능성도 있다.

환경 관련 실천이 대부분 그렇듯, 플라스틱을 줄이려면 적잖은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플라스틱으로 이뤄진 물건은 물론이고 플라스틱으로 포장된 물건 역시 많아서다.

기자는 지난 2월 본지 ‘미션 임파서블’ 컬럼을 통해 쓰레기 없이 하루 살기에 도전했다. 당시 그 도전에 실패했던 이유도 바로 비닐 포장을 포함한 플라스틱때문이었다. 비닐과 플라스틱으로 여러겹 포장된 음식과 마트에서 구매한 식재료 포장재 등으로 여러종의 쓰레기가 나왔다.

문제는 플라스틱이 너무 많이 사용된다는 사실이다. 앞서 언급한 책에는 “인류가 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할 새로운 무언가를 개발한다면 그 물건 역시 플라스틱일 것”이라는 구절이 있다. 기자는 평소 취재 과정에서 만난 환경 관계자들에게 저 얘기를 종종 언급하는데 그 의견에 대해 부인하거나 부정하는 사람이 지금까지 한 명도 없었다.

◇ 편리하고 저렴하지만, 잘 썩지 않고 태우기도 어려운 애물단지

플라스틱은 싸다. 형태와 색깔을 자유롭게 만들 수 있다. 간단한 조작만 거치면 같은 재질도 다른 색으로 만들 수 있다. 그래서 패션부터 여러 산업에 걸쳐 다양하게 사용됐다.

플라스틱은 종류가 다양하고 범위도 매우 넓다. 사전적인 의미로는 ‘열 또는 압력에 의하여 성형할 수 있는 유기물 기반 고분자 물질 및 그 혼합물’을 뜻한다. 일반 소비자들이 흔히 생각하는 플라스틱과 비닐봉지, 각종 용기 등에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건 폴리에틸렌이고 이 밖에도 폴리프로필렌 등 수많은 종류의 플라스틱이 있다.

편리하고 저렴한 플라스틱의 가장 큰 문제는 이미 잘 알려져 있듯 잘 썩지 않고 불에 태우기도 어렵다는 점이다. 버려지면 수백년 동안 쓰레기로 남는다. 짧게는 수십년, 길게는 수백년 이상이 흘러야 썩는데 그 과정에서 환경호르몬이나 유해물질을 배출할 위험도 있다.

물론 플라스틱 사용을 일방적으로 줄이는 게 무조건 환경적이라는 보장은 없다. 쉬운 예로 70억 넘는 인구가 플라스틱 빨대를 모두 사탕수수 빨대로 바꾸고 합성섬유 대신 천연섬유을 사용한다고 가정해보자. 수많은 사탕수수를 재배하기 위해 필요한 경작지와 물, 목화를 재배하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 등을 감안하면 플라스틱을 없애는 건 정답이 아니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플라스틱에 관해 예민해야 할 이유가 있다. 플라스틱이 쓰레기 문제와 직결되어 있어서다. 플라스틱과 쓰레기 문제는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할까.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플라스틱 빨대의 모습. (픽사베이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플라스틱 빨대의 모습. (픽사베이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 “지구를 정복한 것은 인류가 아니라 플라스틱”

앞서 언급한 ‘우리는 플라스틱 없이 살기로 했다’의 저자 산드라는 ‘환경문제’라는 표현이 오히려 자연을 우리 삶의 바탕으로 인식하는 것을 방해하고, 자신을 둘러싼 환경 문제를 너무나 간단히 자신의 삶과 따로 떼어 생각하는 경향을 갖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산드라는 “그런 중립적 개념은 환경문제와 건강 등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와 분리시키고 상호 연관성을 부인하게 만든다”고 주장하면서 “그런 이유로 나는 환경문제 대신 생활공간 문제라고 말하는 것을 더 선호한다”고 밝혔다. 건강한 먹을거리, 유해물질이 적은 공기, 깨끗한 물 같은 것들이 삶에서 결정적인 가치라고 인식하기 시작했고, 그런 가치를 중시하기 위해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다’는 목표를 세웠고 그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플라스틱 줄이기에 나섰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쓰레기와 플라스틱 문제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을 지적한다. 그는 과거의 자신이 “쓰레기를 분리배출한 것만으로 꼭해야 하고 해낼 수 있는 올바른 일을 모두 다 한 것처럼 생각하고 살아왔다”고 말하면서 “쓰레기를 버리고 나면 이미 우리 집을 떠나고 없어진 것, 눈 앞과 감각의 영역에서 치워진 것으로 끝이었다”고 회상했다.

2년여 동안 전 세계를 여행하며 쓰레기 관련 현장을 직접 보고 저서 <쓰레기책>으로 펴낸 이동학씨도 비슷한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이동학씨는 본지 인터뷰에서 “(과거의 나는)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버리는 순간 내 곁을 떠나서 멀리 가고 그 과정에 어떻게든 해결이 잘 되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행을 다녀보니 지구를 정복한 것이 인류가 아니라 플라스틱이며, 인류에 대한 플라스틱의 역공이 시작되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인류는 정말 플라스틱을 줄일 수 있을까. 2편에서는 플라스틱의 역사와 미래, 그리고 플라스틱이 가진 장점과 그로 인해 두드러지는 단점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들여다본다.

leehan@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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