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T 2G서비스 조기종료 재신청...과기부 검토 중
011 계속 쓴다는 소비자...“번호의 자유를 달라”
정체성 담은 고유 자산? 계약 따른 단순 일렬번호?

사람을 만나는 대신 집에서 다양한 정보를 검색하려니 여러 대의 정보통신 기기가 필요하다. 그런데 저 작은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것 만으로도 이산화탄소가 발생한다. 무슨 까닭일까. (독자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세상에는 많은 휴대전화가 있다. 이 전화기들은 대부분 010번호로 시작한다. 그런데 앞번호를 010으로 강제 통합하기 싫다고 주장하는 소비자들이 있다. 어떤 사연일까. (독자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이한 기자] SK텔레콤 2G서비스가 곧 종료될 위기에 놓였다. 011이나 017 등 기존 번호를 그대로 사용하게 해달라는 소비자 요구가 꾸준히 제기된다. 휴대전화 앞번호는 사회적 정체성이 담긴 개인 자산일까? 아니면 서비스 계약에 의해 부여된 단순한 일렬번호에 불과할까. ‘앞번호’ 둘러싼 논란을 짚어봤다.

기자는 지난 연휴 기간 만난 지인들에게 ‘전화가 안 터진다는 얘기를 들으면 무슨 생각이 나느냐’고 물어보았다. 비슷한 또래 지인들은 ‘안테나’가 뜨지 않아 전화를 걸거나 받을 수 없던 과거 장면을 회상했고, 후배들은 와이파이 신호가 약하거나 데이터 통신이 일시적으로 불안정한 상태를 상상했다. ‘휴대전화’를 둘러싼 세대 차이 탓이다.

과거에는 지하에서 휴대전화가 잘 안 터지던 시절이 정말 있었다. 도시에서 벗어나면 신호가 약해지기도 했다. 그 시절에는 통신사들이 저마다 ‘전화가 잘 걸린다’고 홍보하며 경쟁적으로 앞번호 마케팅을 벌였다. 당시 통신사들은 ‘스피드011’이나 ‘파워017’ ‘원샷018’ 등의 이름을 내세우면서 자신들의 앞번호가 전화 연결이 잘 된다고 주장했다.

PCS 시대를 지나 컬러폰이 보급되고 휴대전화가 모두의 필수품이 될 때 즈음, 정책적으로 ‘010 번호통합’이 이뤄졌다. 번호 마케팅에 열을 올리기 보다는 실제로 소비자에게 도움이 되는 서비스 경쟁이 이뤄져야 한다는 취지였다. 많은 소비자들이 번호이동을 하거나 단말기를 교체하면서 010으로 번호를 바꿨다. ‘최신폰’이 보급될수록 그 속도는 더욱 빨라졌고 요즘은 대다수 소비자가 스마트폰에 010을 쓴다.

◇ SKT 2G서비스 조기종료 재신청...과기부 검토 중
 
기자의 개인용 휴대전화에는 109명의 연락처가 있다. 모두 010이다. 그린포스트 편집국 임직원의 전화번호도 모두 010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과거 사용하던 업무용 휴대전화에는 017과 011 번호가 한명씩 저장되어 있다. 오래전부터 저장해 꾸준히 업데이트해 온 연락처 파일에도 01X 번호가 일부 남아있다.

대부분 010을 쓰지만 모든 소비자가 번호이동을 마친 건 아니다. 아직 예전 번호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적지 않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지난해 9월 기준 SK텔레콤 2G 가입자가 57만여명이다. LG유플러스에도 당시 기준으로 SK텔레콤과 비슷한 숫자의 가입자가 남아있다. KT는 2G를 종료했다.

번호이동 하지 않고 01X 번호를 쓰는 사람들의 사연은 예전부터 종종 언론에 소개되곤 했다. 그런데 최근 문제가 된 것은 지난해 11월과 올해 1월이다. SK텔레콤은 지난해 11월 7일 “금일 오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2G 서비스 종료 승인 신청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2G 장비 노후와로 망 유지관리가 어렵고 2G 주파수를 정부에 반납해야 하는 기간이 2021년 6월로 다가온 상태여서 종료를 준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후 SK텔레콤은 지난 1월 과기정통부에 2G 서비스 조기 종료를 재신청했다.

지난해 11월 신청 당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심사기한 및 2G 서비스 종료 시점 등에 대해서는 확정된 바 없다”고 밝혔다. 추후 2G 종료 여부와 시점에 대해서는 “이용자 보호계획 및 잔존 가입자 수 등을 종합 고려해 심사할 예정”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그런데 최근 과기부가 해당 건에 대해 본격 검토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앙일보와 디지털데일리 보도에 따르면 SK텔레콤이 지난 1월 재신청한 '2G 서비스 조기 종료'에 대해 과기정통부가 본격적인 검토에 들어갔다. 보도에 따르면 과기정통부는 이미 SK텔레콤의 2G 서비스 장비의 노후화 정도와 부품 재고 현황 등을 두 차례에 걸쳐 현장 심사했다. 과기정통부는 조만간 결론을 지을 것으로 전해졌다.

◇ 011 계속 쓰겠다는 소비자...“번호의 자유를 달라?”

2G 사용자 중 일부는 여전히 SK텔레콤과 과기정통부 등에 자신들의 앞번호를 유지하게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4G나 5G 등 다른 망으로 이동하면 기존 번호 대신 010을 새로 받아야 하는데 010 대신 자신의 앞번호를 계속 쓰고 싶다는 의미다. 그 이유는 뭘까. 그저 요즘 유행하는 ‘레트로’ 열풍의 일환일까?

기자는 지난해에도 이 문제를 취재한 바 있다. 당시 조사한바에 따르면, 이들이 01X 번호를 계속 사용하겠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크게 3가지다.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가 업무와 직접 연결되어 함부로 바꾸기 어렵다는 주장, 번호에 얽힌 개인적인 기억이나 사연을 잃고 싶지 않다는 주장, 그리고 휴대전화 번호가 자신의 고유한 자산이므로 국가가 변화를 강제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지난해 가을 기자에게 011 명함을 준 사람이 있다. 그는 인테리어 및 주방 설비 관련 종사자로 20여 년 동안 같은 번호를 썼다. 그는 “업무 특성상 다양한 사람에게 가끔 일을 의뢰 받는다”고 말하면서 “어쩌다 한 번 걸려오는 연락도 내게는 소중하고 큰 기회”라고 말했다.

자신의 친척이 011을 사용한다는 한 소비자는 “(그 분은)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011 번호의 예전 휴대전화를 살려두고 업무 전화 받는 용도로 쓴다”고 말했다. 굳이 전화기를 두 대 사용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바뀐 번호를 업무상 연결된 모든 사람에게 다 알릴 수 없었고, 어쩌다 한번 걸려오는 전화도 놓치기 싫어서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01X 번호 사용을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과거 019를 사용하다 010 번호통합 직후 번호를 바꿨다는 한 소비자는 “2G 서비스를 정지해놓고 010을 사용하면서 버티다가 결국 보상을 받으려는 의도인 것 같다”고 말했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개설된 '010통합반대운동본부' 카페 모습. 이곳에는 3만 7천여명의 회원이 가입해 있다. (네이버 카페 캡쳐)/그린포스트코리아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개설된 '010통합반대운동본부' 카페 모습. 이곳에는 3만 7천여명의 회원이 가입해 있다. (네이버 카페 캡쳐)/그린포스트코리아

◇ 010 통합반대운동본부, 6개월 사이 회원 800여명 증가

이 논란은 법정 다툼으로 옮겨갈 조짐도 보인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에는 ‘010통합반대운동본부’라는 이름의 카페가 개설되어 있다. 이 카페에서는 번호 통합과 관련해 헌법소원 제기 등도 논의하고 있다.

카페 가입자는 5월 6일 현재 3만 7600여명이다. 지난해 11월 SK텔레콤이 2G 서비스 종료 승인 신청서를 제출하던 시점의 회원 수는 3만 6800여명 이었다. 6개월여 만에 약 800여명이 늘어났다. 회원들은 번호이동 관련 안내 전화 대응 요령을 공유하는 등 부지런히 정보를 나누고 있다.

이들은 카페 메인화면에 게재한 입장문을 통해 자신들의 주장을 전하고 있다. 이들은 “번호이동 정책이 이용자 중심이 아니라 정부 중심의 강제정책이며, 01X 번호로도 3G/4G/5G로 번호이동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버티다가 결국 보상을 요구하는 것 아니냐’는 시선에 대해서는 “보상을 바라거나 소위 ‘알박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현재 사용 중인 번호를 이용자가 원할 때까지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라고 말한다. 자신들의 앞번호에 대해서는 “오래도록 자식처럼, 친구처럼, 애인처럼 애지중지 사용하던 전화번호”라고 언급했다.

운동본부 일부 회원들은 지난해 여름 SBS를 통해 자신들이 왜 01X 번호를 계속 사용하고 싶은지 밝힌 바 있다. 당시 그들은 방송 인터뷰를 통해 ‘부모님이 20여 년 전 처음 마련해준 휴대전화’, ‘퇴근 후 카톡을 통한 업무지시로부터의 자유로움’, ‘차별화에 대한 자부심’ 등을 이유로 꼽았다.

각자 내용은 다르지만 이들의 의견은 결국 한 지점으로 모인다. “소중한 의미가 담긴 개인 자산을 국가가 마음대로 바꾸는 것은 옳지 않다”는 주장이다. 자신에 관한 개인정보 공개 여부나 관리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 다시 말해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에 저촉된다는 주장이다.

◇ 전화번호, 정체성 담긴 개인 자산? 서비스 계약 따른 단순한 일렬번호?

휴대전화 앞번호는 사회적 정체성이 담긴 개인 자산일까? 아니면 서비스 계약에 의해 부여된 단순한 일렬번호에 불과할까? 이 부분에 대해 법률적으로는 판단이 내려진 바 있다. KT가 2012년 2G서비스를 종료할 당시 소비자들이 번호통합 정책에 대한 위헌 심판을 청구했는데 기각됐다.

당시 재판부는 “청구인들이 오랜 기간 같은 전화번호를 사용해왔지만, 국가의 정책 및 사업자와의 서비스 이용계약 관계에 의한 것일 뿐”이라고 언급하면서 “재산 가치가 있는 구체적 권리인 재산권을 가진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여러 정황을 종합하면, SK텔레콤이 신청한 2G서비스 조기 종료가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다. 과기정통부는 최근 중앙일보를 통해 “010 번호통합은 2004년 법제화돼 일관되게 지켜온 정책이며 일관성과 형평성을 고려해 2G 가입자들이 주장하는 '01X 번호 유지'는 불가능하다”고 밝힌 바 있다. 통신업계에서도 2G 서비스 종료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문제는 그에 따른 갈등이 만만찮다는 점이다. 적잖은 소비자들이 저마다의 사연과 이유를 들어 번호를 유지하겠다고 주장한다. 개인적으로 애착 가지고 있는 번호를 타의에 의해 바꾸는 게 부당하다는 주장도 꾸준히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통신사 입장에서는 2G 조기 종료가 받아들여져도 여전한 부담이 있다. 자사 통신사 장기 고객을 대상으로 번호 전환을 재차 설득하거나 또는 강제해야 해서다. SK텔레콤은 2G 가입자의 세대 전환을 위해 단말기 구매 지원금과 요금할인 등의 혜택을 제공했다. 이를 위해 감수한 비용도 만만찮은 것으로 전해졌다.

전화번호는 이름이나 별명처럼 개인의 정체성이 담긴 표현수단으로 보아야 할까? 아니면 주소나 차량번호처럼 특별한 의미 없이 부여된 단순한 일렬번호로 보는 것이 옳을까? 2G 서비스를 둘러싼 이 논란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leehan@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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