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과 경제의 교집합을 찾지 못하면, 밝은 미래는 없다

[그린포스트코리아 이한 기자] 최근 한국경제연구원이 시장조사 전문기관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 매출액 600대 기업의 87.2%가 ‘환경규제로 경영에 영향을 받았다’고 답했다. 이와 더불어 60.2%는 ‘강화된 환경규제가 생산비용과 제품가격 인상요인이 된다’고 답했다.

기업들은 배출권거래법 등 대기 관련 규제(38.6%), 화학물질 규제(31.3%)에 특히 부담을 느낀다고 답했다. 기업의 이행능력이나 기업현실과 괴리된 규제기준을 지적한 곳이 절반이 넘었고, 세부지침이 모호해 법 위반 가능성이 있다고 답한 곳도 36.8%였다.

그러면서 기업들은 21대 국회와 정부가 법률 제정이나 개정시 실질적인 업계 의견을 반영하고, 이행능력 및 기업 현실을 고려한 규제기준을 설정하며, 신설규제 도입 시 충분한 적응기간을 주는 것이 좋겠다고 건의했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거나 뭔가를 의논할 때 가장 답답한 것 중 하나가 ‘흑백논리’다. 세상에는 A와 B만 있는 게 아니다. 살다 보면 양자택일 필요한 순간이 있지만, 선택지가 두 개뿐인 문제보다는 답이 여럿인 문제가 세상에는 더 많다.

그런 취지에서, ‘환경 규제가 경영에 일부 영향을 미친다’는 기업들의 목소리도 한편으로는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들 역시 ‘우리는 환경을 마음껏 파괴하겠다’는 주장을 하는 게 아니니까.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정책이 있다면 업데이트가 필요하고, 세부지침이 모호해 사각지대가 있다면 당연히 꼼꼼하게 점검해야 한다. 옳은 지적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불안하다. 왜냐하면 우리 인류는 환경 문제를 경제 논리 뒤로 미뤄왔던 오랜 습관이 있어서다. ‘현실을 고려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 자체가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그저, ‘과거에도 오랫동안 그래왔고 지금도 그렇고 미래에도 그러면 우리는 어떡하지?’ 하는 노파심이다. 물론, 이 마음이 단순한 노파심으로 끝날지 아니면 어두운 미래를 비추는 거울일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

기자 혼자만의 지적이 아니다. 역사학자 겸 작가 유발 하라리는 자신의 저서 <호모데우스>에서 “오염과 지구온난화, 기후변화에 대한 논의는 무성하지만 대부분의 나라들은 아직도 개선에 필요한 진지한 경제적, 정치적 희생을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유발 하라리는 “경제성장과 생태계 안정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정치인, CEO, 유권자들의 십중팔구가 성장을 선호한다”고 말하면서 “21세기에도 이런 식이면 우리는 파국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기자가 ‘환경경제신문’으로 옮기면서 마음속에 담아둔 ‘코어 멘트’가 두 개 있다. 2009년 독일 출장 당시 들은 얘기다. 11년 전, 밀레 본사에서 환경 사무관은 “환경 정책과 제품 개발을 별개의 건으로 분리해서 보는 것은 구시대적 발상”이라고 말했다.

이튿날 일렉트로룩스 본사에서 만난 환경 감독관은 “기후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소비자 개인들이 자발적으로 실천하고 힘을 보태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은 결국 기업과 국가”라고 말했다.

독일 기업은 착하고 한국 기업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그들 역시 환경 업무 담당자로서 기자에게 최대한 좋은 말을 골라 들려줬을 수도 있다. 중요한건 멘트 자체가 아니라 내용이고, 그 내용을 어떻게 실천하느냐다. 조명래 환경부 장관의 올해 신년사처럼, 경제 성장의 부산물로서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넘어, 환경을 기본에 두고 성장을 도모하도록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는 의미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기업들의 호소를 묵살하고 모든 정책을 환경 보호에만 맞추라는 주장을 하려는 건 아니다. 앞서 언급한 유발 하라리는 같은 책에서 이런 말도 썼다.

“환경을 보호하는 것은 무척 멋진 생각이지만, 당장 집세도 못 내는 사람에게는 녹아내리는 만년설보다 자신들의 마이너스 통장이 훨씬 큰 걱정거리다”

환경과 경제의 교집합을 찾는 것. 어쩌면 우리 인류가 평생 풀어왔던 모든 숙제보다 더 어려운 과제일 수 있다. 하지만 그 해결책을 찾는 게 지금 인류의 가장 큰 의무다. 적당한 수준의 교집합을 찾지 못하면, 지구에는 밝은 미래가 없다. 어쩌면 미래 자체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leehan@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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