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상용화까지 되려면 긴 시간 필요
무조건적인 공공재 지정보다는 적절한 가치 보상 전제돼야

[그린포스트코리아 이민선 기자] 연일 확진자가 늘어나는 상황이지만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27일 세계보건기구(WHO)는 전세계 확진자가 천만 명을 돌파했음을 알렸다.

그 다음날인 28일, WHO는 전세계 확진자가 19만 명으로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이전 사상 최고치는 지난 26일의 18만 명으로 매일같이 확진자를 경신하고 있다.

이같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끝내기 위해 전세계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앞다투어 백신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코로나19가 끊임없이 확산되면서 보건당국들도 임상절차 및 심사를 간소화하고 나라마다 백신을 먼저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WHO, “코로나19 백신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올해 말 코로나19 백신이 1∼2개 개발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픽사베이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세계보건기구(WHO) 발표에 따르면 현재 백신 개발에 가장 빠른 속도를 보이고 있는 곳은 영국 제약사인 아스트라제네카다. (픽사베이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현재 백신 개발에 가장 빠른 속도를 보이고 있는 곳은 영국 제약사인 아스트라제네카다. 앞서 지난 13일 프랑스, 독일 등 4개국은 아스트라제네카와 ‘백신 동맹’을 맺고, 백신 개발에 3조 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브라질과 일본도 뒤따라 아스트라제네카와 접촉했다. 

이렇게 되면 백신 동맹에 가입되지 않은 나라는 백신을 받기 어려울 수 있다. 최초로 백신을 개발한 기업이 특허권을 내세워 시장을 독점할 경우 고가의 가격 책정과 공급 부족, 불공평한 분배 등의 문제를 맞이할 수 있다. 개발도상국의 경우 백신과 치료제 조달이 어려울 수 있게 된다.

세계백신면역연합(GAVI) 역시 이런 상황이 ‘백신 민족주의’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결국 WHO가 나서 2021년 말까지 ‘백신 20억개 공동구매를 추진하겠다’며 성명을 냈다. 

WHO는 지난달 열린 총회에서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되면 공공재처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결의안을 채택한 바 있다. 결의안에는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의 특허권이나 임상시험 자료 등을 한 업체가 독점하지 않고, WHO에 맡기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날 WHO 194개 회원국 중 100여개 나라가 서명했다.

우리나라 역시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되면 전 세계에 공평하게 보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WHA에서 기조연설자로 발언한 문재인 대통령은 “개발된 백신과 치료제는 공공재로서 전 세계에 공평하게 보급돼야 한다”며 “한국은 백신과 치료제 개발을 위한 WHO의 노력을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말했다.

미국은 결의안에 서명하면서도 특허권은 보호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가 최근에는 WHO를 탈퇴하기에 이르렀다. WHO가 미국이 제시한 개혁안을 거부하고 중국 편향적이라는 이유에서다.

 

기업 입장에서도 결정 쉽지 않아

파미셀이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발기부전 줄기세포치료제 ‘셀그램-ED(Cellgram-ED)’의 상업화 임상 2상 승인을 획득했다. (픽사베이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기업 입장에서는 많은 자금과 시간을 투자해 개발한 기술력을 공공재로 공유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픽사베이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대부분 국가들은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위기에 빠진 만큼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되면 공공재로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는 일방적으로 결정짓기 어려운 문제다. 기업 입장에서는 많은 자금과 시간을 투자해 개발한 기술력을 공유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제약업계 관계자들은 “정부가 합리적 절차를 통해 특허권을 구매한다면 몰라도, 공익을 위한 일이니 무조건 특허권을 반납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납득되지 않는다”며 “제약사가 공들여 개발한 신약의 가치가 제값을 받지 못한다면 개발 포기 사태도 줄줄이 이어지리라 예상된다”고 말했다. 

앞서 다국적 제약사인 아스트라제네카 파스칼 소리오 최고경영자는 “지식재산권이 보호되지 않는다면 기업들의 백신과 치료제 개발을 장려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제약사들이 이뤄낸 결과물의 모든 권리를 강제로 포기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있다면, 많은 기업들은 백신과 치료제 개발을 포기하는 상황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길리어드 사이언스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렘데시비르'의 희귀의약품 지정 신청을 했다가 비난 여론에 자진 취하한 바 있다. 국내에서 중증 코로나19 환자들에게 투여되고 있는 칼레트라의 원개발사인 애브비도 칼레트라의 특허권을 포기했다.

 

적절한 가치 보상 이뤄져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본격적인 독감(인플루엔자) 백신 접종 시기에 맞추어 백신 접종 대상 및 횟수, 제품 종류, 주의사항 등 독감 백신에 대한 안전 정보를 제공한다고 10일 밝혔다 (픽사베이)/그린포스트코리아
현재 코로나19 백신은 전 세계적으로 142개 후보물질이 개발 중이고, 이 중 13개는 임상시험에 돌입했다. (픽사베이)/그린포스트코리아

현재 코로나19 백신은 전 세계적으로 142개 후보물질이 개발 중이고, 이 중 13개는 임상시험에 돌입했다. 우리나라 정부는 코로나19 치료제·백신개발 범정부 지원단을 통해 연구 개발을 지원하고 있다. 의료시민단체는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 개발에 정부 공적 자금이 투입된 만큼 제약사의 특허권 제한을 통해 의약품 가격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임상시험에 진입한 백신도 개발이 쉬운 것만은 아니다. 새로 개발되는 백신의 7% 만이 전임상을 통과하고, 환자 대상 임상시험에 들어간 백신도 15~20%만 성공한다. 특히 백신은 반복 사용되는 다른 의약품과는 달리 경제성이 낮아 제약사들이 적극적인 투자와 개발을 망설이기 마련이다.

세스 버클리 GAVI 대표는 “백신은 제조도 어렵고 과거 백신 개발 프로젝트는 성공보다 실패가 많았다”며 “백신 대부분이 실패할 수 있지만, 다양한 후보를 확보하고 있으면 계속 앞으로 갈 수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백신이 개발되더라도 노약자나 의료종사자가 아닌 일반인들이 백신을 맞을 수 있기 까지는 꽤 많은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그만큼 제약사들의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백신과 치료제가 공공재로써 전 세계에 널리 공급돼야 하는 것에는 틀림없다. 제약사들이 잠시 본업을 제쳐두고 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 개발에 몰두하고 있는 만큼 무조건적인 공공재 지정보다는 적절한 가치 보상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어야 한다.

즉 국가와 WHO와 같은 국제기관이 제약사의 특허권에 기초한 독점권을 인정하고, 새로운 신약 개발에 매진할 수 있는 이익 구조를 보장해야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제약사도 이익 창출은 한 발 내려 놓고, 인류 생존을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에 협조해야 할 때다.

minseonlee@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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