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신 편집국장
박광신 편집국장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 중 하나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문제가 연일 파국으로 치닫는 모양새다. 이를 두고 정규직은 엄두도 못내는 서민들은 ‘을’의 갑질이라 비난하고 나섰다. 최근에는 인천공항공사 문제로 시끄럽지만 이런 현상들은 이미 사회곳곳에서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급기야 기업들은 우리나라에서 기업해먹기 더럽게 힘들다라는 말도 서슴없이 하곤 한다.

작년 말 코웨이를 인수한 넷마블도 속이 타들어가기는 마찬가지다. 작년 12월 코웨이를 인수한 넷마블 측은 지난 2월 1560명을 직접 고용하겠다고 발표해 주목을 받았다. 이 당시만 해도 렌탈업계에서 가전 설치 및 수리를 하는 인력을 직접고용 한다는 코웨이의 행보는 파격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CS닥터(설치수리 기사)노조 측이 회사의 임금합의안을 거부하면서 사태는 파국으로 치닫고 말았다.

논쟁의 핵심은 기본급인상과 호봉제인정 등이다. 노조 측은 CS닥터의 기본급을 업계 최저 수준인 250만원을 요구했고 사측은 설치·서비스 처리 건수 200건을 전제로 기본급 205만원을 제시했다. 하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노조 측의 주장은 억지스러운 측면이 많다. 실제로 사측이 제시한 임금인상안 기준은 36% 수준이다. 여기에 업무지원비, 학자금지원, 주택자금대출, 연차수당 등의 복리후생 혜택을 추가하면 임금 인상폭은 더 증가한다. 하지만 노조 측은 실지급액 기준이 아니라 보장금액인 기본급 인상을 강하게 요구하면서 협상이 길어졌다.

이후 지난 9일 코웨이가 CS닥터 노조의 정규직 전환에 따른 임금인상안 등을 대부분 수용하면서 합의도출에 이르렀다. 합의안으로 혜택을 보는 인력은 전체 1570여명에 이른다.

업계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이번 합의는 회사를 인수 한 넷마블 측의 용단이 만들어 낸 결과”라며 “코웨이를 인수한 모기업의 이미지와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바탕이 됐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만큼 업계에서도 기업 입장에서 충분히 양보했다는 얘기다.

한차례의 훈풍이 불고 조용하게 마무리 되나 싶었던 사태는 ‘근속기간 산정’이라는 암초를 만나 또다시 틀어졌다. 노조 측이 이번에는 정규직 전환 시 근속 기간 100% 인정 등을 근거로 '연차 산정은 첫 입사일'이 기준점이 돼야한다고 주장하고 나선 까닭이다. 노조 측은 30일까지 1차로 총파업을 선언했으나 업계를 포함한 노동계조차도 이번 파업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사회적 책임과 함께 큰 재정을 필요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정규직 전환의 문제는 기업이 대승적 결단을 내리지 않는다면 이뤄질 수도 없는 문제다. 하지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현 정부의 기조에 따라 정규직 전환에 동참하는 기업들의 리스크는 누가 감당한단 말인가? 근로자들이 요구했건 요구하지 않았건 인력고용형태를 ‘정규직화’ 한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기업 역시 살아남기 급급한 현 시국에 고맙고 다행스런 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하물며 여태까지 CS닥터의 고용형태는 통상적으로 개인사업자나 자회사 형태로 이뤄져 고용보장이 되지 않았던 점으로 비춰볼 때 이번 파업사태는 노조 측의 기만이라고 밖에 보이지 않는 이유다.

방랑시인 김삿갓이 물에 빠진 사람을 건졌더니 물에 빠졌던 사람이 뭍으로 나와서 하는 말이 “이건 내 보따리가 아니오. 내 보따리엔 땅 문서, 집 문서 다 있는데, 여긴 겨우 엽전 백 냥밖에 없지 않소. 얼른 내 보따리를 내놓으시오”라고 말했단다. 억울한 김삿갓이 사또를 찾아가 고했더니 사또가 판단하길 “그래? 그럼 그 보따리는 네 것이 아니니 그 보따리는 삿갓 쓴 저자에게 돌려주고 너는 강에 나가 네 보따리를 찾아보거라”라고 얘기한 게 ‘물에 빠진 사람 구해 주니 보따리 내놓으라 한다’는 속담의 뒷얘기다.

모든 협상의 기준은 ‘양보’에서 출발한다. ‘어떤 것을 얻을 것이냐’가 결국 답이겠지만 대화의 기본에는 ‘어떤 것을 양보할 것이냐’가 전제가 돼야 올바른 합의점을 찾을 수 있다. 이번 CS닥터 노조의 주장에는 일말의 양보가 보이지 않는다. 이래서야 어디 물에 빠진 사람이라도 함부로 구해줄 수 있겠냐는 말이다.

jakep@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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