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공간에 남겨진 개인의 흔적, 누가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그린포스트코리아 이한 기자] 싸이월드 폐업 관련 소식이 전해지면서 여러 의견이 오간다.

‘사진과 방명록을 백업할 기회를 달라’는 호소가 들리고 ‘이미 여러 번 관련 소식이 전해졌는데 왜 이제 와서 뒷북이냐’는 핀잔도 들린다.

어떤 이들은 싸이월드가 스마트폰 보급과 SNS의 성장이라는 시대적 흐름을 따라가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또 어떤 이들은 나타났다 사라지곤 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며 그깟게 뭐 대수냐고 쿨하게 넘기기도 한다.

기자도 싸이홈피에 얽힌 추억이 많다. 그 곳에 업로드한 사진만 3천장이 넘고 지인들이 오가며 남긴 방명록과 게시물도 2만개가 넘었다. 20대 시절 기자는 친구들 사이에서 요즘 말로 ‘핵인싸’였고 속된말로 잘 나갔다. 그 기억들이 소중해서 싸이 관련 데이터들은 USB와 외장하드, 그리고 PC 하드에 3중으로 백업해놨다. 지금도 가끔 열어보면 그 시절 생각에 흐뭇한 웃음이 난다.

어제 오후에는 20년 지기 동호회 회원이 “싸이 소식 듣고 생각나서 올려본다”며 그 시절 같이 찍은 ‘꽐라’ 사진 여러 장을 단톡방에 뿌렸다. 나이가 들수록 추억의 가치는 높아지게 마련이라, 단톡방 멤버들이 모두 신나서 옛날 사진을 주고 받았다. 소몰이 창법이 유행하고 카톡은 없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 사진과 방명록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든든하다. 추억을 모두 잃지 않고 나름 안전하게 남겨뒀다는 믿음 때문이다. USB나 하드도 ‘에러’나 ‘파손’에서 자유롭지 않지만 세곳에 남겨뒀으니 완전히 사라질 확률은 적을 것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은 남는다. 데이터를 보관해 놓았고 기억도 생생하지만 그 시절 친구들과 방명록 남기고 파도 타며 놀던 공간 자체는 어쨌든 사라질 위기에 놓였기 때문이다.

혹자들은 말한다. “어차피 오랫동안 접속도 안 했으면서 새삼스럽게 왜 그러느냐”고 하지만 살다 보니 이래저래 바빠서 찾지 못한 것과, 꼭 한번 찾고 싶은데 그럴 수 없는 건 다르다. 어릴 때 살던 고향집에 안 가는 것과, 그 고향집이 헐려 새 건물이 들어서는 건 전혀 다른 느낌인 것처럼 말이다. 고향집에 안 간다고 큰일이 나지는 않지만, 없어서 못 간다면 쓸쓸하지 않겠는가?

물론, 그리운 건 사진이나 텍스트 자체가 아니라 그 시절이다. 방명록을 다시 읽고 싶은 게 아니라 그 당시 기억을 떠올리고 싶은거다. 지금보다 덜 노련했고 아는 것이 적었던 시절, 하지만 지금보다 조금 더 씩씩하고 튼튼했던 시절, 생각이 짧지만 용감했고, 경험이 없지만 그만큼 두려운 것도 없던 젊은 시절. 그 시절의 나를 기억할 축 하나가 사라져서 아쉬운 것이다.

기자도 안다. 추억은 담아놔야 아름답다. 굳이 꺼내 놓았다가 실망하는 경험도 많다. 아닌 말로 지금 싸이월드가 완벽히 부활한다고 해도 기자와 지인들은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고 방명록 대신 단톡방에서 수다를 떨테다. 15년 전 사진 꺼내보며 ‘라떼’를 찾기보다 좋은 기억은 가슴에 남겨두고 오늘을 사는 게 훨씬 생산적이다.

그렇지만 이 지점에서 따져봐야 할 문제는 있다. 기자에게는 2000년대 중반 교통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 지인이 있다. 한동안 그 지인의 가족들이 고인의 싸이월드 계정을 대신 운영했었다. 2000년대 후반 이후 싸이월드의 영향력이 예전 같지 않아서 최근까지 활발하게 운영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지인의 생전 마지막 모습들, 그리고 지인의 주변 사람들이 그곳에 가끔 올려두던 추모 메시지들을 이제는 볼 방법이 없어졌다. 이런 사례가 또 없을까?

온라인 세상에서의 ‘잊혀질 권리’가 한때 중요한 화두였다. 인터넷에서 검색되는 자신 관련 정보를 지우고 싶다면, 그 바람은 실현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유럽에서는 실제 이 문제와 관련한 소송이 제기되어 판례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렇다면 반대의 경우는 어떨까. 인터넷에 남은 흔적이 지워지지 않기를 누군가 원한다면 그때는 어떻게 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옳을까? 사진이나 글을 남긴 사람이 이미 세상을 떠나 인터넷에만 흔적이 남은 것은 극단적인 예에 불과하다. 하지만 내 흔적이 웹에 그대로 남기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앞으로 세상을 떠나는 세대들은 모두 인터넷에 흔적을 남겼을 확률이 높고, 아직 세상을 떠날 때가 아니어도 내 흔적이, 또는 누군가의 흔적이 그대로 남기를 바라는 사람은 생길 수 있다.

이 지점에서 근본적인 의문이 생긴다. ‘A라는 사람이 인터넷에 올린 사진 또는 글은 누구의 것일까’. 싸이월드는 경영상의 이유로 폐업 위기에 놓였으니 어쩔 수 없다면, 먼 미래 언젠가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도 같은 일이 생기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네이버 블로그나 다음 카페에 올려둔 글들은 어떨까. 네이버나 카카오는 건실한 회사니까 그런 일이 없다고 믿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과거 프리챌도, 라이코스도 소비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던 공간이었다. 거기 올려둔 글들은 지금 어떻게 됐을까?

이렇게 묻자. 사이트의 주인은 누구인가? 소비자들이 거기 올린 사진과 영상과 글은 누구의 것인가. 예를 들어 (어디까지나 예로서) 만일 미래 어느 날 유튜브가 사업을 접는다면, 유튜브에 올린 영상들은 모두 살아남을 수 있을까? 똑같은 방식으로 살아남기 어렵다면 그 데이터들을 어떻게 처리할지는 누가 정할까.

구글이 사업을 접고 ‘그동안 유튜브를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하면 그냥 끝인걸까?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이용하는 공간은 그저 IT기업이 운영하는 사기업의 공간에 불과할까? 아니면 사회적이거나 공공의 역할까지도 겸하는 공간일까? 그 공간에서 맺은 사회적 관계들을 꾸준히 잘 이어가는 것은 개인만의 몫일까? 아니면 매출과 이익을 유지해야할 해당 기업의 몫일까? 인류가 지금껏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질문들이다. 하지만 이 질문은 앞으로 계속 인류에게 던져질 예정이다.

어떤 사람들은 ‘사진 다운 받았으면 된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다. 사실 기자도 그렇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기자 세대에게만 해당하는 얘기다. 40대 또는 그 이상 세대들은 인터넷이 ‘예전에는 없었는데 90년대 후반에 생겨서 세상을 바꾼 도구’다. 하지만 90년대 또는 그 이후에 태어난 요즘 세대들은 다르다. 그 세대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인터넷을 했다. 어떤 이들은 어릴때부터 카톡을 하고 유튜부로 정보를 검색했다. 그들이 이제 조금씩 어른이 되어간다.

시간이 갈수록 인터넷은 인류와 더 밀접해진다. ‘인터넷 없는 세상’을 경험해보지 못한 세대가 지구에 가득 찰 테니까 말이다. 그들에게 인터넷은 더 이상 ‘가상의 공간’이 아니다. 이런 공간에서 앞으로 비슷한 문제가 생겼을 때, 사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기업은 무슨 일을 해야 하고 소비자들은 어떤 대처가 필요할까. A라는 사람이 일부러 남기고 그의 지인들이 함께 즐겼던 흔적을 A 또는 그의 지인들이 온전히 처리할 수 없게 되었을때의 문제다. 그 흔적의 주인은 도대체 누구일까?

앞으로의 인류에게 계속 던져질 문제다. 이 부분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leehan@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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