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데믹 이전에도 환경전염병 ‘에코데믹’ 있었다
“박쥐가 인간 공격한 게 아니라 인간이 잘못 건드린 것”
“그동안 답하지 않았던 것들의 위험성 알아야 할 때”

세상에는 ‘애매한’ 것들이 많습니다. 답이 정해져 있는데 그게 뭔지 몰라서 혼란스러운 경우도 있고, 어떤 기준으로 보느냐에 따라 결과가 다르게 나타나서 옳고 그름을 딱 잘라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습니다.

환경과 경제 관련 이슈에서도 이런 ‘애매함’은 늘 우리를 괴롭힙니다. 예를 들면 이런 문제들입니다. 전기차 폐배터리와 휘발유차 배출가스 중에서 환경에 더 나쁜 영향을 미치는 건 무엇일까요? 단단한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텀블러가 일회용 종이컵보다 정말로 더 환경적이려면 어떤 기준을 충족해야 할까요?

이런 것도 같고, 반대로 저럴 것도 같은 애매한 환경 경제 이슈를 상담해드립니다. 이 기사 내용이 만고불변의 진리이자 유일한 정답이라고 주장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면 좋을지에 대한 힌트는 제공하겠습니다. 상담을 원하시는 분은 아래 이메일로 궁금한 내용을 보내주세요. 세 번째 주제는 ‘환경 파괴가 전염병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지’입니다. [편집자 주]

서울시 소방재난본부는 전염병 환자 이송에 필요한 장비인 ‘음압형 환자 이송장비’ 28대를 도입하기로 하고 1차로 6대를 인수해 10일 이후부터 일선 소방서 전담 구급대에 보급할 예정이다. (사진 서울시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환경파괴가 전염병을 불러왔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된다. 인류가 자연을 건드려 기존의 질서가 파괴되고 그 과정에서 인간을 위협하는 미생물들이 도시로 나왔다는 주장이다. 사진은 서울시 소방재난본부 음압형 환자 이송장비 관련 이미지 (서울시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이한 기자] 환경파괴가 전염병을 불러왔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된다. 인류가 자연을 건드려 기존의 질서가 파괴되고 그 과정에서 인간을 위협하는 미생물들이 도시로 나왔다는 주장이다. 인류는 앞으로 무엇을 실천해야 할까.

사스와 메르스, 신종플루, 에볼라 바이러스와 지카 바이러스, 그리고 최근의 코로나19에 이르기까지 세계적인 전염병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주기도 빨라졌다. 2002년 사스부터 2009년 신종플루까지는 7년이 걸렸지만 2015년 메르스까지는 6년, 2020년 코로나19가 창궐하기까지는 5년이 걸렸다. 일각에서는 코로나19가 종식되더라도 이후 수년 내 또 다른 감염병이 확산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최근 대규모로 유행한 감염병은 사람에게 전염되는 동물 감염병이다. ‘인수공통감염병’이라고 부른다. 서울신문 보도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새롭게 나타나는 감염질환의 75%가량이 인수공통감염병이다. 이런 병들은 도대체 왜 생기는걸까.

◇ 펜데믹 이전에도 환경전염병 ‘에코데믹’ 있었다

미국 수의학자이자 언론학 교수인 마크 제롬 월터스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인류가 전염병의 네번째 시기에 들어서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에코데믹’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소개했다.

에코데믹이란 전염병을 뜻하는 단어 ‘Epidemic’을 일부 변형한 것으로 생태병 또는 ‘환경전염병’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저자는 인류가 지구 환경과 자연순환과정을 대규모로 파괴한 결과 커다란 생태 변화가 생겼고 이와 밀접한 전염병들이 인류에게 나타났다고 주장한다. 인간이 새로운 질병의 출현과 확산을 부른 주범이라는 의미다.

저자는 자신의 저서 ‘자연의역습, 환경전염병’에서 광우병과 에이즈, 살모넬라, 한타바이러스 등 신종 전염병을 통해 인간이 자연에 일으킨 변화와 그에 따른 재난의 순환 고리를 설명한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되는 부분이 있다. 최근 펜데믹을 일으킨 코로나19나 수년전 이슈였던 메르스 또는 지카바이러스 얘기가 없다. 그 이유는 뭘까? 마크 제롬 월터스가 ‘에코데믹’이라는 개념을 처음 소개한 게 2003년이고 위에 언급한 저서가 국내에 소개된 게 이미 2008년이다. 환경과 전염병의 상관관계에 대해 이미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경고했다는 얘기다.

전염병을 다룬 영화 ‘컨테이젼’은 인간과 전염병의 관계를 화면에 구현했다. 인간의 산림 훼손으로 서식지를 잃은 야생박쥐가 공장식 축사에서 사육당하던 돼지에게 바이러스를 옮기고 이 돼지가 도시의 한 식당에 식재료로 공급된다. 맨손으로 돼지를 요리하던 셰프는 그 손을 앞치마에 대충 닦고 식당 손님과 악수하고 기념사진을 촬영한다. 식당을 찾았던 손님들은 다시 여러 사람을 만난다. 그 손님은 숲을 없애고 박쥐를 쫓아낸 그 기업의 고위 간부였다.

코로나19가 국민들의 건강에 대한 민감도, 소비 행태, 라이프스타일 등 삶에 전방위적으로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결과가 나왔다/픽사베이
인류는 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 승리하더라도 앞으로 또 유사한 문제와 직면할 우려가 있다. 의학적인 해결책뿐만 아니라 근본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픽사베이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 “박쥐가 인간 공격한 게 아니라 인간이 잘못 건드린 것”

영화 속에서만의 얘기일까. 아니다. 코로나19도 박쥐에서 온 것으로 전해졌다. 못된 박쥐가 인간을 공격한 것도 아니다.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는 올해 3월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박쥐가 우리한테 일부러 바이러스를 배달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박쥐를 잘못 건드렸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박쥐한테 접근한 거다. 박쥐가 사는 동굴은 보통 사람은 찾기도 힘든데, 동굴 앞까지 길을 내고 들어가서 들쑤시니까 이런 일이 벌어진다”고 말했다.

최재천 교수는 과거에 ‘숲으로 난 길은 언제나 파멸로 이끈다’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기업들이 아프리카 숲을 벌목하는 과정에서 길을 내고 트럭이 들락거라면 트럭 사이로 사냥꾼이 들어가면서 생태계가 파괴된다는 지적이었다. 최 교수는 박쥐에서 출발한 전염병도 그와 같은 시각으로 진단했다. 그는 당시 인터뷰에서 “바이러스든 세균이든 블루오션을 만났다. 77억 인간을 공략하지 않으면 누구를 공략하겠는가”라고도 덧붙였다.

실제로 국립수의과학연구원은 지난 2011년에 발표한 보고서에서 “산림자원의 훼손으로 인한 매개체(모기, 쥐 등) 증가, 화학물질의 오염에 의한 숙주동물(인간 등) 면역기능 약화, 매개 동물 및 병원체 이동의 증가에 따라 인수공통전염병 발생이 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 “답하지 않았던 것들의 위험성을 알아야 할 때”

영화 속 내용은 실제로도 현실이다. 나무가 잘려 나가거나 동물들이 도살될 때마다 그곳에 깃들어 살던 미생물이 주변으로 확산된다. 서식지를 잃은 미생물은 멸종을 피하기 위해 새로운 숙주를 찾는다. 인간은 지구에서 가장 건강한 숙주 중 하나다.

백신이나 치료제를 개발하면 그 바이러스는 지구에서 사라질까? 인류가 해당 병원체에 대한 면역력을 갖기 시작하면 병원체가 다른 곳으로 숨을 수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원래 숙주인 박쥐나 천산갑의 몸에 웅크리고 있다가 나중에 다른 모습으로 다시 등장할 수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세상에는 코로나 바이러스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낙타 또는 원숭이에게서 전해졌다고 알려진 다른 바이러스들도 세상에서 사라진 게 아니다.

이 문제를 인류는 앞으로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사회역학자인 김승섭 고려대학교 보건정책관리학부 교수는 지난 4월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바이러스는 의미를 주기 위해 오지 않는다. 그냥 오는 거다”라고 밝혔다. 김 교수는 “이 거대한 소용돌이를 겪으면서 어떤 질문을 던지고 어떤 답을 찾을 것인가는 우리 몫”이라고 말하면서 “우리가 답하지 않았던 것들의 위험성을, 이제는 알아야한다”고 덧붙였다.

기자가 한마디 덧붙이면, 인류는 이미 알고 있다. 다만 실천을 하지 않을 뿐이다. 위험성을 알았다면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행동이 필요하다.

leehan@greenpost.kr

저작권자 © 그린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