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친에게 깊은 영향 받았다는, '생태학의 어머니' 책을 다시 읽고...

[그린포스트코리아 이한 기자] 주례 없는 결혼식을 경험한 적 있다.

하객들이 귀 기울여 듣지도 않는, 사진부터 찍고 밥을 먹을지 아니면 얼른 밥부터 먹고 사진을 찍을지에 대한 고민보다 뒷순위로 밀리는 흔한 ‘주례사’가 없는 결혼식이었다.

신부 어머니가 짧고 굵은 메시지로 결혼을 축하한 다음 하객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신랑 아버지도 역시 1분 내외의 인사말로 결혼을 축복하고 하객에게 인사했다.

신랑과 신부는 주례 대신 부모님이 인사말을 전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사회적으로 이름 날린 유명인보다 부모님이 우리에게 평생 더 많은 모범이 되셨거든. 아무리 훌륭한 분 모셔도 부모님 얘기가 더 마음을 움직이잖아"

‘어버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바로 거기 있다. 사람들의 습관과 성격은 대개 부모와 닮는다. DNA영향일 수도 있고, 함께 지낸 시간이 길어서일 수도 있고, 자녀들이 부모를 보고 느낀 점들을 따라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부모 얘기를 꺼낸 이유는 오늘이 5월 8일이어서다. 나를 세상에 존재하게 하고 사고와 행동방식에 영향을 미치는 존재가 바로 ‘어버이’다.

‘환경하는 사람들’은 누구에게서 영향을 받았을까. 저마다 머릿속에 그런 생각을 담은 이유와 지점들이 다르겠지만, 20세기 환경 운동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대표적인 환경 고전으로 꼽히는 책이 하나 있다. 레이첼 카슨이 쓴 <침묵의 봄>이다.

레이첼 카슨은 ‘생태학의 어머니’로 불린다. 타임지가 뽑은 ‘20세기를 변화시킨 100인’가운데 한 명인데, 그의 어머니 역시 어린 카슨에게 늘 환경과 인간의 조화에 대해 강조해왔다고 한다. 말하자면, 레이첼 카슨은 자신의 어머니에게 깊은 영향을 받은 생태학의 어머니다.

레이첼 카슨은 지금 우리 시대 사람이 아니다. 저자는 1907년에 태어났다. ‘환경운동’이라는 말 자체가 낯설었던 시대다. 그는 <침묵의 봄>에서 독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지구에 서식하는 동식물의 물리적 형태와 특성은 환경에 의해 규정된다. 지구 탄생 이후 전체적인 시간을 고려할 때 생물이 주변 환경에 미친 영향은 상대적으로 미미하다. 20세기에 들어서 오직 하나의 생물종, 즉 인간만이 자신이 속한 세계의 본성을 변화시킬 수 있는 놀라운 위력을 획득했다”

책의 주요 내용은 무분별한 살충제 사용으로 파괴되는 야생 생물계의 모습을 공개한 것이다. 이 책을 읽은 미국 상원의원이 케네디 대통령에게 자연보호 전국 순례를 건의했고 이를 계기로 지구의 날(4월 22일)이 제정됐다. 미국 전 부통령 앨 고어는 이 책이 출간된 날이 바로 현대 환경운동이 시작된 날이라고 말한 바 있다.

레이첼 카슨은 책 머리말에서 “만물과 공유해야 하는 이 세상을 무모하고 무책임하게 오염시키는 인간의 행위에 가장 먼저 대항하고, 우리를 둘러싼 이 세상에서 결국 이성과 상식의 승리를 위해 수천 곳에서 전추를 벌이는 사람들이 있다”고 썼다. 알베르트 슈바이처의 발언을 인용하면서 “인간은 미래를 예견하고 그 미래를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다. 지구를 파괴함으로써 그 자신도 멸망할 것이다”라고도 경고했다.

책의 내용을 한 부분만 더 소개한다. 레이첼 카슨은 미국의 한 마을에 대한 글을 쓰면서 “죽은 듯 고요한 봄이 왔다”고 썼다. “이 땅에 새로운 생명 탄생을 가로막은 것은 사악한 마술도, 악독한 적의 공격도 아니며, 사람들이 스스로 저지른 일”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오늘날 수많은 마을에서 활기 넘치는 봄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은 왜일까?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이 책을 쓴다”고 덧붙였다.

기자는 ‘죽은 듯 고요한 봄’이라는 문장을 읽는 순간 간담이 서늘했다. 철저하게 누군가와 거리를 두어야 했던 지난 봄의 모습이 생각났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생태학자 폴 셰퍼드는 “지금의 환경오염은 우리가 물에 완전히 빠질 때까지 거의 몇 인치만 남겨둔 채 머리만 간신히 내밀고 있는 상태와 다름없다”고 경고했다. 카슨의 지적을 받아들인 후대 학자의 경고가 아니라 ‘침묵의 봄’에 소개된 발언이다.

<뉴욕타임즈>가 이 책이 ‘상당한 소란을 일으키고 있다’고 보도한 것이 1962년 7월이다. 58년이 흐른 지금, 인류는 ‘생태학 어머니’의 지적을 받아들이고 수용했을까? 의문이다. 

leehan@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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