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은 왜 이토록 맥스터 건설에 반대하는가

울산 시민들이
울산 시민들이 월성핵쓰레기장 반대 주민투표 결과 수용 촉구를 위해 청와대 앞 기자회견을 열었다. (월성핵쓰레기장 반대 주민투표 울산운동본부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이민선 기자] 국내 최초의 민간주도 주민투표가 열렸다. 월성원전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맥스터) 추가 건설에 대한 북구 주민들의 의견을 묻는 투표다.

이 투표는 지난달 28~29일 사전투표를 거쳐, 이달 1~2일 온라인투표, 5~6일에는 본투표를 진행했다. 찬반투표 결과 울산 북구 주민 유권자 17만5138명 중 5만 479명이 참여했고, 투표자의 94.8%인 4만7829명이 맥스터 건설에 반대했다.

북구 주민들은 왜 이토록 맥스터 건설에 반대하는 것일까? 월성핵발전소는 경주 시내보다 울산 북구와 더 가깝기 때문이다. 월성 1호기에서 울산시 경계까지 약 6.5km, 인구가 밀집한 북구 정자동까지는 약 11km, 울산북구청까지는 17km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5살 아이도 피폭...“안전하게 살 수 있는 환경 만들어야”

요시료 검사 결과
삼중수소 요시료 검사 결과 (나아리 비상대책위원회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그렇다면, 원전 반경 1km에 삶의 터를 자리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떨까? 지난 2016년 언론에 대서특필된 5살 아이의 방사능 피폭 사건이 있었다. 이웃 섬나라가 아닌 월성 핵발전소가 위치한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에서 있었던 일이다.

월성 원전 1호기를 재가동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몸무게가 고작 16kg밖에 되지 않는 5살 아이에게서 리터당 17.3베크렐이라는 삼중수소가 검출됐다. 

kg당 1베크렐이 검출된 고등어가 걱정되어 아이들 급식에서 아예 일본산 수산물을 제외하고, 나아가 수입까지 금지하는 상황에서 몸속에 리터당 17.3베크렐의 방사성물질이 있다는 검사 결과를 받아든 부모는 어떤 심정일까? 

유아나 어린이는 방사능에 더욱 취약할 수밖에 없다. 고이데 히로아키 교토대 원자력실험실 조교수는 양심선언을 통해 피폭의 피해는 나이와 상관이 있으며, 어릴수록 방사능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고 주장했다.

세포분열이 왕성한 세포들이 피폭을 당하면 방사능으로 상처를 쉽게 입고, 상처 입은 유전자도 갈수록 복제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 방사능이 분열하는 염색체에 이상을 일으켜 돌연변이 등 유전적인 영향으로 소아암이나 백혈병이 발생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뜻이다.

이 아이가 커서 어떤 피해를 볼지 부모로서는 걱정할 수밖에 없다. 아이의 할머니는 1년 전 삼중수소 오염을 우려해서 모든 식수를 생수로 바꿨다. 월성원전 주변 주민들은 지하수를 사용하는 간이상수도를 사용하고 있다. 부엌 싱크대에서 나오는 물이 이미 삼중수소에 오염된 게 확인된 것이다.

사실 이 아이뿐만 아니라 나아리 주민 40명 전원에게서 삼중수소가 검출됐다. 5세부터 19세까지의 아동·청소년 9명도 포함돼 있었다. 지난 21일, 환경운동연합과 경주 월성원전인접지역 이주대책위원회는 월성원전 민간환경감시기구에 의뢰해 검사받은 주민 40명 전원에게서 방사성물질인 삼중수소가 몸속에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여기에 원자력 발전소를 지은 한국수력원자력 측은 일반인 선량한도(1mSv)의 0.06% 수준이라며 기준치에 ‘한참 못 미치는 양’이라고 했다.

하지만 환경운동 단체나 다른 측 전문가들의 입장은 또 다르다. 피폭 계산식 자체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기준치 미달이라는 말로 모든 책임을 일축할 수 없으며, 인근 지역 주민의 갑상선암 증가와 같은 실제 피해 사례가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재작년에는 마을 중학생이 급성 백혈병으로 사망하기도 했다.
 

방사성 물질인 삼중수소란?

월성원전 3호기에서 지난 11일 냉각재 일부가 누출됐다. (픽사베이 제공) 2018.6.12/그린포스트코리아
월성원전 1~4호기는 중수소와 삼중수소로만 이뤄진 무거운 물을 추출해 감속재와 냉각재로 이용하는 중수로 원전이다. (픽사베이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월성원전 1~4호기는 중수소와 삼중수소로만 이뤄진 무거운 물을 추출해 감속재와 냉각재로 이용하는 중수로 원전이다. 중수로 원전은 물을 사용하는 경수로 원전과 달리 삼중수소를 상대적으로 많이 배출한다. 이 과정에서 삼중수소는 대기와 토양 등에 스며든다.

방사성 물질인 삼중수소는 체내에 들어올 경우 20년 이상 몸에 축적된다. 유럽방사성리스크위원회(ECRR)는 삼중수소가 저농도라고 해도 마시거나 호흡하면 DNA를 구성하는 단백질과 유전자·지방 등의 수소를 대체하게 되며, 서서히 헬륨으로 변해 DNA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삼중수소에 지속해서 노출되면 세포 사멸, 생식기능 저하, 유전병 등의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그린피스재팬은 지난달 “방사능에 오염된 물이 인체에 흡수되면 유전자가 손상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1953년 러시아 첼랴빈스크에서 2명이 고농도 삼중수소에 피폭돼 숨진 사례도 있다. 고농도 삼중수소의 경우에는 기형이나 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제는 고체 상태인 세슘·요오드·플루토늄 등과 달리 삼중수소는 아직 정화기술이 없다는 점이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오염수에 담겨있는 것도 이 삼중수소다. 

 

제한구역 원전 반경 914m...915m는 안전한가?

펜스
사진에 보이는 연두색 펜스가 원전 제한구역(원전 반경 914m)을 가르는 표시다. (이민선 기자)/그린포스트코리아

월성1호기는 1983년 상업 운전을 시작했다. 이곳 주민들은 35년 넘게 핵발전소, 방사성폐기물처리장, 핵폐기물 처리관리시설 등 원전과 함께 살았다. 30년 동안은 방사능이 위험한 줄 몰랐다. 그런데 2011년에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했다. 2016년에는 경주에서 규모 5.8의 지진이 발생했다. ‘안전하다’는 국가와 한수원의 말을 더는 믿을 수 없었다.

국내 원자력안전법은 제한구역 설정을 원자력 시설로부터 560미터, 700미터, 914미터로 발전소마다 각각 정했다. 이 중 월성 원전의 제한구역은 914미터. 914미터라는 기준은 월성 1호기가 들어설 때 정해졌다.

30년 넘게 지난 지금도 이 기준은 유효할까? 1978년 지진 관측을 시작한 후 한반도에서 발생한 역대 최대 규모인 진도 5.8 규모의 지진이 이 곳 경주에서 일어난 이상 이 기준이 안전하다고 믿을 수 없다. (월성 1~4호기와 신월성 1~2호기는 진도 7.0규모의 내진 설계로 이뤄져 있다. 고준위 핵폐기물 임시저장시설인 맥스터는 6.5규모의 내진 설계로 지어진다.)

나아리 땅의 대부분은 월성 핵발전소에 편입됐지만, 원자로에서 0.9~1.5km 떨어진 곳에 400여 세대 800여 명이 살고 있다. 중수로형 제한구역 경계 914미터를 겨우 벗어난 곳에 사람들이 사는 것이다. 

다른 나라의 경우 제한구역 이외에도 완충 구역을 두거나 주거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핵발전소를 건설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즉, 핵발전소 주변에 갑상선암 환자가 얼마나 있는지 정확히 알 수도 없다.

미국과 벨기에에서 한 차례씩 연구했지만, 연구 기간도 짧고 대규모 추적 조사가 이뤄지지도 않았다. 원전 주변에 사는 주민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갑상선암 재판도 별도도 없었다. 

다만 1945년 핵폭탄이 떨어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주민들에게 갑상선암이 증가했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에서도 원전 폭발사고 이후 소아 청소년의 갑상선암 발병이 늘었다는 연구 보고가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서울대학교와 정부가 약 20년 동안 추적조사를 진행했다. 2015년 서울대 백도명 교수팀이 발표한 연구 결과 핵발전소 반경 5km 이내의 주민들이 30km 바깥에서 사는 주민들에 비해 갑상선암이 2.5배 더 많이 발병했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특히 여성들의 경우 유의미한 결과였다.

 

원전 위험 안고 살아가는 주민 위한 로드맵 마련해야

이주대책
월성 원전 1㎞ 반경에 사는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 주민들은 매주 월요일 빈 상여를 끌고 한국수력원자력 본사 앞까지 걸어갔다 온다. 화요일에는 경주 시내까지 나가 한 바퀴 돈다. (이민선 기자)/그린포스트코리아

근본적인 해결책은 원전 수를 줄이거나 주민들이 이주하는 것뿐이다. 그런데 이곳은 원전 인근이라서 땅이든 집이든 매매 자체가 끊긴지 오래다. 지난 10년동안 매매가 아예 없었다. 전 재산이 원전 주변에 묶인 주민들은 이곳을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는 상황이다.

원전 때문에 매매가 되지 않는 집과 토지를 매입해달라는 주민들의 요구에도 원전사업자인 한수원은 대화 자리는 커녕 연락 한 번 없었다고 한다. 

나아리 이주대책위원회 관계자는 “2014년부터 벌써 6년째 나아리 주민들이 월성 핵발전소 앞에 천막을 치고 이주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며 “그동안 농성장에는 대통령 후보 시절 문재인 대통령이나 산업부 장관, UN 인권 특별보고관 같은 이들이 다녀갔다. 하지만 이주 대책 논의는 아직도 진척이 없다”고 말했다.

김수민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에서는 핵발전소 인접 주민의 이주대책사업의 법적 근거를 만들고, 이를 전력산업기반기금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김석기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에 따르면 이주 대책 이외에도 주민의 건강검진, 오염된 농수산물의 매수 등을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주민 이주의 법적 근거를 만들기 위한 논의는 시작도 못 했다. 정부가 핵발전소 인근 주민을 이주시키는데 무려 8조 원의 예산이 필요하다며 법안 통과를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주대책위는 제한구역 경계를 기준으로 1km 이내 희망하는 주민들로 한정하면 예산은 대폭 줄어들 것이며, 매입하는 부동산이 자산이기 때문에 실제 큰 손실이 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정부는 아직도 별다른 대답이 없다.

맥스터가 건설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산업계. 주민들은 맥스터 건설을 무조건 막자는 것이 아니다. 주민들의 안전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원전 시설의 안정성 평가, 방사능 영향평가는 거치면서 원전에 의한 주민들의 건강은 전혀 살피고 있지 않다.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minseonlee@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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