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포스트코리아 김동수 기자] “비겁한 변명입니다”

2003년 개봉한 영화 ‘실미도’에서 열연을 펼쳤던 배우 설경구(강인찬 역)가 했던 대사다. 

당시 국내에서 유행됐던 이 대사를 굳이 기자수첩 서두에 꺼낸 이유가 있다. 취재 과정 중 다양한 정책을 시행 중인 담당 공무원들이 곧잘 ‘홍보 부족’이라는 만능열쇠를 꺼내기 때문이다. 

즉, 정책을 수립해 놓고 각종 외부요인으로 시행이 안 될 때 내세우는 ‘히든카드’인 셈이다.

최근 기자는 한 차례 연기된 서울시의 투명 페트병 분리배출 시범사업을 취재한 바 있다. 해당 시범사업에 주목한 이유는 쓰레기 문제 중 가장 큰 골칫거리로 여겨진 게 플라스틱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최근 코로나19 여파까지 겹쳐 재활용 산업 생태계까지 흔들리고 있으니 시범사업 현황이 어떤지 궁금증을 참을 수 없었다.

관심을 둔 다른 이유도 있다. 앞서 분리수거 선별 업체를 찾아 관계자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해당 관계자는 실제 고품질 원료로 재활용될 수 있는 플라스틱이 음식물 등에 오염된 다른 플라스틱과 혼합 배출됨으로써 재활용률이 현격히 떨어진다고 말을 전했다. 이에 환경부와 시범사업 대상 지역이 일제히 고품질 원료로 재활용하기 위해 투명 페트병 분리배출 발표에 눈이 번뜩였다.

서울시 역시 이러한 플라스틱 재활용 문제를 인지한 듯하다. 지난 4일 한 차례 연기된 투명 페트병과 비닐 분리배출 시범사업을 강화한다며 내놓은 보도자료에는 “코로나19로 인해 일회용품 사용 및 배달, 택배 이용 증가에 재활용 폐기물 배출량이 증가하고 있다”며 “유가 하락과 수출금지 등의 사태로 시민들의 투명 페트병 분리 배출에 적극 동참해 달라”고 호소했다.

또한 앞서 2월에 발표한 보도자료에는 “투명 페트병만 별도 분리수거할 경우 고품질 폐페트병의 해외 수입을 최소화하고 국내산으로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2018년 기준 국내에서 생산되는 약 30만 톤 중 80%가 재활용(24만톤)돼 재활용률이 높지만 다른 플라스틱과 혼합 배출되고 있어 고부가가치 재활용엔 한계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러한 서울시의 투명 페트병 분리배출은 그저 ‘공염불’에 그쳤다. 실제 시범사업은 주택가에서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해당 사업이 이뤄지지 않은 이유는 앞서 언급한 그 만능열쇠 ‘홍보 부족’ 때문이다.

서울시의 입장은 이렇다. 시범사업을 하려면 시민과 직접 만나 대면 홍보를 해야 하는데 예기치 않은 이태원 발(發) 코로나19 재확산에 따라 ‘홍보 부족’으로 관련 사업을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기자에게 이 상황에서 시범사업 자체가 될 수 있겠느냐며 반문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이는 비단 서울시뿐만 아니라 5개 시범사업 대상 지역도 마찬가지라며 애써 당위성을 설명하기도 했다.

물론 ‘코로나 팬데믹’과 ‘코로나 블루’ 등 신조어까지 만들어낸 코로나19가 사회 전반을 뒤흔들어 놓은 것을 부정할 순 없다. 시행 중이던 각종 정책을 수정·변경하도록 영향을 준 것 또한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유독 ‘홍보 부족’을 전면에 내세워 시범사업 자체를 하지 않는 곳은 서울시가 유일했다.

투명 페트병 분리배출은 서울시를 비롯해 부산시, 김해시, 천안시, 제주시·서귀포시가 각 지역 특성에 맞게 2월부터 시행했다. 취재 결과, 5개 지역은 코로나19 확산에 홍보에 어려움을 겪곤 있지만 그렇다고 시범사업 자체가 중단된 것은 아니었다. 정말 코로나19에 따른 홍보 부족으로 시범사업 자체를 할 수 없는 형국이라면 나머지 5개 시범사업 대상 지역도 같아야 할 텐데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여기에 굳이 구시대적인 대면 홍보를 고집하는 서울시 역시 이해하기 힘들다.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인터넷 배너 광고를 비롯해 TV, 대중교통 광고 등 홍보를 할 수 있는 채널은 무궁무진하다. 만약 코로나19로 사람과 직접 접촉이 힘들다면 다른 경로로도 충분히 홍보활동을 펼칠 수 있는 시대가 21세기다.

코로나19에 따른 폐기물 증가로 투명 페트병 분리배출 필요성을 주장해 놓고 정작 코로나19로 시범사업을 할 수 없다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차라리 수거 업체 인력의 감염 우려 등이라면 충분히 공감하겠지만 홍보 부족으로 시범사업을 못 한다는 건 ‘비겁한 변명’이 아닐까 싶다.

kds0327@greenpost.kr

관련기사

저작권자 © 그린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